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철기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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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띠토기는 아가리 바깥 부분에 단면이 원형에 가까운 덧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이중으로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초기 철기시대의 일상용 토기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토기이며, 한국고고학에서는 점토대토기라고 한다. 크게 원형덧띠토기와 삼각형덧띠토기로 구분되는데, 이 순서는 시간성을 갖고 있으며, 함께 출토되는 금속기 유물도 청동기와 철기로 나뉘어진다.
덧띠토기 (덧띠土器)
덧띠토기는 아가리 바깥 부분에 단면이 원형에 가까운 덧띠를 말아 붙여서 아가리를 이중으로 만든 청동기시대 후기~초기 철기시대의 일상용 토기이다. 중국 동북 지방에 기원을 두고 있는 토기이며, 한국고고학에서는 점토대토기라고 한다. 크게 원형덧띠토기와 삼각형덧띠토기로 구분되는데, 이 순서는 시간성을 갖고 있으며, 함께 출토되는 금속기 유물도 청동기와 철기로 나뉘어진다.
광주신창동유적은 서기전 2세기경의 초기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쳐 영산강 상류 지역에 형성된 생산 및 생활, 매장, 교역 활동 등이 망라된 거점 농경 복합유적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하며, 1963년 53기의 옹관묘가 조사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 발굴 조사에서 토기 가마, 환호, 주거지, 밭 유구 등과 함께 목기와 칠기, 볍씨 등의 다양한 곡물 자료와 동·식물류가 포함된 대규모 저습지가 확인되었다. 서기전 2세기경 농촌 마을의 경관과 사회상, 생활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광주 신창동 유적 (光州 新昌洞 遺蹟)
광주신창동유적은 서기전 2세기경의 초기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걸쳐 영산강 상류 지역에 형성된 생산 및 생활, 매장, 교역 활동 등이 망라된 거점 농경 복합유적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위치하며, 1963년 53기의 옹관묘가 조사되면서 처음 알려졌다. 1992년 국립광주박물관 발굴 조사에서 토기 가마, 환호, 주거지, 밭 유구 등과 함께 목기와 칠기, 볍씨 등의 다양한 곡물 자료와 동·식물류가 포함된 대규모 저습지가 확인되었다. 서기전 2세기경 농촌 마을의 경관과 사회상, 생활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대표적 유적이다.
동촉(銅鏃)은 청동으로 만든 화살촉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다. 동촉은 슴베가 있는 유경식, 슴베가 없는 무경식, 투겁이 있는 유공식으로 구분되는데, 유경식과 유공식이 대부분이다. 유경식은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등장해서 비파형동검 문화까지 주로 사용되며, 유공식은 비파형동검 문화 중기에 등장한다. 철경 동촉은 세형동검 문화 후기에 주로 확인된다.
동촉 (銅鏃)
동촉(銅鏃)은 청동으로 만든 화살촉이다. 청동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에 주로 사용되었다. 동촉은 슴베가 있는 유경식, 슴베가 없는 무경식, 투겁이 있는 유공식으로 구분되는데, 유경식과 유공식이 대부분이다. 유경식은 청동기시대 이른 시기부터 등장해서 비파형동검 문화까지 주로 사용되며, 유공식은 비파형동검 문화 중기에 등장한다. 철경 동촉은 세형동검 문화 후기에 주로 확인된다.
삼천포 늑도 패총은 경상남도 사천시 늑도동에 있는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 후반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국가 사적 제450호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의 중심 연대는 서기전 2세기∼서기전 1세기대이다. 삼각형 덧띠토기 · 낙랑(계) 토기 · 야요이(계) 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이 조개더미와 집터 및 무덤 등에서 확인되었으며,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장거리 대외 교역의 중계지로서 국제 무역항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삼천포 늑도 패총 (三千浦 勒島 貝塚)
삼천포 늑도 패총은 경상남도 사천시 늑도동에 있는 한반도 초기 철기시대 후반기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국가 사적 제450호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의 중심 연대는 서기전 2세기∼서기전 1세기대이다. 삼각형 덧띠토기 · 낙랑(계) 토기 · 야요이(계) 토기를 비롯하여 다양한 유물이 조개더미와 집터 및 무덤 등에서 확인되었으며, 낙랑과 왜를 연결하는 장거리 대외 교역의 중계지로서 국제 무역항의 성격을 띠고 있다.
