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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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학산동에 있는 공립여자고등학교.
포항여자고등학교 (浦項女子高等學校)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학산동에 있는 공립여자고등학교.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신덕로(죽천리)에 있는 사립전문대학.
포항대학교 (浦項大學校)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신덕로(죽천리)에 있는 사립전문대학.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에 있는 공항.
포항경주공항(구 포항공항) (浦項慶州空港(舊 浦項空港))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동해면 도구리에 있는 공항.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도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포항영흥초등학교 (浦項永興初等學校)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도동에 있는 공립초등학교.
1990년 포항시에 설립된 시립 교향악단.
포항시립교향악단 (浦項市立交響樂團)
1990년 포항시에 설립된 시립 교향악단.
포항제철소는 1970~1983년에 경상북도 포항에 건설된 한국 최초의 일관 제철소이다. 포항제철소는 1기, 2기, 3기, 4기, 4기 2차 사업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91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을 매개로 포항제철은 세계 11위의 철강 업체로 부상했으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중화학공업화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포항제철소 (浦項製鐵所)
포항제철소는 1970~1983년에 경상북도 포항에 건설된 한국 최초의 일관 제철소이다. 포항제철소는 1기, 2기, 3기, 4기, 4기 2차 사업을 통해 건설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91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포항제철소 건설 사업을 매개로 포항제철은 세계 11위의 철강 업체로 부상했으며, 우리나라는 본격적인 중화학공업화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와 경상북도 포항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익산포항고속도로 (益山浦項高速道路)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와 경상북도 포항시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조각이 출토된 고인돌군. 지석묘군.
경주 다산리 고인돌군 (慶州 多山里 고인돌群)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일대에 있는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조각이 출토된 고인돌군. 지석묘군.
해방 이후 재무부장관, 대통령수석정무비서관,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행정가, 경제관료.
김학렬 (金鶴烈)
해방 이후 재무부장관, 대통령수석정무비서관, 경제기획원 장관 등을 역임한 관료. 행정가, 경제관료.
영일만(迎日灣)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달만곶과 남구 호미곶면 호미곶과의 사이에 있는 만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동부, 동해면, 호미곶면의 연안에 해당하는 면적 약 110㎢의 만이다. 영일만의 명칭은 포항의 옛 행정지명인 영일군에서 유래한 것이다. 만의 안쪽은 형산강의 하구로서 넓은 해안 평야가 발달하여, 포항 시가지와 포스코 포항제철소, 포항국가산업단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영일만의 모래 해안으로는 송도, 영일대, 도구해수욕장이 있으며, 만 내에 자리 잡은 항구로는 포항 구항, 신항, 영일만항이 있다.
영일만 (迎日灣)
영일만(迎日灣)은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달만곶과 남구 호미곶면 호미곶과의 사이에 있는 만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흥해읍, 동부, 동해면, 호미곶면의 연안에 해당하는 면적 약 110㎢의 만이다. 영일만의 명칭은 포항의 옛 행정지명인 영일군에서 유래한 것이다. 만의 안쪽은 형산강의 하구로서 넓은 해안 평야가 발달하여, 포항 시가지와 포스코 포항제철소, 포항국가산업단지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영일만의 모래 해안으로는 송도, 영일대, 도구해수욕장이 있으며, 만 내에 자리 잡은 항구로는 포항 구항, 신항, 영일만항이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여남포길(여남동)에 있는 공립 전문계 고등학교.
한국해양마이스터고등학교 (韓國海洋MEISTER高等學校)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여남포길(여남동)에 있는 공립 전문계 고등학교.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위치한 사립 대학교.
한동대학교 (韓東大學校)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 위치한 사립 대학교.
해방 이후 국가축구대표팀 감독, 대우 프로축구팀 감독 등을 역임한 체육인.
조윤옥 (趙壽玉)
해방 이후 국가축구대표팀 감독, 대우 프로축구팀 감독 등을 역임한 체육인.
경상북도 형산강 하곡에서 울산광역시 동천강 하곡에 이르는 저지대.
형산강 지구대 (兄山江 地溝帶)
경상북도 형산강 하곡에서 울산광역시 동천강 하곡에 이르는 저지대.
