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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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5년경에 김부식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삼국시대의 역사서. 『구삼국사(舊三國史)』와 김대문(金大問)의 『고승전(高僧傳)』 · 『화랑세기(花郎世記)』 · 『계림잡전(鷄林雜傳)』 및 최치원(崔致遠)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등의 국내 문헌과 『삼국지(三國志)』 · 『후한서(後漢書)』 · 『진서(晉書)』 · 『위서(魏書)』 · 『송서(宋書)』 · 『남북사(南北史)』 · 『신당서(新唐書)』 · 『구당서(舊唐書)』 및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중국 문헌을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이 때 책임 편찬자인 김부식은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 각 부분의 머리말 부분, 논찬(論贊), 사료의 취사 선택, 편목의 작성, 인물의 평가 등을 직접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사 편찬은 왕권 강화의 기념적 사업인 동시에...
삼국사기 (三國史記)
1145년경에 김부식 등이 고려 인종의 명을 받아 편찬한 삼국시대의 역사서. 『구삼국사(舊三國史)』와 김대문(金大問)의 『고승전(高僧傳)』 · 『화랑세기(花郎世記)』 · 『계림잡전(鷄林雜傳)』 및 최치원(崔致遠)의 『제왕연대력(帝王年代曆)』 등의 국내 문헌과 『삼국지(三國志)』 · 『후한서(後漢書)』 · 『진서(晉書)』 · 『위서(魏書)』 · 『송서(宋書)』 · 『남북사(南北史)』 · 『신당서(新唐書)』 · 『구당서(舊唐書)』 및 『자치통감(資治通鑑)』 등의 중국 문헌을 참고하여 재구성한 것이다. 이 때 책임 편찬자인 김부식은 진삼국사기표(進三國史記表), 각 부분의 머리말 부분, 논찬(論贊), 사료의 취사 선택, 편목의 작성, 인물의 평가 등을 직접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국사 편찬은 왕권 강화의 기념적 사업인 동시에...
1145년(인종 23)에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를 진헌하면서 올린 표(表). 김부식은 이 표에서 인종의 말을 인용, “지금의 학사대부가 오경 제자의 책과 중국사에는 널리 통하면서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는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라고 하여, 독자적 역사의식에서 『삼국사기』를 편찬함을 밝혔다. 또한, “『고기(古記)』는 글이 거칠고 사적의 누락이 많아 군신의 선악, 신하의 충사(忠邪), 나라의 안위, 인민의 치란(治亂)을 밝혀 권계(勸戒)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다.”라고 지적하여, 『삼국사기』가 고려 초에 성립되었을 『해동삼국사(海東三國史)』 등의 기존 역사서를 감계론적(鑑戒論的)인 입장에서 지양하였으며, 또한 표현 문체도 다듬었음을 밝혔다. 이 표는 부화한 수식을 일삼지 않고 전달내용을...
진삼국사기표 (進三國史記表)
1145년(인종 23)에 김부식(金富軾)이 『삼국사기』를 진헌하면서 올린 표(表). 김부식은 이 표에서 인종의 말을 인용, “지금의 학사대부가 오경 제자의 책과 중국사에는 널리 통하면서도 우리나라 역사에 대하여는 그 시말을 알지 못하니 유감이다.”라고 하여, 독자적 역사의식에서 『삼국사기』를 편찬함을 밝혔다. 또한, “『고기(古記)』는 글이 거칠고 사적의 누락이 많아 군신의 선악, 신하의 충사(忠邪), 나라의 안위, 인민의 치란(治亂)을 밝혀 권계(勸戒)하는 수준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다.”라고 지적하여, 『삼국사기』가 고려 초에 성립되었을 『해동삼국사(海東三國史)』 등의 기존 역사서를 감계론적(鑑戒論的)인 입장에서 지양하였으며, 또한 표현 문체도 다듬었음을 밝혔다. 이 표는 부화한 수식을 일삼지 않고 전달내용을...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 삼국시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이다.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처럼 한국사 속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용어이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삼국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원전 - 『구당서(舊唐書)』 - 『남제서(南齊書)』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동국통감(東國通鑑)』 - 『북제서(北齊書)』 - 『사기(史記)』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삼국지(三國志)』 - 『송서(宋書)』 - 『수서(隋書)』 - 『신당서(新唐書)』 - 『양서(梁書)』 - 『위서(魏書)...
