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역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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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보는 고려 후기에 판서운관사를 역임한 과학기술자로 천문과 역법에 능통하였다. 최성지로부터 수시력법을 전수받아 서운관에 근무하면서 서운사력, 서운정을 거쳐 벼슬이 판서운관사에 이르렀다. 『수시력첩법입성』을 저술하였다.
강보 (姜保)
강보는 고려 후기에 판서운관사를 역임한 과학기술자로 천문과 역법에 능통하였다. 최성지로부터 수시력법을 전수받아 서운관에 근무하면서 서운사력, 서운정을 거쳐 벼슬이 판서운관사에 이르렀다. 『수시력첩법입성』을 저술하였다.
덕복은 문무왕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숙위를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역술을 전하였다. 관등은 10등 대나마를 지냈다. 신라는 그의 역술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역법을 쓰게 되었다. 그 밖의 행적에 관해서는 전하는 자료가 없다.
덕복 (德福)
덕복은 문무왕대에 중국 당나라에서 숙위를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역술을 전하였다. 관등은 10등 대나마를 지냈다. 신라는 그의 역술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역법을 쓰게 되었다. 그 밖의 행적에 관해서는 전하는 자료가 없다.
경주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이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맨 밑의 기단부와 그 위의 술병형 원통부, 다시 그 위의 ‘우물정(井)’자석 정상부로 구성되고 총 높이는 9.51m이다. 기단부의 남쪽 변이 정남 방향에서 동쪽으로 19° 돌아서 있다. 원통부는 총 27단을 쌓아올렸는데 제13단에서 15단에 걸쳐 정방형의 창구가 나 있다. 제19·20단과 제25·26단에는 장대석을 걸쳐 우물정자를 만들었고 제27단 위의 정상부에도 두 단의 정자석이 있다.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곳이다.
경주 첨성대 (慶州 瞻星臺)
경주 첨성대는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천문관측소이다. 『삼국유사』에 신라 선덕여왕 때 축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맨 밑의 기단부와 그 위의 술병형 원통부, 다시 그 위의 ‘우물정(井)’자석 정상부로 구성되고 총 높이는 9.51m이다. 기단부의 남쪽 변이 정남 방향에서 동쪽으로 19° 돌아서 있다. 원통부는 총 27단을 쌓아올렸는데 제13단에서 15단에 걸쳐 정방형의 창구가 나 있다. 제19·20단과 제25·26단에는 장대석을 걸쳐 우물정자를 만들었고 제27단 위의 정상부에도 두 단의 정자석이 있다. 천문현상을 관찰하여 국가의 길흉을 점치던 곳이다.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전해오는 주기전승의례이다. 농경사회에서 시계성·주기성·순환성을 가지고 진행된 농경 과정에서 탄생한 풍속이다. 세시·세사·월령·시령·세시의례라고도 한다. 세시풍속은 음력을 중심에 두고 양력을 가미한 태양태음력을 기준으로 했다. 고대의 제천의례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에 세시풍속의 골격이 형성되었고,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이, 조선시대에는 설날·한식·단오·추석 등 4대 명절이 있었다. 명절 외에 다양한 계절별·지역별 세시풍속이 존재했다. 오늘날은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퇴색했지만 설날과 추석의 차례와 성묘는 전승되고 있다.
세시풍속 (歲時風俗)
세시풍속은 음력 정월부터 섣달까지 해마다 같은 시기에 반복되어 전해오는 주기전승의례이다. 농경사회에서 시계성·주기성·순환성을 가지고 진행된 농경 과정에서 탄생한 풍속이다. 세시·세사·월령·시령·세시의례라고도 한다. 세시풍속은 음력을 중심에 두고 양력을 가미한 태양태음력을 기준으로 했다. 고대의 제천의례를 바탕으로 삼국시대에 세시풍속의 골격이 형성되었고, 고려시대에는 9대 명절이, 조선시대에는 설날·한식·단오·추석 등 4대 명절이 있었다. 명절 외에 다양한 계절별·지역별 세시풍속이 존재했다. 오늘날은 전통적인 세시풍속은 퇴색했지만 설날과 추석의 차례와 성묘는 전승되고 있다.
