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후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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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正陵)은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의 능이다. 1365년 2월 공주가 난산 끝에 죽자 4월 정릉에 안장하였다. 이후 7년간 환관 김사행이 지휘 감독을 하여 4도감 13색의 제도를 갖추고 영전과 무덤 공사에 힘을 쏟아 조영하여, 1372년 공민왕의 수릉인 현릉과 나란히 쌍릉으로 완성되었다. 북한의 국보유적이다.
정릉 (正陵)
정릉(正陵)은 개성특별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비인 노국대장공주의 능이다. 1365년 2월 공주가 난산 끝에 죽자 4월 정릉에 안장하였다. 이후 7년간 환관 김사행이 지휘 감독을 하여 4도감 13색의 제도를 갖추고 영전과 무덤 공사에 힘을 쏟아 조영하여, 1372년 공민왕의 수릉인 현릉과 나란히 쌍릉으로 완성되었다. 북한의 국보유적이다.
숭릉(崇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인근에 있었던 고려 전기 제15대 국왕 숙종의 비인 명의태후 유씨의 능이다. 1112년 8월 명의태후의 사후에 조영하였으며, 영정은 남편인 숙종의 영정과 함께 천수사에 모셨다. 고려왕후릉은 제릉서에서 관리하였는데, 인종 대에 위숙군제를 정비하면서 인종의 직계 증조부인 숙종의 영릉과 함께 명의왕후 숭릉은 4명의 산직당상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숭릉이 있는 곳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남편인 숙종 영릉 근처인 개성특별시 판문군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숭릉 (崇陵)
숭릉(崇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인근에 있었던 고려 전기 제15대 국왕 숙종의 비인 명의태후 유씨의 능이다. 1112년 8월 명의태후의 사후에 조영하였으며, 영정은 남편인 숙종의 영정과 함께 천수사에 모셨다. 고려왕후릉은 제릉서에서 관리하였는데, 인종 대에 위숙군제를 정비하면서 인종의 직계 증조부인 숙종의 영릉과 함께 명의왕후 숭릉은 4명의 산직당상이 관리하였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숭릉이 있는 곳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남편인 숙종 영릉 근처인 개성특별시 판문군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경릉(頃陵)은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는 고려 후기 제28대 충혜왕의 비 덕녕공주의 능이다. 1375년 3월 덕녕공주가 세상을 떠났고, 같은 해 4월에 경릉에 안장하였다. 조선시대 이후 관리가 부실하여 현재 경릉의 위치는 알려진 바가 없다.
경릉 (頃陵)
경릉(頃陵)은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는 고려 후기 제28대 충혜왕의 비 덕녕공주의 능이다. 1375년 3월 덕녕공주가 세상을 떠났고, 같은 해 4월에 경릉에 안장하였다. 조선시대 이후 관리가 부실하여 현재 경릉의 위치는 알려진 바가 없다.
수릉(綏陵)은 고려 전기 제16대 국왕 예종의 제2비 순덕왕후 이씨의 능이다. 1118년 순덕왕후의 사후 수릉에 안장되었으며, 영정은 송악산 안화사에 모셨다. 1122년 순덕왕후의 아들인 인종이 즉위하자 문경태후로 추존되었다. 고려시대에 왕릉이나 왕후릉은 제릉서에서 관리하였는데, 특히 인종 대에 위숙군제를 정비하여 능을 수호하도록 하면서 순덕왕후 수릉에는 다른 왕릉이나 왕후릉보다 많은 위숙군 6명을 두어 지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수릉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예종 유릉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수릉 (綏陵)
수릉(綏陵)은 고려 전기 제16대 국왕 예종의 제2비 순덕왕후 이씨의 능이다. 1118년 순덕왕후의 사후 수릉에 안장되었으며, 영정은 송악산 안화사에 모셨다. 1122년 순덕왕후의 아들인 인종이 즉위하자 문경태후로 추존되었다. 고려시대에 왕릉이나 왕후릉은 제릉서에서 관리하였는데, 특히 인종 대에 위숙군제를 정비하여 능을 수호하도록 하면서 순덕왕후 수릉에는 다른 왕릉이나 왕후릉보다 많은 위숙군 6명을 두어 지켰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수릉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예종 유릉 인근에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명릉(明陵)은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는 고려 전기 제8대 국왕 현종의 제3비인 원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1028년 7월에 조성하였는데 『고려사』에는 현종의 선릉과 원성왕후의 명릉을 지키는 인원이 같다는 기록으로 보아 1031년 조성된 현종의 선릉이 있는 곳에 3기의 무덤이 있어 그중 1기가 원성왕후릉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북한에는 명릉이라는 고려왕릉의 능호를 지닌 곳에 3기의 무덤이 있지만, 이곳은 충목왕의 명릉으로 여겨져 능호만 같을 뿐이지만, 명릉떼 2릉의 능묘 문석인이 선릉떼 1릉의 것과 양식적으로 같아 이곳일 가능성도 있다.
