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립(朱笠)은 조선시대에 문무관 정3품 이상의 관리가 융복으로 남색 철릭을 입을 때에 쓴 붉은색의 갓이다. 주립에는 입식으로 호수(虎鬚)와 공작우를 꽂고, 패영(貝纓)을 하는 등 화려한 장식을 하였는데, 지위관의 역할에 맞춘 위의(威儀)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속대전(續大典)』(1746)의 권3에는 주립과 유사한 명칭으로 자립(紫笠)이라는 기록이 있다. 패영은 양쪽 주립의 귀 옆에 달아 턱에서 매는 것으로, 조선 후기로 갈수록 길이가 길어져 늘어진 패영은 왼쪽 뺨에 묶어 사용하기도 하였다. 영조 26년(1750)에는 패영에다 옷감으로 만든 끈[絹纓]을 함께 매어 편리함을 더하였다. 입식으로 장식한 호수는 호랑이 수염으로 만들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그 유래는 『송남잡지(松南雜識)』에서 1717년에 숙종(肅宗)이 행행(行幸) 중에 주립에 보리 이삭을 꽂은 것에서 시작된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호수와 같이 꽂았던 공작우(孔雀羽)는 공작새 깃털로 만든 장식이다.
조선 후기 『진찬의궤』류의 ‘정재도’와 ‘복식도’에 있는 주립의 기록에서 주립은 왕실의 진찬 때에 선유락 춤을 추는 집사(執事) 여령이 융복 차림에 쓴 모자임이 확인된다.
주립은 붉은색 갓에 입식으로 호수와 공작우를 꽂아 장식하고 갓끈을 달아 턱에서 고정한 모양이다. 형태는 흑립과 같고 색상만 차이가 나기 때문에 흑립과 같은 모자[帽]와 양태(凉䑓)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말총을 엮어 만든 종립(鬃笠)이었으나 순조대에는 대나무로 만든 틀에 붉은색 옷감을 씌워 만든 사립(紗笠)을 사용하였으며, 고종대에는 붉은색 칠을 하는 것으로 변모하였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크기의 변화가 생겼는데, 성종대에는 둥근 모정(帽頂)이, 연산군대에는 모자 모양이 원통형으로 변화되었다. 선조와 광해군 시대의 양태가 가장 넓었으며, 영조와 정조대에는 밀화나 호박, 대모 등으로 만든 갓끈으로 멋을 부렸다. 조선 말기에는 모정이 낮고 작으며 양태가 좁은 아주 작은 갓이 유행하였다.
『(기축)진찬의궤』(1829)의 품목(稟目) 조에는 선유락 집사의 주립에 필요한 재료가 기록되어 있는데, 이 책에 있는 갓모자[帽]와 양태(凉䑓)를 기본으로 하고, 은입식(銀笠飾), 중도리[徴道里], 밀화갓끈[蜜花貝纓]과 옷감 갓끈[宮綃纓子], 갓끈 연결 고리[銀纓子], 호수와 공작우의 기록으로 주립의 구조를 알 수 있다. 중도리는 모자와 양태의 이음 부분을 장식한 것으로 주립이나 흑립에서 일부 확인된다.
주립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온양민속박물관에 소장된 전양군 이익필(李益飶, 16741751)이 쓰던 주립이 있다. 모자가 높고 양태가 매우 넓은 형태이나 입식이 없는 상태이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에 있는 박광석(17641845)이 썼던 주립은 정수리에는 은입식이 달려 있고 모자와 양태 이음 부분에는 견사로 중도리를 둘렀고 나머지 장식은 소실되어 없는 상태이다. 이 유물과 대립되는 유물로는 독일 라이프치히그라시민속박물관의 1800년대 말기 주립이 있다. 모자 형태를 만든 후 그 위에 붉은색 생사(生紗)를 대어 만든 주립으로, 모정이 낮고 양태가 매우 좁다. 호수 입식 3개가 꽂혀 있으며 구슬 갓끈이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