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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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준(金連俊) 작사·김연준 작곡의 예술가곡.
청산에 살리라 (靑山에 살리라)
김연준(金連俊) 작사·김연준 작곡의 예술가곡.
1970년 6월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으로 인해 발생한 필화사건.
오적 필화사건 (五賊 筆禍事件)
1970년 6월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賊)」으로 인해 발생한 필화사건.
유진희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와 신생활사, 조선공산당 등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하였고, 『시대일보』, 『신계단』 등 언론계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 언론인이다.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운동과 잡지 발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해방 공간에서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등 정치 활동에 매진하였다.
유진희 (兪鎭熙)
유진희는 일제강점기, 조선노동공제회와 신생활사, 조선공산당 등 사회주의운동에 참여하였고, 『시대일보』, 『신계단』 등 언론계에서 활동한 사회주의운동가, 독립운동가, 언론인이다. 1920~1930년대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운동과 잡지 발행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해방 공간에서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등 정치 활동에 매진하였다.
리영희는 언론인과 대학교수를 지낸 진보적 사회운동가이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예편하여 조선일보사 등에서 외신부 기자로 일하며 논설을 집필하였다. 한양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반유신 운동에 동참하였고,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리영희 (李泳禧)
리영희는 언론인과 대학교수를 지낸 진보적 사회운동가이다. 한국해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통역장교로 복무한 뒤 예편하여 조선일보사 등에서 외신부 기자로 일하며 논설을 집필하였다. 한양대학교 교수로 있으면서 반유신 운동에 동참하였고, 『우상과 이성』, 『전환시대의 논리』 등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안기태 필화사건은 1988년 10월 시사만화가 안기태가 용팔이 정치테러 사건을 우회적으로 풍자한 만화 게재 후, 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당시 만화가를 향한 테러는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경찰은 단순 강도를 가장한 언론 테러와 단순 강도 사건 두 가지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였지만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안기태는 시사만화가로는 최초로 언론통폐합 때 강제 해직되었다.
안기태 필화사건 (安琪泰 筆禍事件)
안기태 필화사건은 1988년 10월 시사만화가 안기태가 용팔이 정치테러 사건을 우회적으로 풍자한 만화 게재 후, 테러를 당한 사건이다. 당시 만화가를 향한 테러는 매우 드문 일이었기에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다. 경찰은 단순 강도를 가장한 언론 테러와 단순 강도 사건 두 가지 방향으로 수사를 진행하였지만 결국 미제사건으로 남았다. 안기태는 시사만화가로는 최초로 언론통폐합 때 강제 해직되었다.
시사만화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당대 사회의 현실이나 사건, 부조리와 모순, 세태 등을 소재로 하여 풍자한 만화이다. ‘시사’라는 큰 틀을 주제로 삼아 풍자하는 만화를 일컫는 용어로 쓰임의 범위가 크다. 따라서 시사만화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현장에 대한 기록이자 해석이다. 신문, 잡지의 사세확장과 여론형성을 위해 시사만화가 적극적으로 연재되었고, 네 칸 시사만화의 경우 장기간 연재되면서 각 신문, 잡지사의 인기코너가 되거나 사주나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시사만화 (時事漫畵)
시사만화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당대 사회의 현실이나 사건, 부조리와 모순, 세태 등을 소재로 하여 풍자한 만화이다. ‘시사’라는 큰 틀을 주제로 삼아 풍자하는 만화를 일컫는 용어로 쓰임의 범위가 크다. 따라서 시사만화는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현장에 대한 기록이자 해석이다. 신문, 잡지의 사세확장과 여론형성을 위해 시사만화가 적극적으로 연재되었고, 네 칸 시사만화의 경우 장기간 연재되면서 각 신문, 잡지사의 인기코너가 되거나 사주나 시대를 대표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윤영옥은 4칸 시사만화 「까투리여사」를 그리다 필화사건에 휘말린 만화가이다. 건국대학교 진학 후에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1960년 단행본 『배뚱이와 마른 꽁이』를 출간하였다. 1961년부터 7년 동안 「엉털즈」를 『소설계』에 연재하였고, 1965년부터 만평 「메뚜기」를 『전남매일신문』에 연재하면서 시사만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1967년부터 『서울신문』에 대표작 「까투리여사」 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까지 총 6,773회를 연재하였다. 한국 신문 만화를 집대성한 『한국신문만화사 1909-1995』도 출간하였다.
윤영옥 (尹暎玉)
윤영옥은 4칸 시사만화 「까투리여사」를 그리다 필화사건에 휘말린 만화가이다. 건국대학교 진학 후에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여, 1960년 단행본 『배뚱이와 마른 꽁이』를 출간하였다. 1961년부터 7년 동안 「엉털즈」를 『소설계』에 연재하였고, 1965년부터 만평 「메뚜기」를 『전남매일신문』에 연재하면서 시사만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1967년부터 『서울신문』에 대표작 「까투리여사」 연재를 시작하여 1994년까지 총 6,773회를 연재하였다. 한국 신문 만화를 집대성한 『한국신문만화사 1909-1995』도 출간하였다.
두꺼비 필화사건은 1987년 1월 19일자 『한국일보』 시사만화 「두꺼비」의 정치 풍자로 인해 작가 안의섭이 고문당하고 연재가 중단된 사건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종양을 앓고 있는 등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외신뉴스를 인용해 전두환대통령에게 오래오래 살라는 식의 풍자였다. 이에 정부는 작가 안의섭을 연행, 고문하고 연재중단 조치를 취했다. 안의섭은 2일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고, 편집국 기자 1백명이 이에 항의해 신문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5공화국 언론탄압의 대표적인 사례다.
두꺼비 필화사건 (筆禍事件)
두꺼비 필화사건은 1987년 1월 19일자 『한국일보』 시사만화 「두꺼비」의 정치 풍자로 인해 작가 안의섭이 고문당하고 연재가 중단된 사건이다. 당시 미국 대통령 레이건이 종양을 앓고 있는 등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외신뉴스를 인용해 전두환대통령에게 오래오래 살라는 식의 풍자였다. 이에 정부는 작가 안의섭을 연행, 고문하고 연재중단 조치를 취했다. 안의섭은 2일동안 조사를 받고 풀려났고, 편집국 기자 1백명이 이에 항의해 신문사에서 농성을 벌였다. 5공화국 언론탄압의 대표적인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