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 ()

삼국유사 권4~5
삼국유사 권4~5
출판
문헌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신라 · 고구려 · 백제의 유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삼국유사』는 고려 후기 승려 일연이 신라·고구려·백제의 유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이다. 전체적인 구성은 모두 5권 9편의 체재로 되어 있다. 일연이 고대 역사 중 정사에는 없는 유문과 일사를 바탕으로 찬술하였다. 고대 사회의 역사, 풍속, 종교, 문학, 예술, 언어 등에 관한 사료를 수록하고 있다. 이 책에는 향가나 이두로 표기한 글도 있으며, 향찰로 표기된 혜성가 등 신라 향가 14수는 한국고대문학사에서 절대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우리나라 역사서 가운데 최초로 단군신화를 수록하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정의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이 신라 · 고구려 · 백제의 유사를 편년체로 서술한 역사서.
개설

2002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성암고서박물관 소장본, 범어사 소장본,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 『삼국유사(三國遺事)』는 일연이 고대사 중 정사(正史)에는 없는 유문(遺文)과 일사(逸事)를 바탕으로 찬술한 편년체 형식의 역사서이다. 『삼국사기』와 더불어 한국고대사 연구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자료이다. 즉 고대 사회의 역사, 풍속, 종교, 문학, 예술, 언어 등의 기본서로서, 『삼국사기』에 없는 많은 사료를 수록하고 있다.

권5 권수(卷首)의 ‘국존조계종가지산하린각사주지원경충조대선사일연찬(國尊曹溪宗迦智山下麟角寺住持圓鏡沖照大禪師一然撰)’이라는 기록을 통해 일연이 찬자였음을 알 수 있다.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삼국유사』 권2(보물, 2002년 지정)와 범어사 소장 『삼국유사』 권 4~5(보물, 2002년 지정)는 간행 시기가 가장 이른 현존본 중의 하나로, 조선 초기인 1394년경 경주에서 간행된 책이다. 그리고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삼국유사』 권3~5(보물, 2002년 지정)는 조선 초기 간본을 바탕으로 1512년(중종 7)에 경주에서 다시 간행된 책이다.

편찬/발간 경위

이 책은 고려 말에 찬술되었지만 처음 간행이 이루어진 시기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 찬술된 당시 간행되었는지 아니면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간행된 것인지 불분명하다. 즉 고려 간행을 포함한 세 가지 층위에 대한 견해가 있고 조선에서만 두 차례에 걸쳐 간행되었다고 하는 두 가지 층위에 대한 견해가 있다.

현재 『삼국유사』의 판본 중 간행 연대가 가장 확실한 1512년 경주에서 간행된 임신본의 발문을 통해 당시 이 책을 간행하게 된 배경을 알 수 있다. 발문에 의하면 책판이 남아 있었으나 마멸이 심하여 완본을 구하여 다시 간행하였다는 것이다. 또한 김거두(金居斗)가 경주에 있던 오래된 『삼국사기』를 1394년에 다시 간행하였다는 기록과 1512년 중종 임신년 간본 『삼국사기』 발문에 의하여, 『삼국유사』도 함께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김거두의 발문에는 “계림에 있던 삼국사(三國史)의 인본(印本)은 세월이 오래되어 없어지고 세상에는 사본(寫本)이 통행되므로 안렴사(按廉使) 심효생(沈孝生)이 한 벌을 얻어 전부사(前府使) 진의귀(陳義貴)와 함께 간행(刊行)하기로 하여 ... 갑술년(1394) 4월에 그 완성을 보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삼국유사』 권말에 이계복(李繼福)이 쓴 발문에서 “우리나라의 삼국본사(三國本史)와 유사(遺事)의 두 책은 다른 데서는 간행된 것이 없고 오직 본부(本府 : 경주)에 있었을 뿐인데 오랜 세월을 지나매 판이 깎이고 이지러져 한 줄에 겨우 4,5글자만을 해독할 정도였다. ... 다행히 성주목사(星州牧使) 권주(權輳)가 내가 이 사서(史書)를 구한다는 말을 듣고 그 완본(完本)을 얻어 보냈으므로 나는 기쁘게 받아 감사(監司) 안당(安瑭)과 도사(都事) 박전(朴佺)에게 그 간행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하니 모두 좋다고 하므로 이에 여러 읍에 나누어 새기게 한 다음 본부에 돌려받아 간직하였다.”고 하였다.

『삼국유사』의 전체적인 구성은 먼저 권1 「왕력」에 삼국(三國) 및 가락(駕洛) · 후삼국(後三國)의 왕대(王代)와 연표(年表)가 있다. 다음 「기이(紀異)」에는 고조선부터 삼한(三韓) · 부여 · 고구려 · 백제 · 신라 등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권2는 편목(篇目)이 따로 있지 않고 계속해서 신라 문무왕 이후의 통일신라와 후백제 및 『가락국기』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권3 「흥법(興法)」은 신라의 불법 전래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권4는 「의해(義解)」로 신라시대의 학승(學僧) 및 율사(律師)의 전기를 모았다. 다음 「신주(神呪)」는 밀교(密敎) 신승(神僧)의 사적을 다루었고, 「감통(感通)」은 근행감응(勤行感應)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피은(避隱)」은 행적을 감춘 고승(高僧)의 내용이며, 「효선(孝善)」은 사람들의 효행과 선행에 대해 수록하였다.

