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운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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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미의 난은 1193년(명종 23) 경상북도 청도의 운문사(雲門寺)를 중심으로 김사미가 일으킨 저항이다. 김사미는 ‘사미(沙彌)’라는 이름에서 운문사와 관계된 ‘수원승도(隨院僧徒)’일 가능성도 있다. 이 저항이 초전(草田)의 효심(孝心), 밀성(密城)의 저전촌(楮田村) 등의 저항과 같이 벌어졌던 점에서 경상도 전역에서 저항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은 최고 집정자 이의민의 지역적 기반이 경주(慶州)였고, 이를 중심으로 한 이의민의 재지 기반 확대가 경상도 일대의 재지 세력과 일반 민의 반감을 불러일으켰음을 보여 준다.
김사미의 난 (金沙彌의 亂)
김사미의 난은 1193년(명종 23) 경상북도 청도의 운문사(雲門寺)를 중심으로 김사미가 일으킨 저항이다. 김사미는 ‘사미(沙彌)’라는 이름에서 운문사와 관계된 ‘수원승도(隨院僧徒)’일 가능성도 있다. 이 저항이 초전(草田)의 효심(孝心), 밀성(密城)의 저전촌(楮田村) 등의 저항과 같이 벌어졌던 점에서 경상도 전역에서 저항이 전개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은 최고 집정자 이의민의 지역적 기반이 경주(慶州)였고, 이를 중심으로 한 이의민의 재지 기반 확대가 경상도 일대의 재지 세력과 일반 민의 반감을 불러일으켰음을 보여 준다.
『선문촬요(禪門撮要)』는 20세기 초에 근대 선의 중흥자인 경허 성우가 선학의 지침으로 삼은 글과 책을 모아 간행한 불교서이다. 상권은 1907년 운문사에서 간행되었고, 하권은 1908년 범어사에서 간행되었다. 상권은 혈맥론(血脈論), 관심론(觀心論), 사행론(四行論), 최상승론(最上乘論), 완릉록(宛陵錄), 몽산법어(蒙山法語), 선경어(禪警語)로, 하권은 수심결(修心訣), 진심직설(眞心直說),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간화결의(看話決疑),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 선교석(禪敎釋)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문촬요 (禪門撮要)
『선문촬요(禪門撮要)』는 20세기 초에 근대 선의 중흥자인 경허 성우가 선학의 지침으로 삼은 글과 책을 모아 간행한 불교서이다. 상권은 1907년 운문사에서 간행되었고, 하권은 1908년 범어사에서 간행되었다. 상권은 혈맥론(血脈論), 관심론(觀心論), 사행론(四行論), 최상승론(最上乘論), 완릉록(宛陵錄), 몽산법어(蒙山法語), 선경어(禪警語)로, 하권은 수심결(修心訣), 진심직설(眞心直說), 정혜결사문(定慧結社文), 간화결의(看話決疑), 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선문강요집(禪門綱要集), 선교석(禪敎釋)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말기 궁중 혹은 반가 여성의 예복으로 사용되었던 녹색 원삼.
왕비 녹원삼 (王妃 綠圓衫)
조선 말기 궁중 혹은 반가 여성의 예복으로 사용되었던 녹색 원삼.
고려후기 선종인 가지산문에 출가하여 대선사를 역임한 승려.
혜문 (惠文)
고려후기 선종인 가지산문에 출가하여 대선사를 역임한 승려.
『무경집(無竟集)』은 조선후기 정관파 승려 무경 자수(無竟子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38년에 개판한 시문집이다. 권1에는 시, 권2와 권3에는 문을 수록했는데 「도학설(道學說)」, 「시비설(是非說)」, 「삼교설(三敎說)」 등 중요한 사상적 내용을 담은 기문이 많다.
무경집 (無竟集)
『무경집(無竟集)』은 조선후기 정관파 승려 무경 자수(無竟子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38년에 개판한 시문집이다. 권1에는 시, 권2와 권3에는 문을 수록했는데 「도학설(道學說)」, 「시비설(是非說)」, 「삼교설(三敎說)」 등 중요한 사상적 내용을 담은 기문이 많다.
일제강점기 백양사 주지, 조선불교중앙종회 교정 등을 역임한 승려. 율사(律師).
탄영 (坦泳)
일제강점기 백양사 주지, 조선불교중앙종회 교정 등을 역임한 승려. 율사(律師).
