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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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85년(숙종 11)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의 족보 목판.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 족보 목판 (慶州金氏 版圖判書公派 族譜 木板)
1685년(숙종 11) 간행된 것으로 알려진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의 족보 목판.
육조(六曹)의 판서를 가리키던 총칭.
육경 (六卿)
육조(六曹)의 판서를 가리키던 총칭.
조선전기 공조판서,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유담년 (柳聃年)
조선전기 공조판서, 병조판서, 한성부판윤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과 용호군에 소속된 상장군.
근장상장군 (近仗上將軍)
고려시대 경군(京軍) 중에서 이군인 응양군과 용호군에 소속된 상장군.
구경(九卿)은 조선시대 육조의 장관인 판서와 의정부의 좌우참찬과 한성부의 장관인 판윤(判尹)을 이르는 명칭이다. 법제적 명칭은 아니지만, 관습적으로 삼공에 버금가는 고관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모두 동반(東班) 정 2품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구경 (九卿)
구경(九卿)은 조선시대 육조의 장관인 판서와 의정부의 좌우참찬과 한성부의 장관인 판윤(判尹)을 이르는 명칭이다. 법제적 명칭은 아니지만, 관습적으로 삼공에 버금가는 고관들을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으며, 모두 동반(東班) 정 2품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군부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윤척 (尹陟)
고려 후기에, 우부대언, 군부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전기에, 판한성부사,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유염 (柳琰)
조선 전기에, 판한성부사, 이조판서,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대사헌, 이조참판,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조명교 (曺命敎)
조선 후기에, 대사헌, 이조참판, 예문관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조상진은 조선 후기에 도승지, 광주부유수, 판돈녕부사, 판의금부사, 형조 · 병조판서, 대사간, 대사성 등을 역임한 소론계 문신이다. 1786년(정조 10)에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죽음과 관련된 '병오년의 상변(喪變)'에 연루되었던 조시위(趙時偉)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논척당하였다. 1796년(정조 20)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한 뒤 한성부판윤 · 공조판서 · 형조판서 · 예조판서 · 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1820년(순조 20)에 지중추부사로 사망하였다. 1827년(순조 27)에 익정(翼貞)으로 시호를 받았다.
조상진 (趙尙鎭)
조상진은 조선 후기에 도승지, 광주부유수, 판돈녕부사, 판의금부사, 형조 · 병조판서, 대사간, 대사성 등을 역임한 소론계 문신이다. 1786년(정조 10)에 문효세자와 의빈 성씨의 죽음과 관련된 '병오년의 상변(喪變)'에 연루되었던 조시위(趙時偉)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논척당하였다. 1796년(정조 20)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한 뒤 한성부판윤 · 공조판서 · 형조판서 · 예조판서 · 판의금부사 등을 지냈다. 1820년(순조 20)에 지중추부사로 사망하였다. 1827년(순조 27)에 익정(翼貞)으로 시호를 받았다.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호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허계 (許誡)
조선 전기에, 우부승지, 호조참의, 대사간 등을 역임한 문신.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계휘의 신도비.
김계휘 신도비 (金繼煇 神道碑)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김계휘의 신도비.
고려 후기에, 왕부단사관, 판도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덕유 (趙德裕)
고려 후기에, 왕부단사관, 판도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오계남은 고려 후기 순군경력, 예부상서, 덕성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65년(공민왕 14) 신돈의 당여가 되어 순군경력으로서 최영 등을 국문하였다. 명나라가 요구한 탐라의 말을 가져가기 위하여 제주에 왔으나, 1372년(공민왕 21) 제주에 반란이 일어나 말을 바치지 못하자, 예부상서로서 명나라에 말 6필을 바치고 돌아왔다. 1378년(우왕 4) 전라도에 파견되어 호구를 조사하였고, 예의판서로서 북원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382년(우왕 8) 덕성군으로서 경상도도안무사에 기용되었다.
오계남 (吳季南)
오계남은 고려 후기 순군경력, 예부상서, 덕성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365년(공민왕 14) 신돈의 당여가 되어 순군경력으로서 최영 등을 국문하였다. 명나라가 요구한 탐라의 말을 가져가기 위하여 제주에 왔으나, 1372년(공민왕 21) 제주에 반란이 일어나 말을 바치지 못하자, 예부상서로서 명나라에 말 6필을 바치고 돌아왔다. 1378년(우왕 4) 전라도에 파견되어 호구를 조사하였고, 예의판서로서 북원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382년(우왕 8) 덕성군으로서 경상도도안무사에 기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