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의열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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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과 광복군총영, 독립의용군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유성삼 (劉成三)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과 광복군총영, 독립의용군 등에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이혜수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창립에 동참하여 활동하였고, 1920년 독립운동 비밀결사 암살단의 활동을 도왔다. 1923년 의열투사 김상옥의 은신을 돕고 거사 준비금을 전해 주는 등 여러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였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해 병든 몸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혜수 (李惠受)
이혜수는 일제강점기, 서울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경성애국부인회와 대한민국애국부인회 창립에 동참하여 활동하였고, 1920년 독립운동 비밀결사 암살단의 활동을 도왔다. 1923년 의열투사 김상옥의 은신을 돕고 거사 준비금을 전해 주는 등 여러 활동을 측면에서 지원하였다.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어 모진 고문을 당해 병든 몸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김정환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일가형 김제환과 일제의 모든 식민통치 정책에 견결히 맞서 저항하였다. 일제로부터 수차례 구금당하기도 하였고, 강제로 집행되는 관헌의 재산압류를 10여 차례나 당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제환도 옥고를 치른 뒤 죽고, 1927년 처자가 잡혀가 구금되기까지 하자 김정환은 자결하였다.
김정환 (金政煥)
김정환은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1910년 국권 피탈 후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일가형 김제환과 일제의 모든 식민통치 정책에 견결히 맞서 저항하였다. 일제로부터 수차례 구금당하기도 하였고, 강제로 집행되는 관헌의 재산압류를 10여 차례나 당하였다. 1919년 3월에는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김제환도 옥고를 치른 뒤 죽고, 1927년 처자가 잡혀가 구금되기까지 하자 김정환은 자결하였다.
박인각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선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3월 대한독립단 단원들이 평안북도 선천군 대산면의 친일 면장 및 면서기를 총살 처단하였을 때의 공범으로 수배되었는데, 1920년대 어느 때인가 붙잡혀 1931년 8월 이전에 옥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인각 (朴仁角)
박인각은 일제강점기, 평안북도 선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3월 대한독립단 단원들이 평안북도 선천군 대산면의 친일 면장 및 면서기를 총살 처단하였을 때의 공범으로 수배되었는데, 1920년대 어느 때인가 붙잡혀 1931년 8월 이전에 옥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근배는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비밀결사 농민단을 조직하여 1920년 9월 18일 평안남도 강동경찰서 투탄 거사를 주도하였다. 그 후 서간도의 대한광복군총영 요원이 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1922년 8월 10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다 1931년 가출옥하였다.
이근배 (李根培)
이근배는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집을 위해 활동한 독립운동가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할 군자금을 모집하고자 비밀결사 농민단을 조직하여 1920년 9월 18일 평안남도 강동경찰서 투탄 거사를 주도하였다. 그 후 서간도의 대한광복군총영 요원이 되어 군자금 모집 활동을 계속하다가 체포되어, 1922년 8월 10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옥고를 겪다 1931년 가출옥하였다.
김석항은 대한제국기, 항일운동을 하고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1905년 9월 김동필 등과 함께 항일상소운동 단체인 유약소를 결성하고 항일서한을 보냈다. 같은 해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기산도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처단하고자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중 이근택에게 중상을 입혔으나 체포되었고, 1907년 7월 옥중에서 국권회복의 간절한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였다.
김석항 (金錫恒)
김석항은 대한제국기, 항일운동을 하고 순국한 애국지사이다. 1905년 9월 김동필 등과 함께 항일상소운동 단체인 유약소를 결성하고 항일서한을 보냈다. 같은 해 11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기산도 등과 함께 을사오적을 처단하고자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중 이근택에게 중상을 입혔으나 체포되었고, 1907년 7월 옥중에서 국권회복의 간절한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였다.
손성원은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김석항, 기산도 등과 을사오적을 처단하자는 데 뜻을 함께 하고, 오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06년 5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06년 7월 30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손성원 (孫聖元)
손성원은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5년 11월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김석항, 기산도 등과 을사오적을 처단하자는 데 뜻을 함께 하고, 오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06년 5월 징역 2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06년 7월 30일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최상오는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에 가담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7년 3월 나인영과 오기호가 을사오적 척결을 위해 조직한 결사대에 가담하여 친일 대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제거 거사가 실패하자,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현, 충청남도 금산군) 일대에서 조총 · 금전 등을 탈취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같은해 7월 교살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최상오 (崔相五)
최상오는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에 가담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7년 3월 나인영과 오기호가 을사오적 척결을 위해 조직한 결사대에 가담하여 친일 대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제거 거사가 실패하자,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현, 충청남도 금산군) 일대에서 조총 · 금전 등을 탈취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같은해 7월 교살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황경오는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에 가담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7년 3월 나인영과 오기호가 을사오적 척결을 위해 조직한 결사대에 가담하여 친일 대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제거 거사가 실패하자,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 일대에서 조총 · 금전 등을 탈취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같은해 7월 교살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
황경오 (黃景五)
황경오는 대한제국기, 을사오적을 처단하기 위해 결사대에 가담하는 등 항일 활동을 한 애국지사이다. 1907년 3월 나인영과 오기호가 을사오적 척결을 위해 조직한 결사대에 가담하여 친일 대신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다. 을사오적 제거 거사가 실패하자, 이후 전라북도 금산군 일대에서 조총 · 금전 등을 탈취하다가 일제 군경에게 체포되어 같은해 7월 교살형을 선고받고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