조선후기 『몽예집』을 저술한 문인.
남극관 (南克寬)
조선후기 『몽예집』을 저술한 문인.
숭정역서는 명나라 말기에 16~17세기 유럽 천문학의 이론과 방법을 한문으로 편역하여 중국에 처음 소개한 천문학 총서이다. 중국식 역법(曆法) 체계에 맞추어 당대의 역법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시도하였으며, 주로 티코 브라헤의 우주론을 수용하였다. 숭정 연간에 서광계(徐光啟, 1562~1633)가 천문학에 밝은 서양 선교사들을 조직하여 편찬을 총괄하고 이천경(李天經, 1579~1659)이 완료하여 『숭정역서라는 이름을 받았다. 명나라 말기에는 실용되지 못하고 청나라 초기에 『서양신법역서』로 개칭되어 첫 번째 시헌력법서로 사용되었다.
숭정역서 (崇禎曆書)
숭정역서는 명나라 말기에 16~17세기 유럽 천문학의 이론과 방법을 한문으로 편역하여 중국에 처음 소개한 천문학 총서이다. 중국식 역법(曆法) 체계에 맞추어 당대의 역법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시도하였으며, 주로 티코 브라헤의 우주론을 수용하였다. 숭정 연간에 서광계(徐光啟, 1562~1633)가 천문학에 밝은 서양 선교사들을 조직하여 편찬을 총괄하고 이천경(李天經, 1579~1659)이 완료하여 『숭정역서라는 이름을 받았다. 명나라 말기에는 실용되지 못하고 청나라 초기에 『서양신법역서』로 개칭되어 첫 번째 시헌력법서로 사용되었다.
태양영축은 지구에서 바라볼 때 천구 상에 보이는 태양의 운행이 평균 속도보다 빠르거나[盈] 느린[縮] 정도이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운동하므로 지구의 공전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반대로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은 천구 상에서 부등 운동을 한다. 근대 이전의 역법에서 태양의 영축차(盈縮差)는 태양의 실제 위치를 구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태양영축 (太陽盈縮)
태양영축은 지구에서 바라볼 때 천구 상에 보이는 태양의 운행이 평균 속도보다 빠르거나[盈] 느린[縮] 정도이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타원 궤도로 운동하므로 지구의 공전 속도는 일정하지 않다. 반대로 지구에서 볼 때 태양은 천구 상에서 부등 운동을 한다. 근대 이전의 역법에서 태양의 영축차(盈縮差)는 태양의 실제 위치를 구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태음지질은 지구에서 바라볼 때 천구 상에 보이는 달의 운동이 평균보다 느리거나[遲] 빠른[疾] 정도이다. 달은 지구 주위를 타원 궤도로 회전하므로, 달의 공전 속도는 일정하지 않고, 지구에서 바라보는 달은 천구상에서 부등 운동을 한다. 근대 이전의 역법에서, 달의 지질차(遲疾差)는 달의 실제 위치를 구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천구상의 달은 평균 운동으로부터 구한 달의 평균 위치에 지질차를 가감하여 실제 위치를 얻을 수 있다.
태음지질 (太陰遲疾)
태음지질은 지구에서 바라볼 때 천구 상에 보이는 달의 운동이 평균보다 느리거나[遲] 빠른[疾] 정도이다. 달은 지구 주위를 타원 궤도로 회전하므로, 달의 공전 속도는 일정하지 않고, 지구에서 바라보는 달은 천구상에서 부등 운동을 한다. 근대 이전의 역법에서, 달의 지질차(遲疾差)는 달의 실제 위치를 구하기 위해서 고안되었다. 천구상의 달은 평균 운동으로부터 구한 달의 평균 위치에 지질차를 가감하여 실제 위치를 얻을 수 있다.
평삭법은 1년 12달을 소월과 대월을 번갈아 두는 방법이다. 태음력(太陰曆)은 초하루를 정하는 방법에 따라 평삭법(平朔法)과 정삭법(定朔法)으로 나눌 수 있다. 평삭법은 역원(曆元)에서 삭망월(朔望月)의 길이를 더해서 매월의 초하루를 정한다.
