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국혁명여성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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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헌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유영파와 결혼하였다. 1939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1940년 6월 중국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일제 패망 때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송정헌의 이러한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송정헌 (宋靜軒)
송정헌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의 일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중국 항저우에서 태어났으며, 독립운동가 유영파와 결혼하였다. 1939년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1940년 6월 중국 충칭에서 결성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일제 패망 때까지 독립운동을 펼쳤다. 대한민국 정부는 송정헌의 이러한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하여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하였다.
오영선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남편 조소앙과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후 충칭에서 성립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3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해방을 충칭에서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 환국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고,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오영선 (吳英善)
오영선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자, 남편 조소앙과 함께 상하이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중일전쟁 후 충칭에서 성립된 한국혁명여성동맹의 창립 구성원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3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5년 해방을 충칭에서 맞이하였다. 광복 이후 환국하여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였고, 201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현숙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동향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광선과 결혼하였고, 1918년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청산리전투 이후 1920년대에 각종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만주국 성립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5년에 남편과 난징으로 이동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고, 1940년에는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에 가담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정현숙 (鄭賢淑)
정현숙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고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항일 투쟁을 펼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3년 동향 출신의 독립운동가 오광선과 결혼하였고, 1918년 함께 만주로 망명하였다. 청산리전투 이후 1920년대에 각종 독립운동 단체에서 활동하였다. 1932년 만주국 성립 이후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1935년에 남편과 난징으로 이동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1939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였고, 1940년에는 한국혁명여성동맹 결성에 가담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용제는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독립당,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여동생으로, 1929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한국독립당 재건 때 조소앙을 지원하였으며, 충칭 강북구당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하였고, 1943년에는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위원으로 선임되어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에 힘썼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조용제 (趙鏞濟)
조용제는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한국독립당,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의 일원으로 항일 투쟁을 전개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조소앙의 여동생으로, 1929년 상하이로 망명하였다. 한국독립당 재건 때 조소앙을 지원하였으며, 충칭 강북구당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창립에 참여하였고, 1943년에는 한국애국부인회 재건 위원으로 선임되어 광복 때까지 독립운동에 힘썼다. 해방 이후 가족과 함께 귀국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노영재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독립운동가이다.
노영재 (盧英哉)
노영재는 일제강점기 중국 관내 지역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 한국독립당, 한국국민당, 한국혁명여성동맹, 조선민족혁명당 등에 가담하여 활동하였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뒷바라지를 담당한 독립운동가이다.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김정숙 (金貞淑)
김정숙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에서 대적 심리공작을 수행하였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7년 중국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여 항일의식을 고취하였으며,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선전부 주임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임시의정원 비서, 임시정부 교통부 비서, 법무부 비서,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5년에는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심리작전연구실에서 방송을 통한 선전 활동을 펼쳤다.
김효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을 펼쳤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1937년 중국 광둥성의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였고,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훈련부 주임, 1944년 3월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10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 전개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다.
김효숙 (金孝淑)
김효숙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을 펼쳤던 여성 독립운동가이다.1937년 중국 광둥성의 중산대학 학생전시복무단을 조직하였고,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 집행위원 겸 훈련부 주임, 1944년 3월 조선민족혁명당 감찰위원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4년 10월 한국광복군 제2지대에 종군하여 대일 심리전 전개하던 중 8·15광복을 맞았다.
최형록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박은식 등이 설립한 상하이 박달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을 낳았다. 1940년 충칭의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형록 (崔亨祿)
최형록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애국부인회,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등에서 항일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평양에서 태어나 1910년 중국으로 이주하였다. 1914년 박은식 등이 설립한 상하이 박달학원에서 수학하였다. 1918년 독립운동가 조소앙과 결혼하여 딸 조계림을 낳았다. 1940년 충칭의 한국혁명여성동맹에 감찰위원으로 참여하였고, 1944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외무부 총무과원으로 임명되어 딸 조계림과 함께 활약하였다. 1996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최선화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전반기 한국독립당 및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에서의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중국에 망명하여 흥사단에 가입하고, 1940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1943년 5월 충칭에서 한국애국부인회 서무부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최선화 (崔善嬅)
최선화는 일제강점기 1930년대 후반에서 1940년대 전반기 한국독립당 및 한국혁명여성동맹 등에서의 활동을 통해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6년 중국에 망명하여 흥사단에 가입하고, 1940년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1943년 5월 충칭에서 한국애국부인회 서무부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이국영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고, 한중합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3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설치한 생계부의 생계위원을 맡았다.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국영 (李國英)
이국영은 일제강점기 중국에서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고, 한국독립당 당원으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9년 2월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을 모으고, 한중합작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활동을 하였다. 1940년 한국혁명여성동맹이 창립되자 회원으로 활동하였으며, 1943년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설치한 생계부의 생계위원을 맡았다.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에 가입하여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이순승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 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은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조시원이다.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독립당 창립위원, 한국독립당 충칭 강북구당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43년 1월에는 한인애국부인회 재건에 참여하여 교육 및 각종 독립운동 관련 활동을 수행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이순승 (李順承)
이순승은 일제강점기 한국혁명여성동맹, 한국독립당, 한인애국부인회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남편은 임시의정원 의원,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부관 등을 역임한 조시원이다. 1940년 6월 한국혁명여성동맹에 참여하여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동을 지원하였다. 한국독립당 창립위원, 한국독립당 충칭 강북구당 집행위원으로도 활동하였다. 1943년 1월에는 한인애국부인회 재건에 참여하여 교육 및 각종 독립운동 관련 활동을 수행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