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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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전(大觀殿)은 개성특별시 만월동 송악산에 있었던 고려시대 정궁인 연경궁 안에 있는 전각이다. 고려 개경 본궐인 연경궁의 정전 중 하나이다. 1138년(인종 16) 본궐에 있는 전각의 명칭을 고칠 때 건덕전에서 대관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건덕전은 고려 전기부터 있었던 천덕전과 같은 전각으로 추정된다. 몽골과의 전쟁 이후에는 1339년(충숙왕 복위 8) 6월에 대관전 은행나무가 저절로 넘어졌다는 기록밖에 확인되지 않는다.
대관전 (大觀殿)
대관전(大觀殿)은 개성특별시 만월동 송악산에 있었던 고려시대 정궁인 연경궁 안에 있는 전각이다. 고려 개경 본궐인 연경궁의 정전 중 하나이다. 1138년(인종 16) 본궐에 있는 전각의 명칭을 고칠 때 건덕전에서 대관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건덕전은 고려 전기부터 있었던 천덕전과 같은 전각으로 추정된다. 몽골과의 전쟁 이후에는 1339년(충숙왕 복위 8) 6월에 대관전 은행나무가 저절로 넘어졌다는 기록밖에 확인되지 않는다.
공예태후는 고려의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이다. 그녀는 인종의 후비(后妃)이자, 의종(毅宗)·명종(明宗)·신종(神宗)의 모후이기도 하다. 성씨는 임씨(任氏)이고,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任元厚), 어머니는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딸이다. 1126년(인종 4) 18세의 나이로 인종과 혼인하였는데,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리다가 1127년(인종 5)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다. 1129년(인종 7)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183년(명종 13)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공예태후 (恭睿太后)
공예태후는 고려의 제17대 왕이며, 인종의 왕비이다. 그녀는 인종의 후비(后妃)이자, 의종(毅宗)·명종(明宗)·신종(神宗)의 모후이기도 하다. 성씨는 임씨(任氏)이고, 본관은 정안(定安)이며, 아버지는 중서령 임원후(任元厚), 어머니는 문하시중 이위(李瑋)의 딸이다. 1126년(인종 4) 18세의 나이로 인종과 혼인하였는데, 연덕궁주(延德宮主)로 불리다가 1127년(인종 5)에 장남인 의종을 출산하였다. 1129년(인종 7)에 왕비로 책봉되었으며, 1183년(명종 13) 향년 75세로 사망하였다.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대령후 (大寧侯)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김신련은 고려 전기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한 문신이다.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금주판관 등의 지방관을 거친 후에 인종이 내시로 임명하였다. 이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하여, 진군하다가 적진에서 화살을 맞았다. 개선한 후에 삼사판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중국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이후 지방관으로 업적을 남기고 은퇴하였다.
김신련 (金臣璉)
김신련은 고려 전기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한 문신이다.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금주판관 등의 지방관을 거친 후에 인종이 내시로 임명하였다. 이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하여, 진군하다가 적진에서 화살을 맞았다. 개선한 후에 삼사판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중국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이후 지방관으로 업적을 남기고 은퇴하였다.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김안 (金安)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조선 전기에, 한성부윤, 울진현령, 은율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박용 (朴墉)
조선 전기에, 한성부윤, 울진현령, 은율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백수한은 고려 전기에 서경천도 운동, 묘청의 난 등과 관련된 관리이다. 그는 본래 일관으로서 서경 분사의 검교소감이 되어 묘청을 스승으로 섬겼다. 음양비술을 내세워 서경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묘청과 함께 서경의 임원역 지역을 새로운 궁궐터로 제시하고 인종으로 하여금 그곳에 궁궐을 짓게 하였다. 서경천도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김부식에 의해 반란의 주모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백수한 (白壽翰)
백수한은 고려 전기에 서경천도 운동, 묘청의 난 등과 관련된 관리이다. 그는 본래 일관으로서 서경 분사의 검교소감이 되어 묘청을 스승으로 섬겼다. 음양비술을 내세워 서경천도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묘청과 함께 서경의 임원역 지역을 새로운 궁궐터로 제시하고 인종으로 하여금 그곳에 궁궐을 짓게 하였다. 서경천도 운동이 실패로 끝나고 묘청이 서경에서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는 김부식에 의해 반란의 주모자로 몰려 처형되었다.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김의원 (金義元)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신숙은 고려 전기에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인종과 의종대의 문신으로, 경서를 널리 배웠으며 청렴하고 충직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참지정사로 치사하였다가 1160년(의종 14) 7월에 사망하였다.
신숙 (申淑)
신숙은 고려 전기에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참지정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 인종과 의종대의 문신으로, 경서를 널리 배웠으며 청렴하고 충직한 것으로 이름이 났다. 우간의대부, 지문하성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참지정사로 치사하였다가 1160년(의종 14) 7월에 사망하였다.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딸인 공주.
승경궁주 (承慶宮主)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딸인 공주.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왕비.
연덕궁주 (延德宮主)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왕비.
고려후기 제17대 인종의 제2왕비.
선평왕후 (宣平王后)
고려후기 제17대 인종의 제2왕비.
고려전기 상장군을 역임한 무신.
오탁 (吳卓)
고려전기 상장군을 역임한 무신.