평삭법 (平朔法)
평삭법은 1년 12달을 소월과 대월을 번갈아 두는 방법이다. 태음력(太陰曆)은 초하루를 정하는 방법에 따라 평삭법(平朔法)과 정삭법(定朔法)으로 나눌 수 있다. 평삭법은 역원(曆元)에서 삭망월(朔望月)의 길이를 더해서 매월의 초하루를 정한다.
무인력은 당나라의 천문학자인 부인균(傅仁均)이 편찬한 역법이다. 619년에서 664년까지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반행된 역법 중 최초로 정삭법을 채용하였다. 624년 이후 고구려에 무인력으로 제작된 역서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인력 (戊寅曆)
무인력은 당나라의 천문학자인 부인균(傅仁均)이 편찬한 역법이다. 619년에서 664년까지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반행된 역법 중 최초로 정삭법을 채용하였다. 624년 이후 고구려에 무인력으로 제작된 역서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덕력은 당나라 천문학자 이순풍(李淳風)이 편찬한 역법이다. 665년에서 728년까지 사용되었다. 수나라 황극력(皇極曆)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진삭법이 새로이 도입되었다. 674년에 신라가 당나라에서 도입해온 역법으로 추정된다.
인덕력 (麟德曆)
인덕력은 당나라 천문학자 이순풍(李淳風)이 편찬한 역법이다. 665년에서 728년까지 사용되었다. 수나라 황극력(皇極曆)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진삭법이 새로이 도입되었다. 674년에 신라가 당나라에서 도입해온 역법으로 추정된다.
안국빈은 조선 후기 영조 시대에 관상감의 중인(中人) 관원으로 활동한 천문학자이다. 3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編)』, 『의상고성(儀象考成)』 등 청나라의 새로운 역법을 배워오고 이를 토대로 일월식 계산법, 야간 시각 체제 등을 비롯한 조선 정부의 역법을 개선하였다.
안국빈 (安國賓)
안국빈은 조선 후기 영조 시대에 관상감의 중인(中人) 관원으로 활동한 천문학자이다. 3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역상고성후편(曆象考成後編)』, 『의상고성(儀象考成)』 등 청나라의 새로운 역법을 배워오고 이를 토대로 일월식 계산법, 야간 시각 체제 등을 비롯한 조선 정부의 역법을 개선하였다.
허원은 조선 후기 숙종·경종 시대에 관상감의 관원으로 활동한 중인(中人) 출신 천문학자이다. 4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행성 운행 계산법을 비롯한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방법을 배웠다. 이를 통해 조선 관상감의 시헌력 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18세기 조선 천문학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허원 (許遠)
허원은 조선 후기 숙종·경종 시대에 관상감의 관원으로 활동한 중인(中人) 출신 천문학자이다. 4차례 북경에 파견되어, 행성 운행 계산법을 비롯한 청나라 시헌력(時憲曆)의 방법을 배웠다. 이를 통해 조선 관상감의 시헌력 운용 수준을 한 단계 높였으며, 18세기 조선 천문학 발전의 토대를 닦았다.
기삼백설은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등장하는 ‘기삼백(朞三百)’의 문제에 관한 역대 학자들의 논설이다. 『서경』의 「요전」에는 “기(期=朞)는 366일이니 윤달을 사용해야 사시(四時)를 정하고 해[歲]를 이룰 수 있다.”라는 대목이 있다. ‘기삼백설’이란 이 구절에 관한 주석의 일종으로 역대 학자들이 작성한 논설을 일컫는다.
기삼백설 (朞三百說)
기삼백설은 『서경(書經)』 「요전(堯典)」에 등장하는 ‘기삼백(朞三百)’의 문제에 관한 역대 학자들의 논설이다. 『서경』의 「요전」에는 “기(期=朞)는 366일이니 윤달을 사용해야 사시(四時)를 정하고 해[歲]를 이룰 수 있다.”라는 대목이 있다. ‘기삼백설’이란 이 구절에 관한 주석의 일종으로 역대 학자들이 작성한 논설을 일컫는다.
