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철릭"
검색결과 총 13건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은 조선 중기의 고승 사명대사가 입었던 가사와 장삼이다. 가사와 장삼은 승려가 착용하는 법복이다. 사명대사의 가사는 담황색을 띠고 있는데 원래는 황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재는 5매 수자직으로 짜여 진 문단(紋緞)이며, 모란과 매죽, 보문 문양이 어우러졌다. 장삼은 색이 퇴색되고 얼룩이 있으며 여러 군데 훼손되었으나 형태는 잘 보존되어 있다. 연회색의 면포를 사용했다. 1973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고 현재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사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승가의 법의와 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 (泗溟大師의 錦襴袈裟와 長衫)
사명대사의 금란가사와 장삼은 조선 중기의 고승 사명대사가 입었던 가사와 장삼이다. 가사와 장삼은 승려가 착용하는 법복이다. 사명대사의 가사는 담황색을 띠고 있는데 원래는 황색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소재는 5매 수자직으로 짜여 진 문단(紋緞)이며, 모란과 매죽, 보문 문양이 어우러졌다. 장삼은 색이 퇴색되고 얼룩이 있으며 여러 군데 훼손되었으나 형태는 잘 보존되어 있다. 연회색의 면포를 사용했다. 1973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고 현재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사에 소장되어 있다. 당시 승가의 법의와 제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김덕령 장군 의복은 조선 중기의 장군 김덕령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이다. 1965년 광주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되었다. 철릭 2점, 장옷 1점, 과두 3점, 저고리 1점,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저고리는 풍성한 느낌의 무명 솜저고리인데 겉감은 무명, 안감은 삼베로 되어 있다. 바지는 현재 옷감이 소실되고 바지 형체의 솜만 남아 있다. 이 의복은 임진왜란 당시 남녀 평상복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특히 사폭바지는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덕령 장군 의복 (金德領 將軍 衣服)
김덕령 장군 의복은 조선 중기의 장군 김덕령의 묘에서 출토된 16세기 후기의 복식류이다. 1965년 광주 무등산에 있던 김덕령(1567∼1596) 장군의 묘를 이장할 때 출토되었다. 철릭 2점, 장옷 1점, 과두 3점, 저고리 1점, 사폭바지 1점 등 모두 8점이다. 저고리는 풍성한 느낌의 무명 솜저고리인데 겉감은 무명, 안감은 삼베로 되어 있다. 바지는 현재 옷감이 소실되고 바지 형체의 솜만 남아 있다. 이 의복은 임진왜란 당시 남녀 평상복 유물로서의 가치가 있다. 특히 사폭바지는 가장 시기가 올라가는 유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원의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후반의 복식류 53점이다. 198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좌의정을 지낸 김덕원(1634~1704)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에서 의복이 출토되었다. 출토 의복은 단령, 철릭, 창의, 중치막, 바지, 장옷, 저고리, 치마, 웃치마, 여자 속바지 등이다. 옷의 본래 색상은 없어지고 갈변된 상태이다. 이 출토 의복은 염습의와 염습 제구이다. 이는 조선 숙종 때 사대부가의 복식 형태 등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 (金德遠 墓 出土 衣服 一括)
김덕원 묘 출토 의복 일괄은 조선 후기의 문신 김덕원의 묘에서 출토된 17세기 후반의 복식류 53점이다. 1980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후손이 소장하고 있다. 좌의정을 지낸 김덕원(1634~1704)과 그의 부인 전주이씨의 합장묘에서 의복이 출토되었다. 출토 의복은 단령, 철릭, 창의, 중치막, 바지, 장옷, 저고리, 치마, 웃치마, 여자 속바지 등이다. 옷의 본래 색상은 없어지고 갈변된 상태이다. 이 출토 의복은 염습의와 염습 제구이다. 이는 조선 숙종 때 사대부가의 복식 형태 등 당시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은 충청남도 당진시 모충관에 소장되어 있는 남이흥 장군과 의령남씨 선·후대의 유품 41점이다. 남이흥(1576∼1627)은 병마절도사로 정묘호란 때 순절한 인물이다. ‘남이흥장군유품’은 1970년에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004년에 남이흥 장군 일가의 유품들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1차로 지정된 유물은 녹피방령포와 녹피바지 등 총 8점이다. 추가로 지정된 복식류는 남이흥의 아버지 유물로 추정된다. 이 유품을 통해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특히 남이흥의 관복본 초상화는 무관의 사자흉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 (南以興 將軍 一家 遺品)
