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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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진경대사 심희의 탑비.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 (昌原 鳳林寺址 眞鏡大師塔碑)
서울특별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고려전기 에 건립된 승려 진경대사 심희의 탑비.
금강산도는 금강산과 그 주변의 명승지를 그린 그림이다. 고려 말에는 불교 성지로, 조선 초기에는 중국 사신이나 황실의 선물로 그려졌다. 조선 중기에는 문인들의 활약으로 금강산이 중요한 그림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진경산수화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정선이나 심사정, 강세황 같은 대가들이 금강산을 즐겨 그리며 독특한 화법을 개발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금강산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예술적 이상을 담는 대상으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금강산도는 한국적인 화풍을 발전시키며 유구한 역사와 예술적 창조성을 대변하고 있다.
금강산도 (金剛山圖)
금강산도는 금강산과 그 주변의 명승지를 그린 그림이다. 고려 말에는 불교 성지로, 조선 초기에는 중국 사신이나 황실의 선물로 그려졌다. 조선 중기에는 문인들의 활약으로 금강산이 중요한 그림의 핵심 소재가 되었다. 또 조선 후기에는 진경산수화의 중심 주제가 되었다. 정선이나 심사정, 강세황 같은 대가들이 금강산을 즐겨 그리며 독특한 화법을 개발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금강산은 새로운 시대정신과 예술적 이상을 담는 대상으로 꾸준히 제작되고 있다. 금강산도는 한국적인 화풍을 발전시키며 유구한 역사와 예술적 창조성을 대변하고 있다.
김윤겸은 조선 후기에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등의 작품을 남긴 도화서 화원이다. 안동 김씨 김창업의 서자이다. 서얼임에도 불구하고 명문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찰방에 등용되었고, 여러 명사와 함께 시회와 유람을 하며 시와 그림을 남겼다. 특히 46세 이후에 금강산, 한양 근교, 단양, 영남 지방 등 전국의 명승을 여행하면서 실경산수화를 그렸다. 대표작으로는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진경산수화첩』 등이 있다.
김윤겸 (金允謙)
김윤겸은 조선 후기에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등의 작품을 남긴 도화서 화원이다. 안동 김씨 김창업의 서자이다. 서얼임에도 불구하고 명문가 출신이었기 때문에 찰방에 등용되었고, 여러 명사와 함께 시회와 유람을 하며 시와 그림을 남겼다. 특히 46세 이후에 금강산, 한양 근교, 단양, 영남 지방 등 전국의 명승을 여행하면서 실경산수화를 그렸다. 대표작으로는 『영남기행화첩』, 『금강산화첩』, 『진경산수화첩』 등이 있다.
불곡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가 폐사된 절터에 일제강점기 우담이 다시 창건한 절이다. 불곡사창건비의 비문에, 통일신라 말 진경대사가 지었던 절이 폐사되어 없어진 자리에 1930년대 우담이 절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있던 절의 이름이나 폐사 시기 등은 알 수 없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보물로 지정된 창원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창원 불곡사 일주문이 있다.
불곡사 (佛谷寺)
불곡사는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방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가 폐사된 절터에 일제강점기 우담이 다시 창건한 절이다. 불곡사창건비의 비문에, 통일신라 말 진경대사가 지었던 절이 폐사되어 없어진 자리에 1930년대 우담이 절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당시 있던 절의 이름이나 폐사 시기 등은 알 수 없다. 관련 문화유산으로 보물로 지정된 창원 불곡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인 창원 불곡사 일주문이 있다.
1796년(정조 20)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화첩.
김홍도 필 병진년 화첩 (金弘道 筆 丙辰年 畵帖)
1796년(정조 20) 화가 김홍도(金弘道)가 그린 화첩.
김석신은 조선 후기에 『도봉첩』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당시 화원 가문으로 가장 유명했던 개성 김씨 출신으로, 큰아버지 김응환의 양자이자 김득신의 동생이다. 1816년(순조 16) 장헌세자의 빈인 헌경혜빈 국장에 따른 빈궁혼궁도감의 혼궁 수리소에서 근무했다. 현존작 대부분이 한강 인근을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계승했고, 김응환과 김홍도의 실경산수 영향을 받아 한양의 산천을 주로 그렸다. 대표작으로 『도봉첩』이 있다.
김석신 (金碩臣)
김석신은 조선 후기에 『도봉첩』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당시 화원 가문으로 가장 유명했던 개성 김씨 출신으로, 큰아버지 김응환의 양자이자 김득신의 동생이다. 1816년(순조 16) 장헌세자의 빈인 헌경혜빈 국장에 따른 빈궁혼궁도감의 혼궁 수리소에서 근무했다. 현존작 대부분이 한강 인근을 그린 실경산수화이다.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계승했고, 김응환과 김홍도의 실경산수 영향을 받아 한양의 산천을 주로 그렸다. 대표작으로 『도봉첩』이 있다.