삼국시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이다.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처럼 한국사 속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용어이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삼국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삼국시대 (三國時代)
삼국시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이다.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처럼 한국사 속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용어이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삼국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고령 장기리 암각화 (高靈 場基里 巖刻畵)
고령 장기리 암각화는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암각화이다. 동심원과 이를 에워싸는 여러 개의 가면 무늬로 대표되는 암각화로, 주변에서는 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들이 채집되었다. 동심원은 태양(신)을 상징하고, 가면 무늬는 사람이나 짐승의 얼굴·칼손잡이·방패·신체(神體)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종류의 암각화 그림은 주로 영남 지역에서 발견되는 특징을 보인다.
연해크루그리이성지는 옌하이저우〔沿海州〕 아르세니예프카강 유역에 자리하는 발해의 산성이다. 이 산성은 처음에 ‘크루그르이성’으로 소개되었으나, 지금은 이웃하는 마을 이름을 딴 ‘노보고르데예브카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성은 산의 북쪽 완만한 비탈면에 축조되었으며, 평면 모양은 오각형에 가깝다. 성의 규모는 동서 190m, 남북 230m이다. 성의 내부에는 24개의 계단식 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초기 철기시대, 발해, 그리고 금나라 대 여진의 문화층이 확인되었으며, 발해 시기의 구들 주거지도 발굴되었다.
연해주 크루그르이성지 (沿海州 kŭrugŭrŭi 城址)
연해크루그리이성지는 옌하이저우〔沿海州〕 아르세니예프카강 유역에 자리하는 발해의 산성이다. 이 산성은 처음에 ‘크루그르이성’으로 소개되었으나, 지금은 이웃하는 마을 이름을 딴 ‘노보고르데예브카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고 있다. 성은 산의 북쪽 완만한 비탈면에 축조되었으며, 평면 모양은 오각형에 가깝다. 성의 규모는 동서 190m, 남북 230m이다. 성의 내부에는 24개의 계단식 대지가 조성되어 있다. 초기 철기시대, 발해, 그리고 금나라 대 여진의 문화층이 확인되었으며, 발해 시기의 구들 주거지도 발굴되었다.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
안테나식 동검 (antenna式 銅劍)
안테나식동검은 청동기시대나 철기시대 곤충의 촉각처럼 생긴 칼자루끝장식을 가진 동검을 말한다. 두 마리의 새가 부리를 마주하고 있는 것도 포함한다. 동아시아의 안테나식동검은 새의 부리가 서로 마주하는 쌍취형과 새 두 마리가 머리를 마주 보는 쌍조형으로 구분된다. 요동과 한반도에서는 서기전 3세기부터 서기 1~2세기까지 쌍조형 안테나식동검이 주로 확인된다.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
원삼국시대 (原三國時代)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
'요령연화보유적'은 중국 요령성 무순시 연화보에 있는 철기시대 집터 및 토기 · 철기 · 화폐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이다. 우리나라 철기 문화의 개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으로, 1959년 라이닝성박물관에서 고고학 조사를 하던 중 최초로 발견되었다. 고조선 문화를 바탕으로 전국시대 연나라의 문화가 혼입되는 양상이 '위원용연동유적'과도 동일하며, 이 지역의 물질 문화를 묶어서 '세죽리-연화보 유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그 조영 주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요령 연화보 유적 (遼寧 蓮花堡 遺蹟)
'요령연화보유적'은 중국 요령성 무순시 연화보에 있는 철기시대 집터 및 토기 · 철기 · 화폐 등이 발굴된 유물산포지이다. 우리나라 철기 문화의 개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으로, 1959년 라이닝성박물관에서 고고학 조사를 하던 중 최초로 발견되었다. 고조선 문화를 바탕으로 전국시대 연나라의 문화가 혼입되는 양상이 '위원용연동유적'과도 동일하며, 이 지역의 물질 문화를 묶어서 '세죽리-연화보 유형'이라 부르기도 한다. 다만 그 조영 주체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존재한다.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시대구분론 (時代區分論)
시대구분론은 역사 진행상 동질성이 강한 특정 시기를 앞뒤의 시기와 차별하여 파악하는 방식이나 이론을 말한다. 다만, 어떤 잣대를 사용해 보는가에 따라 구분의 결과는 다를 수 있다. 현재 국내외 학계에서 공통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규모의 시대구분으로는 전근대(pre-modern), 근대(modern), 현대(contemporary)의 삼분법을 들 수 있다. 이는 역사의 진화과정에서 근대가 매우 강력한 변화의 시대였음을 의미한다. 한국사에서도 시대를 가장 크게 구분할 때 전근대와 근현대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양분한다.
