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천주교회"
검색결과 총 11건
가톨릭교회에서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공적 공경을 받는 사람에게 주는 존칭 또는 그 존칭을 받은 사람.
복자 (福者)
가톨릭교회에서 신앙생활의 모범으로 공적 공경을 받는 사람에게 주는 존칭 또는 그 존칭을 받은 사람.
해방 이후 대구교구장, 양덕원천주교회 주임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교회사학자.
주재용 (朱在用)
해방 이후 대구교구장, 양덕원천주교회 주임신부 등에 서임된 사제. 신부, 교회사학자.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동문 3길에 있는 사립중학교.
전주성심여자중학교 (全州聖心女子中學校)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동문 3길에 있는 사립중학교.
해서교안은 1900년부터 1903년까지 황해도에서 천주교회가 지역 주민과 지방 관리, 프로테스탄트 신자와 충돌한 사건이다. 옹진, 황주, 신환포, 장연, 은파, 재령 등에서 정부와 백성,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신부가 직접 관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강했다. 진상 조사를 위해 지방의 군수와 관찰사는 물론 중앙의 외부대신과 정부에서 사핵사(查覈使)를 파견할 정도로 천주교회와 지역 사회, 정부가 모두 연루된 총체적 분쟁이었다.
해서교안 (海西敎案)
해서교안은 1900년부터 1903년까지 황해도에서 천주교회가 지역 주민과 지방 관리, 프로테스탄트 신자와 충돌한 사건이다. 옹진, 황주, 신환포, 장연, 은파, 재령 등에서 정부와 백성, 그리고 다른 종교인들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천주교 신부가 직접 관여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향이 강했다. 진상 조사를 위해 지방의 군수와 관찰사는 물론 중앙의 외부대신과 정부에서 사핵사(查覈使)를 파견할 정도로 천주교회와 지역 사회, 정부가 모두 연루된 총체적 분쟁이었다.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1784년 교회창설부터 1801년 신유박해까지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천주교서. 천주교통사.
조선복음전래사 (朝鮮福音傳來史)
조선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1784년 교회창설부터 1801년 신유박해까지의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를 기록한 천주교서. 천주교통사.
1934년 평양에서 김성학 신부가 개신교 및 유물론자들의 비판으로부터 천주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저술한 천주교서.
진교변호 (眞敎辯護)
1934년 평양에서 김성학 신부가 개신교 및 유물론자들의 비판으로부터 천주교를 보호하기 위하여 저술한 천주교서.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항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감곡중학교 (甘谷中學校)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오항리에 있는 공립 중학교.
내포교회는 한국천주교회 창설 시기부터 현대까지 충청도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지역교회이다. 조선 후기 내포는 가야산 주변 12개 현을 포괄했다. 권일신을 통해 입교한 여사울 출신 이존창이 1784년 말에 처음 이 지역에 천주교를 전했다. 곧이어 점차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 각지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후 내포교회는 다른 도로까지 복음을 전파했다. 박해 시대에 활동하던 신부들은 대부분 내포 지방에서 활동했다. 박해가 끝난 뒤 각지에 본당이 설립되고 교회가 본당과 교구 단위로 운영되면서 내포교회의 의미는 축소되었다.
내포교회 (內浦敎會)
내포교회는 한국천주교회 창설 시기부터 현대까지 충청도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지역교회이다. 조선 후기 내포는 가야산 주변 12개 현을 포괄했다. 권일신을 통해 입교한 여사울 출신 이존창이 1784년 말에 처음 이 지역에 천주교를 전했다. 곧이어 점차 다른 곳으로 퍼져나가 각지에 신앙공동체가 형성되었다. 이후 내포교회는 다른 도로까지 복음을 전파했다. 박해 시대에 활동하던 신부들은 대부분 내포 지방에서 활동했다. 박해가 끝난 뒤 각지에 본당이 설립되고 교회가 본당과 교구 단위로 운영되면서 내포교회의 의미는 축소되었다.
