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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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은 만주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다. 여진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숙신, 읍루, 물길, 말갈, 만주족 등으로 불렸다. 발해 멸망 후 요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고려에 조공을 바치며 복속하였다. 1115년 아구타[阿骨打]가 완안부를 중심으로 여진을 통일하고 금나라를 세웠다. 16∼17세기, 누르하치[奴爾哈齊]가 만주 지역의 여진을 통합하고 1616년 후금을 건국하였다.
여진 (女眞)
여진은 만주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다. 여진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숙신, 읍루, 물길, 말갈, 만주족 등으로 불렸다. 발해 멸망 후 요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고려에 조공을 바치며 복속하였다. 1115년 아구타[阿骨打]가 완안부를 중심으로 여진을 통일하고 금나라를 세웠다. 16∼17세기, 누르하치[奴爾哈齊]가 만주 지역의 여진을 통합하고 1616년 후금을 건국하였다.
윤관은 고려전기 동지추밀원사, 지추밀원사, 한림학사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11년(예종 6)에 사망했다. 문종·숙종 시기 고려는 여진 정벌을 도모하다가 오히려 크게 참패당했을 정도로 여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윤관은 패전 경험을 토대로 여진의 기병에 대항할 별무반을 창설하여 대비했고 예종 때 정벌을 개시하여 9성을 축조하고 남도지방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여진의 적극적인 강화 요청과 9성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반환을 결정하면서 윤관은 문신들의 시기와 모함 속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윤관 (尹瓘)
윤관은 고려전기 동지추밀원사, 지추밀원사, 한림학사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11년(예종 6)에 사망했다. 문종·숙종 시기 고려는 여진 정벌을 도모하다가 오히려 크게 참패당했을 정도로 여진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 윤관은 패전 경험을 토대로 여진의 기병에 대항할 별무반을 창설하여 대비했고 예종 때 정벌을 개시하여 9성을 축조하고 남도지방 사람들을 이주시켜 살게 했다. 그러나 조정에서 여진의 적극적인 강화 요청과 9성 관리의 어려움을 들어 반환을 결정하면서 윤관은 문신들의 시기와 모함 속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별무반은 고려 전기 여진정벌을 위해 설치된 임시 군사 조직이다. 1104년(숙종 9)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으로서 여진정벌에 나섰다가 패하고 돌아온 윤관(尹瓘)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다.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강력한 기병대의 편제를 갖춘 부대이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神騎軍), 보병인 신보군(神步軍), 승려들로 이루어진 항마군(降魔軍) 등으로 구성되었다.
별무반 (別武班)
별무반은 고려 전기 여진정벌을 위해 설치된 임시 군사 조직이다. 1104년(숙종 9)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으로서 여진정벌에 나섰다가 패하고 돌아온 윤관(尹瓘)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다.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강력한 기병대의 편제를 갖춘 부대이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神騎軍), 보병인 신보군(神步軍), 승려들로 이루어진 항마군(降魔軍) 등으로 구성되었다.
숙신은 기원전 6~5세기 중원 북계를 비롯한 산둥반도 및 만주 동북부 지역에 살았던 종족이다. 식신(息愼)·직신(稷愼)이라고도 하며 조선이라는 왕조명을 갖기 이전에 고조선인들을 부르던 호칭으로도 보기도 한다. 숙신의 후손으로는 한(漢)대의 읍루(?婁), 후위(後魏)대의 물길(勿吉)과 수·당대의 말갈(靺鞨), 발해 멸망 후의 여진(女眞)이 꼽힌다. 부여에 살던 읍루족의 후손인 물길이 부여를 멸망시키고 농안지역에 이주한 물길-말갈계 집단이 고구려 멸망 이후 발해를 건국하는 주요 세력이 된다.
숙신 (肅愼)
숙신은 기원전 6~5세기 중원 북계를 비롯한 산둥반도 및 만주 동북부 지역에 살았던 종족이다. 식신(息愼)·직신(稷愼)이라고도 하며 조선이라는 왕조명을 갖기 이전에 고조선인들을 부르던 호칭으로도 보기도 한다. 숙신의 후손으로는 한(漢)대의 읍루(?婁), 후위(後魏)대의 물길(勿吉)과 수·당대의 말갈(靺鞨), 발해 멸망 후의 여진(女眞)이 꼽힌다. 부여에 살던 읍루족의 후손인 물길이 부여를 멸망시키고 농안지역에 이주한 물길-말갈계 집단이 고구려 멸망 이후 발해를 건국하는 주요 세력이 된다.
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만주 (滿洲)
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북평관은 조선시대에 서울에 온 여진족 사신의 숙식과 접대를 위하여 설치한 건물이다. 여진인을 위한 국가 운영 숙소가 정비된 것은 1438년(세종 20)이다. 북평관에서 여진족 사신들의 숙식은 물론 무역도 이루어졌다. 북평관은 선조 대 이후 기록에 보이지 않아 임진왜란 과정에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평관 터는 지금의 서울 흥인지문(동대문) 인근에 있다.
