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종"
검색결과 총 31건
이자겸의 난은 1126년(인종 4)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겸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일으킨 반란이다.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후로 들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인종이 측근 세력을 동원하여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자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자겸은 왕궁을 침범하여 왕을 유폐시키고 정치를 독단하였다. 인종은 최사전의 계략을 수용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이자겸을 유배보냄으로써 인주이씨의 발호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정치기강은 더욱 문란해져 귀족층의 분열과 대립이 표면화되고 귀족사회 자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자겸의 난 (李資謙의 亂)
이자겸의 난은 1126년(인종 4) 왕실의 외척이었던 이자겸이 왕위를 찬탈하려고 일으킨 반란이다. 이자겸은 예종과 인종에게 자신의 딸을 왕후로 들이며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인종이 측근 세력을 동원하여 이자겸을 제거하려 하자 이자겸은 척준경의 군사력을 동원하여 난을 일으켰다. 이자겸은 왕궁을 침범하여 왕을 유폐시키고 정치를 독단하였다. 인종은 최사전의 계략을 수용하여 사태를 수습하고 이자겸을 유배보냄으로써 인주이씨의 발호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정치기강은 더욱 문란해져 귀족층의 분열과 대립이 표면화되고 귀족사회 자체가 동요하기 시작했다.
이자겸은 고려전기 상서좌복야, 협모안사공신 수태사 중서령 소성후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26년(인종 4)에 사망했다. 왕실의 외척 가문으로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 예종·인종 때 딸을 왕비로 들여보냈고, 인종이 그의 보필로 즉위하자 전횡이 극에 달했다. 인종의 묵인 아래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거사가 일어났으나 오히려 이들이 난을 일으켜 궁성에 불을 지르고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그 뒤 왕을 자기 집으로 이어시키고 국사를 제멋대로 처리하면서 왕위 선위를 노렸다. 척준경에게 제거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이자겸 (李資謙)
이자겸은 고려전기 상서좌복야, 협모안사공신 수태사 중서령 소성후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출생일은 미상이며 1126년(인종 4)에 사망했다. 왕실의 외척 가문으로 음서를 통해 관직에 진출했다. 예종·인종 때 딸을 왕비로 들여보냈고, 인종이 그의 보필로 즉위하자 전횡이 극에 달했다. 인종의 묵인 아래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거사가 일어났으나 오히려 이들이 난을 일으켜 궁성에 불을 지르고 많은 사람을 살해했다. 그 뒤 왕을 자기 집으로 이어시키고 국사를 제멋대로 처리하면서 왕위 선위를 노렸다. 척준경에게 제거되어 유배지에서 죽었다.
LA폭동은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1992년 4월 29일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난 것을 계기로 촉발된 인종폭동이다. 흑인 시위대가 한인타운에서 약탈과 방화를 일삼아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한인과 흑인 간의 갈등이 부각되기도 했다. 4월 29일 시작하여 5월 3일에야 진정국면으로 들어간 LA폭동은 사망자 53명, 부상자 4천명이라는 인명피해와 함께 7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남겼다. 재산피해의 약 40%가 한인업소가 입은 피해였다. 미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 폭동으로, 소수민족 연대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LA 폭동 (LA 暴動)
LA폭동은 흑인 로드니 킹을 집단 폭행한 백인 경찰관들이 1992년 4월 29일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난 것을 계기로 촉발된 인종폭동이다. 흑인 시위대가 한인타운에서 약탈과 방화를 일삼아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면서 한인과 흑인 간의 갈등이 부각되기도 했다. 4월 29일 시작하여 5월 3일에야 진정국면으로 들어간 LA폭동은 사망자 53명, 부상자 4천명이라는 인명피해와 함께 7억 5천만 달러에 달하는 재산피해를 남겼다. 재산피해의 약 40%가 한인업소가 입은 피해였다. 미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보여준 폭동으로, 소수민족 연대운동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1527년(중종 22) 3월 쥐를 잡아 동궁(東宮: 뒤의 인종)을 저주한 사건.
작서의 변 (灼鼠의 變)
1527년(중종 22) 3월 쥐를 잡아 동궁(東宮: 뒤의 인종)을 저주한 사건.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공화국.
남아프리카공화국 (南Africa共和國)
아프리카 최남단에 있는 공화국.
고려 시대의 청자 병.
청자 참외모양 병 (靑磁 참외模樣 甁)
고려 시대의 청자 병.
동양삼국연대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 지식층들 사이에 논의된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연대를 통해 서구세력을 방비하자는 정치론이다. 동양삼국제휴론이라고도 한다. 한·중·일 삼국이 지역적, 문화적 공동체로서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등 서양의 직접적인 침략에 직면하면서 사회진화론과 결합하여 서양 백인종에 대항해야 한다는 인종적 연대론으로 발전하였다. 계몽주의 계열의 지식인층이 역사적 연원과 국가 간의 현실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의 아시아연대론 또는 동양평화론 등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
동양삼국연대론 (東洋三國連帶論)
동양삼국연대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 지식층들 사이에 논의된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연대를 통해 서구세력을 방비하자는 정치론이다. 동양삼국제휴론이라고도 한다. 한·중·일 삼국이 지역적, 문화적 공동체로서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등 서양의 직접적인 침략에 직면하면서 사회진화론과 결합하여 서양 백인종에 대항해야 한다는 인종적 연대론으로 발전하였다. 계몽주의 계열의 지식인층이 역사적 연원과 국가 간의 현실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의 아시아연대론 또는 동양평화론 등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대령후 (大寧侯)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둘째 아들인 왕자.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인성왕후 (仁聖王后)
인성왕후(仁聖王后)는 조선시대, 제12대 왕 인종의 비이다. 본관은 나주(羅州)이고,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박용(朴墉)과 문소부부인 김씨의 딸이다. 소생은 없다. 11세에 세자빈이 되고 31세에 왕비가 되었으나 인종이 승하하자 왕대비가 되었고 64세까지 살았다. 능호는 효릉(孝陵)이다.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김안 (金安)
김안은 고려 전기 묘청, 정지상 일파로 활약한 문신이다. 인종대에 이자겸과 척준경을 제거하려는 음모에 가담하였다가, 이자겸의 난이 일어나 유배를 갔다. 이자겸이 실각하자 1126년 소환되어 활동하다가 정지상, 백수한과 함께 인종에게 서경 천도를 권유하였다. 김안은 묘청의 난 당시에 살해되었다.
