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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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신라 (新羅)
신라는 서기전 57년(혁거세거서간 1)부터 935년(경순왕 9)까지 56대 992년간 존속했던 고대 왕조이다. 경주평야에 자리하던 여섯 씨족이 연합한 성읍국가로 건국했다. 가야를 합병하고 중국과의 교통로인 한강 유역을 점령하여 강성해졌다. 7세기 중엽 당을 끌어들여 백제와 고구려를 평정하고 발해와 함께 남북국시대를 열었다. 하대에 들어 왕위계승을 둘러싼 내분이 반복되고 호족세력이 대두하면서 왕권이 약해져 중앙집권적 국가로서 존립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후삼국으로 나뉘었다가 경순왕이 고려의 왕건에게 스스로 항복함으로써 신라왕조는 멸망했다.
신라고분은 삼국시대 신라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무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주의 신라고분은 신라 최고 지배자의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왕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묘제도 함께 변화하였다. 신라식 덧널무덤은 덧널 위에 야트막한 봉토를 쌓은 형태로 사로국이 신라국가로 탈바꿈하는 시기의 것이다. 4세기 후반부터 등장하는 돌무지덧널무덤은 금관과 금제 허리띠 등 각종 금제품을 다량 부장한 경주 시내 평지의 대형분들이다. 6세기 전반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함께 돌방흙무덤으로 교체되며, 8세기 후반 신라 지배체제의 와해되면서 소형 돌덧널무덤으로 바뀌었다.
신라고분 (新羅古墳)
신라고분은 삼국시대 신라부터 통일신라까지의 무덤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경주의 신라고분은 신라 최고 지배자의 칭호가 이사금에서 마립간으로, 왕으로 바뀌어 감에 따라 묘제도 함께 변화하였다. 신라식 덧널무덤은 덧널 위에 야트막한 봉토를 쌓은 형태로 사로국이 신라국가로 탈바꿈하는 시기의 것이다. 4세기 후반부터 등장하는 돌무지덧널무덤은 금관과 금제 허리띠 등 각종 금제품을 다량 부장한 경주 시내 평지의 대형분들이다. 6세기 전반 중앙집권체제 확립과 함께 돌방흙무덤으로 교체되며, 8세기 후반 신라 지배체제의 와해되면서 소형 돌덧널무덤으로 바뀌었다.
1980년 역사학자 이기동의 신라시대의 정치·사회사에 관한 학술서.
신라골품제사회와 화랑도 (新羅骨品制社會와 花郎徒)
1980년 역사학자 이기동의 신라시대의 정치·사회사에 관한 학술서.
1982년 역사학자 이종욱의 신라의 국가 형성 및 발달 과정에 관한 학술서.
신라국가형성사연구 (新羅國家形成史硏究)
1982년 역사학자 이종욱의 신라의 국가 형성 및 발달 과정에 관한 학술서.
신라 선신당은 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츠시[大津市] 온조지초[園城寺町]의 미이데라[三井寺] 경내에 있는 사당(신사)이다. 북원(北院) 가람의 중심 건물로서 신라명신(新羅明神)을 모시고 있다. 신라명신은 미이데라를 부흥시킨 지증대사(智証大師) 엔친[圓珍]의 당나라 유학길을 지켜준 수호신으로 유명하다.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초기에는 신라명신이 봉안되어 신라사(新羅社)라고 불렀으며, 1347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기부를 받아 재건되었다.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 신라젠신도로 개명되었다.
신라 선신당 (新羅 善神堂)
신라 선신당은 일본 시가현[滋賀縣] 오츠시[大津市] 온조지초[園城寺町]의 미이데라[三井寺] 경내에 있는 사당(신사)이다. 북원(北院) 가람의 중심 건물로서 신라명신(新羅明神)을 모시고 있다. 신라명신은 미이데라를 부흥시킨 지증대사(智証大師) 엔친[圓珍]의 당나라 유학길을 지켜준 수호신으로 유명하다. 창건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초기에는 신라명신이 봉안되어 신라사(新羅社)라고 불렀으며, 1347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기부를 받아 재건되었다. 메이지[明治]시대에 들어와 신라젠신도로 개명되었다.
