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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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은 만주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다. 여진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숙신, 읍루, 물길, 말갈, 만주족 등으로 불렸다. 발해 멸망 후 요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고려에 조공을 바치며 복속하였다. 1115년 아구타[阿骨打]가 완안부를 중심으로 여진을 통일하고 금나라를 세웠다. 16∼17세기, 누르하치[奴爾哈齊]가 만주 지역의 여진을 통합하고 1616년 후금을 건국하였다.
여진 (女眞)
여진은 만주에 살던 퉁구스 계통의 민족이다. 여진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숙신, 읍루, 물길, 말갈, 만주족 등으로 불렸다. 발해 멸망 후 요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고려에 조공을 바치며 복속하였다. 1115년 아구타[阿骨打]가 완안부를 중심으로 여진을 통일하고 금나라를 세웠다. 16∼17세기, 누르하치[奴爾哈齊]가 만주 지역의 여진을 통합하고 1616년 후금을 건국하였다.
고려전기 장연현령, 영주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민영 (閔瑛)
고려전기 장연현령, 영주방어사 등을 역임한 무신.
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만주 (滿洲)
만주는 오늘날 중국의 동북지방으로, 요령성 · 길림성 · 흑룡강성 및 내몽고 자치구의 동부지역을 포괄한 지역이다. 고대부터 여러 종족의 삶의 터전이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 변경지역이었다. 1870년대~1900년대까지 조선인들이 이주하여 한인사회를 이루며 항일민족운동을 벌인 곳이다. 농민으로 구성된 한인사회는 민족운동의 기반이었다. 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았다. 1932년 만주국을 건국하였고 일제는 전쟁과 개발에 동원하기 위하여 조선인에 대한 정책이민을 추진하였다. 조선인은 '불령선인'에서 '개척자'로 불렸다.
각장(榷場)은 고려시대 고려와 거란·여진족 등 북방 민족 사이의 교역을 위해 설치된 무역장이다. 각장은 호시의 일종이다. 고려와 거란 사이의 각장은 1005년(목종 8) 거란에 의해 보주(保州)에 설치된 것이 그 최초의 일로, 각장 개설은 비록 경제적 무역이 그 근본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고려와 여진에 대한 정치·외교적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하기 위한 목적도 지니고 있었다. 고려와 여진 사이의 각장은 서북면으로는 예종 때 의주·정주(靜州)에, 동북면으로는 고려의 정주(定州)와 여진의 청주(靑州)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각장 (榷場)
각장(榷場)은 고려시대 고려와 거란·여진족 등 북방 민족 사이의 교역을 위해 설치된 무역장이다. 각장은 호시의 일종이다. 고려와 거란 사이의 각장은 1005년(목종 8) 거란에 의해 보주(保州)에 설치된 것이 그 최초의 일로, 각장 개설은 비록 경제적 무역이 그 근본 목적이었다고 하더라도, 고려와 여진에 대한 정치·외교적 압력을 지속적으로 가하기 위한 목적도 지니고 있었다. 고려와 여진 사이의 각장은 서북면으로는 예종 때 의주·정주(靜州)에, 동북면으로는 고려의 정주(定州)와 여진의 청주(靑州)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김의원 (金義元)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고려 전기에, 수사공 참지정사판상서형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강증 (康拯)
고려 전기에, 수사공 참지정사판상서형부사, 중서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신분은 양인(良人)이나 천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
간척 (干尺)
신분은 양인(良人)이나 천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상서우복야 서경유수사 겸 태자소부 등을 역임한 문신.
김정순 (金正純)
고려 전기에, 참지정사, 상서우복야 서경유수사 겸 태자소부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시대의 관직명.
도령 (都領)
고려시대의 관직명.
박경인은 고려 전기에 서북면병마사·상서좌복야·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박경작이며, 아버지는 참지정사를 지낸 박인량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적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과거에 급제한 뒤에 주로 간쟁과 문한의 직을 맡아 이름을 떨쳤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박경인 (朴景仁)
박경인은 고려 전기에 서북면병마사·상서좌복야·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초명은 박경작이며, 아버지는 참지정사를 지낸 박인량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 경적에 두루 통달하였으며, 과거에 급제한 뒤에 주로 간쟁과 문한의 직을 맡아 이름을 떨쳤다. 시호는 장간(章簡)이다.