고려후기 제17대 인종의 제2왕비.
선평왕후 (宣平王后)
고려후기 제17대 인종의 제2왕비.
효릉(孝陵)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 제12대 인종과 정비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이다. 부왕 곁에 묻히고 싶은 인종의 뜻에 따라 중종과 장경왕후의 동원이강릉이었던 정릉 곁에 자리 잡았으나, 중종의 능침이 천릉하여 어머니 장경왕후의 희릉만 남아 하나의 영역을 이루었다.
효릉 (孝陵)
효릉(孝陵)은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있는 조선 제12대 인종과 정비 인성왕후 박씨의 쌍릉이다. 부왕 곁에 묻히고 싶은 인종의 뜻에 따라 중종과 장경왕후의 동원이강릉이었던 정릉 곁에 자리 잡았으나, 중종의 능침이 천릉하여 어머니 장경왕후의 희릉만 남아 하나의 영역을 이루었다.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김의원 (金義元)
김의원은 고려 전기 여진 정벌에서 활약한 문신이다. 문벌 출신으로 과거에 합격한 후에 수령을 거쳐 여진 정벌에 참여하였다. 여진이 길주(吉州)를 포위했을 때 방어에 성공하였으며, 이후 요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다. 이자겸의 가문인 인주이씨 가문과 혼인 관계로 밀접하다.
대관전(大觀殿)은 개성특별시 만월동 송악산에 있었던 고려시대 정궁인 연경궁 안에 있는 전각이다. 고려 개경 본궐인 연경궁의 정전 중 하나이다. 1138년(인종 16) 본궐에 있는 전각의 명칭을 고칠 때 건덕전에서 대관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건덕전은 고려 전기부터 있었던 천덕전과 같은 전각으로 추정된다. 몽골과의 전쟁 이후에는 1339년(충숙왕 복위 8) 6월에 대관전 은행나무가 저절로 넘어졌다는 기록밖에 확인되지 않는다.
대관전 (大觀殿)
대관전(大觀殿)은 개성특별시 만월동 송악산에 있었던 고려시대 정궁인 연경궁 안에 있는 전각이다. 고려 개경 본궐인 연경궁의 정전 중 하나이다. 1138년(인종 16) 본궐에 있는 전각의 명칭을 고칠 때 건덕전에서 대관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건덕전은 고려 전기부터 있었던 천덕전과 같은 전각으로 추정된다. 몽골과의 전쟁 이후에는 1339년(충숙왕 복위 8) 6월에 대관전 은행나무가 저절로 넘어졌다는 기록밖에 확인되지 않는다.
조선 전기에, 한성부윤, 울진현령, 은율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박용 (朴墉)
조선 전기에, 한성부윤, 울진현령, 은율현감 등을 역임한 문신.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왕비.
연덕궁주 (延德宮主)
고려전기 제17대 인종의 왕비.
고려전기 상장군을 역임한 무신.
오탁 (吳卓)
고려전기 상장군을 역임한 무신.
전라남도 장성군 소재 필암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하서 김인후의 유묵 목판.
장성 필암서원 하서유묵 목판 일괄 (長城 筆岩書院 河西遺墨 木板 一括)
전라남도 장성군 소재 필암서원에 소장되어 있는 하서 김인후의 유묵 목판.
김신련은 고려 전기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한 문신이다.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금주판관 등의 지방관을 거친 후에 인종이 내시로 임명하였다. 이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하여, 진군하다가 적진에서 화살을 맞았다. 개선한 후에 삼사판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중국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이후 지방관으로 업적을 남기고 은퇴하였다.
김신련 (金臣璉)
김신련은 고려 전기 묘청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한 문신이다. 음서로 벼슬을 시작하여 금주판관 등의 지방관을 거친 후에 인종이 내시로 임명하였다. 이후 묘청의 난이 일어나자 전군병마판관으로 진압군을 지휘하여, 진군하다가 적진에서 화살을 맞았다. 개선한 후에 삼사판관 등의 관직을 역임하고, 중국 금(金)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이후 지방관으로 업적을 남기고 은퇴하였다.
순릉(純陵)은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는 고려 전기 제17대 국왕 인종의 비인 공예태후 임씨의 능이다. 인종의 사후 장남인 의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태후로 존칭하였고, 1183년(명종 13)에 사망하면서 공예태후로 시호를 올리고 순릉에 안장하였다. 순릉을 수호하는 산직장상은 4명을 두어 수호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편인 인종의 장릉 주변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순릉 (純陵)
순릉(純陵)은 북한 개성특별시에 있는 고려 전기 제17대 국왕 인종의 비인 공예태후 임씨의 능이다. 인종의 사후 장남인 의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태후로 존칭하였고, 1183년(명종 13)에 사망하면서 공예태후로 시호를 올리고 순릉에 안장하였다. 순릉을 수호하는 산직장상은 4명을 두어 수호하게 하였다. 조선시대에 관리 소홀로 정확한 위치가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편인 인종의 장릉 주변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