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회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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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주시 회암사터에 있는 조선전기 승려 무학대사 자초의 유골을 봉안한 불탑. 부도.
양주 회암사지 무학대사탑 (楊州 檜巖寺址 無學大師塔)
경기도 양주시 회암사터에 있는 조선전기 승려 무학대사 자초의 유골을 봉안한 불탑. 부도.
보우는 조선전기 봉은사 주지, 판선종사도대선사, 선종판사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509년(중종 4)에 태어나 1565년(명종 20)에 사망했다. 유학자들과도 깊이 사귀었고 재상 정만종과의 교유를 통해 문정대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선교일체론을 주창했고 일정성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교양종을 부활시키고 도첩제와 승과를 다시 실시했다. 1565년 4월에 회암사 중창사업을 마치고 낙성식을 겸한 무차대회를 열었지만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다.
보우 (普雨)
보우는 조선전기 봉은사 주지, 판선종사도대선사, 선종판사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509년(중종 4)에 태어나 1565년(명종 20)에 사망했다. 유학자들과도 깊이 사귀었고 재상 정만종과의 교유를 통해 문정대비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선교일체론을 주창했고 일정성을 정리하여 불교와 유교의 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선교양종을 부활시키고 도첩제와 승과를 다시 실시했다. 1565년 4월에 회암사 중창사업을 마치고 낙성식을 겸한 무차대회를 열었지만 문정왕후가 사망하자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제주목사 변협에 의하여 죽음을 당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조선전기에 건립된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사적비.
서울 원각사지 대원각사비 (서울 圓覺寺址 大圓覺寺碑)
서울특별시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조선전기에 건립된 원각사의 창건 내력을 적은 사적비.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법주사에 있는 음식 조리용 맷돌. 조리도구.
군위 법주사 왕맷돌 (軍威 法住寺 왕맷돌)
대구광역시 군위군 소보면 법주사에 있는 음식 조리용 맷돌. 조리도구.
조선 전기에, 판문하부사, 우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의원.
권중화 (權仲和)
조선 전기에, 판문하부사, 우의정, 영의정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의원.
자초(自超)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선종 승려로 지공(指空)과 나옹 혜근(懶翁惠勤)의 법맥을 이었다.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자초를 왕사로 책봉하며 존숭하였으므로 자초는 조선 초기의 중요한 불사를 주관하였다. 태조가 수도를 정하는 데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승탑과 탑비는 회암사지에 세워졌다.
자초 (自超)
자초(自超)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선종 승려로 지공(指空)과 나옹 혜근(懶翁惠勤)의 법맥을 이었다. 조선 건국 후 태조가 자초를 왕사로 책봉하며 존숭하였으므로 자초는 조선 초기의 중요한 불사를 주관하였다. 태조가 수도를 정하는 데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다. 승탑과 탑비는 회암사지에 세워졌다.
혜근(惠勤)은 고려 후기 공민왕 대 왕사를 역임한 선종 승려이다. 사굴산문 출신으로 원나라에 유학하여 대도에서 지공(指空)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강남의 선종사원을 두루 유력하며 오산사찰의 선풍을 경험하며 임제종 승려들에게 선을 배웠다. 인도승 지공과 임제종 승려 평산처림(平山處林)의 법을 이었으며, 귀국하여 공민왕 대 공부선을 주관하고 왕사를 역임했으며, 회암사를 중창하였다.
혜근 (惠勤)
혜근(惠勤)은 고려 후기 공민왕 대 왕사를 역임한 선종 승려이다. 사굴산문 출신으로 원나라에 유학하여 대도에서 지공(指空)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강남의 선종사원을 두루 유력하며 오산사찰의 선풍을 경험하며 임제종 승려들에게 선을 배웠다. 인도승 지공과 임제종 승려 평산처림(平山處林)의 법을 이었으며, 귀국하여 공민왕 대 공부선을 주관하고 왕사를 역임했으며, 회암사를 중창하였다.
