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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전개를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으로 간주하고 그 이행기에 나타난 조선 유학의 새로운 학문 경향을 지칭하는 학술 용어이다. 20세기 한국학계가 창출한 조선 후기 실학의 입체적 이해를 위해서는 개념, 지식, 연구에 관한 통괄적 지식이 중요하다. 실학 개념의 중층성과 실학 지식의 비정합성은 실학의 학술적 재구성을 성찰하는 출발점이다. 오늘날 실학 연구는 근대 지향에서 근대 성찰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으며, 실학의 개념사와 지식사는 최근의 추세이다. 실학은 여전히 미래학이다.
실학 (實學)
실학은 조선 후기의 역사적 전개를 전근대에서 근대로의 이행으로 간주하고 그 이행기에 나타난 조선 유학의 새로운 학문 경향을 지칭하는 학술 용어이다. 20세기 한국학계가 창출한 조선 후기 실학의 입체적 이해를 위해서는 개념, 지식, 연구에 관한 통괄적 지식이 중요하다. 실학 개념의 중층성과 실학 지식의 비정합성은 실학의 학술적 재구성을 성찰하는 출발점이다. 오늘날 실학 연구는 근대 지향에서 근대 성찰로 관심이 이동하고 있으며, 실학의 개념사와 지식사는 최근의 추세이다. 실학은 여전히 미래학이다.
정전론은 조선시대 중국 고대의 이상적인 제도인 정전제를 당대의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던 여러 개혁론의 총칭이다. 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했던 조선시대에도 오랜 시기에 걸쳐 조정과 재야에서 정전론이 다방면으로 전개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공법(貢法)의 시행과정에서 정전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조선 후기에도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이 정전제를 당대의 현실에 접목시키기 위해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정전론 (井田論)
정전론은 조선시대 중국 고대의 이상적인 제도인 정전제를 당대의 현실에 적용하고자 했던 여러 개혁론의 총칭이다. 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했던 조선시대에도 오랜 시기에 걸쳐 조정과 재야에서 정전론이 다방면으로 전개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공법(貢法)의 시행과정에서 정전제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다. 조선 후기에도 유형원, 이익, 정약용 등이 정전제를 당대의 현실에 접목시키기 위해 개혁안을 제시하였다.
북학은 조선 후기, 청나라의 문물·제도 중 일부를 수용하여 조선의 현실 개혁을 추구하였던 기술론이다. 중원을 차지한 청나라의 번영이 예상과 달리 한 세기를 넘어가자 조선 지배층은 청나라가 ‘중화 문물’을 훔쳐서 지니고 있다는 논리를 만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연암일파는 중화 문물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로 청나라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북학의 내용은 벽돌과 수레의 사용, 농기구의 개량, 대외 무역의 장려 등이었는데, 그 이상의 체계적인 경세론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북학 (北學)
북학은 조선 후기, 청나라의 문물·제도 중 일부를 수용하여 조선의 현실 개혁을 추구하였던 기술론이다. 중원을 차지한 청나라의 번영이 예상과 달리 한 세기를 넘어가자 조선 지배층은 청나라가 ‘중화 문물’을 훔쳐서 지니고 있다는 논리를 만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연암일파는 중화 문물을 도입해야 한다는 논리로 청나라 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다. 북학의 내용은 벽돌과 수레의 사용, 농기구의 개량, 대외 무역의 장려 등이었는데, 그 이상의 체계적인 경세론으로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조선후기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 학자.
정약종 (丁若鍾)
다산 정약용의 형으로 조선후기 신유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 학자.
한전론은 17세기 중반 이후 토지 소유의 양극화가 진행되어 국가 재정과 민생에 문제점이 발생하자 이익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주장했던 전제 개혁안이다. 이익은 영업전(永業田)을 설치하여 그 매매를 금지시키는 방식으로, 박지원은 토지 소유 규모 상한을 정하는 방식으로 겸병 확대에 제한을 가하려 했다.
한전론 (限田論)
한전론은 17세기 중반 이후 토지 소유의 양극화가 진행되어 국가 재정과 민생에 문제점이 발생하자 이익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주장했던 전제 개혁안이다. 이익은 영업전(永業田)을 설치하여 그 매매를 금지시키는 방식으로, 박지원은 토지 소유 규모 상한을 정하는 방식으로 겸병 확대에 제한을 가하려 했다.
조선 후기에, 도승지, 대사헌, 진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하진 (李夏鎭)
조선 후기에, 도승지, 대사헌, 진주목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남포현감, 황산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윤기 (尹愭)
조선후기 남포현감, 황산찰방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정시한은 조선 후기 「임오록」, 「만록」, 「산중일기」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5년(인조 3) 출생하여 1707년(숙종 33) 사망하였다. 자는 군익, 호는 우담이다. 정시한은 이기론과 사단칠정론을 정밀하게 분석한 이기사칠설(理氣四七說)을 전개하여 이황의 도통을 계승하였다. 정시한은 「사칠변증(四七辨證)」을 통해 이이의 성리설을 41조에 걸쳐 조목별로 비판함으로써 퇴계학파의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이식, 황수일, 이만부, 권두경 등이 배출되었다. 저서로는 『우담집』이 있다.
