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협회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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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싸우는 소」, 「흰소」, 「투계」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이중섭 (李仲燮)
해방 이후 「싸우는 소」, 「흰소」, 「투계」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고희동 (高羲東)
일제강점기 「정자관을 쓴 자화상」, 「부채를 든 자화상」,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무당」, 「청담대종사」, 「토함산해돋이」, 「명성황후」, 「전봉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박생광 (朴生光)
해방 이후 「무당」, 「청담대종사」, 「토함산해돋이」, 「명성황후」, 「전봉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서화협회는 1918년 창립되어 1936년까지 존속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 단체이다. 휘호회·전람회·의촉 제작·도서인행·강습소 운영 등을 통해 회원의 활동과 후진 교육, 대중 계몽 등을 펼쳤다. 1921년 열린 제1회 서화협회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근대적인 종합 미술전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1921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 잡지인 『서화협회보』를 기관지로 발행했다. 후진 양성 기관인 ‘서화학원’을 1923년부터 1925년까지 열었다. 창립 이후 1936년까지 15회의 전시회를 통하여 한국 근대 미술의 발전과 화단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서화협회 (書畵協會)
서화협회는 1918년 창립되어 1936년까지 존속했던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미술 단체이다. 휘호회·전람회·의촉 제작·도서인행·강습소 운영 등을 통해 회원의 활동과 후진 교육, 대중 계몽 등을 펼쳤다. 1921년 열린 제1회 서화협회전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리는 근대적인 종합 미술전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또한 1921년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 잡지인 『서화협회보』를 기관지로 발행했다. 후진 양성 기관인 ‘서화학원’을 1923년부터 1925년까지 열었다. 창립 이후 1936년까지 15회의 전시회를 통하여 한국 근대 미술의 발전과 화단의 활성화에 기여했다.
추상화는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선·면·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이다. 한국의 추상화는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학하던 김환기, 유영국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들이 주도한 앵포르멜 미술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1970년대 단색조의 추상화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화단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에 의해 추상화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 갔다.
추상화 (抽象畵)
추상화는 가시적 형상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방식을 벗어나 점·선·면·색채의 순수조형 요소로 구성한 그림이다. 한국의 추상화는 1930년대 중반 일본에서 유학하던 김환기, 유영국 등에 의해 시작되었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 전후 1세대 청년 작가들이 주도한 앵포르멜 미술에 이르러 현대미술의 주류가 되었다. 1970년대 단색조의 추상화는 ‘한국적 모더니즘’이라 일컬어지면서 1980년대까지 화단의 중심 세력이 되었다. 1990년대에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류에 의해 추상화의 열기는 서서히 식어 갔다.
이순석은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가톨릭미술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공예가이다. 일본에서 한국 전통적 공예품 전시회를 보고 1931년 동경미술학교 도안과에서 공부했다. 그의 작품은 주제나 모티브 면에서는 주로 전통적인 것을 사용했다. 양식·형식 면에서는 단순화·양식화하는 일본적 도안 요소와 서양의 반추상적 느낌이 있다. 그의 석공예작품은 주로 자연물의 형상을 담았는데 곡선의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유관순·해태상 등의 석조 작품과 종교 미술품을 많이 남겼다. 대표적으로 「명상의 길」·「십자가의 길」 등의 부조 작품이 있다.
이순석 (李順石)
이순석은 해방 이후 서울대학교 교수, 서울가톨릭미술협회 회장 등을 역임한 공예가이다. 일본에서 한국 전통적 공예품 전시회를 보고 1931년 동경미술학교 도안과에서 공부했다. 그의 작품은 주제나 모티브 면에서는 주로 전통적인 것을 사용했다. 양식·형식 면에서는 단순화·양식화하는 일본적 도안 요소와 서양의 반추상적 느낌이 있다. 그의 석공예작품은 주로 자연물의 형상을 담았는데 곡선의 단순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유관순·해태상 등의 석조 작품과 종교 미술품을 많이 남겼다. 대표적으로 「명상의 길」·「십자가의 길」 등의 부조 작품이 있다.
해방 이후 「가을」·「미술사의 여행」·「수중지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박항섭 (朴恒燮)
해방 이후 「가을」·「미술사의 여행」·「수중지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화실」, 「좌상」, 「만추」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임직순 (任直淳)
해방 이후 「화실」, 「좌상」, 「만추」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한국 추상미술 1세대 화가.
유영국 (劉永國)
일제강점기 한국 추상미술 1세대 화가.
해방 이후 제1회 국전에서 「향원정」 으로 입선한 화가. 유화가.
김두환 (金斗煥)
해방 이후 제1회 국전에서 「향원정」 으로 입선한 화가. 유화가.
일제강점기 일본식 외광파(外光派)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낸 작품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김호룡 (金浩龍)
일제강점기 일본식 외광파(外光派)의 영향을 강하게 드러낸 작품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소년상」·「좌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엄도만 (嚴道晩)
일제강점기 「소년상」·「좌상」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국전의 추천작가를 역임한 화가. 서양화가.
공진형 (孔鎭衡)
해방 이후 국전의 추천작가를 역임한 화가. 서양화가.
1937년 일본 동경 지역의 미술학교 유학생들이 조직한 미술단체.
재동경미술협회 (在東京美術協會)
1937년 일본 동경 지역의 미술학교 유학생들이 조직한 미술단체.
일제강점기 7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서양화가.
임학선 (林學善)
일제강점기 7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코스튬」·「소녀상」 등을 그린 화가. 유화가.
홍일표 (洪逸杓)
일제강점기 「코스튬」·「소녀상」 등을 그린 화가. 유화가.
일제강점기 제10회 독립미전에서 「현무문」 으로 입선한 화가.
홍준명 (洪俊明)
일제강점기 제10회 독립미전에서 「현무문」 으로 입선한 화가.
1929년 남종화(南宗畵)의 고취 및 조선 내 지사(志士)들의 친목과 공조(共助)를 위해 조직한 미술단체.
조선남화협회 (朝鮮南畵協會)
1929년 남종화(南宗畵)의 고취 및 조선 내 지사(志士)들의 친목과 공조(共助)를 위해 조직한 미술단체.
일제강점기 「해와 여인들」, 「산책」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안기풍 (安基豊)
일제강점기 「해와 여인들」, 「산책」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정오의 우사」·「정원」·「모자」 등을 그린 화가. 유화가.
고석 (高錫)
일제강점기 「정오의 우사」·「정원」·「모자」 등을 그린 화가. 유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