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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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문신·학자 이황이 권호문에게 글씨를 가르치기 위하여 교본(敎本)으로 써준 서첩. 필첩.
이황 필적 - 퇴도선생필법 및 퇴도선생유첩 (李滉 筆蹟 - 退陶先生筆法 및 退陶先生遺帖)
조선전기 문신·학자 이황이 권호문에게 글씨를 가르치기 위하여 교본(敎本)으로 써준 서첩. 필첩.
조선 전기에, 왕자사부,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용학석의』 등을 저술한 학자.
민응기 (閔應祺)
조선 전기에, 왕자사부, 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용학석의』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전기에, 『물암집』, 『삼서강록』 등을 저술한 학자.
김륭 (金隆)
조선 전기에, 『물암집』, 『삼서강록』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공으로 합천군수, 첨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학자·의병장.
김면 (金沔)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공으로 합천군수, 첨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등을 역임한 학자·의병장.
조선 전기에, 사예, 사성, 풍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김복일 (金復一)
조선 전기에, 사예, 사성, 풍기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중기에, 동복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설월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
김부륜 (金富倫)
조선 중기에, 동복현감 등을 역임하였으며, 『설월당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전기 첨지중추부사, 창성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학자.
김부인 (金富仁)
조선전기 첨지중추부사, 창성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학자.
조선 전기에, 『후조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김부필 (金富弼)
조선 전기에, 『후조당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의병을 규합하여 정제장으로 추대된 문신.
김사원 (金士元)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의병을 규합하여 정제장으로 추대된 문신.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곽재우 의진에 들어가 화왕산성전투에서 활약하였으며, 『계문예설』, 『후송재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의병장.
김사정 (金士貞)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곽재우 의진에 들어가 화왕산성전투에서 활약하였으며, 『계문예설』, 『후송재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의병장.
조선 전기에, 예문관검열, 양주교수, 봉상시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박대립 (朴大立)
조선 전기에, 예문관검열, 양주교수, 봉상시참봉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시대 때, 양명학의 사상적 체계를 완성한 문신.
남언경 (南彦經)
조선시대 때, 양명학의 사상적 체계를 완성한 문신.
조선 전기에, 인심도심설을 토론하며 도학에 열중한 문신.
남언기 (南彦紀)
조선 전기에, 인심도심설을 토론하며 도학에 열중한 문신.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김성일 (金誠一)
김성일은 조선시대 통신부사,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우도순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538년(중종 33)에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사망했다. 1574년 사가독서했고 1577년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다. 1590년 통신부사로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한 보고로 인해 임진왜란 발발 후 파직되었다. 이후 복직되어 왜군에 대한 항전을 독려하다 병으로 사망했다. 이황의 수제자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어, 『주자서절요』·『자성록』·『퇴계집』 등을 편집·간행했다. 정치적으로는 유성룡·김우옹 등과 남인을 이루었다.
조선 전기에, 『묵재일고』 등을 저술한 학자.
박사희 (朴士熹)
조선 전기에, 『묵재일고』 등을 저술한 학자.
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남인 (南人)
동인(東人)에서 분파하였으며, 학문적으로는 이황(李滉)의 학통을 잇고, 지역적으로는 안동을 중심으로 하는 경상북도 지역과 서울·경기권을 주요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던 조선시대 붕당(朋黨)의 한 정파.
조선 중기에, 『건재일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공을 세워 군자감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사한 학자.
박수일 (朴遂一)
조선 중기에, 『건재일고』 등을 저술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공을 세워 군자감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정유재란 때 전사한 학자.
조선 전기에, 『비지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남치리 (南致利)
조선 전기에, 『비지문집』 등을 저술한 학자.
조선 전기에, 경릉참봉, 사부 등을 역임한 문신.
권우 (權宇)
조선 전기에, 경릉참봉, 사부 등을 역임한 문신.
박승임은 조선 전기 춘천부사, 공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이다. 1517년에 태어나 1586년 사망하였다. 호는 소고이며 이황의 문인이다. 1540년 급제하여 승문원·예문관·승정원·홍문관 등 여러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박승임은 풍채가 뛰어나고 과묵했으며 항상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였다. 많은 서적을 읽었는데 특히 『논어』와 주자서를 탐독하였다. 그의 성리학적 견해는 주로 이황의 학설을 따라 주리론의 경향을 보였다. 저서로는 『성리유선』·『공문심법유취』·『강목심법』·『소고문집』 등이 있다. 경상북도 영주의 구산정사에 제향되었다.
박승임 (朴承任)
박승임은 조선 전기 춘천부사, 공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학자이다. 1517년에 태어나 1586년 사망하였다. 호는 소고이며 이황의 문인이다. 1540년 급제하여 승문원·예문관·승정원·홍문관 등 여러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박승임은 풍채가 뛰어나고 과묵했으며 항상 자신을 드러내기를 꺼려하였다. 많은 서적을 읽었는데 특히 『논어』와 주자서를 탐독하였다. 그의 성리학적 견해는 주로 이황의 학설을 따라 주리론의 경향을 보였다. 저서로는 『성리유선』·『공문심법유취』·『강목심법』·『소고문집』 등이 있다. 경상북도 영주의 구산정사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