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연해주"
검색결과 총 9건
계봉우가 연해주 일대 한인의 이주역사와 이주민의 현황 등을 기록한 실기.
아령실기 (俄領實記)
계봉우가 연해주 일대 한인의 이주역사와 이주민의 현황 등을 기록한 실기.
「소학령」은 일제강점기 이해조가 지은 신소설로, 탐험소설이다.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후, 1913년 신구서림(新舊書林)에서 단행본으로 발행하였다. 조선인의 러시아 연해주 이민을 소재로, 한 가족의 험난한 여정과 재회를 그렸다. 한일병합 전후로 제국주의의 통치가 가시화하는 가운데, 농토와 일자리가 부족해 먹고 살기 위해 연해주로 노동 이민을 떠나야 했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반영하였다. 이해조는 독자들의 비판을 수용해 동시대의 실제 공간을 다루어 현실성을 확보하고, 결말부를 상세하게 처리하여 서사적 완결성을 확보하였다.
소학령 (巢鶴嶺)
「소학령」은 일제강점기 이해조가 지은 신소설로, 탐험소설이다. 1912년 『매일신보』에 연재한 후, 1913년 신구서림(新舊書林)에서 단행본으로 발행하였다. 조선인의 러시아 연해주 이민을 소재로, 한 가족의 험난한 여정과 재회를 그렸다. 한일병합 전후로 제국주의의 통치가 가시화하는 가운데, 농토와 일자리가 부족해 먹고 살기 위해 연해주로 노동 이민을 떠나야 했던 식민지 조선의 현실을 반영하였다. 이해조는 독자들의 비판을 수용해 동시대의 실제 공간을 다루어 현실성을 확보하고, 결말부를 상세하게 처리하여 서사적 완결성을 확보하였다.
이인섭은 구한말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연해주에서 김알렉산드리아 등과 교섭하며 사회주의운동을 시작하여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소련공산당 연해주위 선전선동부원 등을 역임하였다. 국내에서는 대한독립단원을 원조하는 등의 활동을 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이인섭 (李仁燮)
이인섭은 구한말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연해주에서 김알렉산드리아 등과 교섭하며 사회주의운동을 시작하여 한인사회당 중앙위원, 소련공산당 연해주위 선전선동부원 등을 역임하였다. 국내에서는 대한독립단원을 원조하는 등의 활동을 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혈성단(血誠團)은 1920년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추풍(秋風)에서 조직된 항일무장단체이다. 강국모(姜國模), 김종화(金鍾和) 등이 서간도(西間島)에서 이동해 온 독립단(獨立團) 부대원들을 기반으로 설립하였다. 채영(蔡英)을 사령관으로 추대하여 1920년 6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20년 10월 아누치노로 이동해 수청(水淸) 군대, 신민단(新民團) 부대와 통합하였으나, 1921년 가을 다시 추풍으로 돌아갔다.
혈성단 (血誠團)
혈성단(血誠團)은 1920년 러시아 연해주(沿海州) 추풍(秋風)에서 조직된 항일무장단체이다. 강국모(姜國模), 김종화(金鍾和) 등이 서간도(西間島)에서 이동해 온 독립단(獨立團) 부대원들을 기반으로 설립하였다. 채영(蔡英)을 사령관으로 추대하여 1920년 6월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1920년 10월 아누치노로 이동해 수청(水淸) 군대, 신민단(新民團) 부대와 통합하였으나, 1921년 가을 다시 추풍으로 돌아갔다.
1885년 김광훈과 신선욱이 조선 및 청나라와 인접한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을 그린 지도. 관방지도.
아국여지도 (俄國輿地圖)
1885년 김광훈과 신선욱이 조선 및 청나라와 인접한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을 그린 지도. 관방지도.
「짓밟힌 고려」는 소련의 한인 작가 조명희의 산문시이다. 이 시는 1920년대에 연해주에서 발행된 유일한 한국어 신문인 『선봉』 1928년 11월 7일 자에 발표된 작품으로, 조명희가 소련으로 망명한 이후 처음 발표한 작품이기도 하다. 전체 34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전반부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으로 인해 고통받는 조선인의 삶을 형상화하고, 후반부에서는 그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고려인들의 투쟁을 강조함으로써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의 문제를 함께 강조하고 있다.
짓밟힌 고려 (짓밟힌 高麗)
「짓밟힌 고려」는 소련의 한인 작가 조명희의 산문시이다. 이 시는 1920년대에 연해주에서 발행된 유일한 한국어 신문인 『선봉』 1928년 11월 7일 자에 발표된 작품으로, 조명희가 소련으로 망명한 이후 처음 발표한 작품이기도 하다. 전체 34행으로 구성된 이 시는 전반부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의 조선 침략으로 인해 고통받는 조선인의 삶을 형상화하고, 후반부에서는 그 부정적인 현실을 극복하고 프롤레타리아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고려인들의 투쟁을 강조함으로써 민족 해방과 계급 해방의 문제를 함께 강조하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마을인 신한촌의 자치기구.
신한촌민회 (新韓村民會)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마을인 신한촌의 자치기구.
김병화는 소련에서 소련군 장교, 공산당 당원으로 지내다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북극성 집단농장 지도자로 활동한 고려인 지도자이다. 1905년 함경북도에서 출생하여 1974년 사망했다. 1914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1927년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7년 우즈베크사회주의공화국으로 강제이주되어 ‘새로운 길’ 집단농장에서 근무하였다. 1940년 ‘북극성’ 집단농장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1948년과 1951년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1961년 우즈베크사회주의공화국 최고회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레닌 훈장, 10월혁명 훈장 등을 받았다.
김병화
김병화는 소련에서 소련군 장교, 공산당 당원으로 지내다가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이주를 당하여 북극성 집단농장 지도자로 활동한 고려인 지도자이다. 1905년 함경북도에서 출생하여 1974년 사망했다. 1914년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하였다. 1927년 공산당에 입당하였다. 1937년 우즈베크사회주의공화국으로 강제이주되어 ‘새로운 길’ 집단농장에서 근무하였다. 1940년 ‘북극성’ 집단농장의 지도자로 선출되었다. 1948년과 1951년 ‘사회주의 노동영웅’ 칭호를 받았다. 1961년 우즈베크사회주의공화국 최고회의 대표로 선출되었다. 레닌 훈장, 10월혁명 훈장 등을 받았다.
김치보는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청년돈의회, 성명회, 권업회 등 한인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의회를 비롯한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 단체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등 다양한 활동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김치보 (金致寶)
김치보는 평안남도 평양 출신으로, 일제강점기 청년돈의회, 성명회, 권업회 등 한인 사회단체에서 활동하였으며, 대한국민의회를 비롯한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 단체에서 재정을 담당하는 등 다양한 활동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