명릉 (明陵)
명릉(明陵)은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는 고려 전기 제8대 국왕 현종의 제3비인 원성왕후 김씨의 능이다. 1028년 7월에 조성하였는데 『고려사』에는 현종의 선릉과 원성왕후의 명릉을 지키는 인원이 같다는 기록으로 보아 1031년 조성된 현종의 선릉이 있는 곳에 3기의 무덤이 있어 그중 1기가 원성왕후릉일 가능성이 높다. 현재 북한에는 명릉이라는 고려왕릉의 능호를 지닌 곳에 3기의 무덤이 있지만, 이곳은 충목왕의 명릉으로 여겨져 능호만 같을 뿐이지만, 명릉떼 2릉의 능묘 문석인이 선릉떼 1릉의 것과 양식적으로 같아 이곳일 가능성도 있다.
순릉(純陵)은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는 고려 전기 제17대 국왕 인종의 비인 공예태후 임씨의 능이다. 인종의 사후 장남인 의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태후로 존칭하였고, 1183년(명종 13)에 사망하면서 공예태후로 시호를 올리고 순릉에 안장하였다. 순릉을 수호하는 산직장상은 4명을 두어 수호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편인 인종의 장릉 주변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순릉 (純陵)
순릉(純陵)은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는 고려 전기 제17대 국왕 인종의 비인 공예태후 임씨의 능이다. 인종의 사후 장남인 의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태후로 존칭하였고, 1183년(명종 13)에 사망하면서 공예태후로 시호를 올리고 순릉에 안장하였다. 순릉을 수호하는 산직장상은 4명을 두어 수호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편인 인종의 장릉 주변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의릉(懿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고령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제6비인 순정왕후 한씨의 능이다. 공민왕의 사후 1374년 후궁 한씨를 우왕의 모후로 추존하고 순정왕후라는 시호를 추증하였으며, 우왕이 즉위한 지 2년 뒤인 1376년 공민왕 현릉 근처인 의릉에 천장하였다. 1389년 우왕의 신우를 폐하면서 의릉도 철폐되었다.
의릉 (懿陵)
의릉(懿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군 고령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1대 공민왕의 제6비인 순정왕후 한씨의 능이다. 공민왕의 사후 1374년 후궁 한씨를 우왕의 모후로 추존하고 순정왕후라는 시호를 추증하였으며, 우왕이 즉위한 지 2년 뒤인 1376년 공민왕 현릉 근처인 의릉에 천장하였다. 1389년 우왕의 신우를 폐하면서 의릉도 철폐되었다.
질릉은 고려 전기 제9대 덕종의 비인 경성왕후 김씨의 왕후릉이다. 1086년(선종 3) 7월에 승하하여 질릉에 장례를 지냈고, 1096년(숙종 1) 덕종의 사당에 신주를 모셨다. 고려 전기에는 산직 장상 2명이 능을 수호하였으나 무신란 이후 왕후릉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여 능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2016년 남편인 덕종 숙릉이 발굴되어 그 근처에서 질릉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질릉 (質陵)
질릉은 고려 전기 제9대 덕종의 비인 경성왕후 김씨의 왕후릉이다. 1086년(선종 3) 7월에 승하하여 질릉에 장례를 지냈고, 1096년(숙종 1) 덕종의 사당에 신주를 모셨다. 고려 전기에는 산직 장상 2명이 능을 수호하였으나 무신란 이후 왕후릉에 대한 관리가 소홀하여 능의 위치를 잃어버렸다. 2016년 남편인 덕종 숙릉이 발굴되어 그 근처에서 질릉이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현릉은 북한에 있는 고려 전기 제10대 정종의 제1비인 용신왕후 한씨의 왕후릉이다. 용신왕후가 1036년(정종 2) 7월 경자일에 사망하자 그해 8월에 현릉에 장례를 지냈다. 능호는 공민왕의 현릉(玄陵)과 일치하지만 서로 다른 능이다. 현재 그 위치는 밝혀져 있지 않아 묘제나 무덤칸의 구조는 알 수 없다.
