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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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진은 후삼국 시대에 궁예가 세운 나라의 이름이다. 궁예는 901년에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하면서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고, 904년에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정하였다가 911년에 다시 나라 이름을 태봉(泰封)으로 바꾸었다. 궁예는 무태(武泰)라는 연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중앙에 광평성(廣平省)을 중심으로 한 19개의 관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정광(正匡) · 원보(元輔) · 대상(大相) 등과 같은 품직도 설치하였다.
마진 (摩震)
마진은 후삼국 시대에 궁예가 세운 나라의 이름이다. 궁예는 901년에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하면서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고, 904년에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정하였다가 911년에 다시 나라 이름을 태봉(泰封)으로 바꾸었다. 궁예는 무태(武泰)라는 연호를 처음으로 사용하였으며, 중앙에 광평성(廣平省)을 중심으로 한 19개의 관부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정광(正匡) · 원보(元輔) · 대상(大相) 등과 같은 품직도 설치하였다.
고려 전기 수군을 관장하던 관서.
도항사 (都航司)
고려 전기 수군을 관장하던 관서.
고려 전기의 관계(官階).
광록승 (光祿丞)
고려 전기의 관계(官階).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 토성.
당토성 (唐土城)
북한 황해북도 봉산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 토성.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복지겸 (卜智謙)
고려전기 고려개국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고려 전기의 종1품 관직.
대광 (大匡)
고려 전기의 종1품 관직.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20대 경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
경종대왕 태실 (景宗大王 胎室)
충청북도 충주시 엄정면에 있는 조선후기 제20대 경종의 태를 봉안한 태실.
태봉의 중앙 관부.
남상단 (南廂壇)
태봉의 중앙 관부.
궁예는 남북국시대 태봉국의 제1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재위 기간은 901년~918년이다. 10여세 때 세달사에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하다가 세력을 키워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했다.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에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다. 한때 전국의 2/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세력을 떨쳤다.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를 두어 국가체제를 정비했지만, 후반에 미륵신앙에 기반을 둔 신정적 전제주의 정치를 추구하다가 918년 6월에 왕건을 지지하던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 4인의 정변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궁예 (弓裔)
궁예는 남북국시대 태봉국의 제1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재위 기간은 901년~918년이다. 10여세 때 세달사에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하다가 세력을 키워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했다.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에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다. 한때 전국의 2/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세력을 떨쳤다.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를 두어 국가체제를 정비했지만, 후반에 미륵신앙에 기반을 둔 신정적 전제주의 정치를 추구하다가 918년 6월에 왕건을 지지하던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 4인의 정변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시조 궁예의 연호.
수덕만세 (水德萬歲)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시조 궁예의 연호.
아지태는 청주 출신으로 태봉의 관리였다. 궁예의 총애를 얻기 위해 같은 청주 사람들을 참소하였지만, 왕건에 의해 모함한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았다. ‘아지태 사건’은 태봉 내부의 정세가 변화하고, 918년 고려 건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파악된다.
아지태 (阿志泰)
아지태는 청주 출신으로 태봉의 관리였다. 궁예의 총애를 얻기 위해 같은 청주 사람들을 참소하였지만, 왕건에 의해 모함한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았다. ‘아지태 사건’은 태봉 내부의 정세가 변화하고, 918년 고려 건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파악된다.
고려 전기에, 대상 등을 역임한 문신.
송함홍 (宋含弘)
고려 전기에, 대상 등을 역임한 문신.
은부는 남북국시대 궁예 정권에서 내군장군(內軍將軍) 등을 지낸 무신이다. 궁예의 휘하에서 친위군을 이끌며 국왕의 신변 경호를 담당한 내군장군직에 있었고, 궁예가 대신들을 숙청할 때 이를 함께 주도하였다. 왕건의 고려가 들어선 직후 과거 궁예의 친위 세력이었던 전력이 문제가 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은부 (猌鈇)
은부는 남북국시대 궁예 정권에서 내군장군(內軍將軍) 등을 지낸 무신이다. 궁예의 휘하에서 친위군을 이끌며 국왕의 신변 경호를 담당한 내군장군직에 있었고, 궁예가 대신들을 숙청할 때 이를 함께 주도하였다. 왕건의 고려가 들어선 직후 과거 궁예의 친위 세력이었던 전력이 문제가 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태봉(泰封) 때의 관계(官階).
태사훈 (台司訓)
태봉(泰封) 때의 관계(官階).
종간은 승려 출신으로, 태봉 말 소판(蘇判)의 지위에 있던 궁예의 측근 관리였다.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한 직후 내군장군 은부와 함께 처형되었다. 종간이 간사하고 모함을 많이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궁예 정권의 부당함을 부각시켜 고려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파악하기도 한다.
종간 (宗偘)
종간은 승려 출신으로, 태봉 말 소판(蘇判)의 지위에 있던 궁예의 측근 관리였다.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한 직후 내군장군 은부와 함께 처형되었다. 종간이 간사하고 모함을 많이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궁예 정권의 부당함을 부각시켜 고려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파악하기도 한다.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이인초등학교 (利仁初等學校)
충청남도 공주시 이인면 이인리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태봉(胎峰) 정상부에 있는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왕자들의 태를 봉안한 태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星州 世宗大王子 胎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태봉(胎峰) 정상부에 있는 조선전기 제4대 세종의 왕자들의 태를 봉안한 태실.
후삼국시대는 통일신라가 분열되어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를 이은 고려 등 3국이 정립하였던 900~936년 시기이다. 신라 말 호족의 대두와 농민 봉기로 인한 혼란 속에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904년 마진, 911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918년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935년 견훤이 고려에 망명하였고, 신라의 경순왕도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함으로써 통일을 이루었다. 후삼국 통일은 한국 민족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후삼국시대 (後三國時代)
후삼국시대는 통일신라가 분열되어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를 이은 고려 등 3국이 정립하였던 900~936년 시기이다. 신라 말 호족의 대두와 농민 봉기로 인한 혼란 속에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904년 마진, 911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918년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935년 견훤이 고려에 망명하였고, 신라의 경순왕도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함으로써 통일을 이루었다. 후삼국 통일은 한국 민족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궁예 설화」는 태봉국(泰封國)을 건국했던 궁예(弓裔)에 관한 설화이다. 궁예의 신이한 탄생과 유년 시절의 기아와 고난, 태봉국의 건국 과정 및 몰락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웅 일대기 서사 구조의 전형과 몰락한 폭군의 이야기로 이뤄진 특징이 있고, 문헌 전승과 구비 전승이 상호 영향을 준 이야기이면서 고구려 건국신화(建國神話)의 후대적 변이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
궁예 설화 (弓裔 說話)
「궁예 설화」는 태봉국(泰封國)을 건국했던 궁예(弓裔)에 관한 설화이다. 궁예의 신이한 탄생과 유년 시절의 기아와 고난, 태봉국의 건국 과정 및 몰락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웅 일대기 서사 구조의 전형과 몰락한 폭군의 이야기로 이뤄진 특징이 있고, 문헌 전승과 구비 전승이 상호 영향을 준 이야기이면서 고구려 건국신화(建國神話)의 후대적 변이상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문학사적 의의를 지닌 작품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