정시한 (丁時翰)
정시한은 조선 후기 「임오록」, 「만록」, 「산중일기」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25년(인조 3) 출생하여 1707년(숙종 33) 사망하였다. 자는 군익, 호는 우담이다. 정시한은 이기론과 사단칠정론을 정밀하게 분석한 이기사칠설(理氣四七說)을 전개하여 이황의 도통을 계승하였다. 정시한은 「사칠변증(四七辨證)」을 통해 이이의 성리설을 41조에 걸쳐 조목별로 비판함으로써 퇴계학파의 형성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이식, 황수일, 이만부, 권두경 등이 배출되었다. 저서로는 『우담집』이 있다.
객주조합(客主組合)은 개항 이후 객주들이 그들의 상권을 유지하고 자본력이 튼튼한 외국 상인과 경쟁하기 위하여 결성한 동업 조합이다. 1880년대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원산항의 원상상의소(1883), 인천항의 인천객주상회(1885), 부산항의 부산상법회사(1889) 등이 있다. 1894년 이전까지 객주조합은 정부의 관할 하에서 각종 명목의 세금을 내는 등 규제를 받았다. 1894년 이후에는 정부의 수탈과 지배에서 벗어나 객주의 상권을 옹호하는 데 힘썼다. 1905년 이후 근대적 성격의 상업회의소로 전환되었다.
객주조합 (客主組合)
객주조합(客主組合)은 개항 이후 객주들이 그들의 상권을 유지하고 자본력이 튼튼한 외국 상인과 경쟁하기 위하여 결성한 동업 조합이다. 1880년대 초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으로 원산항의 원상상의소(1883), 인천항의 인천객주상회(1885), 부산항의 부산상법회사(1889) 등이 있다. 1894년 이전까지 객주조합은 정부의 관할 하에서 각종 명목의 세금을 내는 등 규제를 받았다. 1894년 이후에는 정부의 수탈과 지배에서 벗어나 객주의 상권을 옹호하는 데 힘썼다. 1905년 이후 근대적 성격의 상업회의소로 전환되었다.
이서는 조선 후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한 명망 있는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가학을 토대로 평생 학문을 익히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었다. 거문고에도 능하였으며, 경서와 제자백가도 깊이 연구하였다. 성호 이익의 형으로서 훈도하고, 그의 문인들이 ‘홍도’라는 시호를 지어 학덕을 칭송하였다.
이서 (李潊)
이서는 조선 후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한 명망 있는 유학자이자 서예가이다. 가학을 토대로 평생 학문을 익히며 후학을 양성하였다. 수양과 실천을 중시하며 조선 최초의 서예 이론서인 『필결』을 저술하고, 동국진체(東國眞體)라는 독특한 서체를 만들었다. 거문고에도 능하였으며, 경서와 제자백가도 깊이 연구하였다. 성호 이익의 형으로서 훈도하고, 그의 문인들이 ‘홍도’라는 시호를 지어 학덕을 칭송하였다.
1698년 이익·윤지완·최석정 등이 왕명으로 『대전후속록』 이후 각 도 및 관청에 내려진 수교·조례 등을 모아 편찬한 법제서.
수교집록 (受敎輯錄)
1698년 이익·윤지완·최석정 등이 왕명으로 『대전후속록』 이후 각 도 및 관청에 내려진 수교·조례 등을 모아 편찬한 법제서.
조선후기 학자 이헌경이 학문적 차원에서 천주교를 비판한 종교서. 천주교비판서.
천학문답 (天學問答)
조선후기 학자 이헌경이 학문적 차원에서 천주교를 비판한 종교서. 천주교비판서.
조선 후기에, 『와유록』, 『술선록』 등을 저술한 학자.
남하행 (南夏行)
조선 후기에, 『와유록』, 『술선록』 등을 저술한 학자.
일제강점기 때, 국채보상운동에 참가해 단연회 지부를 조직하였으며, 『성헌집』, 『조선사강목』 등을 저술한 학자.
이병희 (李炳憙)
일제강점기 때, 국채보상운동에 참가해 단연회 지부를 조직하였으며, 『성헌집』, 『조선사강목』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한성부주부, 만경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이맹휴 (李孟休)
조선 후기에, 한성부주부, 만경현령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대사간, 공조참판,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이중협 (李重協)
조선 후기에, 대사간, 공조참판, 도승지 등을 역임한 문신.
역사학자 한우근(1915~1999)이 조선후기 실학에 관한 논문을 수록하여 1961년에 간행한 학술서. 실학서.
이조후기의 사회와 사상 (李朝後期의 社會와 思想)
역사학자 한우근(1915~1999)이 조선후기 실학에 관한 논문을 수록하여 1961년에 간행한 학술서. 실학서.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장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언이 (李彦怡)
조선 전기에, 병조좌랑, 사간원정언, 장흥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소미산방급고경』, 『목재영언』 등을 저술한 학자.
이삼환 (李森煥)
조선 후기에, 『소미산방급고경』, 『목재영언』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후기에 이익(李瀷)이 지은 전(傳).
동방일사전 (東方一士傳)
조선 후기에 이익(李瀷)이 지은 전(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