박태준은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하여 이후 대한중석(지금의 대구텍) 사장, 포항종합제철(지금의 포스코) 초대 사장, 자유민주연합 총재 등을 역임한 군인, 기업가, 정치인이다. 1948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한 뒤 한국의 철강산업 확립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981년 민주정의당 소속 제1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제13대 국회의원과 민주정의당 대표최고위원, 1997년 지유민주연합 총재,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 이후 포스코 명예회장과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박태준 (朴泰俊)
박태준은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하여 이후 대한중석(지금의 대구텍) 사장, 포항종합제철(지금의 포스코) 초대 사장, 자유민주연합 총재 등을 역임한 군인, 기업가, 정치인이다. 1948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1963년 소장으로 예편한 뒤 한국의 철강산업 확립에 주요한 역할을 하였다. 1981년 민주정의당 소속 제11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하였고, 제13대 국회의원과 민주정의당 대표최고위원, 1997년 지유민주연합 총재, 국무총리 등을 지냈다. 이후 포스코 명예회장과 포스코청암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김익노는 국회의원, 국회징계자격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이승만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활동에 일조한 정치인이다. 1905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일본 도쿄농업대학에서 수학한 후 경북 달성군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청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50년, 1954년, 1958년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54년 9월 이승만의 3선 개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부정행위로 인해 기소된 후, 이듬해 대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을 받았다.
김익노 (金益魯)
김익노는 국회의원, 국회징계자격위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발췌개헌, 사사오입 개헌 등 이승만의 정치권력을 강화하는 활동에 일조한 정치인이다. 1905년 경북 칠곡 출생으로 일본 도쿄농업대학에서 수학한 후 경북 달성군청에서 근무했다. 해방 후 청년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되었다. 1950년, 1954년, 1958년 민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었다. 1954년 9월 이승만의 3선 개헌을 위한 ‘사사오입 개헌’을 통과시키는 데 일조했다. 1958년 4대 민의원 선거에서는 부정행위로 인해 기소된 후, 이듬해 대법원에서 선거무효 판결을 받았다.
종합제철사업계획은 1958년부터 1969년까지 수립된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여러 계획을 지칭한다. 종합제철사업계획은 문서상의 계획 단계, 일회성 계약의 단계, 협상을 통해 계약을 발전시킨 단계, 실제 사업으로 현실화된 단계를 밟아왔다. 결국 한국은 1969년에 신사업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한 후 일본의 협력을 도출하여 103만 톤 규모의 포항 제철소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종합제철사업계획 (綜合製鐵事業計劃)
종합제철사업계획은 1958년부터 1969년까지 수립된 일관 제철소 건설을 위한 여러 계획을 지칭한다. 종합제철사업계획은 문서상의 계획 단계, 일회성 계약의 단계, 협상을 통해 계약을 발전시킨 단계, 실제 사업으로 현실화된 단계를 밟아왔다. 결국 한국은 1969년에 신사업계획을 독자적으로 수립한 후 일본의 협력을 도출하여 103만 톤 규모의 포항 제철소 건설 사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광양제철소는 1985~1992년에 전라남도 광양시에 건설된 일관 제철소이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모색된 제2 종합 제철 사업은 사업 주체를 포항제철, 입지를 광양으로 삼았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은 4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1,14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이 마무리된 1992년에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철강 업체로 떠올랐다.
광양제철소 (光陽製鐵所)
광양제철소는 1985~1992년에 전라남도 광양시에 건설된 일관 제철소이다. 중화학 공업화 정책의 일환으로 모색된 제2 종합 제철 사업은 사업 주체를 포항제철, 입지를 광양으로 삼았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은 4 차례에 걸쳐 전개되었으며, 이를 통해 연간 1,140만 톤의 생산 능력이 확보되었다. 광양제철소 건설 사업이 마무리된 1992년에 포항제철은 세계 3위의 철강 업체로 떠올랐다.
철강공업육성법은 1970년에 철강 공업의 합리적 육성을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특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철강 시설에 정부가 재정적 지원, 공공요금 할인, 육성 자금 조성 등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철강공업육성법은 정부가 포항 제철의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이를 감독하겠다는 의지에서 제정되었다.
철강공업육성법 (鐵鋼工業育成法)
철강공업육성법은 1970년에 철강 공업의 합리적 육성을 위해 제정된 법률이다. 이 법은 특정한 기준을 만족하는 철강 시설에 정부가 재정적 지원, 공공요금 할인, 육성 자금 조성 등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철강공업육성법은 정부가 포항 제철의 육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동시에 이를 감독하겠다는 의지에서 제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