석기는 선사시대 돌을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든 도구를 말한다. 석기는 생업 활동의 주된 도구로서 어느 유물보다도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진화를 대표한다. 절멸동물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뗀석기는 인류가 성서의 창조론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굴포리 유적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로 인해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인정받게 되었다.
석기 (石器)
석기는 선사시대 돌을 깨뜨리거나 갈아서 만든 도구를 말한다. 석기는 생업 활동의 주된 도구로서 어느 유물보다도 인류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진화를 대표한다. 절멸동물의 화석과 함께 발견된 뗀석기는 인류가 성서의 창조론보다 더 오래전에 존재하였음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고고학이 학문으로 성립하는 데 기여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굴포리 유적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된 석기로 인해 구석기시대의 존재가 인정받게 되었다.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선사시대 (先史時代)
선사시대는 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와 같이 문헌 사료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 시대이다. 세계 각지에서 문헌 기록의 등장은 다르고, 기록된 역사도 약 5천 전부터 시작해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 흔히 문자의 유무를 기준으로 선사시대를 나누지만, 문자가 있어도 정확한 해독이 불가능하면 선사시대나 다름이 없으며, 이용할 수 있는 문헌 기록이 드물다. 이 경우 원초적 역사시대라는 뜻을 지닌 원사(proto-history)시대라는 개념을 쓰기도 한다.
철기는 철기시대 이후 인류가 철을 소재로 만든 도구, 무기, 기구의 총체이다. 인류는 서기전 2,000년부터 인공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이후 동서양으로 철기 생산 기술이 확산되며, 지역에 따라 독자적인 철기 문화를 형성한다.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서기전 3세기대 전국계 철기의 유입과 함께 시작된다. 이후 낙동강 유역 내 철기 생산 기술의 보유는 이후 신라, 가야로 이어지는 철기 문화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철기 (鐵器)
철기는 철기시대 이후 인류가 철을 소재로 만든 도구, 무기, 기구의 총체이다. 인류는 서기전 2,000년부터 인공철을 생산하기 시작하여 이후 동서양으로 철기 생산 기술이 확산되며, 지역에 따라 독자적인 철기 문화를 형성한다. 한반도의 철기 문화는 서기전 3세기대 전국계 철기의 유입과 함께 시작된다. 이후 낙동강 유역 내 철기 생산 기술의 보유는 이후 신라, 가야로 이어지는 철기 문화의 발전을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함흥이화동유적(咸興梨花洞遺蹟)은 함경남도 함흥시 이화동에 분포하는 초기 철기시대의 널무덤 유적이다. 반룡산 남쪽 구릉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널무덤의 바닥에는 판석재의 돌조각이 깔려 있었는데, 유물 출토 양상으로 보아 나무널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식의 청동 무기와 청동 의기는 물론 철기 등이 다수 출토되어 많은 유물들을 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임둔이나 부조 세력과 관련되는 함흥 일대 수장급의 무덤으로 이해된다.
함흥 이화동 유적 (咸興 梨花洞 遺蹟)
함흥이화동유적(咸興梨花洞遺蹟)은 함경남도 함흥시 이화동에 분포하는 초기 철기시대의 널무덤 유적이다. 반룡산 남쪽 구릉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널무덤의 바닥에는 판석재의 돌조각이 깔려 있었는데, 유물 출토 양상으로 보아 나무널무덤일 가능성도 있다. 한국식의 청동 무기와 청동 의기는 물론 철기 등이 다수 출토되어 많은 유물들을 부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대는 서기전 2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며, 임둔이나 부조 세력과 관련되는 함흥 일대 수장급의 무덤으로 이해된다.
