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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토기편과 인골편 등이 확인된 점에서 무덤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김해 예안리 유적,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유적 등이 있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돌무지무덤
돌무지무덤은 신석기시대 무덤의 한 종류로서 돌을 여러 겹으로 깔거나 쌓은 무덤이다. 돌무지 사이에서 토기편과 인골편 등이 확인된 점에서 무덤으로 판단한다. 대표적인 유적으로 부산 금곡동 율리 유적, 김해 예안리 유적, 통영 연대도와 욕지도 유적 등이 있다. 주로 남해안 일대에서 많이 확인되었으며, 신석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늦은 시기까지 오랫동안 존재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에 가입하여 조선총독부 투탄 의거를 전개하였고, 육군대장 다나카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독립운동가.
김익상 (金益相)
일제강점기 때, 의열단에 가입하여 조선총독부 투탄 의거를 전개하였고, 육군대장 다나카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일진회(一進會) 회원 전협(全協)과 최익환(崔益煥)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던 단체.
조선민족대동단 (朝鮮民族大同團)
1919년 3월 일진회(一進會) 회원 전협(全協)과 최익환(崔益煥)이 중심이 되어 조직되었던 단체.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신도리에 있는 섬.
신도 (信島)
인천광역시 옹진군 북도면 신도리에 있는 섬.
덕흥군은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으로 도망해 있다가 1362년(공민왕 11) 원에서 공민왕을 폐위하고자 했을 때 그를 대신해 고려 국왕에 세워졌다. 고려 국왕에 오르기 위해 최유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군에 패하고 원으로 돌아갔다.
덕흥군 (德興君)
덕흥군은 고려 후기 제26대 충선왕의 셋째 아들인 왕자이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원으로 도망해 있다가 1362년(공민왕 11) 원에서 공민왕을 폐위하고자 했을 때 그를 대신해 고려 국왕에 세워졌다. 고려 국왕에 오르기 위해 최유 등과 더불어 군사를 이끌고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고려군에 패하고 원으로 돌아갔다.
동강서당은 조선 후기 동강 이희정이 경상도 의성군 사곡면에 건립한 서당이다. 이황의 삼종손이자 직접 교육받았던 이희정이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서당으로, 18세기 후반에 중수를 거쳤고, 개항기 이후 사설 학원으로 운영했으나, 일제강점기에 보통학교 교육의 시작과 함께 중단되었다. 199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강서당 (桐岡書堂)
동강서당은 조선 후기 동강 이희정이 경상도 의성군 사곡면에 건립한 서당이다. 이황의 삼종손이자 직접 교육받았던 이희정이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서당으로, 18세기 후반에 중수를 거쳤고, 개항기 이후 사설 학원으로 운영했으나, 일제강점기에 보통학교 교육의 시작과 함께 중단되었다. 199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양성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경기 양성현에 세워진 향교이다. 16세기에 대규모로 중건되었으며, 전학후묘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경기도 안성시 소재로 되었으며, 1983년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양성향교 (陽城鄕校)
양성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경기 양성현에 세워진 향교이다. 16세기에 대규모로 중건되었으며, 전학후묘 형태로 자리하고 있다. 현재는 경기도 안성시 소재로 되었으며, 1983년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여수향교는 1897년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전라남도 여수군에 세워진 향교이다. 1897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 이후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수군이 신설되면서 세워졌다. 이는 조선시대에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각 지방마다 향교를 세웠던 것을 따른 것이었다. 현재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재로 되었으며, 1985년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여수향교 (麗水鄕校)
여수향교는 1897년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전라남도 여수군에 세워진 향교이다. 1897년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 이후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수군이 신설되면서 세워졌다. 이는 조선시대에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각 지방마다 향교를 세웠던 것을 따른 것이었다. 현재는 전라남도 여수시 소재로 되었으며, 1985년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는 건학이념에 따라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감이 지정·고시한 사립 고등학교이다. 학생모집 범위에 따라 전국 단위 자율형사립고등학교와 시도 단위 자율형사립고등학교로 구분된다. 학교 교육과정 운영, 학생과 교사의 선발, 교육비 책정 등에 대한 자율성이 허용되는 대신 교직원 인건비, 학교운영비 등 학교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스스로 충당한다. 학생 및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한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과도한 입시 경쟁 및 사교육비를 유발하고, 고교를 서열화한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자율형사립고등학교 (自律型私立高等學校)
자율형사립고등학교는 건학이념에 따라 교육과정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감이 지정·고시한 사립 고등학교이다. 학생모집 범위에 따라 전국 단위 자율형사립고등학교와 시도 단위 자율형사립고등학교로 구분된다. 학교 교육과정 운영, 학생과 교사의 선발, 교육비 책정 등에 대한 자율성이 허용되는 대신 교직원 인건비, 학교운영비 등 학교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스스로 충당한다. 학생 및 학부모의 학교선택권을 확대한다는 긍정적 평가와 함께 과도한 입시 경쟁 및 사교육비를 유발하고, 고교를 서열화한다는 부정적 평가도 있다.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
최유 (崔濡)
최유는 고려 후기 원에서 기황후를 설득하여 공민왕을 폐하고 덕흥군 옹립을 모의한 주모자이다. 조적의 난이 발생했을 때 충혜왕을 수행하여 원에 간 공으로 귀국 후 공신에 책봉되었다. 원에서 관직생활을 하였으며 1348년(충정왕 즉위년) 충목왕이 사망했을 때 충정왕을 호종하여 그 즉위에 공이 있었다. 이후 포상 문제로 불만을 품고 다시 원으로 갔다. 기황후를 설득해 공민왕을 폐위하고 덕흥군을 세우는 데 앞장섰다가 1362년(공민왕 11) 주살되었다.
평택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충청도 평택현에 세워진 향교이다. 조선전기에 창건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일부 소실된 것을 1953년 중건했다. 평택현은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에 속했지만, 20세기 들어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에 속하게 되었다. 1983년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평택향교 (平澤鄕校)
평택향교는 조선 전기 지방교육 및 교화를 위하여 충청도 평택현에 세워진 향교이다. 조선전기에 창건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중건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일부 소실된 것을 1953년 중건했다. 평택현은 조선시대에는 충청도에 속했지만, 20세기 들어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경기도에 속하게 되었다. 1983년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