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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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장성은 고려 초기에 여진족 등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은 장성이다. 11세기 초 거란족과 여진족의 군사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았다. 길이가 1천 리라고 하여 ‘천리장성’으로 불렸으며, 고려장성(高麗長城)으로 인식되었다. 거란, 여진, 몽골 등 북쪽으로부터의 외적 침입 위협이 상존하였던 고려시대에 군사적 방어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 관방 시설이다.
천리장성 (千里長城)
천리장성은 고려 초기에 여진족 등 외적의 침입에 대응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은 장성이다. 11세기 초 거란족과 여진족의 군사적 압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압록강에서 원산만에 이르는 북쪽 변경에 쌓았다. 길이가 1천 리라고 하여 ‘천리장성’으로 불렸으며, 고려장성(高麗長城)으로 인식되었다. 거란, 여진, 몽골 등 북쪽으로부터의 외적 침입 위협이 상존하였던 고려시대에 군사적 방어에 크게 기여한 대표적 관방 시설이다.
성곽을 만드는 건축기술.
축성술 (築城術)
성곽을 만드는 건축기술.
관방유적은 국경의 방비를 위하여 내륙이나 해안 또는 섬에 설치하는 보(堡)나 진(鎭), 목책(木柵), 수책(水柵), 포(浦), 포영(浦營), 행영(行營), 성(城) 등의 군사적 목적의 요새 시설이다. 국경지대나 해안의 요충지에 설치하여 국경의 방비를 튼튼히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성벽과 우물 또는 샘과, 연못 등을 갖추고 있으며, 군창(軍倉)을 두거나 봉수를 갖추어 유사시 긴박한 상황을 즉각 알릴 수 있도록 하였다. 함경도와 평안도 등 북방 이민족의 침입이 많았던 북계 지역과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지역에 많이 설치되었다.
관방유적 (關防遺蹟)
관방유적은 국경의 방비를 위하여 내륙이나 해안 또는 섬에 설치하는 보(堡)나 진(鎭), 목책(木柵), 수책(水柵), 포(浦), 포영(浦營), 행영(行營), 성(城) 등의 군사적 목적의 요새 시설이다. 국경지대나 해안의 요충지에 설치하여 국경의 방비를 튼튼히 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성벽과 우물 또는 샘과, 연못 등을 갖추고 있으며, 군창(軍倉)을 두거나 봉수를 갖추어 유사시 긴박한 상황을 즉각 알릴 수 있도록 하였다. 함경도와 평안도 등 북방 이민족의 침입이 많았던 북계 지역과 왜적의 침입이 잦았던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지역에 많이 설치되었다.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있는 명승.
장성 백양사 백학봉 (長城 白羊寺 白鶴峰)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약수리에 있는 명승.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에 있는 능선.
설악산 용아장성 (雪嶽山 龍牙長城)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내설악에 있는 능선.
관문주의는 부당한 조건을 내세워 일정한 조직체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제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나 관점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원리와 관련되는 용어이다. 북한에서는 1951년 당시 당 조직 담당 부위원장이었던 허가이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허가이는 입당 대상자들에게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자의적으로 입당을 제한하였다. 공산독재통치에서 관문주의는 까다로운 입당 조건을 제시하거나, 외국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문을 닫는 형태로 표현된다. 현재 공산 국가들은 자유 진영과의 거래에 있어서 관문주의를 적용하고 있다.
관문주의 (關門主義)
관문주의는 부당한 조건을 내세워 일정한 조직체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제한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나 관점이다. 공산주의자들의 조직원리와 관련되는 용어이다. 북한에서는 1951년 당시 당 조직 담당 부위원장이었던 허가이에 의해 알려지게 되었다. 허가이는 입당 대상자들에게 지나치게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자의적으로 입당을 제한하였다. 공산독재통치에서 관문주의는 까다로운 입당 조건을 제시하거나, 외국과의 교류를 거부하고 문을 닫는 형태로 표현된다. 현재 공산 국가들은 자유 진영과의 거래에 있어서 관문주의를 적용하고 있다.
조선후기 우리나라의 북방에 관한 군사적인 용도로 제작한 지도. 관방지도.
서북피아양계만리일람지도 (西北彼我兩界萬里一覽之圖)
조선후기 우리나라의 북방에 관한 군사적인 용도로 제작한 지도. 관방지도.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에 소재한 느티나무.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 (長城 丹田里 느티나무)
전라남도 장성군 북하면 단전리에 소재한 느티나무.