신라 신사는 1678년 일본 아오모리현[靑森縣] 하치노헤시[八戶市] 누카즈카[糠塚] 초자산[長者山]에 창건된 신라의 제신(祭神) 관련 신사이다. 1678년 하치노헤의 영주(領主)였던 미나베나오마사[南部直政]가 그의 먼 조상인 시라기사부로요시미츠[新羅三郎義光]를 영내(領內)의 수호신으로서 초자산[長者山] 정상에 모신 것에서 비롯된다. 초기에는 삼사당(三社堂) 또는 허공장당(虛空藏堂)이라고 부르다가 1868년 신라 진사로 개칭하면서 향사(鄕社)로 삼았다. 1976년부터 초자산 신라 진자[長者山新羅神社]라는 정식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신라 신사 (新羅 神社)
신라 신사는 1678년 일본 아오모리현[靑森縣] 하치노헤시[八戶市] 누카즈카[糠塚] 초자산[長者山]에 창건된 신라의 제신(祭神) 관련 신사이다. 1678년 하치노헤의 영주(領主)였던 미나베나오마사[南部直政]가 그의 먼 조상인 시라기사부로요시미츠[新羅三郎義光]를 영내(領內)의 수호신으로서 초자산[長者山] 정상에 모신 것에서 비롯된다. 초기에는 삼사당(三社堂) 또는 허공장당(虛空藏堂)이라고 부르다가 1868년 신라 진사로 개칭하면서 향사(鄕社)로 삼았다. 1976년부터 초자산 신라 진자[長者山新羅神社]라는 정식명칭을 사용하고 있다.
1974년 역사학자 이기백의 신라시대의 정치와 사회 제도에 관한 학술서.
신라정치사회사연구 (新羅政治社會史硏究)
1974년 역사학자 이기백의 신라시대의 정치와 사회 제도에 관한 학술서.
775년 연기법사가 『화엄경』을 필사한 경권(經卷) 끝부분에 제작과 관련된 사실을 이두식 문장으로 기록한 문서. 불교문서.
신라화엄경사경조성기 (新羅華嚴經寫經造成記)
775년 연기법사가 『화엄경』을 필사한 경권(經卷) 끝부분에 제작과 관련된 사실을 이두식 문장으로 기록한 문서. 불교문서.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오사카시[大阪市] 스미요시구[侘吉區] 스미요시정[侘吉町]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일본으로 이주한 신라인들이 창건한 사찰.
일본 신라사 (日本 新羅寺)
일본 오사카부[大阪府] 오사카시[大阪市] 스미요시구[侘吉區] 스미요시정[侘吉町]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일본으로 이주한 신라인들이 창건한 사찰.
제2신라문서는 일본 나라시 도다이사 경내에 있는 쇼소원의 남창에서 나온 신라시대의 행정문서이다. ‘제이신라장적’, ‘신라출납장’, ‘신라공물문서단편’, ‘신라녹봉문서단편’이라고도 한다. 쇼소원 소장의 ‘제1신라문서’는 신라 서원경의 촌락문서이다. 제1신라문서가 755년(경덕왕 14)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 문서도 역시 8세기 중엽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황갈색의 두터운 닥종이에 앞면에 4행, 뒷면에 4행이 묵서로 곡물 출입을 기록한 듯하다. 현재 신라시대의 행정문서는 이 둘뿐이므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제2신라문서 (第二薪羅文書)
제2신라문서는 일본 나라시 도다이사 경내에 있는 쇼소원의 남창에서 나온 신라시대의 행정문서이다. ‘제이신라장적’, ‘신라출납장’, ‘신라공물문서단편’, ‘신라녹봉문서단편’이라고도 한다. 쇼소원 소장의 ‘제1신라문서’는 신라 서원경의 촌락문서이다. 제1신라문서가 755년(경덕왕 14)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이 문서도 역시 8세기 중엽에 쓰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황갈색의 두터운 닥종이에 앞면에 4행, 뒷면에 4행이 묵서로 곡물 출입을 기록한 듯하다. 현재 신라시대의 행정문서는 이 둘뿐이므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북한 함경남도 함주군 하기천면 함흥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 신라의 진흥왕이 건립한 순수비.
황초령 신라 진흥왕 순수비 (黃草嶺 新羅 眞興王 巡狩碑)
북한 함경남도 함주군 하기천면 함흥역사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 신라의 진흥왕이 건립한 순수비.
충청북도 청주시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기적비.
청주 운천동 신라 사적비 (淸州 雲泉洞 新羅 寺蹟碑)
충청북도 청주시 국립청주박물관에 소장된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기적비.