삼국시대 (三國時代)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 삼국시대는 고구려 · 백제 · 신라의 세 나라가 정립하였던 한국사의 한 시기이다. 남북국시대, 후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처럼 한국사 속의 주요 국가를 중심으로 한 시대 구분 용어이다. 삼국이 고대 국가의 체제를 완비해 간 4세기 이후부터 신라의 삼국통일까지를 의미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삼국의 국가 형성부터 삼국시대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원전 - 『구당서(舊唐書)』 - 『남제서(南齊書)』 -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 『동국통감(東國通鑑)』 - 『북제서(北齊書)』 - 『사기(史記)』 - 『삼국사기(三國史記)』 - 『삼국유사(三國遺事)』 - 『삼국지(三國志)』 - 『송서(宋書)』 - 『수서(隋書)』 - 『신당서(新唐書)』 - 『양서(梁書)』 - 『위서(魏書)...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 지식층들 사이에 논의된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연대를 통해 서구세력을 방비하자는 정치론. 동양삼국제휴론. 동양삼국연대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 지식층들 사이에 논의된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연대를 통해 서구세력을 방비하자는 정치론이다. 동양삼국제휴론이라고도 한다. 한·중·일 삼국이 지역적, 문화적 공동체로서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등 서양의 직접적인 침략에 직면하면서 사회진화론과 결합하여 서양 백인종에 대항해야 한다는 인종적 연대론으로 발전하였다. 계몽주의 계열의 지식인층이 역사적 연원과 국가 간의 현실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의 아시아연대론 또는 동양평화론 등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동양삼국연대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동양삼국연대론 (東洋三國連帶論)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 지식층들 사이에 논의된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연대를 통해 서구세력을 방비하자는 정치론. 동양삼국제휴론. 동양삼국연대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조선 지식층들 사이에 논의된 한국·중국·일본 삼국의 연대를 통해 서구세력을 방비하자는 정치론이다. 동양삼국제휴론이라고도 한다. 한·중·일 삼국이 지역적, 문화적 공동체로서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러시아 등 서양의 직접적인 침략에 직면하면서 사회진화론과 결합하여 서양 백인종에 대항해야 한다는 인종적 연대론으로 발전하였다. 계몽주의 계열의 지식인층이 역사적 연원과 국가 간의 현실적인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의 아시아연대론 또는 동양평화론 등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동양삼국연대론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遺事)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 『삼국유사』는 고려후기 승려 일연이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이다. 총 5권 2책이다. 권의 구분과는 별도로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체제는 저자의 관심을 끈 자료들을 선택적으로 수집·분류한 자유롭고 독특한 형식의 역사서이다. 유교적 역사인식과 서술태도와는 다르게 신이한 역사 이야기와 그 전거를 밝히고 고대 사료의 원형을 전달함으로써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로 평가되며, 한국 고대어 연구와 불교미술 연구를 위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구성된 『삼국유사』의 체재는 『삼국사기』나 『해동고승전』...
삼국유사 (三國遺事)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遺事)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 『삼국유사』는 고려후기 승려 일연이 고조선에서부터 후삼국까지의 유사를 모아 편찬한 역사서이다. 총 5권 2책이다. 권의 구분과는 별도로 왕력·기이·흥법·탑상·의해·신주·감통·피은·효선 등 9편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러한 체제는 저자의 관심을 끈 자료들을 선택적으로 수집·분류한 자유롭고 독특한 형식의 역사서이다. 유교적 역사인식과 서술태도와는 다르게 신이한 역사 이야기와 그 전거를 밝히고 고대 사료의 원형을 전달함으로써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다. 총체적인 문화유산의 원천적 보고로 평가되며, 한국 고대어 연구와 불교미술 연구를 위한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구성된 『삼국유사』의 체재는 『삼국사기』나 『해동고승전』...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의 유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의 유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모두 5권 9편의 체재로 되어 있다. 일연이 고대 역사 중 정사에는 없는 유문과 일사를 바탕으로 찬술하였다. 고대 사회의 역사, 풍속, 종교, 문학, 예술, 언어 등에 관한 사료를 수록하고 있다. 이 책에는 향가나 이두로 표기한 글도 있으며, 향찰로 표기된 혜성가 등 신라 향가 14수는 한국고대문학사에서 절대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우리나라 역사서 가운데 최초로 단군신화를 수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삼국사기』 발문에 의하여, 『삼국유사』도 함께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거두의 발문에는 “계림에 있던 삼국사...
