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윤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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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가의 유품은 조선 후기의 문신 윤증의 유품과 윤증가 종부에게 물려온 후손의 유품이다. 2차에 걸쳐 총 53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복식 자료는 모두 11점으로 1차 지정된 10점과 추가 지정된 아얌 1점이 있다. 회화 자료는 2004년에 추가 지정된 것으로 14점이다. 생활 자료는 모두 33점으로 합죽선 1점과 인장 28과(顆), 벼루 1점, 치미추 1점, 혼천의 1점, 해시계 1점이다. 논산 명재고택과 유봉영당에 보존되어 오고 있다. 한 집안의 대를 이은 유물로 착용자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자료도 방대하여 민속학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윤증가의 유품 (尹拯家의 遺品)
윤증가의 유품은 조선 후기의 문신 윤증의 유품과 윤증가 종부에게 물려온 후손의 유품이다. 2차에 걸쳐 총 53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복식 자료는 모두 11점으로 1차 지정된 10점과 추가 지정된 아얌 1점이 있다. 회화 자료는 2004년에 추가 지정된 것으로 14점이다. 생활 자료는 모두 33점으로 합죽선 1점과 인장 28과(顆), 벼루 1점, 치미추 1점, 혼천의 1점, 해시계 1점이다. 논산 명재고택과 유봉영당에 보존되어 오고 있다. 한 집안의 대를 이은 유물로 착용자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자료도 방대하여 민속학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조선 후기 학자 윤증(尹拯, 1629~1714)의 초상화 일괄.
윤증 초상 일괄 (尹拯 肖像 一括)
조선 후기 학자 윤증(尹拯, 1629~1714)의 초상화 일괄.
『윤증서첩-유봉필첩』은 조선 중기, 숙종 대의 학자 윤증이 쓴 서첩이다. 표지 안쪽에 ‘유봉’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19장에 걸쳐 글씨를 썼는데 범질의 「자제계」와 도잠의 「귀거래사」 등을 중자(中字)의 행서와 행초서로 썼다. 18세기의 대학자이자 명필이었던 윤증의 서예 연구에 귀중한 유물이다. 2014년 7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윤증 서첩 - 유봉 필첩 (尹拯 書帖 - 酉峯 筆帖)
『윤증서첩-유봉필첩』은 조선 중기, 숙종 대의 학자 윤증이 쓴 서첩이다. 표지 안쪽에 ‘유봉’이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19장에 걸쳐 글씨를 썼는데 범질의 「자제계」와 도잠의 「귀거래사」 등을 중자(中字)의 행서와 행초서로 썼다. 18세기의 대학자이자 명필이었던 윤증의 서예 연구에 귀중한 유물이다. 2014년 7월 8일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경기도 수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민이승은 조선 후기 공조좌랑, 영평현령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학문에 매진하여 윤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설에 뛰어나 낙론 계열을 이끌었 김창협과 양명학을 대표하는 정제두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과 논쟁하였다.
민이승 (閔以升)
민이승은 조선 후기 공조좌랑, 영평현령 등을 지낸 문신이다. 가난한 집안에서 유복자로 태어났으나, 학문에 매진하여 윤증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성리설에 뛰어나 낙론 계열을 이끌었 김창협과 양명학을 대표하는 정제두 등 당대의 뛰어난 학자들과 논쟁하였다.
조선 후기에, 사간, 승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김두명 (金斗明)
조선 후기에, 사간, 승지, 병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오복편람』을 저술한 학자.
권구 (權絿)
조선 후기에, 『오복편람』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중부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시문』 등을 저술한 학자.
박사 (朴㴲)
조선 후기에, 중부참봉을 역임하였으며, 『시문』 등을 저술한 학자.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권상하 (權尙夏)
권상하는 조선 후기 『한수재집』, 『삼서집의』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자는 치도(致道), 호는 수암(遂菴), 한수재(寒水齋), 시호는 문순(文純)이다. 1641년(인조 19)에 출생하여 1721년(경종 1)에 사망했다. 기호학파를 계승한 권상하는 호락논변(湖洛論辨)이라는 논쟁을 일으켰다. 권상하는 이이의 이통기국(理通氣局)설을 들어, 인성·물성이 서로 다르다고 말하였다. 호락논변은 인성론이 자연물에까지 확대된 것으로 조선 성리학의 이론적 발전상을 보여준다. 권상하는 청풍의 황강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박세채 (朴世采)
박세채(1631~1695)는 조선 후기 대사헌, 이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자는 화숙, 호는 현석, 남계이며, 시호는 문순이다. 1659년 예송논쟁이 벌어지자 송시열 등과 함께 서인의 기년설을 찬성하였다. 1674년 2차 예송논쟁에서 서인이 패하자 파직당하고 유배당했다. 1680년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재집권하자 관직에 복귀하였다. 1684년 회니 시비로 인해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하자 소론의 편에 섰다. 1694년 갑술환국 때 복귀하여 소론의 영수가 되었다. 이이, 성혼의 문묘 종사를 확정하고, 김육의 대동법을 확산시켰다.
