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은 『 육조단경』, 『신화엄경론』, 『대혜어록』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고, 불교 교학과 수행이 둘이 아닌 ‘선교융회(禪敎融會)’를 정혜결사(定慧結社)를 통해 실천하였다. 이는 원효의 화쟁사상(和諍思想)과 더불어 우리나라 불교의 사상적 전통을 확고하게 세우는 바탕이 되었다.
장정(裝訂)은 오침안정(五針眼訂)의 선장(線裝)으로 제책(製冊)된 1권 1책의 목판본(木板本)이다. 표지 서명은 ‘별행록(別行錄)’이며, 권수제(卷首題)는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法集別行錄節要幷入私記)’이고, 판심제(版心題)는 약서명(略書名)인 ‘사기(私記)’이다.
판식(版式)은 사주단변(四周單邊)이며, 반곽(半郭)의 크기는 세로 20.9㎝, 가로 13.7㎝이다. 글자 사이에 계선이 없는 무계(無界)의 형식에, 글자는 9행(行) 19자(字)로 배열되어 있다. 판심(版心)은 상하백구(上下白口)이며 상하내향흑어미(上下內向黑魚尾)로 확인된다.
본문에 묵서로 약체 구결(口訣) 표시가 있다. 전체 장수는 75장(張)이며 종이의 지질(紙質)은 저지(楮紙)이다. 권말에는 "만력십육년무자칠월일경상도청도지호암산운문사개판(萬曆十六年戊子七月日慶尙道淸道地虎踞山雲門寺開板)"이라는 간기(刊記)가 있어, 1588년(선조 21)에 경상도 청도 운문사에서 개판하였음을 알 수 있다.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지눌의 불교 이론과 실천의 결정체로 입적 1년 전인 1209년에 찬술되었다. 이 불서는 조선시대 선종의 강학 과목의 하나로 『절요(節要)』라고도 한다. 현존본은 영광 불갑사와 장흥 보림사 도서인 1486년 전라도 광주 무등산 규봉암(圭峯菴)본을 비롯하여, 동국대학교박물관 도서인 1747년 함경도 길주 성불산 길상암(吉祥庵)본 등 30여 종이 확인된다.
합천 법연사 도서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의 책말에는 도림(道林)이 판각용의 정서본을 쓰고[書], 판각을 담당한 각수질(刻字秩)에 의연(儀璉) 등 8명, 연판(鍊板)에 지희(智熙), 공양주(供養主)에 희찬(熙贊), 별좌(別座)에 혜봉(惠峯), 권화(勸化)인 산인석헌(山人釋軒) 등 개판에 관련된 소임과 인명 그리고 다수의 시주자가 확인된다. 또 동화사(桐華寺)와 운부사(雲浮寺)가 기재되어 있고 그 구분 아래 많은 시주인명이 확인된다.
본문 하단에도 감로사 천홍(甘露寺 天弘), 무저사 해호(無著寺 海浩) 등 양각과 음각으로 많은 인명이 확인된다. 이를 통해 동화사뿐만 아니라 감로사, 운부사, 무저사 등에서 많은 인원이 동참하여 간행한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1588년 운문사에서는 선사상을 익히기 위한 필독서인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 이외에도 『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 『 운수단가사(雲水壇歌詞)』, 『 대방광원각수다라요의경(大方廣圓覺修多羅了義經)』, 『치문경훈(緇門警訓)』도 함께 간행된 것이 확인된다.
종밀(宗密)은 법조(法祖)인 하택 신회(荷澤神會)가 주창한 공적영지지심(空寂靈知之心)을 밝히고 선교 일치를 천명하기 위하여 『법집별행록』을 펴냈으나 현존하지 않는다. 이를 고려의 지눌이 번잡한 것을 제거하고 요점만을 간추려 편집한 후, 여기에 뜻을 풀고 주석을 붙여 펴낸 것이다.
경전과 어록 등을 전거로 활용하여 당시의 수행이 정(定)과 혜(慧)를 말로만 하며 교학을 배우지 않고 선에만 깊이 의지하며 방황하는 것을 바로잡고자 찬술한 것이다. 지눌은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를 통해 관심(觀心)에서 간화(看話)로의 선 수행의 단계를 제시하고 있다.
2014년 3월 20일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된 합천 법연사 『법집별행록절요병입사기』는 보관 상태가 양호한 임진왜란 이전에 간행된 자료로, 1588년이라는 명확한 간행 시기가 확인된다.
또한, 경상도 청도 운문사 및 인근 사찰에서도 개판에 참여한 사실과 책말에 확인되는 많은 인명의 시주자와 간행 사항은 인명 DB, 출판 DB 등 다양한 메타 정보의 토대가 될 가치가 있는 기록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