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예문관"
검색결과 총 22건
조선시대 예문관과 규장각에 소속된 관직.
대교 (待敎)
조선시대 예문관과 규장각에 소속된 관직.
조선시대 중요관서의 관원을 임명할 때 시행되던 제도.
권점 (圈點)
조선시대 중요관서의 관원을 임명할 때 시행되던 제도.
고려 후기 예문춘추관의 종2품 관직.
대사백 (大詞伯)
고려 후기 예문춘추관의 종2품 관직.
관각문학은 조선시대 관각인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 등에서 제작된 한문 문장이다. 당·송 고문을 존중하며 전아한 수사와 유창한 서술이 특징이다. 장식미에 치중하여 변려문이 쓰이기도 한다. 조선 전기에 관각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권근, 변계량, 서거정이 있다. 조선 중기에는 한문 4대가인 신흠, 이정구, 장유, 이식이 있다.
관각문학 (館閣文學)
관각문학은 조선시대 관각인 홍문관(弘文館)·예문관(藝文館) 등에서 제작된 한문 문장이다. 당·송 고문을 존중하며 전아한 수사와 유창한 서술이 특징이다. 장식미에 치중하여 변려문이 쓰이기도 한다. 조선 전기에 관각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권근, 변계량, 서거정이 있다. 조선 중기에는 한문 4대가인 신흠, 이정구, 장유, 이식이 있다.
고려시대 예문관과 춘추관에 두었던 정9품 관직.
검열 (檢閱)
고려시대 예문관과 춘추관에 두었던 정9품 관직.
검열(檢閱)은 조선시대 예문관의 정9품 관직으로, 춘추관의 기사관을 겸한 전임 사관(專任史官)이다. 본직이 왕의 교서를 짓는 일을 맡아보는 예문관(藝文館)에 속하기 때문에 본래 기능은 왕의 명령을 짓는 일이었으며, 기사관을 당연직으로 겸하였기 때문에 봉교 · 대교와 함께 전임 사관인 한림팔원이라고 불렀다.
검열 (檢閱)
검열(檢閱)은 조선시대 예문관의 정9품 관직으로, 춘추관의 기사관을 겸한 전임 사관(專任史官)이다. 본직이 왕의 교서를 짓는 일을 맡아보는 예문관(藝文館)에 속하기 때문에 본래 기능은 왕의 명령을 짓는 일이었으며, 기사관을 당연직으로 겸하였기 때문에 봉교 · 대교와 함께 전임 사관인 한림팔원이라고 불렀다.
조선 전기 궁중에서 학문연마를 하도록 젊은 문신들에게 준 관직.
겸예문 (兼藝文)
조선 전기 궁중에서 학문연마를 하도록 젊은 문신들에게 준 관직.
대제는 고려시대 보문각과 예문관에 설치된 관직이다. 애초 예종이 일종의 왕실 도서관 역할을 하면서 당대의 학자들을 모아 놓을 공간으로 청연각을 만들고, 보문각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대제도 두었다. 또한 예문관에도 대제가 있었다. 대제 등은 유학적 경륜이나 문장 등으로 한 시대에 이름난 경우가 많았다.
대제 (待制)
대제는 고려시대 보문각과 예문관에 설치된 관직이다. 애초 예종이 일종의 왕실 도서관 역할을 하면서 당대의 학자들을 모아 놓을 공간으로 청연각을 만들고, 보문각으로 고치는 과정에서 대제도 두었다. 또한 예문관에도 대제가 있었다. 대제 등은 유학적 경륜이나 문장 등으로 한 시대에 이름난 경우가 많았다.
고려시대 보문각·예문관·문덕전·연영전에 소속된 관직.
대학사 (大學士)
고려시대 보문각·예문관·문덕전·연영전에 소속된 관직.
경연원은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궁내부(宮內府) 산하에 설치되어 경적(經籍)과 문한(文翰)을 보관하고, 경연과 대찬(代撰)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이다. 1894년 7월 22일, 궁내부관제를 제정할 때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이 설치되었으나, 1895년 4월 2일, 경연청이 폐지되어 시종원(侍從院)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다가, 같은 해 11월 10일, 다시 궁내부관제가 개정되어 경연원이 설치되었다. 1897년 1월, 홍문관(弘文館)으로 개칭하였다.