조선 후기에, 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권이진 (權以鎭)
조선 후기에, 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승문원정자 등을 역임한 문신.
박태한 (朴泰漢)
조선 후기에, 승문원정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병조참지, 성균관좨주,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필부 (朴弼傅)
조선 후기에, 병조참지, 성균관좨주, 장례원판결사 등을 역임한 문신.
노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로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에서 갈려 나온 당파이다. 1680년(숙종 6)의 경신환국 이후 남인에 대한 정탐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노장파 인사들이 소장파 관료들의 배척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립되었다. 노론은 격화되는 당쟁의 와중에 숙종~경종 대에 수차례 화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훈척가의 영향력과 송시열·송준길 등에서 연원한 문인 집단의 결집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회복, 확장하여 조선 말까지 조정의 주도 세력 지위를 유지하였다.
노론 (老論)
노론은 조선 후기, 붕당(朋黨)의 한 정파로 남인에 대한 처벌 문제로 서인에서 갈려 나온 당파이다. 1680년(숙종 6)의 경신환국 이후 남인에 대한 정탐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노장파 인사들이 소장파 관료들의 배척을 받은 것을 계기로 성립되었다. 노론은 격화되는 당쟁의 와중에 숙종~경종 대에 수차례 화란을 당하기도 하였으나, 훈척가의 영향력과 송시열·송준길 등에서 연원한 문인 집단의 결집력을 바탕으로 세력을 회복, 확장하여 조선 말까지 조정의 주도 세력 지위를 유지하였다.
『백일헌유집』은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그는 소론 윤증 문하에서 수학한 무인으로서 이인좌의 난 때 도성을 지킨 공을 세운 이력을 지녔다. 저자의 시는 유실되어 30여 수인 반면 상소는 59편이나 되는데 대체로 사직소와 변무소이다. 조선시대 무인의 문집은 드문 만큼 그 몇 되지 않는 무관의 문집으로 가치가 있다. 저자 사후 7세손 이달헌이 원고를 수습하여 1949년에 간행하였다.
백일헌유집 (白日軒遺集)
『백일헌유집』은 조선 후기 무신 이삼의 시문을 편집한 문집이다. 그는 소론 윤증 문하에서 수학한 무인으로서 이인좌의 난 때 도성을 지킨 공을 세운 이력을 지녔다. 저자의 시는 유실되어 30여 수인 반면 상소는 59편이나 되는데 대체로 사직소와 변무소이다. 조선시대 무인의 문집은 드문 만큼 그 몇 되지 않는 무관의 문집으로 가치가 있다. 저자 사후 7세손 이달헌이 원고를 수습하여 1949년에 간행하였다.
『농은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추의 문집이다. 1818년(순조 18)에 편집·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16년경에 간행되었다는 설도 있다. 원집(原集) 4권, 별집(別集) 2권으로 구성된다. 교류 관계를 보여 주는 시문들 외에, 소론(少論)의 주요 인물인 윤선거와 윤증의 직계 가족인 윤추의 입장에서 본 노론·소론 당쟁(黨爭)의 일단을 담고 있는 서간문(書簡文)·상소문 등의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농은유고 (農隱遺稿)
『농은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윤추의 문집이다. 1818년(순조 18)에 편집·간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1916년경에 간행되었다는 설도 있다. 원집(原集) 4권, 별집(別集) 2권으로 구성된다. 교류 관계를 보여 주는 시문들 외에, 소론(少論)의 주요 인물인 윤선거와 윤증의 직계 가족인 윤추의 입장에서 본 노론·소론 당쟁(黨爭)의 일단을 담고 있는 서간문(書簡文)·상소문 등의 자료를 수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에, 『가소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
백광호 (白光瑚)
조선 후기에, 『가소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후기 문신 최규서가 인생의 경력과 사회의 견문에 대하여 1730년에 작성한 수필집.
병후만록 (病後漫錄)
조선후기 문신 최규서가 인생의 경력과 사회의 견문에 대하여 1730년에 작성한 수필집.
조선 후기에, 병조정랑, 강원도도사, 개성경력 등을 역임한 문신.
김경지 (金敬之)
조선 후기에, 병조정랑, 강원도도사, 개성경력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예문관검열, 부교리, 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신정하 (申靖夏)
조선 후기에, 예문관검열, 부교리, 헌납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익릉참봉, 이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심성희 (沈聖希)
조선 후기에, 익릉참봉, 이조판서,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