남이흥 장군 일가 유품은 충청남도 당진시 모충관에 소장되어 있는 남이흥 장군과 의령남씨 선·후대의 유품 41점이다. 남이흥(1576∼1627)은 병마절도사로 정묘호란 때 순절한 인물이다. ‘남이흥장군유품’은 1970년에 중요민속자료(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2004년에 남이흥 장군 일가의 유품들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1차로 지정된 유물은 녹피방령포와 녹피바지 등 총 8점이다. 추가로 지정된 복식류는 남이흥의 아버지 유물로 추정된다. 이 유품을 통해 조선 후기의 생활상을 알 수 있다. 특히 남이흥의 관복본 초상화는 무관의 사자흉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수화자는 조선시대에 문무백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신는, 목이 긴 신이다. 수화자는 단령을 착장할 때 신는 목화(木靴)와 유사한 형태이나 앞코의 끝이 뾰족하게 들려 있다는 차이를 보인다. 조선 후기 역대 『진찬의궤(進饌儀軌)』류에 그려진 <복식도>에서 수화자는 신목이 길고 앞축이 뾰족하고 위로 치켜 올라간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수화자 (水靴子)
수화자는 조선시대에 문무백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신는, 목이 긴 신이다. 수화자는 단령을 착장할 때 신는 목화(木靴)와 유사한 형태이나 앞코의 끝이 뾰족하게 들려 있다는 차이를 보인다. 조선 후기 역대 『진찬의궤(進饌儀軌)』류에 그려진 <복식도>에서 수화자는 신목이 길고 앞축이 뾰족하고 위로 치켜 올라간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長興任氏 墓 出土服飾)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조카며느리인 장흥임씨로 추정되는 묘에서 출토된 23점의 유물이다. 1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는 저고리 2점, 바지 2점, 철릭 1점, 직령포 1점과 염습 제구 17점이 출토되었다. 1980년에 '장흥임씨의복'이라는 명칭으로 의복 6점이 중요민속자료(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염습 제구 17점을 추가로 지정하면서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 (長興任氏 墓 出土服飾)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長興任氏 墓 出土服飾)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조카며느리인 장흥임씨로 추정되는 묘에서 출토된 23점의 유물이다. 1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는 저고리 2점, 바지 2점, 철릭 1점, 직령포 1점과 염습 제구 17점이 출토되었다. 1980년에 '장흥임씨의복'이라는 명칭으로 의복 6점이 중요민속자료(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염습 제구 17점을 추가로 지정하면서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전포는 조선시대에 무사들이 착용하던 긴 웃옷 종류이다. 전포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전투, 전쟁과 관련된 복장이다. 기록에서는 『고려도경(高麗圖經)』 권12 장위조(仗衞條)의 영군낭장기병(領軍郎將騎兵) 복식에서 보인다. 그중 “고려인은 ‘자라전포(紫羅戰袍)’를 착용하고 거란 강졸(降卒)은 ‘청록긴사대화전포(靑綠緊絲大花戰袍)’를 착용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시대 전포의 구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다. 단, 조선시대에는 융복의 철릭[帖裏]이나 전복(戰服)과 협수(挾袖) 등의 군복을 지칭하였다.
전포 (戰袍)
전포는 조선시대에 무사들이 착용하던 긴 웃옷 종류이다. 전포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전투, 전쟁과 관련된 복장이다. 기록에서는 『고려도경(高麗圖經)』 권12 장위조(仗衞條)의 영군낭장기병(領軍郎將騎兵) 복식에서 보인다. 그중 “고려인은 ‘자라전포(紫羅戰袍)’를 착용하고 거란 강졸(降卒)은 ‘청록긴사대화전포(靑綠緊絲大花戰袍)’를 착용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시대 전포의 구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다. 단, 조선시대에는 융복의 철릭[帖裏]이나 전복(戰服)과 협수(挾袖) 등의 군복을 지칭하였다.
주립(朱笠)은 조선시대에 당상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착용했던 붉은색의 갓이다. 선유락 춤을 추는 여령(女伶) 중에서 집사가 융복 차림을 할 때도 주립을 썼다. 흑립(黑笠)과 기본 형태는 같고 색상이 붉으며, 구슬끈[纓]을 양쪽 귀옆에 달아 턱에서 매었으며, 입식(笠飾)으로 호수(虎鬚)와 공작우(孔雀羽)를 꽂아 장식하였다.