1973년에 설립된 호텔관광기업.
호텔신라㈜ (Hotel新羅(株))
1973년에 설립된 호텔관광기업.
752년 일본 나라시대의 왕족과 귀족들이 신라사절단의 외래품을 구입한 문서. 관문서.
매신라물해 (買新羅物解)
752년 일본 나라시대의 왕족과 귀족들이 신라사절단의 외래품을 구입한 문서. 관문서.
신라명과는 1984년 경기도 안양시에 설립된 제과·제빵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이다. 주요 생산 품목은 빵류, 케이크류, 냉동 생지, 초콜릿, 쿠키류, 아이스크림, 잼류, 한과류를 생산하고 있다. 직영점과 분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사는 경기도 안양시 덕천로 72번길 30에 있다.
㈜신라명과 ((株)新羅名菓)
신라명과는 1984년 경기도 안양시에 설립된 제과·제빵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이다. 주요 생산 품목은 빵류, 케이크류, 냉동 생지, 초콜릿, 쿠키류, 아이스크림, 잼류, 한과류를 생산하고 있다. 직영점과 분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사는 경기도 안양시 덕천로 72번길 30에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앞트기식돌방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강릉 교항리 고분군 (江陵 橋項里 古墳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앞트기식돌방무덤·굴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국학은 신라시대의 교육 기관이다. 682년(신문왕 2)에 설치했는데 경덕왕 때 태학감이라 개칭하고 혜공왕 때 다시 국학으로 고쳐 불렀다. 신문왕 때 국학의 최고 책임자인 경이 설치되면서 예부에 속한 정식 교육기관으로 완비되었다. 경 이하 박사·조교·대사·사 등의 관리를 두었다. 고대국가의 정치체제 확립이 일단락되면서 그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유교 정치이념의 수립이 요구되었고, 유교 교육을 전담하는 기구로 국학을 설치하여 관리 양성 기능을 맡긴 것이다. 신라 후기에 들어서는 귀족들의 외면과 당나라 유학의 성행으로 그 중요성이 점차 감소했다.
국학 (國學)
국학은 신라시대의 교육 기관이다. 682년(신문왕 2)에 설치했는데 경덕왕 때 태학감이라 개칭하고 혜공왕 때 다시 국학으로 고쳐 불렀다. 신문왕 때 국학의 최고 책임자인 경이 설치되면서 예부에 속한 정식 교육기관으로 완비되었다. 경 이하 박사·조교·대사·사 등의 관리를 두었다. 고대국가의 정치체제 확립이 일단락되면서 그 운영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유교 정치이념의 수립이 요구되었고, 유교 교육을 전담하는 기구로 국학을 설치하여 관리 양성 기능을 맡긴 것이다. 신라 후기에 들어서는 귀족들의 외면과 당나라 유학의 성행으로 그 중요성이 점차 감소했다.
명활산성은 경주시 천군동의 흰등산과 서쪽의 장군봉, 내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의 석축 산성이다. 둘레가 약 4.7㎞의 대형 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13m로 추정된다. 5세기 이전에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석성으로 개축되어 7세기까지 운영되었다. 명활산성은 사료와 금석문을 통하여 풍부한 역사적인 기록을 전하는 산성이다. 경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석축으로 개축된 산성으로 7세기 후반 이후에 폐성되었다는 점에서 6~7세기의 신라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기준점이 되는 산성이다.
명활산성 (明活山城)
명활산성은 경주시 천군동의 흰등산과 서쪽의 장군봉, 내부 계곡을 감싸는 포곡식의 석축 산성이다. 둘레가 약 4.7㎞의 대형 산성으로 성벽의 높이는 13m로 추정된다. 5세기 이전에 토성으로 축조되었으나 석성으로 개축되어 7세기까지 운영되었다. 명활산성은 사료와 금석문을 통하여 풍부한 역사적인 기록을 전하는 산성이다. 경주 지역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석축으로 개축된 산성으로 7세기 후반 이후에 폐성되었다는 점에서 6~7세기의 신라 축성 기술을 이해하는 기준점이 되는 산성이다.
신라 중고기의 기술전문관직.
대공척 (大工尺)
신라 중고기의 기술전문관직.
고려후기 경상북도 청도에서 농민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김사미 (金沙彌)
고려후기 경상북도 청도에서 농민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