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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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후원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의 정원이다. 조선왕궁의 놀이와 잔치 장소로 활용된 대표적인 조원(造園) 유적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405년 창덕궁이 창건된 이래 여러 역사적 변천을 겪었다. 명칭은 역대 왕조실록에 후원·북원·금원 등이 보이는데 후원이라 부른 것이 가장 많다. 비원이란 명칭은 1904년부터 나타난다. 후원에는 자연의 지세에 따라 누정과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정자나 건물 주위의 단을 지어 만든 공간에 괴석이 배치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우리나라 조원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창덕궁 후원 (昌德宮 後苑)
창덕궁 후원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 시대 궁궐의 정원이다. 조선왕궁의 놀이와 잔치 장소로 활용된 대표적인 조원(造園) 유적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405년 창덕궁이 창건된 이래 여러 역사적 변천을 겪었다. 명칭은 역대 왕조실록에 후원·북원·금원 등이 보이는데 후원이라 부른 것이 가장 많다. 비원이란 명칭은 1904년부터 나타난다. 후원에는 자연의 지세에 따라 누정과 연못이 배치되어 있다. 정자나 건물 주위의 단을 지어 만든 공간에 괴석이 배치되었다. 창덕궁 후원은 우리나라 조원 문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청덕궁 내에 소재한 회화나무 군락.
창덕궁 회화나무군 (昌德宮 회화나무群)
서울특별시 종로구 와룡동 청덕궁 내에 소재한 회화나무 군락.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후기 왕세자가 경서를 공부하던 궁궐건물. 궁궐전각.
창덕궁 성정각 (昌德宮 誠正閣)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에 있는 조선후기 왕세자가 경서를 공부하던 궁궐건물. 궁궐전각.
일제강점기 창덕궁 대조전 등을 신축한 건축가.
김윤구 (金倫求)
일제강점기 창덕궁 대조전 등을 신축한 건축가.
활차(滑車 : 도르래)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 쓰이던 기구.
녹로 (轆轤)
활차(滑車 : 도르래)를 이용하여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는 데 쓰이던 기구.
나무 모서리를 둥글게 후리는 데 쓰는 연장.
모끼
나무 모서리를 둥글게 후리는 데 쓰는 연장.
조선후기 보문각에 소장된 281종의 한국과 중국의 문헌을 수록한 목록집.
보문각책목록 (寶文閣冊目錄)
조선후기 보문각에 소장된 281종의 한국과 중국의 문헌을 수록한 목록집.
1902년에 창덕궁 후원을 관리하던 관서.
비원 (秘苑)
1902년에 창덕궁 후원을 관리하던 관서.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을 상세하게 그린 궁중회화.
동궐도 (東闕圖)
조선시대 법궁인 경복궁의 동쪽에 위치한 창덕궁과 창경궁을 상세하게 그린 궁중회화.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었던 조선후기 왕비의 침전으로 지어진 궁궐건물. 전각.
경복궁 교태전 (景福宮 交泰殿)
서울특별시 종로구 경복궁에 있었던 조선후기 왕비의 침전으로 지어진 궁궐건물. 전각.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 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완주 송광사 종루 (完州 松廣寺 鍾樓)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송광사 에 있는 조선후기 에 창건된 사찰건물.
조선시대 궁궐의 각 전각의 명칭·위치·연혁을 기록한 사적기.
궁궐지 (宮闕志)
조선시대 궁궐의 각 전각의 명칭·위치·연혁을 기록한 사적기.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후원에 있었던 조선시대 왕실의 연회장소로 이용된 궁궐건물. 석대(石臺)·정자.
서총대 (瑞蔥臺)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덕궁 후원에 있었던 조선시대 왕실의 연회장소로 이용된 궁궐건물. 석대(石臺)·정자.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正殿) 앞 뜰에 품계를 새겨 나열한 돌.
품석 (品石)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正殿) 앞 뜰에 품계를 새겨 나열한 돌.
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측우기 (測雨器)
측우기는 세종 때 발명되어 사용한 조선시대의 공식적인 우량 측정기구이다. 1440년(세종 22)을 전후하여 발명되어 1442년부터 20세기 초 일제 통감부에 의해 근대적 기상관측이 시작될 때까지 조선 왕조의 공식적인 우량 관측기구로 사용되었다. 현대의 우량계에 해당한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다.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서울의 천문관서와 지방의 관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을 관측하고 보고하는 체계를 갖추어 기록을 보유했다. 첨성대, 금속활자, 한글 등과 함께 한국사의 빛나는 과학적 성취로 평가된다.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연잉군 시절 초상화.
연잉군 초상 (延礽君 肖像)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연잉군 시절 초상화.