고려 전기에, 서경의 분사호부상서를 역임하였으며, 묘청의 난 당시에 병을 이유로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았던 문신.
송선유 (宋先宥)
고려 전기에, 서경의 분사호부상서를 역임하였으며, 묘청의 난 당시에 병을 이유로 반란군에 가담하지 않았던 문신.
이자겸은 고려전기 상서좌복야, 협모안사공신 수태사 중서령 소성후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26년(인종 4)에 사망했다. 왕실의 외척 가문으로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 예종·인종 때 딸을 왕비로 들여보냈고, 인종이 그의 보필로 즉위하자 전횡이 극에 달했다. 인종의 묵인 아래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거사가 일어났으나 오히려 이들이 난을 일으켜 궁성에 불을 지르고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그 뒤 왕을 자기 집으로 이어시키고 국사를 제멋대로 처리하면서 왕위 선위를 노렸다. 척준경에게 제거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이자겸 (李資謙)
이자겸은 고려전기 상서좌복야, 협모안사공신 수태사 중서령 소성후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26년(인종 4)에 사망했다. 왕실의 외척 가문으로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 예종·인종 때 딸을 왕비로 들여보냈고, 인종이 그의 보필로 즉위하자 전횡이 극에 달했다. 인종의 묵인 아래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거사가 일어났으나 오히려 이들이 난을 일으켜 궁성에 불을 지르고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그 뒤 왕을 자기 집으로 이어시키고 국사를 제멋대로 처리하면서 왕위 선위를 노렸다. 척준경에게 제거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이자겸의 난은 1126년(인종 4)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겸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일으킨 반란이다.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후로 들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인종이 측근 세력을 동원하여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자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자겸은 왕궁을 침범하여 왕을 유폐시키고 정치를 독단하였다. 인종은 최사전의 계략을 수용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이자겸을 유배보냄으로써 인주이씨의 발호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정치기강은 더욱 문란해져 귀족층의 분열과 대립이 표면화되고 귀족사회 자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자겸의 난 (李資謙의 亂)
이자겸의 난은 1126년(인종 4)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겸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일으킨 반란이다.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후로 들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인종이 측근 세력을 동원하여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자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자겸은 왕궁을 침범하여 왕을 유폐시키고 정치를 독단하였다. 인종은 최사전의 계략을 수용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이자겸을 유배보냄으로써 인주이씨의 발호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정치기강은 더욱 문란해져 귀족층의 분열과 대립이 표면화되고 귀족사회 자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1527년(중종 22) 3월 쥐를 잡아 동궁(東宮: 뒤의 인종)을 저주한 사건.
작서의 변 (灼鼠의 變)
1527년(중종 22) 3월 쥐를 잡아 동궁(東宮: 뒤의 인종)을 저주한 사건.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인성왕후 (仁聖王后)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장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청교면 장릉리 일대에 비정되는 고려 전기 제17대 인종의 능이다. 인종은 1146년(인종 24) 2월 정묘일에 보화전에서 승하하고 3월 갑신일에 나성 남쪽에 장례 지냈다. 후에 제18대 의종, 제19대 명종, 제20대 신종이 참배한 적이 있다. 장릉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도성의 서쪽인 벽관동에,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장릉리에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제16대 예종 유릉이나 제20대 신종 양릉 등이 있고, 양식이 유사하다고 여겨지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장릉 (長陵)
장릉은 북한 개성특별시 개풍구역 청교면 장릉리 일대에 비정되는 고려 전기 제17대 인종의 능이다. 인종은 1146년(인종 24) 2월 정묘일에 보화전에서 승하하고 3월 갑신일에 나성 남쪽에 장례 지냈다. 후에 제18대 의종, 제19대 명종, 제20대 신종이 참배한 적이 있다. 장릉의 위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도성의 서쪽인 벽관동에, 『조선고적도보』에 의하면 경기도 개풍군 청교면 장릉리에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제16대 예종 유릉이나 제20대 신종 양릉 등이 있고, 양식이 유사하다고 여겨지나 정확한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의종은 고려 전기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46~1170년이며 인종의 맏아들이다. 1170년 서경에서 신령을 반포하여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왕조를 중흥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유교적 정치이념보다는 불교·음양설·선풍 등을 중요시하여 문신세력들의 심한 제약 속에 구체적인 성과를 낳지 못했다. 왕권과 문신세력의 대립·갈등은 정치·사회적 혼란을 초래했고 종국에는 무신정변을 발생시켰다. 1170년 정중부 등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거제현에 유배되었다. 1173년(명종 3)에 김보당의 거병이 실패하자 이의민에 의해 살해되었다.
의종 (毅宗)
의종은 고려 전기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1146~1170년이며 인종의 맏아들이다. 1170년 서경에서 신령을 반포하여 실추된 왕실의 권위를 회복하고 왕조를 중흥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유교적 정치이념보다는 불교·음양설·선풍 등을 중요시하여 문신세력들의 심한 제약 속에 구체적인 성과를 낳지 못했다. 왕권과 문신세력의 대립·갈등은 정치·사회적 혼란을 초래했고 종국에는 무신정변을 발생시켰다. 1170년 정중부 등의 정변으로 폐위되어 거제현에 유배되었다. 1173년(명종 3)에 김보당의 거병이 실패하자 이의민에 의해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