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한용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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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종은 1911년 순천 송광사에서 설립된 한국 근대 불교의 한 종파이다. 근대 최초의 종단인 원종의 종정 이회광이 일본 불교 조동종과 맹약을 체결하자 이에 반발하여 영남과 호남 지역의 사찰과 승려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임제종은 식민지기 불교 청년의 주체성 형성과 한국 불교의 전통을 정립하고자 했던 선학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임제종 (臨濟宗)
임제종은 1911년 순천 송광사에서 설립된 한국 근대 불교의 한 종파이다. 근대 최초의 종단인 원종의 종정 이회광이 일본 불교 조동종과 맹약을 체결하자 이에 반발하여 영남과 호남 지역의 사찰과 승려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임제종은 식민지기 불교 청년의 주체성 형성과 한국 불교의 전통을 정립하고자 했던 선학원에 큰 영향을 끼쳤다.
백담사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雪嶽山)에 있는 사찰이다. 7차에 걸친 실화가 닥쳤고,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는데, 정조 때 백담사로 확정되었다. 근대에 한용운이 주석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설악산 백담사 (雪嶽山 百潭寺)
백담사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雪嶽山)에 있는 사찰이다. 7차에 걸친 실화가 닥쳤고,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는데, 정조 때 백담사로 확정되었다. 근대에 한용운이 주석하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神興寺)의 말사이다.
장충단공원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공원이다. 남산 동쪽 종남산 기슭 아래 동북쪽 일대로 영조 때에 남소영이 있었던 곳이다. 1900년에 고종황제가 이곳에 장충단을 설립하고 을미사변 때에 순사한 이경직과 홍계훈을 비롯한 장졸을 배향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일본은 장충단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에 따라 장충단공원으로 명명하고, 벚꽃을 심는 등 유원지를 조성하였다. 해방 이후 이준의 동상과 사명대사의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등 항일운동과 관련된 기념물이 있는 민족공원이라 할 수 있다.
장충단공원 (奬忠壇公園)
장충단공원은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에 있는 공원이다. 남산 동쪽 종남산 기슭 아래 동북쪽 일대로 영조 때에 남소영이 있었던 곳이다. 1900년에 고종황제가 이곳에 장충단을 설립하고 을미사변 때에 순사한 이경직과 홍계훈을 비롯한 장졸을 배향하여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일본은 장충단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의도에 따라 장충단공원으로 명명하고, 벚꽃을 심는 등 유원지를 조성하였다. 해방 이후 이준의 동상과 사명대사의 동상이 건립되었으며 3·1운동 기념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등 항일운동과 관련된 기념물이 있는 민족공원이라 할 수 있다.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승려이다. 1898년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호는 운암(雲巖), 성숙(星淑)은 법명이다. 1916년 독립군에 가담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용문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주요 독립운동 활동으로 3·1 운동 주도, 조선의열단 가담, 조선의용대 조직 및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등이 있다.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합작을 지지하였으며, 진보당사건(1955년)으로 큰 탄압을 받았다. 1969년 서거하였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김성숙 (金星淑)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승려이다. 1898년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호는 운암(雲巖), 성숙(星淑)은 법명이다. 1916년 독립군에 가담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용문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주요 독립운동 활동으로 3·1 운동 주도, 조선의열단 가담, 조선의용대 조직 및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등이 있다.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합작을 지지하였으며, 진보당사건(1955년)으로 큰 탄압을 받았다. 1969년 서거하였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18년에, 한용운이 정신 문명의 중요성을 강조한 불교 잡지.
유심 (惟心)
1918년에, 한용운이 정신 문명의 중요성을 강조한 불교 잡지.
이종익(李鍾益, 1912~1991)은 근현대기에 보조 지눌(普照知訥)과 원효(元曉)를 연구하고 보조 종조론(普照宗祖論)을 주장한 불교학자로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지눌을 통해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고 일본에서 지눌의 『화엄론절요』를 발견해 학계에 소개했다.
이종익 (李鍾益)
이종익(李鍾益, 1912~1991)은 근현대기에 보조 지눌(普照知訥)과 원효(元曉)를 연구하고 보조 종조론(普照宗祖論)을 주장한 불교학자로 동국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지눌을 통해 한국 불교의 정체성을 찾으려 했고 일본에서 지눌의 『화엄론절요』를 발견해 학계에 소개했다.
『경허집』은 근대 선의 중흥조인 경허 성우(鏡虛惺牛)의 법어와 산문, 시가를 엮어 1943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한용운(韓龍雲)의 서문과 성우의 약력에 이어 본문은 법어, 서문, 기문, 서간문, 행장, 영찬, 그리고 시와 가송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허 성우의 선풍(禪風)이 잘 드러나 있는 대표 저작이다.
경허집 (鏡虛集)
『경허집』은 근대 선의 중흥조인 경허 성우(鏡虛惺牛)의 법어와 산문, 시가를 엮어 1943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한용운(韓龍雲)의 서문과 성우의 약력에 이어 본문은 법어, 서문, 기문, 서간문, 행장, 영찬, 그리고 시와 가송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허 성우의 선풍(禪風)이 잘 드러나 있는 대표 저작이다.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은 한용운(韓龍雲)이 31본산의 하나인 건봉사 본사와 말사에 관한 자료를 수록하여 1928년에 간행한 사적기이다. 건봉사 본사와 말사 각 사찰의 연혁을 편년체로 적고, 부속 암자, 재산, 유물, 진영, 명소 등의 순으로 정리·기술했으며, 고승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건봉사 급 건봉사 말사 사적 (乾鳳寺 及 乾鳳寺 末寺 事蹟)
『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은 한용운(韓龍雲)이 31본산의 하나인 건봉사 본사와 말사에 관한 자료를 수록하여 1928년에 간행한 사적기이다. 건봉사 본사와 말사 각 사찰의 연혁을 편년체로 적고, 부속 암자, 재산, 유물, 진영, 명소 등의 순으로 정리·기술했으며, 고승들의 활동을 소개했다.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불교의식과 경전 등을 번역하여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힘쓴 승려·독립운동가.