김척명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원광, 비허 등의 불교 사적을 정리한 문인이다. 김척명에 관해서는 『삼국유사』에서 '향인(鄕人)'으로 지칭하였는데, 중국인과 대비된 신라인 혹은 관직이 없는 일반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삼국유사』에서는 원광(圓光)과 보양(寶壤)에 대한 사적이 실린 고본(古本) 『수이전(殊異傳)』을 그가 개작한 것으로 서술하였다. 「보양이목」조에서는 견성(犬城)에 대한 내용이 비허(備虛)의 전기에 들어있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하였으므로, 김척명은 비허의 전기도 정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김척명 (金陟明)
김척명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원광, 비허 등의 불교 사적을 정리한 문인이다. 김척명에 관해서는 『삼국유사』에서 '향인(鄕人)'으로 지칭하였는데, 중국인과 대비된 신라인 혹은 관직이 없는 일반인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삼국유사』에서는 원광(圓光)과 보양(寶壤)에 대한 사적이 실린 고본(古本) 『수이전(殊異傳)』을 그가 개작한 것으로 서술하였다. 「보양이목」조에서는 견성(犬城)에 대한 내용이 비허(備虛)의 전기에 들어있는 것도 잘못이라고 지적하였으므로, 김척명은 비허의 전기도 정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연은 조선 후기 은해사 거조암 영산회상도, 문수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기림사 삼세불회도 등을 그린 승려이다. 1778년부터 1824년까지 주로 경상도 일대의 불화 제작과 단청을 주도하였으며, 은해사 보문암을 창건하였다. 1786년 은해사 거조암의 후불도인 영산회상도를 제작하면서 수화승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790년대에는 활동 범위를 통도사로 넓혀 사찰의 불화 및 단청 불사를 전담하였다. 지연은 임한, 두훈, 포관 등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선배 화승의 불화 형식을 따르는 한편 자신만의 특징적인 화풍을 구축하였다.
지연 (指演)
지연은 조선 후기 은해사 거조암 영산회상도, 문수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기림사 삼세불회도 등을 그린 승려이다. 1778년부터 1824년까지 주로 경상도 일대의 불화 제작과 단청을 주도하였으며, 은해사 보문암을 창건하였다. 1786년 은해사 거조암의 후불도인 영산회상도를 제작하면서 수화승의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1790년대에는 활동 범위를 통도사로 넓혀 사찰의 불화 및 단청 불사를 전담하였다. 지연은 임한, 두훈, 포관 등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한 선배 화승의 불화 형식을 따르는 한편 자신만의 특징적인 화풍을 구축하였다.
운문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금룡 (金龍)
운문사 주지를 역임한 승려.
『무경실증어록(無竟室中語錄)』은 조선 후기 정관파의 승려 무경 자수(無竟子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38년에 개판한 시문집이다. 상권에는 시가 수록되어 있고 하권에는 기문 8편을 비롯해 11편의 글이 실려 있으며, 하권의 마지막에 「개간동문록(開刊同門錄)」과 부록 「선교대변(禪敎對辨)」이 부기되어 있다.
무경실중어록 (無竟室中語錄)
『무경실증어록(無竟室中語錄)』은 조선 후기 정관파의 승려 무경 자수(無竟子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738년에 개판한 시문집이다. 상권에는 시가 수록되어 있고 하권에는 기문 8편을 비롯해 11편의 글이 실려 있으며, 하권의 마지막에 「개간동문록(開刊同門錄)」과 부록 「선교대변(禪敎對辨)」이 부기되어 있다.
해방 이후 옥천사 주지, 대한불교 보문종 제3대 종정 등을 역임한 승려. 비구니.
일조 (日照)
해방 이후 옥천사 주지, 대한불교 보문종 제3대 종정 등을 역임한 승려. 비구니.
학일(學一)은 고려 전기 왕사(王師)를 지낸 선종 가지산문의 승려이다. 천태종 개창으로 인해 타격을 받은 선종계가 종세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입적한 뒤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로 추증되었다. 대각국사 의천, 숙종, 예종, 인종 등의 공경을 받았다.
학일 (學一)
학일(學一)은 고려 전기 왕사(王師)를 지낸 선종 가지산문의 승려이다. 천태종 개창으로 인해 타격을 받은 선종계가 종세를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입적한 뒤에는 원응국사(圓應國師)로 추증되었다. 대각국사 의천, 숙종, 예종, 인종 등의 공경을 받았다.
혼구는 가지산문 보각국존 일연의 제자이자 고려 후기 왕사로 책봉되고 국사로 추증된 승려이다. 승과에 합격하였고 일연의 제자가 되어 가지산문에서 활약하였으며 충선왕 대 왕사로 책봉되었다. 말년에는 몽산덕이가 보내 준 ‘무극설(無極說)’을 터득하고 무극노인(無極老人)이라 자호하였으며 입적하여서는 보감국사로 추증되었다.
혼구 (混丘)
혼구는 가지산문 보각국존 일연의 제자이자 고려 후기 왕사로 책봉되고 국사로 추증된 승려이다. 승과에 합격하였고 일연의 제자가 되어 가지산문에서 활약하였으며 충선왕 대 왕사로 책봉되었다. 말년에는 몽산덕이가 보내 준 ‘무극설(無極說)’을 터득하고 무극노인(無極老人)이라 자호하였으며 입적하여서는 보감국사로 추증되었다.
청도군은 경상북도 최남단에 위치한 군이다. 동쪽은 경상북도 경주시, 남쪽과 서쪽은 경상남도 밀양시·창녕군, 북쪽은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산시·영천시와 접한다. 조선시대 한성에서 동래를 잇는 간선도로인 영남대로에서 대구와 밀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93.8㎢로, 경지율은 경상북도 평균보다 낮은 14.5%, 임야율은 평균보다 높은 73.2%이다. 인구는 4만 582명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44.27%[1만 7964명]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다. 청도군청은 화양읍 범곡리에 있다.