평로진은 고려 전기 1001년(목종 4)에 북계(北界) 지역에 설치한 진(鎭)이다. 이후 1041년(정종 7) 9월에 최충(崔冲)이 다시 성(城)과 보(堡)를 쌓았고 고려 장성(長城)을 확장하였다. 이후에 평로진은 유원진(柔遠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평로진 (平虜鎭)
평로진은 고려 전기 1001년(목종 4)에 북계(北界) 지역에 설치한 진(鎭)이다. 이후 1041년(정종 7) 9월에 최충(崔冲)이 다시 성(城)과 보(堡)를 쌓았고 고려 장성(長城)을 확장하였다. 이후에 평로진은 유원진(柔遠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남해 금산목장성(南海 錦山牧場城)은 경상남도 남해 금산에서 지족리 수장포와 물건리 대지포 구간에 걸쳐 ‘팔(八)’자의 형태로 축조된 조선 전기의 동천 목장성이다. 목장성은 섬이나 바다로 돌출한 반도상의 지형을 차단하여 말을 기를 목적으로 만든 시설이다. 동천 목장성은 조선 단종 연간에 초축되었으며, 이후 금산 목장에 편입되었다. 이 목장성이 장성으로 불린 까닭은 성의 둘레가 15km로 여타의 성들보다 둘레가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일시적으로 관방성의 역할을 하였고, 동천 주변에서는 일시적으로 경작도 이루어졌다.
남해 금산목장성 (南海 錦山牧場城)
남해 금산목장성(南海 錦山牧場城)은 경상남도 남해 금산에서 지족리 수장포와 물건리 대지포 구간에 걸쳐 ‘팔(八)’자의 형태로 축조된 조선 전기의 동천 목장성이다. 목장성은 섬이나 바다로 돌출한 반도상의 지형을 차단하여 말을 기를 목적으로 만든 시설이다. 동천 목장성은 조선 단종 연간에 초축되었으며, 이후 금산 목장에 편입되었다. 이 목장성이 장성으로 불린 까닭은 성의 둘레가 15km로 여타의 성들보다 둘레가 훨씬 길었기 때문이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일시적으로 관방성의 역할을 하였고, 동천 주변에서는 일시적으로 경작도 이루어졌다.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성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장성성산초등학교 (長城聖山初等學校)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성산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고려 전기에, 중대광, 섭병부상서, 수사공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무신.
고열 (高烈)
고려 전기에, 중대광, 섭병부상서, 수사공상서좌복야 등을 역임한 무신.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우잠태수를 역임한 지방관.
백영 (白永)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우잠태수를 역임한 지방관.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장성중학교 (長城中學校)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영천리에 있는 공립중학교.
여래장연기는 사물의 본성을 여래의 씨앗[여래장]으로 파악하여 진여[변하지 않는 참된 진리]의 실상을 설명하는 불교 교리이다. 여래장의 연기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은 수의 혜원일 것이다. 혜원은 여래장의 본성이 연기하여 우리의 심신을 형성한다고 설명하였지만, 아직 여래장연기라는 개념어까지 구사하지는 않았다. 화엄종의 법장은 혜원의 이러한 서술적 여래장연기를 개념어로 발전시켜서 여래장연기종이라는 교판적인 개념을 만들었다. 후에 기신론필삭기에서는 여래장심이 염정의 연기를 따라 모든 법을 성립하는 것을 연래장연기라고 정의하였다.
여래장연기 (如來藏緣起)
여래장연기는 사물의 본성을 여래의 씨앗[여래장]으로 파악하여 진여[변하지 않는 참된 진리]의 실상을 설명하는 불교 교리이다. 여래장의 연기 개념을 처음 도입한 것은 수의 혜원일 것이다. 혜원은 여래장의 본성이 연기하여 우리의 심신을 형성한다고 설명하였지만, 아직 여래장연기라는 개념어까지 구사하지는 않았다. 화엄종의 법장은 혜원의 이러한 서술적 여래장연기를 개념어로 발전시켜서 여래장연기종이라는 교판적인 개념을 만들었다. 후에 기신론필삭기에서는 여래장심이 염정의 연기를 따라 모든 법을 성립하는 것을 연래장연기라고 정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