삼국유사 (三國遺事)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의 유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의 유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모두 5권 9편의 체재로 되어 있다. 일연이 고대 역사 중 정사에는 없는 유문과 일사를 바탕으로 찬술하였다. 고대 사회의 역사, 풍속, 종교, 문학, 예술, 언어 등에 관한 사료를 수록하고 있다. 이 책에는 향가나 이두로 표기한 글도 있으며, 향찰로 표기된 혜성가 등 신라 향가 14수는 한국고대문학사에서 절대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우리나라 역사서 가운데 최초로 단군신화를 수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삼국사기』 발문에 의하여, 『삼국유사』도 함께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거두의 발문에는 “계림에 있던 삼국사...
7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멸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한 일. 삼국통일은 7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멸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한 일이다. 고구려·백제·신라 3국은 국가 체제를 정비한 후 세력 확장을 꾀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과 백제의 북진정책이 대립했고, 후발국 신라는 그 틈새에서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중국과의 교통로를 확보하려 했다. 당과 고구려가 충돌하면서 야기된 대치 국면은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하고 신라가 고립되는 국면을 초래했다. 이에 신라는 대당외교에 치중하여 나당연합군으로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국을 통일했다. 이후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가 시작되었다.통일하고 삼국의 백성을 통합한 것은 한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비록 고구려 동북지역에서 발해가...
삼국통일 (三國統一)
7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멸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한 일. 삼국통일은 7세기 중엽 신라가 백제·고구려를 멸하고 통일정부를 수립한 일이다. 고구려·백제·신라 3국은 국가 체제를 정비한 후 세력 확장을 꾀하는 과정에서 서로 충돌하게 되었다. 고구려의 남진정책과 백제의 북진정책이 대립했고, 후발국 신라는 그 틈새에서 한강 유역을 차지하여 중국과의 교통로를 확보하려 했다. 당과 고구려가 충돌하면서 야기된 대치 국면은 고구려와 백제가 연합하고 신라가 고립되는 국면을 초래했다. 이에 신라는 대당외교에 치중하여 나당연합군으로 백제·고구려를 무너뜨리고 삼국을 통일했다. 이후 발해와 신라의 남북국 시대가 시작되었다.통일하고 삼국의 백성을 통합한 것은 한국사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비록 고구려 동북지역에서 발해가...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의 유사를 서술한 역사서. 그리고 1512년 중종 임신년에 간행된 『삼국사기』 권말에 쓴 이계복의 발문에 “우리나라의 삼국본사(三國本史)와 유사(遺事)의 두 책은 다른 데서는 간행된 것이 없고 오직 본부(本府: 경주)에 있었을 뿐인데 오랜 세월을 지나매 판이 깎이고 이지러져 한 줄에 겨우 4, 5글자만을 해독할 정도였다. 생각하건대 선비들이 세상에 나서 여러 사서(史書)를 두루 살펴 천하의 치난흥망(治亂興亡)과 모든 이적(異跡)을 널리 알려고 하거늘 하물며 이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국사(國史)를 몰라서야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다행히 성주목사(星州牧使) 권주(權輳)가 내가 이 사서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그 완본(完本)을 얻어 보냈으므로 나는 기쁘게 받아 감사(監司) 안당(安瑭)...