청도군 (淸道郡)
청도군은 경상북도 최남단에 위치한 군이다. 동쪽은 경상북도 경주시, 남쪽과 서쪽은 경상남도 밀양시·창녕군, 북쪽은 대구광역시, 경상북도 경산시·영천시와 접한다. 조선시대 한성에서 동래를 잇는 간선도로인 영남대로에서 대구와 밀양을 연결하는 요충지였다. 2024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693.8㎢로, 경지율은 경상북도 평균보다 낮은 14.5%, 임야율은 평균보다 높은 73.2%이다. 인구는 4만 582명으로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44.27%[1만 7964명]를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다. 청도군청은 화양읍 범곡리에 있다.
황련사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黃蓮寺 大方廣圓覺脩多羅了義經)은 1588년(선조 21) 경상도 청도의 운문사에서 개판한 목판을 후대에 찍어 만든 불교경전이다. 이 불경은 불타다라(佛陁多羅)가 한문으로 번역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당나라의 승려 규봉(圭峰) 종밀(宗宻)이 주해(註解)를 붙여 지은 『대방광원각약소주경(大方廣圓覺略䟽注經)』이다. 1588년 운문사(雲門寺)에서 개판(開板)한 목판을 활용하여 후대에 찍어 만든 인출본(印出本)이다.
황련사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 (黃蓮寺 大方廣圓覺脩多羅了義經)
황련사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黃蓮寺 大方廣圓覺脩多羅了義經)은 1588년(선조 21) 경상도 청도의 운문사에서 개판한 목판을 후대에 찍어 만든 불교경전이다. 이 불경은 불타다라(佛陁多羅)가 한문으로 번역한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을 당나라의 승려 규봉(圭峰) 종밀(宗宻)이 주해(註解)를 붙여 지은 『대방광원각약소주경(大方廣圓覺略䟽注經)』이다. 1588년 운문사(雲門寺)에서 개판(開板)한 목판을 활용하여 후대에 찍어 만든 인출본(印出本)이다.
「운문사 칠성도」는 1868년 청도 운문사에서 제작하고 봉안한 불화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로, 경상북도 지역 대표 화승인 응상이 수화승이 되어 청도 운문사에서 제작하고 봉안하였다. 북극성을 여래화한 치성광여래와 일광보살, 월광보살과 함께 북두칠성과 성신들을 여러 화면으로 나누어 그린 각부 형식으로 조성된 칠성각부도 가운데 1점으로 약사유리광여래를 그린 작품이다. 2018년 미국 경매에서 환수되어 운문사로 이운되었다.
운문사 칠성도 (雲門寺 七星圖)
「운문사 칠성도」는 1868년 청도 운문사에서 제작하고 봉안한 불화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불화로, 경상북도 지역 대표 화승인 응상이 수화승이 되어 청도 운문사에서 제작하고 봉안하였다. 북극성을 여래화한 치성광여래와 일광보살, 월광보살과 함께 북두칠성과 성신들을 여러 화면으로 나누어 그린 각부 형식으로 조성된 칠성각부도 가운데 1점으로 약사유리광여래를 그린 작품이다. 2018년 미국 경매에서 환수되어 운문사로 이운되었다.
합천(陜川) 법연사(法然寺)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는 1588년(선조 21) 경상도 청도 운문사에서 간행한 『법집별행록』에 대한 보조국사 지눌의 주석서이다. 이 불서는 보관 상태가 양호한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자료로 1588년이라는 명확한 간행 시기가 확인된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합천 법연사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陜川 法然寺 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
합천(陜川) 법연사(法然寺)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는 1588년(선조 21) 경상도 청도 운문사에서 간행한 『법집별행록』에 대한 보조국사 지눌의 주석서이다. 이 불서는 보관 상태가 양호한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자료로 1588년이라는 명확한 간행 시기가 확인된다.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4년 3월 20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청도 운문사 사리기는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조성된 사리장엄구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 작압전에서 1987년 발견되었다. 865년 작압전을 중수하면서 넣은 납석제 합과 고려시대에 중수하면서 넣은 청동병, 조선시대인 1642년 중수하면서 넣은 유제합 뚜껑 등 각 시대별로 유행하였던 사리장엄구의 경향과 재질을 파악할 수 있어 사리장엄구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청도 운문사 사리기 (淸道 雲門寺 舍利器)
청도 운문사 사리기는 통일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각각 조성된 사리장엄구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사 작압전에서 1987년 발견되었다. 865년 작압전을 중수하면서 넣은 납석제 합과 고려시대에 중수하면서 넣은 청동병, 조선시대인 1642년 중수하면서 넣은 유제합 뚜껑 등 각 시대별로 유행하였던 사리장엄구의 경향과 재질을 파악할 수 있어 사리장엄구로서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