진종 (震鍾)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불교의식과 경전 등을 번역하여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에 힘쓴 승려·독립운동가.
『불교(佛敎)』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기관지로 발행한 월간 불교 잡지이다. 종교성을 다룬 논설, 불교개혁론, 경전의 번역, 전통 문화의 소개, 불교 문학 작품 등 근대 불교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글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 잡지는 당대 불교계의 동향과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의미가 크다.
불교 (佛敎)
『불교(佛敎)』는 일제강점기인 1924년에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이 기관지로 발행한 월간 불교 잡지이다. 종교성을 다룬 논설, 불교개혁론, 경전의 번역, 전통 문화의 소개, 불교 문학 작품 등 근대 불교의 성격을 알 수 있는 다양한 장르의 글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 잡지는 당대 불교계의 동향과 인식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의미가 크다.
일제강점기 때, 철원애국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김상헌 (金祥憲)
일제강점기 때, 철원애국단에서 군자금 모금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
사찰에서 정토왕생을 목적으로 염불 위주의 수행을 하기 위해 지은 불교건축물. 불당.
염불당 (念佛堂)
사찰에서 정토왕생을 목적으로 염불 위주의 수행을 하기 위해 지은 불교건축물. 불당.
춘성은 만해 한용운의 제자로서 해방 이전 신흥사 및 석왕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3·1운동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한용운이 쓴 「조선독립의 서」를 비밀리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여 알렸던 인물이다. 수덕사 만공 선사에게서 전법수행을 하고, 선학원에서 안거 수행을 하는 등 선승으로서 활동하였다. 평소 거리낌 없는 생활로 무애도인(無碍道人)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춘성 (春城)
춘성은 만해 한용운의 제자로서 해방 이전 신흥사 및 석왕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3·1운동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한용운이 쓴 「조선독립의 서」를 비밀리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여 알렸던 인물이다. 수덕사 만공 선사에게서 전법수행을 하고, 선학원에서 안거 수행을 하는 등 선승으로서 활동하였다. 평소 거리낌 없는 생활로 무애도인(無碍道人)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 있는 근대기의 승려 용성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 승탑, 부도, 묘탑.
해인사 용성선사 부도 및 탑비 (海印寺 龍城禪師 浮屠 및 塔碑)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에 있는 근대기의 승려 용성선사의 사리를 봉안한 사리탑, 승탑, 부도, 묘탑.
『신불교(新佛敎)』는 『불교』지(1924.7.~1933.7. 발행)의 속간(續刊)으로 1937년 3월에 제1집 이후 1944년 12월 67집까지 발행된 불교 잡지이다. 초기에는 범어사·통도사·해인사의 경남3본산회의에서 발행하였고, 허영호(許永鎬)가 편집을, 한용운이 고문을 담당하였다. 허영호가 마지막으로 발행한 19집 이후에 1939년에 1년간 일시 휴간되었다. 1940년 1월에 속간되었고, 1941년 10월호인 31집부터는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의 기관지로 발행이 전환되었다.
신불교 (新佛敎)
『신불교(新佛敎)』는 『불교』지(1924.7.~1933.7. 발행)의 속간(續刊)으로 1937년 3월에 제1집 이후 1944년 12월 67집까지 발행된 불교 잡지이다. 초기에는 범어사·통도사·해인사의 경남3본산회의에서 발행하였고, 허영호(許永鎬)가 편집을, 한용운이 고문을 담당하였다. 허영호가 마지막으로 발행한 19집 이후에 1939년에 1년간 일시 휴간되었다. 1940년 1월에 속간되었고, 1941년 10월호인 31집부터는 조계종 총본산 태고사의 기관지로 발행이 전환되었다.
1910년대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청년운동단체.
불교청년단 (佛敎靑年團)
1910년대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청년운동단체.
다솔사(多率寺)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봉명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연기가 창건한 사찰이다. 화재로 여러 차례 소실되어 중건(重建)을 반복하면서 영악사(靈嶽寺)와 다솔사 등으로 병칭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14년의 화재 이후 새로 재건된 것이다. 1930년대부터 주지(住持)를 역임한 최범술(崔凡述)의 불사로 사역(寺域)이 정비되었고, 한용운(韓龍雲)・허영호(許永鎬)・김법린(金法麟)・김범부(金凡夫)・김동리(金東里) 등이 머물며 민족의식을 고취한 사찰이기도 하다.
봉명산 다솔사 (鳳鳴山 多率寺)
다솔사(多率寺)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봉명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연기가 창건한 사찰이다. 화재로 여러 차례 소실되어 중건(重建)을 반복하면서 영악사(靈嶽寺)와 다솔사 등으로 병칭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14년의 화재 이후 새로 재건된 것이다. 1930년대부터 주지(住持)를 역임한 최범술(崔凡述)의 불사로 사역(寺域)이 정비되었고, 한용운(韓龍雲)・허영호(許永鎬)・김법린(金法麟)・김범부(金凡夫)・김동리(金東里) 등이 머물며 민족의식을 고취한 사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