실경산수화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이다. 주로 실용적 목적에 따라 제작되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전공지의 「제주도」, 이녕의 「예성강도」 등이 높이 평가받는다. 실경의 전통은 조선 초로 이어져 명승·명소, 처소나 별장 주위의 경치를 그렸다. 명승·명소를 그린 산수화 중 「금강산도」는 중국 황실과 사신들의 선물용으로 빈번하게 제작되었다. 실경산수화는 조선 후기 완성된 진경산수화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으로는 이신흠의 「사천장팔경도」, 조세걸의 「곡운구곡도첩」 등이 있다.
실경산수화 (實景山水畵)
실경산수화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우리나라 자연경관과 명승지를 소재로 그린 산수화이다. 주로 실용적 목적에 따라 제작되었다. 고려 시대에 제작된 전공지의 「제주도」, 이녕의 「예성강도」 등이 높이 평가받는다. 실경의 전통은 조선 초로 이어져 명승·명소, 처소나 별장 주위의 경치를 그렸다. 명승·명소를 그린 산수화 중 「금강산도」는 중국 황실과 사신들의 선물용으로 빈번하게 제작되었다. 실경산수화는 조선 후기 완성된 진경산수화 발달의 토대가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으로는 이신흠의 「사천장팔경도」, 조세걸의 「곡운구곡도첩」 등이 있다.
북한 황해북도 장풍군 성거산에 있었던 고려전기 승려 진경대사가 창건한 사찰.
성거산 원통사 (聖居山 元通寺)
북한 황해북도 장풍군 성거산에 있었던 고려전기 승려 진경대사가 창건한 사찰.
성주사(聖住寺)는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佛母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흥덕왕 때 무염이 창건한 사찰이다. 흥덕왕 때 무염은 당나라에 있었으므로 이 설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1604년 진경대사가 중건하였는데, 이때 곰이 불사를 도왔다는 설화가 전하며, 이에 웅신사라고 하였다. 보물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감로왕도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제작 연대가 명확하여 조선 후기 불교미술을 잘 보여준다.
불모산 성주사 (佛母山 聖住寺)
성주사(聖住寺)는 경상남도 창원시 불모산(佛母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흥덕왕 때 무염이 창건한 사찰이다. 흥덕왕 때 무염은 당나라에 있었으므로 이 설화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후 1604년 진경대사가 중건하였는데, 이때 곰이 불사를 도왔다는 설화가 전하며, 이에 웅신사라고 하였다. 보물로 지정된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감로왕도를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제작 연대가 명확하여 조선 후기 불교미술을 잘 보여준다.
엄치욱은 조선 후기 「백악산도」, 「묘길상도」, 「죽서루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화성 성역에 동원되었으며, 정조의 산릉 조성과 인정전의 영건에 참여하였다. 훈련도감 소속 방외화사로 여겨지며, 정선과 김홍도의 화풍을 이은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엄치욱 (嚴致郁)
엄치욱은 조선 후기 「백악산도」, 「묘길상도」, 「죽서루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화성 성역에 동원되었으며, 정조의 산릉 조성과 인정전의 영건에 참여하였다. 훈련도감 소속 방외화사로 여겨지며, 정선과 김홍도의 화풍을 이은 진경산수화를 남겼다.
정선은 조선후기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통천문암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676년(숙종 2)에 태어나 1759년(영조 35)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김창집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의 남종화법과 오파의 새로운 산수화 기법을 수용하고 시서화 일체 사상을 중시하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열었다. 거기에 자기 나름의 필묵법을 개발하여 조선의 실제 자연을 담아낸 뛰어난 진경산수화를 개척했다. 겸재파 화법이라 할 수 있는 실경산수화는 19세기 초반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정선 (鄭敾)
정선은 조선후기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통천문암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676년(숙종 2)에 태어나 1759년(영조 35)에 사망했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며 김창집의 도움으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중국의 남종화법과 오파의 새로운 산수화 기법을 수용하고 시서화 일체 사상을 중시하던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독창적인 회화세계를 열었다. 거기에 자기 나름의 필묵법을 개발하여 조선의 실제 자연을 담아낸 뛰어난 진경산수화를 개척했다. 겸재파 화법이라 할 수 있는 실경산수화는 19세기 초반까지 화단에 큰 영향을 주었다.