삼국유사 (三國遺事)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의 유사를 서술한 역사서. 그리고 1512년 중종 임신년에 간행된 『삼국사기』 권말에 쓴 이계복의 발문에 “우리나라의 삼국본사(三國本史)와 유사(遺事)의 두 책은 다른 데서는 간행된 것이 없고 오직 본부(本府: 경주)에 있었을 뿐인데 오랜 세월을 지나매 판이 깎이고 이지러져 한 줄에 겨우 4, 5글자만을 해독할 정도였다. 생각하건대 선비들이 세상에 나서 여러 사서(史書)를 두루 살펴 천하의 치난흥망(治亂興亡)과 모든 이적(異跡)을 널리 알려고 하거늘 하물며 이 나라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 국사(國史)를 몰라서야 어찌 옳다고 하겠는가...다행히 성주목사(星州牧使) 권주(權輳)가 내가 이 사서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그 완본(完本)을 얻어 보냈으므로 나는 기쁘게 받아 감사(監司) 안당(安瑭)...
조선 후기, 조선을 중심으로 중국의 만주·랴오둥 지방과 일본, 류큐국, 타이완 등의 지리정보를 담아 그린 지도. 「해동삼국도」는 조선 후기 조선을 중심으로 중국의 만주·랴오둥 지방과 일본, 류큐국, 타이완 등의 지리정보를 담아 그린 지도이다. 조선의 주요도로와 군현 이름은 간략하게 표기한 반면,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및 만주 지역은 매우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청나라의 주요도로와 변문까지 기록하였다. 이 지도는 조선과 주변국의 군사적, 행정적 경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표제는 ‘해동삼국도(海東三國圖)’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 편찬 및 간행 경위 1666년(현종 7)에 설치된 영고탑신성(寧古塔新城)과 1670년(현종 11)에 설치된 유조변(楡藪邊)이 표시되어 있다. 또 1776년...
해동삼국도 (海東三國圖)
조선 후기, 조선을 중심으로 중국의 만주·랴오둥 지방과 일본, 류큐국, 타이완 등의 지리정보를 담아 그린 지도. 「해동삼국도」는 조선 후기 조선을 중심으로 중국의 만주·랴오둥 지방과 일본, 류큐국, 타이완 등의 지리정보를 담아 그린 지도이다. 조선의 주요도로와 군현 이름은 간략하게 표기한 반면, 압록강과 두만강 일대 및 만주 지역은 매우 상세하게 묘사하였다. 청나라의 주요도로와 변문까지 기록하였다. 이 지도는 조선과 주변국의 군사적, 행정적 경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표제는 ‘해동삼국도(海東三國圖)’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 편찬 및 간행 경위 1666년(현종 7)에 설치된 영고탑신성(寧古塔新城)과 1670년(현종 11)에 설치된 유조변(楡藪邊)이 표시되어 있다. 또 1776년...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5대 경덕왕 당시 창건된 사찰. 『삼국유사』에 의하면, 757년에 망덕사(望德寺)의 낙성회를 열어서 왕이 친히 공양을 베풀었는데, 그때 누추한 모습을 한 비구승이 찾아와서 재(齋)에 참석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왕은 말석에 첨례할 것을 허락한 뒤 재를 마치려 할 때, 그를 희롱하고자 사는 곳을 물었다. 그가 비파암(琵琶庵)에 산다고 하자 왕은 “돌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국왕이 친히 불공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비구는 웃으면서 “왕 또한 다른 사람에게 진신석가(眞身釋迦)를 공양하였다는 말을 말라.”하고 몸을 솟구쳐서 남쪽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왕은 놀랍고 부끄러워 동쪽 산에 달려 올라가서, 사라진 방향을 향하여 절하고 사람들에게 가서...