북평관 (北平館)
북평관은 조선시대에 서울에 온 여진족 사신의 숙식과 접대를 위하여 설치한 건물이다. 여진인을 위한 국가 운영 숙소가 정비된 것은 1438년(세종 20)이다. 북평관에서 여진족 사신들의 숙식은 물론 무역도 이루어졌다. 북평관은 선조 대 이후 기록에 보이지 않아 임진왜란 과정에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평관 터는 지금의 서울 흥인지문(동대문) 인근에 있다.
무산계는 고려시대 향리 · 늙은 병사 · 공장(工匠) · 악인(樂人)과 탐라의 왕족,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었던 위계 제도이다. 문무 양반에게 수여된 문산계와 대비되는 위계 제도였다. 고려의 내국인과 탐라의 왕족은 29등급의 무산계를 지급했던 반면에 외국인인 여진의 추장은 대장군 · 장군으로 구성된 별도의 무산계를 지급하였다. 내국인에게 지급한 무산계를 받은 인물들은 전시과를 경제적 대가로 받았다.
무산계 (武散階)
무산계는 고려시대 향리 · 늙은 병사 · 공장(工匠) · 악인(樂人)과 탐라의 왕족,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었던 위계 제도이다. 문무 양반에게 수여된 문산계와 대비되는 위계 제도였다. 고려의 내국인과 탐라의 왕족은 29등급의 무산계를 지급했던 반면에 외국인인 여진의 추장은 대장군 · 장군으로 구성된 별도의 무산계를 지급하였다. 내국인에게 지급한 무산계를 받은 인물들은 전시과를 경제적 대가로 받았다.
각장(榷場)은 고려시대 고려와 거란·여진족 등 북방 민족 사이의 교역을 위해 설치된 무역장이다. 각장은 호시의 일종이다. 고려와 거란 사이의 각장은 1005년(목종 8) 거란에 의해 보주(保州)에 설치된 것이 그 최초의 일로, 각장 개설은 비록 경제적 무역이 그 근본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고려와 여진에 대한 정치·외교적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하기 위한 목적도 지니고 있었다. 고려와 여진 사이의 각장은 서북면으로는 예종 때 의주·정주(靜州)에, 동북면으로는 고려의 정주(定州)와 여진의 청주(靑州)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각장 (榷場)
각장(榷場)은 고려시대 고려와 거란·여진족 등 북방 민족 사이의 교역을 위해 설치된 무역장이다. 각장은 호시의 일종이다. 고려와 거란 사이의 각장은 1005년(목종 8) 거란에 의해 보주(保州)에 설치된 것이 그 최초의 일로, 각장 개설은 비록 경제적 무역이 그 근본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고려와 여진에 대한 정치·외교적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하기 위한 목적도 지니고 있었다. 고려와 여진 사이의 각장은 서북면으로는 예종 때 의주·정주(靜州)에, 동북면으로는 고려의 정주(定州)와 여진의 청주(靑州)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고려시대의 관직명.
도령 (都領)
고려시대의 관직명.
고려 후기에, 예부시랑, 중서령, 세자이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익 (朴翊)
고려 후기에, 예부시랑, 중서령, 세자이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중국을 제외한 일본 등 우리나라 인접국들과의 관계를 서술한 외교서.
증정교린지 (增正交隣志)
조선시대 중국을 제외한 일본 등 우리나라 인접국들과의 관계를 서술한 외교서.
조선전기 무신 이천이 파저강(婆猪江) 야인을 정벌하고 4군을 개척한 전말을 기록한 군서.
서정록 (西征錄)
조선전기 무신 이천이 파저강(婆猪江) 야인을 정벌하고 4군을 개척한 전말을 기록한 군서.
윤관장군묘(尹瓘將軍墓)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이자 장군인 윤관의 무덤이다. 오랫동안 소재가 확인되지 않다가 1764년(영조 40)에 현 묘소 부근에서 묘비 조각이 발견되면서 윤관의 무덤으로 공인되었다. 청송심씨 가문과 묘지 소유에 대한 오랜 다툼이 있었다. 윤관장군묘는 본래 임진강 이북 임강현에 있었으나 후대에 경기도 파주로 이장 또는 새로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윤관 장군 묘 (尹瓘 將軍 墓)
윤관장군묘(尹瓘將軍墓)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고려 전기 문신이자 장군인 윤관의 무덤이다. 오랫동안 소재가 확인되지 않다가 1764년(영조 40)에 현 묘소 부근에서 묘비 조각이 발견되면서 윤관의 무덤으로 공인되었다. 청송심씨 가문과 묘지 소유에 대한 오랜 다툼이 있었다. 윤관장군묘는 본래 임진강 이북 임강현에 있었으나 후대에 경기도 파주로 이장 또는 새로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고려전기 장연현령, 영주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민영 (閔瑛)
고려전기 장연현령, 영주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 전기에, 병마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김부필 (金富弼)
고려 전기에, 병마판관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수사도 판예부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준 (金晙)
고려 전기에, 수사도 판예부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중군병마사, 추밀원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김한충 (金漢忠)
고려 전기에, 중군병마사, 추밀원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상서우복야 서경유수사 겸 태자소부 등을 역임한 문신.
김정순 (金正純)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상서우복야 서경유수사 겸 태자소부 등을 역임한 문신.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김의원 (金義元)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신분은 양인(良人)이나 천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
간척 (干尺)
신분은 양인(良人)이나 천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