경연원 (經筵院)
경연원은 갑오개혁(甲午改革) 때 궁내부(宮內府) 산하에 설치되어 경적(經籍)과 문한(文翰)을 보관하고, 경연과 대찬(代撰)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던 관서이다. 1894년 7월 22일, 궁내부관제를 제정할 때 홍문관과 예문관을 합하여 경연청(經筵廳)이 설치되었으나, 1895년 4월 2일, 경연청이 폐지되어 시종원(侍從院)에서 해당 업무를 담당하다가, 같은 해 11월 10일, 다시 궁내부관제가 개정되어 경연원이 설치되었다. 1897년 1월, 홍문관(弘文館)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 사명(詞命 : 왕명)의 제찬(制撰)을 관장하던 관청.
문한서 (文翰署)
고려시대 사명(詞命 : 왕명)의 제찬(制撰)을 관장하던 관청.
고려시대 예문관·춘추관의 관직.
수찬 (修撰)
고려시대 예문관·춘추관의 관직.
수찬은 조선시대에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정6품의 관직이다. 경연, 실록 편찬, 왕명 제작 등에 참여하였으며, 왕명을 전달하는 등 시종신으로서도 활동하였다. 성종 대에는 경차관으로 차정되거나 부정 적발을 위해 지방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어가며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수찬 (修撰)
수찬은 조선시대에 집현전과 홍문관에 설치된 정6품의 관직이다. 경연, 실록 편찬, 왕명 제작 등에 참여하였으며, 왕명을 전달하는 등 시종신으로서도 활동하였다. 성종 대에는 경차관으로 차정되거나 부정 적발을 위해 지방에 파견되기도 하였다. 홍문관 설치 이후 홍문관이 언관화되어가며 언론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456년(세조 2)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부응교 (副應敎)
부응교는 조선시대, 홍문관에 설치된 종4품의 관직이다. 집현전과 홍문관의 다른 관원들처럼 경연 참여와 실록 편찬, 왕명 제작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응교직과 함께 국왕의 사명(辭命)을 제작하는 예문관 응교직을 겸대하였으며 그만큼 문장에 능해야 하였다. 1456년(세조 2)에 집현전 혁파, 1505년(연산군 11)에 홍문관 혁파 당시 폐지되기도 하였으나, 성종 대와 중종 대에 다시 복구되었다.
조선시대 예문관의 정7품 관직.
봉교 (奉敎)
조선시대 예문관의 정7품 관직.
조선시대 교육·문예를 담당하던 4개 관서.
사관 (四館)
조선시대 교육·문예를 담당하던 4개 관서.
성사달은 고려 후기에 교주도병마사,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창성군에 봉해진 문신이다. 1341년(충혜왕 복위 2) 성균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공민왕 대 홍건적 제2차 침입 때 왕을 호종한 공로 등으로 거듭 공신으로 책봉되었으며, 1364년(공민왕 13) 동북면에 침입해 온 여진 세력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성사달 (成士達)
성사달은 고려 후기에 교주도병마사,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하고 창성군에 봉해진 문신이다. 1341년(충혜왕 복위 2) 성균시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공민왕 대 홍건적 제2차 침입 때 왕을 호종한 공로 등으로 거듭 공신으로 책봉되었으며, 1364년(공민왕 13) 동북면에 침입해 온 여진 세력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조선시대 홍문관·예문관의 정4품 관직.
응교 (應敎)
조선시대 홍문관·예문관의 정4품 관직.
조선시대 홍문관(弘文館)의 종3품 관직.
전한 (典翰)
조선시대 홍문관(弘文館)의 종3품 관직.
조선시대 예문관·집현전·홍문관·규장각 등의 종2품 관직.
제학 (提學)
조선시대 예문관·집현전·홍문관·규장각 등의 종2품 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