경주 석가사 (慶州 釋迦寺)
경상북도 경주시 내남면에 있었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5대 경덕왕 당시 창건된 사찰. 『삼국유사』에 의하면, 757년에 망덕사(望德寺)의 낙성회를 열어서 왕이 친히 공양을 베풀었는데, 그때 누추한 모습을 한 비구승이 찾아와서 재(齋)에 참석하게 해줄 것을 요청하였다. 왕은 말석에 첨례할 것을 허락한 뒤 재를 마치려 할 때, 그를 희롱하고자 사는 곳을 물었다. 그가 비파암(琵琶庵)에 산다고 하자 왕은 “돌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국왕이 친히 불공하는 재에 참석했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비구는 웃으면서 “왕 또한 다른 사람에게 진신석가(眞身釋迦)를 공양하였다는 말을 말라.”하고 몸을 솟구쳐서 남쪽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왕은 놀랍고 부끄러워 동쪽 산에 달려 올라가서, 사라진 방향을 향하여 절하고 사람들에게 가서...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상(外相)이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를 포함한 7개 분야의 의제를 다룬 회의. 모스크바삼상회의는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상이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를 포함한 7개 분야의 의제를 다룬 회의이다. 한국 문제는 그 중의 한 의제였다. 채택된 의정서에는 한국에 미군사령부와 소련군사령부의 대표로 구성되는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민족 독립달성을 위해 신탁통치할 수 있는 방책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탁통치의 의미를 미·소가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 수립을 위한 수단으로 접근함에 따라 미소공동위원회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한국사회』, 까치, 1985)...
모스크바 삼상회의 (Moscow 三相會議)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상(外相)이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를 포함한 7개 분야의 의제를 다룬 회의. 모스크바삼상회의는 1945년 12월 16일부터 25일까지 소련의 모스크바에서 미국·영국·소련의 3개국 외상이 한반도의 신탁통치 문제를 포함한 7개 분야의 의제를 다룬 회의이다. 한국 문제는 그 중의 한 의제였다. 채택된 의정서에는 한국에 미군사령부와 소련군사령부의 대표로 구성되는 미소공동위원회를 설치하고, 민족 독립달성을 위해 신탁통치할 수 있는 방책을 작성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러나 신탁통치의 의미를 미·소가 서로 다르게 해석하고 자국에 우호적인 정부 수립을 위한 수단으로 접근함에 따라 미소공동위원회는 의미 있는 성과를 내지 못하고 말았다.한국사회』, 까치, 1985)...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 삼한시대·철기시대Ⅱ기·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삼국사기』에...
원삼국시대 (原三國時代)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 삼한시대·철기시대Ⅱ기·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원삼국시대는 우리나라 고고학 편년상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 사이의 시기이다. 서기전 100년경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약 400년간의 기간을 이른다. 청동기의 실용성 소멸, 철기생산의 보급 및 확대, 김해토기의 출현, 벼농사의 발전, 고인돌의 소멸, 돌덧널무덤의 발달 등 문화적 특징이 나타났다. 고고학계에서는 철기시대 Ⅱ기, 역사학계에서는 삼한시대·부족국가시대·성읍국가시대·삼국시대 초기·삼국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였다. 이러한 용어상의 불편과 불합리를 줄이고 고고학계와 문헌사학계에서 모두 쓸 수 있도록 하려는 취지에서 고고학계에서 제안한 용어이다.삼국사기』에...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태경전」은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영웅의 일생을 기본 구조로 삼아 전개된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이 진사의 효행을 중심으로, 중반부는 이 진사의 애정사를 중심으로, 후반부는 이 진사의 아들 형제가 우애로 전쟁을 종식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복 형제가 전장에서 만나 형제임을 깨닫고 전쟁을 멈춘다는 전개가 독특하다.활자본으로는 「리태경전(李泰景傳)」(1916) · 「삼국이대장전(三國李大將傳)」(1915·1917·1926 4종) 등 많은 이본이 전한다. # 내용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세종 때 한양성 남산동 이화촌에 이태경이라는 선비가 소년 등과하여 진사가 되었다. 진사 부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으나, 가난하여 효성을...
