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학일(學一)은 고려전기 왕사(王師)를 지낸 선종 가지산문의 승려.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12세기 선종 여러 산문의 승려들 사이에 송대 선적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고 있었다. 학일은 가지산문의 승려였고, 그를 비롯하여 사굴산문의 승려들의 행적 중에는 송의 임제종 선승들과 활발히 교류한 사실이 확인된다. 교류를 통해 다양한 선적(禪籍)이 수용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고려 선종계는 의천의 천태종 개창 이후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송 선종계와의 교류를 통해 선 사상이 서서히 부흥하는 기반이 마련되기도 하였다. 특히 학일의 활동은 사굴산문의 대감국사 탄연의 활동과 함께, 이후 선종이 차츰 종세를 회복하게 되는데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학일은 예종 대 이르러서는 삼중대사(三重大師), 선사(禪師) 등을 거쳐 선종 최고 승계인 대선사(大禪師)까지 오르게 된다. 또한 그 과정에서 가지사(迦智寺), 귀산사(龜山寺), 내제석원(內帝釋院), 안화사(安和寺) 등의 주요 사찰들을 주석하였다.
1122년에는 예종이 병환이 있었고 학일을 궁궐 내전으로 불러 왕사(王師)로 책봉하고자 하였다. 당시 학일을 스승으로 높이는 예는 거행되었으나, 책봉의 단계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예종이 사망하게 된다. 이에 인종이 즉위하여 왕사 책봉을 마저 진행하였다. 1123년(인종 1) 봄과 여름에 큰 가뭄이 계속되었을 때 그가 기우(祈雨)를 진행하여 효과를 보기도 하였다.
학일은 1126년에 이르러 운문사(雲門寺)로의 퇴거를 청하였으나, 인종의 허락을 받지 못하였고 대신 개경과 가깝다는 안남(安南) 경암사(瓊嵒寺)에 거처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다시 퇴거 의사를 표한 뒤 운문사로 들어갔고 1144년에 병환으로 그곳에서 입적하게 된다. 왕이 예를 갖추어 국사(國師)에 추증하고, 시호를 원응(圓應)이라 하였다.
추모
참고문헌
원전
- 『朝鮮金石總覽』 (朝鮮總督府,1913)
단행본
- 조명제, 『고려후기 간화선 연구』 (혜안, 2004)
- 조명제, 『선문염송집연구』 (경진, 2015)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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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통일 신라 시대의 승려(?~?). 의상십철의 한 사람으로, 화엄종을 발전시키는 데 이바지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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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경장, 율장, 논장의 세 가지 불서(佛書)를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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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속리산에 있는 절.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의신 화상이 창건하였다. 쌍사자 석등, 석련지, 팔상전 따위의 국보가 있다. 현재 대한 불교 조계종 제5교구 본사로 되어 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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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신라 때, 선종 구산문의 하나. 문성왕 때에 범일 국사가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학산리에 굴산사를 세우고 개산(開山)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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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중국 당나라 때 임제의 종지(宗旨)를 근본으로 하여 일어난 종파.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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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참선을 통해 본성을 터득한다는 선종의 사상.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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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7
: 날이 가물 때에 비가 오기를 빎.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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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8
: 비석의 뒷면에 새긴 글.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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