현릉 (玄陵)
현릉은 북한에 있는 고려 전기 제10대 정종의 제1비인 용신왕후 한씨의 왕후릉이다. 용신왕후가 1036년(정종 2) 7월 경자일에 사망하자 그해 8월에 현릉에 장례를 지냈다. 능호는 공민왕의 현릉(玄陵)과 일치하지만 서로 다른 능이다. 현재 그 위치는 밝혀져 있지 않아 묘제나 무덤칸의 구조는 알 수 없다.
대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선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11대 문종의 비 인예순덕태후의 왕후릉이다. 인예순덕태후가 1092년(선종 9) 9월 2일(임오)에 서경에서 세상을 떠나 개경으로 운구해 온 후 대릉에 장례를 지냈다. 1098년(숙종 3) 숙종이 대릉을 참배하여 아들을 왕태자로 책봉한 경사를 고하였다. 대릉은 산직장상 2명이 능을 수호하였으나 무신란 이후 관리가 소활하여 위치를 잃어버려 묘제나 무덤칸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남편인 문종의 경릉이 위치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선적리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릉 (戴陵)
대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선적리에 있는 고려 전기 제11대 문종의 비 인예순덕태후의 왕후릉이다. 인예순덕태후가 1092년(선종 9) 9월 2일(임오)에 서경에서 세상을 떠나 개경으로 운구해 온 후 대릉에 장례를 지냈다. 1098년(숙종 3) 숙종이 대릉을 참배하여 아들을 왕태자로 책봉한 경사를 고하였다. 대릉은 산직장상 2명이 능을 수호하였으나 무신란 이후 관리가 소활하여 위치를 잃어버려 묘제나 무덤칸의 구조 등을 파악할 수 없다. 다만 남편인 문종의 경릉이 위치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선적리 근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릉은 고려 전기 제16대 예종의 제1비 경화왕후 이씨의 왕후릉이다. 경화왕후가 1109년(예종 4) 사망하자 왕실의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자릉은 산직당상 2명이 능을 수호하였다. 능의 위치는 남편인 예종 유릉이 있는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청교면 유릉리 근처로 여겨지나 위치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능의 구조나 규모를 알 수 없다.
자릉 (慈陵)
자릉은 고려 전기 제16대 예종의 제1비 경화왕후 이씨의 왕후릉이다. 경화왕후가 1109년(예종 4) 사망하자 왕실의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자릉은 산직당상 2명이 능을 수호하였다. 능의 위치는 남편인 예종 유릉이 있는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청교면 유릉리 근처로 여겨지나 위치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능의 구조나 규모를 알 수 없다.
진릉은 고려 후기 제20대 신종의 비 선정태후 김씨의 왕후릉이다. 선정태후가 1222년(고종 9) 8월 임인일에 사망하자 왕실의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진릉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남편인 신종 양릉이 있는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고남리 근처로 여겨지며 능의 구조나 규모는 알 수 없다.
진릉 (眞陵)
진릉은 고려 후기 제20대 신종의 비 선정태후 김씨의 왕후릉이다. 선정태후가 1222년(고종 9) 8월 임인일에 사망하자 왕실의 예법에 따라 장례를 치렀다. 진릉의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남편인 신종 양릉이 있는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고남리 근처로 여겨지며 능의 구조나 규모는 알 수 없다.
영릉은 고려 말기 제27대 충숙왕의 비 명덕태후 홍씨의 왕후릉이다. 충혜왕과 공민왕의 모후이고 우왕의 할머니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380년(우왕 6) 1월 무술일에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2월에 왕실 법도에 따라 영릉에 장례를 치렀다. 영릉의 위치는 기록이 없어 묘제나 무덤칸의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영릉 (令陵)
영릉은 고려 말기 제27대 충숙왕의 비 명덕태후 홍씨의 왕후릉이다. 충혜왕과 공민왕의 모후이고 우왕의 할머니로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380년(우왕 6) 1월 무술일에 8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 2월에 왕실 법도에 따라 영릉에 장례를 치렀다. 영릉의 위치는 기록이 없어 묘제나 무덤칸의 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