1200년(신종 3) 금주(金州 :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에서 잡족인(雜族人)이 일으킨 반란.
금주 잡족의 난 (金州 雜族의 亂)
1200년(신종 3) 금주(金州 : 지금의 경상남도 김해)에서 잡족인(雜族人)이 일으킨 반란.
고려 전기에, 수사도 판예부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준 (金晙)
고려 전기에, 수사도 판예부사, 문하시랑평장사 등을 역임한 문신.
별무반은 고려 전기 여진정벌을 위해 설치된 임시 군사 조직이다. 1104년(숙종 9)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으로서 여진정벌에 나섰다가 패하고 돌아온 윤관(尹瓘)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다.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강력한 기병대의 편제를 갖춘 부대이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神騎軍), 보병인 신보군(神步軍), 승려들로 이루어진 항마군(降魔軍) 등으로 구성되었다.
별무반 (別武班)
별무반은 고려 전기 여진정벌을 위해 설치된 임시 군사 조직이다. 1104년(숙종 9) 동북면행영병마도통(東北面行營兵馬都統)으로서 여진정벌에 나섰다가 패하고 돌아온 윤관(尹瓘)의 건의에 따라 설치되었다. 여진족에 대항하기 위해 설치되었으며 강력한 기병대의 편제를 갖춘 부대이다. 별무반은 기병인 신기군(神騎軍), 보병인 신보군(神步軍), 승려들로 이루어진 항마군(降魔軍) 등으로 구성되었다.
북평관은 조선시대에 서울에 온 여진족 사신의 숙식과 접대를 위하여 설치한 건물이다. 여진인을 위한 국가 운영 숙소가 정비된 것은 1438년(세종 20)이다. 북평관에서 여진족 사신들의 숙식은 물론 무역도 이루어졌다. 북평관은 선조 대 이후 기록에 보이지 않아 임진왜란 과정에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평관 터는 지금의 서울 흥인지문(동대문) 인근에 있다.
북평관 (北平館)
북평관은 조선시대에 서울에 온 여진족 사신의 숙식과 접대를 위하여 설치한 건물이다. 여진인을 위한 국가 운영 숙소가 정비된 것은 1438년(세종 20)이다. 북평관에서 여진족 사신들의 숙식은 물론 무역도 이루어졌다. 북평관은 선조 대 이후 기록에 보이지 않아 임진왜란 과정에서 소실된 것으로 추정되며, 북평관 터는 지금의 서울 흥인지문(동대문) 인근에 있다.
고려 전기에, 중군병마사, 추밀원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김한충 (金漢忠)
고려 전기에, 중군병마사, 추밀원사, 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후기에, 예부시랑, 중서령, 세자이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익 (朴翊)
고려 후기에, 예부시랑, 중서령, 세자이사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문하시중, 수태부 판상서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경용 (金景庸)
고려 전기에, 문하시중, 수태부 판상서이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무산계는 고려시대 향리 · 늙은 병사 · 공장(工匠) · 악인(樂人)과 탐라의 왕족,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었던 위계 제도이다. 문무 양반에게 수여된 문산계와 대비되는 위계 제도였다. 고려의 내국인과 탐라의 왕족은 29등급의 무산계를 지급했던 반면에 외국인인 여진의 추장은 대장군 · 장군으로 구성된 별도의 무산계를 지급하였다. 내국인에게 지급한 무산계를 받은 인물들은 전시과를 경제적 대가로 받았다.
무산계 (武散階)
무산계는 고려시대 향리 · 늙은 병사 · 공장(工匠) · 악인(樂人)과 탐라의 왕족, 여진의 추장 등에게 주었던 위계 제도이다. 문무 양반에게 수여된 문산계와 대비되는 위계 제도였다. 고려의 내국인과 탐라의 왕족은 29등급의 무산계를 지급했던 반면에 외국인인 여진의 추장은 대장군 · 장군으로 구성된 별도의 무산계를 지급하였다. 내국인에게 지급한 무산계를 받은 인물들은 전시과를 경제적 대가로 받았다.
고려 전기에, 병부상서 겸 삼사사, 우군병마사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김덕진 (金德珍)
고려 전기에, 병부상서 겸 삼사사, 우군병마사병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 전기에, 공부상서, 서북면병마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
사영 (史榮)
고려 전기에, 공부상서, 서북면병마사, 이부상서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