이태경전 (李泰景傳)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이태경전」은 작자 · 연대 미상의 고전소설이다. 이 작품은 영웅의 일생을 기본 구조로 삼아 전개된다. 내용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는 이 진사의 효행을 중심으로, 중반부는 이 진사의 애정사를 중심으로, 후반부는 이 진사의 아들 형제가 우애로 전쟁을 종식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복 형제가 전장에서 만나 형제임을 깨닫고 전쟁을 멈춘다는 전개가 독특하다.활자본으로는 「리태경전(李泰景傳)」(1916) · 「삼국이대장전(三國李大將傳)」(1915·1917·1926 4종) 등 많은 이본이 전한다. # 내용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세종 때 한양성 남산동 이화촌에 이태경이라는 선비가 소년 등과하여 진사가 되었다. 진사 부부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으나, 가난하여 효성을...
명(明)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의 번역본. 『삼국지통속연의』의 조선 전래 시기는 『조선왕조실록』 1569년(선조 2) 기사에 의거하여 16세기 무렵으로 여겨진다. 이후 이 소설은 금속활자본과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고, 한글로도 번역되어 필사본 · 세책본 · 방각본 · 활판본 등 다양한 형태로 유통되어 읽혔다. 현재까지 확인된 『삼국지통속연의』의 이본은 200여 종이며, 일반필사본 · 세책본 · 방각본 · 활판본의 형태로,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려대학교 · 연세대학교 · 서울대학교 도서관,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각 이본은 『삼국지』 『삼국연의』 『삼국지전』 『삼국대전』 『정치기(鼎峙記)』 등으로 제명이 다양하며, 전체를 번역한 완역본에서부터...
삼국지통속연의 (三國志通俗演義)
명(明) 나관중(羅貫中)이 지은 소설 『삼국연의(三國演義)』의 번역본. 『삼국지통속연의』의 조선 전래 시기는 『조선왕조실록』 1569년(선조 2) 기사에 의거하여 16세기 무렵으로 여겨진다. 이후 이 소설은 금속활자본과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고, 한글로도 번역되어 필사본 · 세책본 · 방각본 · 활판본 등 다양한 형태로 유통되어 읽혔다. 현재까지 확인된 『삼국지통속연의』의 이본은 200여 종이며, 일반필사본 · 세책본 · 방각본 · 활판본의 형태로, 국립중앙도서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고려대학교 · 연세대학교 · 서울대학교 도서관, 순천시립뿌리깊은나무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각 이본은 『삼국지』 『삼국연의』 『삼국지전』 『삼국대전』 『정치기(鼎峙記)』 등으로 제명이 다양하며, 전체를 번역한 완역본에서부터...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된 충청북도 보은군 오정산에 있는 신라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 삼년산성(三年山城)은 충청북도 보은군 오정산에 축조된 신라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된 성곽으로, 축조 시기 및 운영 시기가 명확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삼년산성은 한국 성곽 연구의 기준이 되는 산성이며, 6세기 중엽 신라의 북진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700m이며, 성곽에는 곡성 · 치성 · 보축성벽 · 여장 · 수구 등 여러 시설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건립경위 『삼국사기』 신라본기 자비마립간 13년(470년)조에 따르면, “삼년산성을 쌓았다. 삼 년이라 한 것은 공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완공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이다”라는...