『삼국유사』는 초간본 간행 시기 외에도 위에서 언급한 내용 구성의 측면에서도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곧 1512년 정덕본의 각 권의 편차(篇次)에 대한 것인데, 일본인 학자 이마니시류(今西龍)는 「흥법」과 「의해」 사이에 ‘탑상(塔像)’이라는 두 글자가 있는데, 이것이 원래 ‘탑상제 사(塔像第 四)’였고, 이 중 ‘第 四(제 사)’가 탈락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재 대부분의 교감본 및 번역본에서는 그의 주장에 따라 탑상이라는 편차를 설정해 놓고 있다.

이 책의 간행에 관해 유탁일은 일연이 분권(分卷)없이 권자(卷子), 절첩(折帖)의 형식으로 만든 원고본을 일연의 제자 무극(無極)이 1322년 정고본을 만들고 자기 의견을 보입하고 분권하여 일차 간행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조선 초인 1394년 김거두의 발문본(跋文本) 『삼국사기』를 중간할 무렵에 다시 개각 또는 보각되었고, 다시 1512년 『삼국사기』를 개각할 당시 이계복이 전래의 구판(舊板)에다가 80% 이상 보각을 한 것이 중종본 『삼국유사』이다. 즉 모두 3번 또는 그 이상의 전승 층위를 갖는다고 하였다.

송은본(松隱本)은 조선 초기의 간본으로 낙장이 있는 권3, 4, 5의 1책으로 여러 사람의 수장을 거치는 동안 이인영의 학산본(鶴山本), 곽영대본 등의 명칭을 거쳐 현재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또 같은 판본으로 추정되는 왕력(王曆)과 권1 · 2의 개인 수장본 등이 있다.

서지적 사항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유사』의 판본은 여러 종류이나 구한 말 이후 신식활자본으로 간행된 것을 제외하고 고간본으로서는 송은본으로 대표되는 계열과 중종 임신본 계열, 그리고 필사본 등으로 나누어 볼 수가 있다. 그 중에 성암고서박물관 소장 『삼국유사』 권2와 범어사 소장 『삼국유사』 권 4~5는 송은본 계열이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 『삼국유사』 권3~5는 중종 임신본 계열로 고려대학교 육당문고 소장본이며 조선 초기 간본을 바탕으로 1512년에 경주에서 간행한 책이다.

성암고서박물관 소장본은 권2의 1책으로 제17~20장이 결락되었으며, 범어사 소장본은 권4, 5의 1책으로 권5의 제26, 27장이 결락되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보물, 2002년 지정)은 권3, 4, 5의 1책으로 권3의 첫 10장과 권5의 18장 후면부터 마지막 장까지가 결락되었다. 중종 임신본 계열은 현재 일본 봉좌문고에도 소장되어 있는데, 이 판본은 1512년 간본이 완성된 이후 그 바탕이 된 책을 경주부에서 돌려받은 후 따로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이마니시류에 의하면 일본 소장본은 중종 임신본과 판종은 같으나 판의 마멸과 일실 부분이 있는 판본으로, 임진왜란 때에 일본에게 약탈당하여 도쿠가와가에 수장되어 있다가 현재 봉좌문고에 들어가 있는 소위 덕천본(德川本), 역시 같은 시기에 약탈당하여 도쿄의 신전효평가(神田孝平家) 구장의 신전본(神田本), 그리고 와타나베 아키라[渡邊彰]가 수장한 금강산 유점사 구장본이 이에 해당된다.

내용

『삼국유사』의 전체적인 구성은 먼저 모두 5권 9편의 체재이다. 권1 「왕력」에는 삼국 및 가락 · 후삼국의 왕대와 연표가 있다. 다음 「기이」에는 고조선부터 삼한 · 부여 · 고구려 · 백제 · 신라 등에 대한 내용이 실려 있다. 권2는 편목이 따로 있지 않고 계속해서 신라 문무왕 이후의 통일신라와 후백제 및 가락국기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권3 「흥법」은 신라의 불법 전래에 대한 내용을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다.

권4는 「의해」로 신라시대의 학승 및 율사의 전기를 모았다. 다음 권5는 「신주」, 「감통」, 「피은」, 「효선」의 내용이다. 「신주」는 밀교 신승의 사적을 다루었고, 「감통」은 근행감응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이 이어진다. 다음 「피은」은 행적을 감춘 고승의 내용이 이어지며, 「효선」은 사람들의 효행과 선행에 대해 수록하였다. 성암고서박물관 소장본은 이 중에 권2, 범어사 소장본은 권4, 5, 고려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은 권 3, 4, 5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의의와 평가

『삼국유사』는 한국의 고대 사회의 역사, 종교, 문화, 풍속, 언어 등을 연구하기 위한 기본서로 『삼국사기』와 함께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서 가운데 최초로 단군신화를 수록하였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가지는데, 단군을 나라의 시조(國祖)로 언급하였다. 정사의 성격을 지닌 『삼국사기』와는 달리, 이 책은 향가이두로 표기한 글도 있으며, 향찰로 표기된 「혜성가(彗星歌)」 등 신라 향가 14수는 「균여전」에 실린 11수와 함께 한국고대문학사에서 절대적 가치가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역주 삼국유사』(강인구 역, 이회문화사, 2003)
「파른본 『삼국유사』의 서지 연구」(남권희, 『동방학지』162, 연세대학교 출판부, 2012)
「삼국유사의 서지학적 고찰」(김상현, 『삼국유사의 종합적 검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7)
「지원 15년(1287) 인흥사간 『역대년표』와 『삼국유사』」(채상식,『고려사의 제문제』, 삼영사, 1986)
관련 미디어 (4)
집필자
옥영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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