정남규는 일제강점기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총회장이자 사회 사업가이다. 1899년에 경성학당 한문과에 입학하였고, 1900년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3월 6일까지 수학하였다. 1910~1920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 재임하였고, 1920~1923년에는 경성부 서기, 속(屬)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1923년에는 경성대목구의 재단법인 설립에 참여하였다. 1924년에 애긍회를 조직하여 1950년 9월 17일에 정치보위부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될 때까지 노인들을 돌보았다.
정남규 (鄭南奎)
정남규는 일제강점기 종현성당(현, 명동성당) 총회장이자 사회 사업가이다. 1899년에 경성학당 한문과에 입학하였고, 1900년 4월부터 경성학당 보통과에 진학하여 1901년 3월 6일까지 수학하였다. 1910~1920년, 조선총독부 임시토지조사국에 재임하였고, 1920~1923년에는 경성부 서기, 속(屬)으로 근무하였다. 이어 1923년에는 경성대목구의 재단법인 설립에 참여하였다. 1924년에 애긍회를 조직하여 1950년 9월 17일에 정치보위부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될 때까지 노인들을 돌보았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한국 천주교회 전체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사목활동을 공동으로 조정하고 수행하도록 사도좌(교황청)가 설립한 교회법적 상설 의결기구이다. ‘주교회의’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 주교들의 회합이며, 총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교리에 관한 유권적 선언을 할 수 있는 기관이다. 한국 최초의 주교 평의회는 1857년 개최되었고, 초교구적 주교회의는 1931년 9월 명동성당에서 5개 교구장 주교와 사제들이 모인 것이다. 총회에서는 교리에 관한 결정들 외에도, 낙태 및 사형 반대, 환경보존, 생명존중 등 사회·정치 문제를 논의하기도 한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韓國天主敎主敎會議)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한국 천주교회 전체의 공동선 증진을 위한 사목활동을 공동으로 조정하고 수행하도록 사도좌(교황청)가 설립한 교회법적 상설 의결기구이다. ‘주교회의’는 한 국가나 특정 지역 주교들의 회합이며, 총회를 통해 만장일치로 교리에 관한 유권적 선언을 할 수 있는 기관이다. 한국 최초의 주교 평의회는 1857년 개최되었고, 초교구적 주교회의는 1931년 9월 명동성당에서 5개 교구장 주교와 사제들이 모인 것이다. 총회에서는 교리에 관한 결정들 외에도, 낙태 및 사형 반대, 환경보존, 생명존중 등 사회·정치 문제를 논의하기도 한다.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가 1907년 황해도 장연(長淵)에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이다. 일제 말기와 해방 직후의 공산 치하에서도 학교를 유지해나가다가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하여 본당과 경애학교의 모든 교회재산과 시설들이 북한 정권에 징발됨으로써 그 기능이 정지되었다. 경애학교 교사진의 한 사람으로 1913년부터 7년간 초대 교감으로 봉직하면서 1920년 상해임정에 군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하다가 일제에 적발되어 해주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난 장규섭(張奎燮, 바오로)이 있다.
경애학교 (敬愛學校)
김문옥(金紋玉, 요셉) 신부가 1907년 황해도 장연(長淵)에 설립한 사립 초등 교육 기관이다. 일제 말기와 해방 직후의 공산 치하에서도 학교를 유지해나가다가 1950년 6·25전쟁을 전후하여 본당과 경애학교의 모든 교회재산과 시설들이 북한 정권에 징발됨으로써 그 기능이 정지되었다. 경애학교 교사진의 한 사람으로 1913년부터 7년간 초대 교감으로 봉직하면서 1920년 상해임정에 군자금을 비밀리에 지원하다가 일제에 적발되어 해주 형무소에서 복역하다 풀려난 장규섭(張奎燮, 바오로)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