삼년산성 (三年山城)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된 충청북도 보은군 오정산에 있는 신라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 삼년산성(三年山城)은 충청북도 보은군 오정산에 축조된 신라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이 산성은 신라 자비마립간 13년(470)에 축조된 성곽으로, 축조 시기 및 운영 시기가 명확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성이다. 삼년산성은 한국 성곽 연구의 기준이 되는 산성이며, 6세기 중엽 신라의 북진과 관련된 중요한 유적이다. 산성의 전체 둘레는 1,700m이며, 성곽에는 곡성 · 치성 · 보축성벽 · 여장 · 수구 등 여러 시설물들이 온전하게 남아 있다.# 건립경위 『삼국사기』 신라본기 자비마립간 13년(470년)조에 따르면, “삼년산성을 쌓았다. 삼 년이라 한 것은 공사를 시작한 지 3년 만에 완공하였기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붙인 것이다”라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승전이 창건하여 조선시대까지 존속한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있었던 사찰. 갈항사는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의 승려 승전(勝詮)에 의해 창건되었다. 758년(경덕왕 17)에 원성왕 외가의 주도로 동·서 삼층 석탑이 조영되었고, 원성왕 즉위 이후에 사세가 확장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폐사되었다. 현재 동·서 삼층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되었고, 사지에는 석조 여래 좌상과 비로자나 석불 좌상 등이 남아 있다.sense_no=77296) ## 원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攬)』 ## 단행본 - 김복순, 『신라화엄종연구』(민족사, 1990) - 정병삼, 『역주한국고대금석문』 3(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금오산 갈항사 (金烏山 葛項寺)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승전이 창건하여 조선시대까지 존속한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있었던 사찰. 갈항사는 경상북도 김천시에 위치한 사찰로, 신라의 승려 승전(勝詮)에 의해 창건되었다. 758년(경덕왕 17)에 원성왕 외가의 주도로 동·서 삼층 석탑이 조영되었고, 원성왕 즉위 이후에 사세가 확장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 폐사되었다. 현재 동·서 삼층 석탑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이관되었고, 사지에는 석조 여래 좌상과 비로자나 석불 좌상 등이 남아 있다.sense_no=77296) ## 원전 - 『삼국유사(三國遺事)』 - 『삼국사기(三國史記)』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 『조선금석총람(朝鮮金石總攬)』 ## 단행본 - 김복순, 『신라화엄종연구』(민족사, 1990) - 정병삼, 『역주한국고대금석문』 3(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 1992)...
신라 진흥왕대에 백제와 벌인 관산성전투 때 신라 편에 서서 활약한 지방 유력자. 신라 진흥왕대에 백제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삼년산군(지금의 충청북도 보은) 출신의 지방 유력자이다. 554년 백제가 신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관산성(지금의 충청북도 옥천) 전투 때 백제의 성왕을 붙잡아 참살함으로써 신라군이 대승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인적 사항 도도(都刀)는 지금의 충청북도 보은 지역에 신라가 설치한 삼년산군(三年山郡) 출신의 지방 유력자로, 『삼국사기』 권 4 「신라본기」 4 진흥왕 15년 7월조에는 관산성(管山城: 충청북도 옥천)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 비장(裨將)으로서 삼년산군의 고간(高干)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간은 신라 중앙정부에서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수여한 외위 가운데 하나인데, 악간(嶽干)...
도도 (都刀)
신라 진흥왕대에 백제와 벌인 관산성전투 때 신라 편에 서서 활약한 지방 유력자. 신라 진흥왕대에 백제와의 전쟁에서 활약한 삼년산군(지금의 충청북도 보은) 출신의 지방 유력자이다. 554년 백제가 신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관산성(지금의 충청북도 옥천) 전투 때 백제의 성왕을 붙잡아 참살함으로써 신라군이 대승을 거두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인적 사항 도도(都刀)는 지금의 충청북도 보은 지역에 신라가 설치한 삼년산군(三年山郡) 출신의 지방 유력자로, 『삼국사기』 권 4 「신라본기」 4 진흥왕 15년 7월조에는 관산성(管山城: 충청북도 옥천) 전투가 벌어졌을 당시 비장(裨將)으로서 삼년산군의 고간(高干)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간은 신라 중앙정부에서 지방의 유력자들에게 수여한 외위 가운데 하나인데, 악간(嶽干)...