관상지는 1802년(순조 2), 유희가 편찬한 천문역산학 관련 저서이다. 시헌력 도입 이후에 야기된 역가(曆家)와 유가(儒家) 사이의 인식 차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되었다. 이를 통해 유희는 전통 천문학을 계승하는 한편 최신의 서양 천문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양자를 절충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천문역산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관상지 (觀象志)
관상지는 1802년(순조 2), 유희가 편찬한 천문역산학 관련 저서이다. 시헌력 도입 이후에 야기된 역가(曆家)와 유가(儒家) 사이의 인식 차를 해소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술되었다. 이를 통해 유희는 전통 천문학을 계승하는 한편 최신의 서양 천문학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양자를 절충함으로써 자기 나름의 천문역산학 체계를 수립하였다.
관상수시는 고대 동아시아 국가에서 천상을 관측하고 역법을 계산해서,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 준다는 이념이다.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아 인간 사회를 통치하는 동아시아의 왕들은 관상수시 이념에 의해 고대부터 천문대를 설치하고 역법을 만들었으며, 천체 운행을 정확하게 예보하여,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 주었다. 이와 같은 관상수시 이념은 서양에 비해 동아시아 천문학이 일찍부터 발전했던 큰 배경이었다.
관상수시 (觀象授時)
관상수시는 고대 동아시아 국가에서 천상을 관측하고 역법을 계산해서, 백성들에게 시간을 알려 준다는 이념이다. 하늘로부터 천명을 받아 인간 사회를 통치하는 동아시아의 왕들은 관상수시 이념에 의해 고대부터 천문대를 설치하고 역법을 만들었으며, 천체 운행을 정확하게 예보하여, 백성들에게 정확한 시간을 알려 주었다. 이와 같은 관상수시 이념은 서양에 비해 동아시아 천문학이 일찍부터 발전했던 큰 배경이었다.
지반경차는 역법(曆法)에서 천체(天體) 위치를 지구 중심으로 계산한 값과 지반경을 더한 위치에서 계산한 값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역법에서 천체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때에는 지구의 중심을 기준으로 계산하는데, 그 계산값은 지표면에서 해당 천체를 관측한 수치와 차이가 발생하게 되며, 이 차이를 지반경차라고 한다. 지반경차의 개념은 명말청초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다. 특히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 지반경차를 구하는 자세한 계산 방법이 수록되었다.
지반경차 (地半徑差)
지반경차는 역법(曆法)에서 천체(天體) 위치를 지구 중심으로 계산한 값과 지반경을 더한 위치에서 계산한 값이 달라지는 현상이다. 역법에서 천체의 위치를 수학적으로 계산할 때에는 지구의 중심을 기준으로 계산하는데, 그 계산값은 지표면에서 해당 천체를 관측한 수치와 차이가 발생하게 되며, 이 차이를 지반경차라고 한다. 지반경차의 개념은 명말청초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다. 특히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 지반경차를 구하는 자세한 계산 방법이 수록되었다.
동승지차는 역법에서 황도와 적도를 이용하여 계산을 수행할 때에 발생하는 차잇값이다. 천구(天球)상에서 황도는 적도에 대해서 23.5°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천체의 황도 좌표계상의 도수는 적도 좌표계의 도수와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차이를 동승지차라고 한다. 동승지차의 개념은 명말 청초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다. 특히 동승지차를 구하는 방법은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서 황적거위(黃赤距緯)의 항목으로 자세한 계산의 방법이 수록되었다.
동승지차 (同升之差)
동승지차는 역법에서 황도와 적도를 이용하여 계산을 수행할 때에 발생하는 차잇값이다. 천구(天球)상에서 황도는 적도에 대해서 23.5° 기울어져 있기 때문에, 천체의 황도 좌표계상의 도수는 적도 좌표계의 도수와 달라지게 되는데 이러한 차이를 동승지차라고 한다. 동승지차의 개념은 명말 청초 시기에 서양의 천문학 지식이 예수회 선교사들에 의해 중국에 전해질 때 함께 알려졌다. 특히 동승지차를 구하는 방법은 1721년(경종 1)에 간행된 『역상고성(曆象考成)』에서 황적거위(黃赤距緯)의 항목으로 자세한 계산의 방법이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