조선후기 「고산구곡도」의 제9곡인「문산도」를 그린 문인. 서화가.
이의성 (李義聲)
조선후기 「고산구곡도」의 제9곡인「문산도」를 그린 문인. 서화가.
정선 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은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정선이 금강산의 경관을 그린 진경산수화 8폭과 송대 유학자의 행적과 시문을 주제로 그린 고사인물화 8폭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부분에 실린 진경산수화 8폭은 금강산의 경관을 대담한 구도와 거침없는 필치로 그렸다. 이어지는 고사인물화 8폭은 주인공 인물을 산수 배경과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정선식 고사인물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정선의 회화세계는 물론 조선 후기 산수화와 인물화의 제작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선 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鄭敾 筆 海嶽八景 및 宋儒八賢圖 畵帖)
정선 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은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정선이 금강산의 경관을 그린 진경산수화 8폭과 송대 유학자의 행적과 시문을 주제로 그린 고사인물화 8폭으로 구성된 화첩이다. 2013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앞부분에 실린 진경산수화 8폭은 금강산의 경관을 대담한 구도와 거침없는 필치로 그렸다. 이어지는 고사인물화 8폭은 주인공 인물을 산수 배경과 자연스럽게 조화시키는 정선식 고사인물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정선의 회화세계는 물론 조선 후기 산수화와 인물화의 제작 경향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권영의 편지, 강원도 옹천(甕遷)과 경상남도 울산의 반구대(盤龜臺)를 그린 정선의 진경산수화 2점, 권섭이 쓴 발문이 장황(粧潢)된 서화첩.
공회첩 (孔懷帖)
권영의 편지, 강원도 옹천(甕遷)과 경상남도 울산의 반구대(盤龜臺)를 그린 정선의 진경산수화 2점, 권섭이 쓴 발문이 장황(粧潢)된 서화첩.
남북국시대 강주(지금의 진주시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한 호족.
유문 (有文)
남북국시대 강주(지금의 진주시 일대)를 거점으로 활동한 호족.
조선 후기의 화가 김윤겸의 기행화첩.
김윤겸 필 영남기행 화첩 (金允謙 筆 嶺南紀行 畵帖)
조선 후기의 화가 김윤겸의 기행화첩.
번화한 한양과 그 인근에 거주하는 사족.
경화사족 (京華士族)
번화한 한양과 그 인근에 거주하는 사족.
동국진체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냈던 18세기에 출현한 조선 고유의 서체이다.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의식의 영향으로 발현된 조선의 서체이다. 남인 명문가 출신 이서(李?)가 『필결(筆訣)』을 저술하여 창시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인 진체(晉體)를 바탕으로 미법(米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창안한 서체로 옥동체(玉洞體)라고도 한다. 윤두서와 윤순에게 전해졌다가 윤순의 서법을 계승한 이광사에 의해 완성되었다. 서법의 근원에 나아가 서법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시도되었던 우리나라 고유 서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동국진체 (東國眞體)
동국진체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냈던 18세기에 출현한 조선 고유의 서체이다.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의식의 영향으로 발현된 조선의 서체이다. 남인 명문가 출신 이서(李?)가 『필결(筆訣)』을 저술하여 창시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인 진체(晉體)를 바탕으로 미법(米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창안한 서체로 옥동체(玉洞體)라고도 한다. 윤두서와 윤순에게 전해졌다가 윤순의 서법을 계승한 이광사에 의해 완성되었다. 서법의 근원에 나아가 서법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시도되었던 우리나라 고유 서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겸재 정선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키는 미술유파. 미술용어.
정선파 (鄭敾派)
겸재 정선의 화풍에 영향을 받은 일군의 화가들을 가리키는 미술유파. 미술용어.
정선 필 「해악전신첩」은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1747년에 그린 금강산 일대의 진경산수화 시화첩이다. 정선이 72세 때 그렸으며, 21점의 그림과 함께 스승 김창흡과 벗 이병연의 제화시, 서문, 발문 등 50폭이 같이 장첩되어 당시 문인들의 산수유람, 시화일치의 풍조를 잘 보여주는 명작이다.
정선 필 해악전신첩 (鄭敾 筆 海嶽傳神帖)
정선 필 「해악전신첩」은 조선 후기, 화가 정선이 1747년에 그린 금강산 일대의 진경산수화 시화첩이다. 정선이 72세 때 그렸으며, 21점의 그림과 함께 스승 김창흡과 벗 이병연의 제화시, 서문, 발문 등 50폭이 같이 장첩되어 당시 문인들의 산수유람, 시화일치의 풍조를 잘 보여주는 명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