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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곽원갑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와 의병들의 창의사적을 기록한 사적기.
창의록 (倡義錄)
조선후기 곽원갑이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곽재우와 의병들의 창의사적을 기록한 사적기.
1896년 3월경상북도 서북부 지역 유생들이 김산군(金山郡 : 지금의 김천시)에서 결성한 항일의병진.
김산의진 (金山義陣)
1896년 3월경상북도 서북부 지역 유생들이 김산군(金山郡 : 지금의 김천시)에서 결성한 항일의병진.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전기 광평대군과 그 종중 관련 묘역.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全州李氏 廣平大君派 墓域)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전기 광평대군과 그 종중 관련 묘역.
『벽산문집』은 개항기와 일제강점 초기를 보낸 벽산 김도현의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의병을 일으키는 한편, 경술국치를 겪은 후 절명시를 남기고 투신한 학자가 남긴 본 문집은 한말 의병 활동의 면모는 물론, 망국의 시점에 연로한 지식인의 애국심과 행동 양식을 함께 살펴보기에 적당한 문집이다. 4권 2책 구성의 석판본으로 간행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전한다.
벽산문집 (碧山文集)
『벽산문집』은 개항기와 일제강점 초기를 보낸 벽산 김도현의 시문을 엮은 문집이다. 의병을 일으키는 한편, 경술국치를 겪은 후 절명시를 남기고 투신한 학자가 남긴 본 문집은 한말 의병 활동의 면모는 물론, 망국의 시점에 연로한 지식인의 애국심과 행동 양식을 함께 살펴보기에 적당한 문집이다. 4권 2책 구성의 석판본으로 간행되었으며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전한다.
기삼연은 개항기 호남창의맹소의 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51년(철종 2)에 태어나 1908년(순종 1)에 사망하였다.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기정진의 문인이다.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맹소 대장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9월 고창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영광·부안·정읍 등지에서도 연승하였다. 12월 의병부대를 이끌고 담양 추월산성에 들어갔다가 적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탈출에 성공하여 순창 산중에 은신하던 중에 체포되어 1908년 1월 광주 서천교 아래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기삼연 (奇參衍)
기삼연은 개항기 호남창의맹소의 대장으로 활약한 의병장이다. 1851년(철종 2)에 태어나 1908년(순종 1)에 사망하였다. 전라남도 장성 출신으로 기정진의 문인이다. 1907년 군대 해산 이후 의병을 일으켜 호남창의맹소 대장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9월 고창에서 큰 전과를 올렸으며, 영광·부안·정읍 등지에서도 연승하였다. 12월 의병부대를 이끌고 담양 추월산성에 들어갔다가 적의 포위 공격을 받았다. 탈출에 성공하여 순창 산중에 은신하던 중에 체포되어 1908년 1월 광주 서천교 아래 백사장에서 총살당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원의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후반의 복식류 53점이다. 198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좌의정을 지낸 김덕원(1634~1704)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에서 의복이 출토되었다. 출토 의복은 단령, 철릭, 창의, 중치막, 바지, 장옷, 저고리, 치마, 웃치마, 여자 속바지 등이다. 옷의 본래 색상은 없어지고 갈변된 상태이다. 이 출토 의복은 염습의와 염습 제구이다. 이는 조선 숙종 때 사대부가의 복식 형태 등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 (金德遠 墓 出土 衣服 一括)
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원의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후반의 복식류 53점이다. 198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좌의정을 지낸 김덕원(1634~1704)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에서 의복이 출토되었다. 출토 의복은 단령, 철릭, 창의, 중치막, 바지, 장옷, 저고리, 치마, 웃치마, 여자 속바지 등이다. 옷의 본래 색상은 없어지고 갈변된 상태이다. 이 출토 의복은 염습의와 염습 제구이다. 이는 조선 숙종 때 사대부가의 복식 형태 등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1913년 김대락(金大洛)이 지은 가사.
분통가 (憤痛歌)
1913년 김대락(金大洛)이 지은 가사.
도포나 전복, 창의에 착용하는 가느다란 띠.
세조대 (細條帶)
도포나 전복, 창의에 착용하는 가느다란 띠.
『왕산허위선생거의사실대략(旺山許蔿先生擧義事實大略)』은 1908년 13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 군사장(軍師長)으로서 서울 진공작전을 주도한 허위에 관한 기록이다. 필사본으로 허위의 족손(族孫) 허복(許馥)이 엮은 것으로, 허경성(許敬誠)이 지녀온 것이다. 내용은 1896년(고종 33) 3월 10일에 거병하여 김천을 공격한 사실부터 시작해서 1907년(순종 원년)에 다시 의병을 일으켜 1908년(순종 2) 5월 일본군에게 잡혀 죽기까지의 사적(事績)이 약술되어 있다.