파주 보광사 목조 보살 입상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목조 불상이다. 보광사는 고령산에 위치한 사찰로 파주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이 불상은 보광사 대웅전 주존불의 협시보살로 조성된 2구의 목조보살이다. 불상 조각에는 영색을 비롯하여 5명의 승려 조각승들이 참여하였다. 이 두 보살상은 좌우 손의 위치만 대칭될 뿐 크기나 형태 등이 거의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이목구비는 작고 아담하며 천진무구한 모습이다. 이 목조보살 입상은 17세기 전반기 불교 조각 연구 및 유파 연구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파주 보광사 목조 보살 입상 (坡州 普光寺 木造 菩薩 立像)
파주 보광사 목조 보살 입상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목조 불상이다. 보광사는 고령산에 위치한 사찰로 파주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이 불상은 보광사 대웅전 주존불의 협시보살로 조성된 2구의 목조보살이다. 불상 조각에는 영색을 비롯하여 5명의 승려 조각승들이 참여하였다. 이 두 보살상은 좌우 손의 위치만 대칭될 뿐 크기나 형태 등이 거의 비슷하다. 전반적으로 이목구비는 작고 아담하며 천진무구한 모습이다. 이 목조보살 입상은 17세기 전반기 불교 조각 연구 및 유파 연구의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남양주 흥국사 대웅보전 목조 석가삼존불 좌상은 경기도 남양주시 흥국사 대웅보전에 있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화려한 광배가 특징인 목조 삼존 불상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목조 석가여래 좌상은 높이가 77.3㎝로 머리와 신체가 인체비례에 가까운 균형 잡힌 모습이다. 목에는 수평의 삼도가 있어 17세기 불상의 자연스러움은 사라졌다. 삼존불의 뒤에는 각각 보주 거신광배가 투각으로 세워져 있다. 구체적인 조성 시기와 봉안 사찰을 알 수 없으나,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남양주 흥국사 대웅보전 목조 석가삼존불 좌상 (南楊州 興國寺 大雄寶殿 木造 釋迦三尊佛 座像)
남양주 흥국사 대웅보전 목조 석가삼존불 좌상은 경기도 남양주시 흥국사 대웅보전에 있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화려한 광배가 특징인 목조 삼존 불상이다. 석가불을 중심으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목조 석가여래 좌상은 높이가 77.3㎝로 머리와 신체가 인체비례에 가까운 균형 잡힌 모습이다. 목에는 수평의 삼도가 있어 17세기 불상의 자연스러움은 사라졌다. 삼존불의 뒤에는 각각 보주 거신광배가 투각으로 세워져 있다. 구체적인 조성 시기와 봉안 사찰을 알 수 없으나, 18세기 중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1년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나라의 반랄밀제(般刺蜜帝)가 번역한 『능엄경』을 국역 · 교열하여 1461년에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언해본 불교경전이다. 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세조 6년(1461)에 간행한 책이다. 전체 10권 10책 중에 권7∼권10의 4권을 2권씩 합쳐서 2책으로 장책하였다. 언해는 한자를 크게 쓰고 한글로 토를 작게 달은 뒤에 번역을 2줄로 싣는 방식이다. 특히 권10의 마지막에 수록된 어제발언해주(御製跋諺解註)의 기록은 책의 간행배경과 과정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15세기 우리말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대불정여래밀인수증요의제보살만행수능엄경경(언해) 권7~8, 9~10 (九~十|大佛頂如來密因修證了義諸菩薩萬行首楞嚴經(諺解) 卷七~八)
당나라의 반랄밀제(般刺蜜帝)가 번역한 『능엄경』을 국역 · 교열하여 1461년에 간경도감에서 간행한 언해본 불교경전이다. 198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세조 6년(1461)에 간행한 책이다. 전체 10권 10책 중에 권7∼권10의 4권을 2권씩 합쳐서 2책으로 장책하였다. 언해는 한자를 크게 쓰고 한글로 토를 작게 달은 뒤에 번역을 2줄로 싣는 방식이다. 특히 권10의 마지막에 수록된 어제발언해주(御製跋諺解註)의 기록은 책의 간행배경과 과정을 파악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15세기 우리말의 양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회암사에서 무학자초가 지소의 『인천안목』을 1395년에 번각한 불교서. 사찰본.
인천안목 (人天眼目)
회암사에서 무학자초가 지소의 『인천안목』을 1395년에 번각한 불교서. 사찰본.
회암사에서 무학자초가 지소의 『인천안목』을 1395년에 번각한 불교서. 사찰본.
인천안목 (人天眼目)
회암사에서 무학자초가 지소의 『인천안목』을 1395년에 번각한 불교서. 사찰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