경상북도 경주시 망성산(望星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당시 창건한 사찰. 또한, 이 절의 동쪽에서는 무열왕과 진덕왕을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혀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삼층석탑은 기단부가 중층(重層)이나 갑석(甲石)이 넓으며, 이 기단을 지탱하는 탱석(撑石)이 셋이다. 옥석(屋石) 받침도 네 개로 되어 있어 삼국통일 후의 탑보다 훨씬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총 높이 3.5m의 작은 탑이지만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옥개석(屋蓋石)과 옥신(屋身)을 한 돌로 다듬은 것도 초기 탑의 전형적인 형식인데, 이는 서악동의 영경사지삼층석탑(永敬寺址三層石塔)과 같은 양식이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 『한국의 사찰』3 신라의 폐사 Ⅰ(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4)
망성산 애공사 (望星山 哀公寺)
경상북도 경주시 망성산(望星山)에 있었던 삼국시대 신라의 제24대 진흥왕 당시 창건한 사찰. 또한, 이 절의 동쪽에서는 무열왕과 진덕왕을 장사지냈다는 기록이 전하고 있다. 그러나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혀 전하지 않는다. 현존하는 삼층석탑은 기단부가 중층(重層)이나 갑석(甲石)이 넓으며, 이 기단을 지탱하는 탱석(撑石)이 셋이다. 옥석(屋石) 받침도 네 개로 되어 있어 삼국통일 후의 탑보다 훨씬 소박한 모습을 하고 있다. 총 높이 3.5m의 작은 탑이지만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다. 옥개석(屋蓋石)과 옥신(屋身)을 한 돌로 다듬은 것도 초기 탑의 전형적인 형식인데, 이는 서악동의 영경사지삼층석탑(永敬寺址三層石塔)과 같은 양식이다. - 『삼국유사(三國遺事)』 - 『한국의 사찰』3 신라의 폐사 Ⅰ(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4)
삼국시대, 남경 서하사의 주지를 역임한 고구려의 승려. 승랑(僧朗)은 삼국시대 남경 서하사 주지를 역임한 고구려의 승려이다. 중국으로 건너가 승조(僧肇) 계통의 삼론학을 공부하여 중국에서 삼론종학(三論宗學)을 확립시켰다. 승랑의 사상과 학설을 계승한 사람으로는 수나라 말기 『삼론현의』 등을 저술하며 활약한 승려 길장이 있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189455) [^6]: 당시의 승정(僧正) ## 원전 - 『고승전(高僧傳)』 - 『대승현론(大乘玄論)』 - 『법도전(法度傳)』 - 『법화현의석첨(法華玄義釋籤)』 - 『이제의(二諦義)』 - 김인덕, 『삼론현의 현정론연구(三論玄義 顯正論硏究)』(불교사상사, 1979) - 김잉석, 「승랑(僧朗)을 상승(相承)한 중국삼론(中國三論)의 역사성(歷史性)...
승랑 (僧朗)
삼국시대, 남경 서하사의 주지를 역임한 고구려의 승려. 승랑(僧朗)은 삼국시대 남경 서하사 주지를 역임한 고구려의 승려이다. 중국으로 건너가 승조(僧肇) 계통의 삼론학을 공부하여 중국에서 삼론종학(三論宗學)을 확립시켰다. 승랑의 사상과 학설을 계승한 사람으로는 수나라 말기 『삼론현의』 등을 저술하며 활약한 승려 길장이 있다.[우리말샘](http://opendict.korean.go.kr/dictionary/view?sense_no=189455) [^6]: 당시의 승정(僧正) ## 원전 - 『고승전(高僧傳)』 - 『대승현론(大乘玄論)』 - 『법도전(法度傳)』 - 『법화현의석첨(法華玄義釋籤)』 - 『이제의(二諦義)』 - 김인덕, 『삼론현의 현정론연구(三論玄義 顯正論硏究)』(불교사상사, 1979) - 김잉석, 「승랑(僧朗)을 상승(相承)한 중국삼론(中國三論)의 역사성(歷史性)...
삼국시대 신라의 나마를 역임한 관리. # 내용 경주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다. 태종무열왕 때 관등은 나마(奈麻)에 이르렀다.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맏아들 부과(夫果), 둘째 아들 취도(驟徒), 막내아들 핍실(逼實) 등은 모두 국가를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 죽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
취복 (聚福)
삼국시대 신라의 나마를 역임한 관리. # 내용 경주 사량부(沙梁部) 출신이다. 태종무열왕 때 관등은 나마(奈麻)에 이르렀다.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맏아들 부과(夫果), 둘째 아들 취도(驟徒), 막내아들 핍실(逼實) 등은 모두 국가를 위하여 용감히 싸우다 죽었다. - 『삼국사기(三國史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