왕산허위선생거의사실대략 (旺山許蔿先生擧義事實大略)
『왕산허위선생거의사실대략(旺山許蔿先生擧義事實大略)』은 1908년 13도창의군(十三道倡義軍) 군사장(軍師長)으로서 서울 진공작전을 주도한 허위에 관한 기록이다. 필사본으로 허위의 족손(族孫) 허복(許馥)이 엮은 것으로, 허경성(許敬誠)이 지녀온 것이다. 내용은 1896년(고종 33) 3월 10일에 거병하여 김천을 공격한 사실부터 시작해서 1907년(순종 원년)에 다시 의병을 일으켜 1908년(순종 2) 5월 일본군에게 잡혀 죽기까지의 사적(事績)이 약술되어 있다.
대한제국기 때, 동해창의대장에 추대되었으며, 산남의진 조직에 참여하며 좌포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임용상 (林龍相)
대한제국기 때, 동해창의대장에 추대되었으며, 산남의진 조직에 참여하며 좌포장으로 활동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유인석 의진의 유격장, 13도연합의병부대의 호서창의대장 등으로 활동한 의병장.
이강년 (李康秊)
대한제국기 때, 문경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유인석 의진의 유격장, 13도연합의병부대의 호서창의대장 등으로 활동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동창의대장으로 활약하였고, 원수부13도총대에 추대되어 13도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한 의병장.
이인영 (李麟榮)
대한제국기 때, 원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동창의대장으로 활약하였고, 원수부13도총대에 추대되어 13도의병연합부대를 편성한 의병장.
조선 후기에, 현감, 집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관리·의병장.
유시발 (柳時發)
조선 후기에, 현감, 집의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괄의 난과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의병을 일으켜 항쟁한 관리·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호남창의맹소에서 후군장으로 활동한 의병.
이남규 (李南奎)
대한제국기 때, 호남창의맹소에서 후군장으로 활동한 의병.
대한제국기 때, 육군대장으로 근무하다가 군대 해산 이후 강화진위대의 해산 군인들을 규합하여 대동창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이능권 (李能權)
대한제국기 때, 육군대장으로 근무하다가 군대 해산 이후 강화진위대의 해산 군인들을 규합하여 대동창의진을 결성한 의병장.
대한제국기 때, 의병을 일으켜 삼남의병대장으로 활동한 의병.
유지명 (柳志明)
대한제국기 때, 의병을 일으켜 삼남의병대장으로 활동한 의병.
이석용은 대한제국기 임실, 순창, 태인, 남원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1878년(고종 15)에 태어나 1914년에 사망했다. 1907년 기삼연이 호남창의맹소를 구성하자 전해산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의병창의동맹이라는 독자적인 의진을 구축하였다.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진안·용담·정천·임실·순창 등지를 거쳐 태인·남원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의진을 해산한 후 잠행하던 중 붙잡혀 1914년 1월에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4월 대구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의병활동에 관한 진중일기를 남겨 『정재선생호남창의일록』이 간행되었다.
이석용 (李錫庸)
이석용은 대한제국기 임실, 순창, 태인, 남원 등지에서 활동한 의병장이다. 1878년(고종 15)에 태어나 1914년에 사망했다. 1907년 기삼연이 호남창의맹소를 구성하자 전해산과 함께 참여하였다가 의병창의동맹이라는 독자적인 의진을 구축하였다.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진안·용담·정천·임실·순창 등지를 거쳐 태인·남원 등지에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의진을 해산한 후 잠행하던 중 붙잡혀 1914년 1월에 사형 선고를 받고, 그해 4월 대구에서 교수형을 받았다. 의병활동에 관한 진중일기를 남겨 『정재선생호남창의일록』이 간행되었다.
강윤희는 대한제국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각국 공사에게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관동창의진과 13도창의군에서 활동하였으며,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춘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강윤희 (姜允熙)
강윤희는 대한제국기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서울에 설치된 유약소(儒約所)에 참여하여 조약의 파기와 을사오적의 처단을 주장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한편, 각국 공사에게 조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관동창의진과 13도창의군에서 활동하였으며, 강원도 지역을 중심으로 의병 활동을 전개하던 중 체포되어 춘천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이응해 장군 묘 출토 복식은 강원도 원주에 소재한 조선 무관 이응해 장군의 묘에서 수습된 복식 관련 출토품이다. 2002년 이응해 장군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복식과 이불·돗자리 등의 치관류 34점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복식 대부분은 겉옷인 포류로 단령 4점, 철릭 6점, 도포3점, 창의 2점, 중치막 7점, 직령포 3점, 방령 3점, 과두와 주의와 저고리 등이다. 그 종류도 다양하고 의복 구성이 화려해 임진왜란 이후 남성 겉옷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06년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응해 장군 묘 출토복식 (李應獬 將軍 墓 出土服飾)
이응해 장군 묘 출토 복식은 강원도 원주에 소재한 조선 무관 이응해 장군의 묘에서 수습된 복식 관련 출토품이다. 2002년 이응해 장군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복식과 이불·돗자리 등의 치관류 34점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복식 대부분은 겉옷인 포류로 단령 4점, 철릭 6점, 도포3점, 창의 2점, 중치막 7점, 직령포 3점, 방령 3점, 과두와 주의와 저고리 등이다. 그 종류도 다양하고 의복 구성이 화려해 임진왜란 이후 남성 겉옷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2006년에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후기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의 화친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이인거 (李仁居)
조선후기 정묘호란 이후 후금과의 화친에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