한국식동검은 초기 철기시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던 조립식 구조의 청동단검이다. 검신 하단부가 각이 지며, 등대 마디와 칼허리를 지닌 모양을 띤다. 넓은 범위로는 불완전한 초기 단계의 동검들과 쇠퇴 단계의 직인화된 동검까지 포함된다. 서기전 4~1세기경에 주로 유행하였으나, 남한 지역에는 서기 2세기경까지 잔존한다. 한국식동검은 요령식동검을 계승하면서도 중원식동검과 북방식동검의 일체형 구조와 구별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한반도가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루면서 발전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식 동검 (韓國式 銅劍)
한국식동검은 초기 철기시대 한반도와 그 주변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던 조립식 구조의 청동단검이다. 검신 하단부가 각이 지며, 등대 마디와 칼허리를 지닌 모양을 띤다. 넓은 범위로는 불완전한 초기 단계의 동검들과 쇠퇴 단계의 직인화된 동검까지 포함된다. 서기전 4~1세기경에 주로 유행하였으나, 남한 지역에는 서기 2세기경까지 잔존한다. 한국식동검은 요령식동검을 계승하면서도 중원식동검과 북방식동검의 일체형 구조와 구별되는 것이라는 측면에서 한반도가 독자적인 문화권을 이루면서 발전하였음을 잘 보여준다.
해남군곡리패총(海南郡谷里貝塚)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와 토기 가마터 등이 발굴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생활유적의 연대 추정은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이 유적은 14개의 층을 5개의 문화층으로 설정하여 호남 지역 고고학적 편년 연구의 기준이 된다. 토기 가마 등 생산과 관련된 유구도 확인되어 철기시대부터 취락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유적 내 출토된 화천과 현무암 태토의 토기는 영산강 유역-해남반도-제주도의 문화 교류 양상을 추정하게 한다.
해남 군곡리 패총 (海南 郡谷里 貝塚)
해남군곡리패총(海南郡谷里貝塚)은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 있는 초기 철기시대 집터와 토기 가마터 등이 발굴된 조개더미 유적이다. 생활유적의 연대 추정은 청동기시대 후기부터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이 유적은 14개의 층을 5개의 문화층으로 설정하여 호남 지역 고고학적 편년 연구의 기준이 된다. 토기 가마 등 생산과 관련된 유구도 확인되어 철기시대부터 취락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유적 내 출토된 화천과 현무암 태토의 토기는 영산강 유역-해남반도-제주도의 문화 교류 양상을 추정하게 한다.
동해송정동유적(東海松亭洞遺蹟)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송정동에 있는 철기시대의 취락유적이다. 다양한 평면 형태의 철기시대 집터가 다수(400여 기) 확인되었으며, 그 내부에서는 송풍관 및 쇳조각과 같이 철기 생산에 관련된 유물과 함께 작살, 고래 뼈 등의 고래 사냥과 관련된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동해송정동유적은 철기시대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사회구조로 발전해 가는 양상과 송정동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이것은 실직국(悉直國)의 비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동해 송정동 유적 (東海 松亭洞 遺蹟)
동해송정동유적(東海松亭洞遺蹟)은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송정동에 있는 철기시대의 취락유적이다. 다양한 평면 형태의 철기시대 집터가 다수(400여 기) 확인되었으며, 그 내부에서는 송풍관 및 쇳조각과 같이 철기 생산에 관련된 유물과 함께 작살, 고래 뼈 등의 고래 사냥과 관련된 유물 등이 출토되었다. 동해송정동유적은 철기시대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면서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화된 사회구조로 발전해 가는 양상과 송정동 사람들의 생활상을 잘 보여 준다. 이것은 실직국(悉直國)의 비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되고 있다.
안성반제리유적(安城盤諸里遺蹟)은 경기도 안성시 매봉산 일대에 있는 구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사이의 복합유적이다. 초기 철기시대의 덧띠토기가 출토된 다수의 집터와 환호가 주목되는 취락유적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부터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까지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었지만, 우리나라 고고학에서 중요한 것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자료이다. 이 시기로는 비교적 대형 취락에 속하며, 환호와 집터의 배치나 입지로 보아 계획된 설계에 의해 조성된 취락이다.
안성 반제리 유적 (安城 盤諸里 遺蹟)
안성반제리유적(安城盤諸里遺蹟)은 경기도 안성시 매봉산 일대에 있는 구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사이의 복합유적이다. 초기 철기시대의 덧띠토기가 출토된 다수의 집터와 환호가 주목되는 취락유적이다. 구석기시대의 유물부터 통일신라시대의 돌방무덤까지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발견되었지만, 우리나라 고고학에서 중요한 것은 초기 철기시대에 해당하는 자료이다. 이 시기로는 비교적 대형 취락에 속하며, 환호와 집터의 배치나 입지로 보아 계획된 설계에 의해 조성된 취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