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건 연대는 미상이다. 다만, 현의 북쪽 2리에 있다는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기록으로 보았을 때 15세기 어느 시점에 건립되었다고 판단된다. 양성향교 건립은 조선 건국 후 1읍 1교 원칙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조선의 향교 건립은 지방 인재 양성 및 교화를 위해 시행된 것이었다.
김안국(金安國)의 「양성현중수향교기(陽城縣重修鄕校記)」에 따르면, 1526년 대대적인 재건축이 행해졌다. 기록에 따르면 이때까지 양성향교는 초가였는데, 세월이 오래됨에 따라 허물어져 갔다. 이에 따라 기존 장소에서 좀 더 북쪽에 터를 마련하고, 7월 한 달 동안 공사를 진행해 대성전 3칸, 대성전 및 동 · 서재 각 3칸[間], 제기고, 부엌과 주1을 합쳐 6칸을 갖추게 되었다. 또 가운데에 대문을 두었고, 담장을 둘렀으며, 모두 기와를 사용했다. 이후 1774년 중창, 1898년과 1917년 중수되었고, 마지막으로 1985년 중수되었다.
조선은 건국 후 향교에 전답과 노비 등을 지급하고 교관을 파견해 교생들을 가르쳤고, 봄과 가을에는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도록 했다. 이는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유학 이념으로서 백성들을 교화시키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했고, 그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 양성향교는 1983년 9월 19일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