주립 (朱笠)
주립(朱笠)은 조선시대에 당상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착용했던 붉은색의 갓이다. 선유락 춤을 추는 여령(女伶) 중에서 집사가 융복 차림을 할 때도 주립을 썼다. 흑립(黑笠)과 기본 형태는 같고 색상이 붉으며, 구슬끈[纓]을 양쪽 귀옆에 달아 턱에서 매었으며, 입식(笠飾)으로 호수(虎鬚)와 공작우(孔雀羽)를 꽂아 장식하였다.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은 1977년 충청북도 청원군 채무이의 둘째 부인인 순천김씨의 묘를 이장하면서 출토된 유물이다. 묘에서는 미라가 된 김씨와 함께 철릭(帖裏), 직령(直領), 저고리, 적삼 등의 상당한 의복과 185(192)점의 언간이 출토되었다. 순천김씨의 생몰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출토된 복식과 언간은 묘주가 1580년대에 사망한 인물임을 알려준다. 1979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6세기 생활문화는 물론 우리말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 (淸州 出土 順天金氏 衣服 및 簡札)
청주 출토 순천김씨 의복 및 간찰은 1977년 충청북도 청원군 채무이의 둘째 부인인 순천김씨의 묘를 이장하면서 출토된 유물이다. 묘에서는 미라가 된 김씨와 함께 철릭(帖裏), 직령(直領), 저고리, 적삼 등의 상당한 의복과 185(192)점의 언간이 출토되었다. 순천김씨의 생몰년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출토된 복식과 언간은 묘주가 1580년대에 사망한 인물임을 알려준다. 1979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충북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6세기 생활문화는 물론 우리말의 역사를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 대적광전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복장유물.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목조 비로자나불 좌상 및 복장유물 (陜川 海印寺 大寂光殿 木造 毘盧遮▽那佛 坐像 및 腹藏遺物)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 대적광전에 있었던 고려시대의 목조비로자나불좌상과 복장유물.
김흠조 부부묘 출토 유물은 조선 중종대의 문신인 김흠조(金欽祖, 1461~1528) 묘와 부인들의 묘에서 출토된 3종 134점의 일괄 유물이다. 1997년 3월 영주~평은간 국도 공사로 묘를 이장하던 중에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복식류 66점, 문서류 38점, 기타 유물 30점으로, 조선 전기 관복 제도의 전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002년 7월 18일에 중요 민속 자료 제24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가 민속 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재지정되어 영주 소수서원 유물관에 소장 중이다.
김흠조 부부묘 출토 유물 (金欽祖 夫婦墓 出土 遺物)
김흠조 부부묘 출토 유물은 조선 중종대의 문신인 김흠조(金欽祖, 1461~1528) 묘와 부인들의 묘에서 출토된 3종 134점의 일괄 유물이다. 1997년 3월 영주~평은간 국도 공사로 묘를 이장하던 중에 발견되었다. 이 유물은 복식류 66점, 문서류 38점, 기타 유물 30점으로, 조선 전기 관복 제도의 전형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2002년 7월 18일에 중요 민속 자료 제242호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국가 민속 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재지정되어 영주 소수서원 유물관에 소장 중이다.
고운 묘 출토유물은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사림 고운 묘에서 출토된 복식과 기타 물품이다. 복식 유물은 단령, 직령, 철릭, 과두, 답호, 바지, 소모자, 버선 등이 출토되었다. 직령과 철릭 등 포에서는 임진왜란 이전 복식의 특징이 나타난다. 16세기 초 복식과 장례 풍속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고운 묘 출토 유물 (高雲 墓 出土 遺物)
고운 묘 출토유물은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중기의 사림 고운 묘에서 출토된 복식과 기타 물품이다. 복식 유물은 단령, 직령, 철릭, 과두, 답호, 바지, 소모자, 버선 등이 출토되었다. 직령과 철릭 등 포에서는 임진왜란 이전 복식의 특징이 나타난다. 16세기 초 복식과 장례 풍속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변수 묘 출토유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변수 묘에서 출토된 의복과 부장품이다. 목우와 요선철릭, 철릭, 답호, 단령, 바지, 적삼 등의 복식유물 62건 72점이다. 특히 목우와 요선철릭은 관련 유물이 희귀한 귀중한 사례로 조선 전기 남자 복식의 특징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완성도가 높아 16세기 초의 복식, 상·장례 풍습 및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변수 묘 출토 유물 (邊脩 墓 出土 遺物)
변수 묘 출토유물은 국립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무신 변수 묘에서 출토된 의복과 부장품이다. 목우와 요선철릭, 철릭, 답호, 단령, 바지, 적삼 등의 복식유물 62건 72점이다. 특히 목우와 요선철릭은 관련 유물이 희귀한 귀중한 사례로 조선 전기 남자 복식의 특징을 알려주는 의미 있는 자료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완성도가 높아 16세기 초의 복식, 상·장례 풍습 및 생활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