「총석정절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1917년 창덕궁 대화재 이후 재건된 건물의 벽화 장식을 김규진(1868-1933)이 맡았다. 순종의 명에 의해 당시 화단의 중진인 김규진이 희정당 벽에 「총석정절경도」를 그렸다. 「총석정절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총석정의 절경을 청록산수 기법으로 파노라믹하게 표현하였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 화단에서 실경산수를 시도한 예이다. 「총석정절경도」는 한국 근대회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총석정절경도 (叢石亭絶景圖)
「총석정절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1917년 창덕궁 대화재 이후 재건된 건물의 벽화 장식을 김규진(1868-1933)이 맡았다. 순종의 명에 의해 당시 화단의 중진인 김규진이 희정당 벽에 「총석정절경도」를 그렸다. 「총석정절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수직으로 솟아오른 총석정의 절경을 청록산수 기법으로 파노라믹하게 표현하였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 화단에서 실경산수를 시도한 예이다. 「총석정절경도」는 한국 근대회화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2006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1917년 창덕궁의 대화재로 소실된 건물을 재건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졌다. 이 벽화는 희정당의 서쪽 벽면 위쪽에 금강산 만물상의 절경을 그린 것이다. 구름에 싸인 금강산의 단풍 든 가을 정경이 신비롭고 웅장하게 표현되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에 이런 실경산수는 기념비적이다. 김규진은 이 그림 외에 희정당 동쪽 벽의 「총석정절경도」도 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 (金剛山萬物肖勝景圖)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김규진이 1920년에 창덕궁 희정당에 그린 부벽화이다. 2006년 등록문화재(현, 등록유산)로 지정되었다. 1917년 창덕궁의 대화재로 소실된 건물을 재건하는 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졌다. 이 벽화는 희정당의 서쪽 벽면 위쪽에 금강산 만물상의 절경을 그린 것이다. 구름에 싸인 금강산의 단풍 든 가을 정경이 신비롭고 웅장하게 표현되었다. 「금강산만물초승경도」는 가로 길이가 880㎝나 되는 대작이다. 관념적인 수묵산수가 유행하던 당시에 이런 실경산수는 기념비적이다. 김규진은 이 그림 외에 희정당 동쪽 벽의 「총석정절경도」도 있다.
「봉황도」는 1920년에 오일영과 이용우가 합작으로 그린 창덕궁 대조전의 부벽화이다. 2006년 3월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세로 197㎝, 가로 579㎝이다. 대조전은 왕비의 침전이 있는 생활공간으로 1917년 화재 후 재건할 때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와 지었다. 이때 대조전은 희정당과 경훈각이 서로 이어지도록 복도와 행각을 연결시켜 재건되었다. 대조전 동벽에는 「봉황도」, 마주보는 서벽에는 김은호가 그린 「백학도」가 장식되었다. 창덕궁 벽화는 장대한 화면에 진채의 장식적인 구성과 기법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다.
봉황도 (鳳凰圖)
「봉황도」는 1920년에 오일영과 이용우가 합작으로 그린 창덕궁 대조전의 부벽화이다. 2006년 3월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세로 197㎝, 가로 579㎝이다. 대조전은 왕비의 침전이 있는 생활공간으로 1917년 화재 후 재건할 때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와 지었다. 이때 대조전은 희정당과 경훈각이 서로 이어지도록 복도와 행각을 연결시켜 재건되었다. 대조전 동벽에는 「봉황도」, 마주보는 서벽에는 김은호가 그린 「백학도」가 장식되었다. 창덕궁 벽화는 장대한 화면에 진채의 장식적인 구성과 기법을 보여주는 기념비적인 작품들이다.
「백학도」는 김은호가 1920년에 창덕궁 대조전에 그린 부벽화이다. 2006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세로 197㎝, 가로 579㎝이다. 김은호가 28세에 그린 그림으로 창덕궁 대조전 내의 서벽에 장식되었다. 대조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1917년 화재 후 재건할 때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와 지었다. 이때 대조전은 희정당·경훈각과 서로 이어지도록 복도와 행각을 연결시켜 재건하였다. 대조전 동벽의 「봉황도」와 서벽의 「백학도」를 한 쌍으로 의식하여 좌우로 나란히 배치해서 마치 하나의 연폭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였다.
백학도 (白鶴圖)
「백학도」는 김은호가 1920년에 창덕궁 대조전에 그린 부벽화이다. 2006년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크기는 세로 197㎝, 가로 579㎝이다. 김은호가 28세에 그린 그림으로 창덕궁 대조전 내의 서벽에 장식되었다. 대조전은 왕비의 침전으로, 1917년 화재 후 재건할 때 경복궁의 침전인 교태전을 옮겨와 지었다. 이때 대조전은 희정당·경훈각과 서로 이어지도록 복도와 행각을 연결시켜 재건하였다. 대조전 동벽의 「봉황도」와 서벽의 「백학도」를 한 쌍으로 의식하여 좌우로 나란히 배치해서 마치 하나의 연폭처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