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강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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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복은 일제강점기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적위대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0년대에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에 참가하여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적위대 등을 결성하고,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2년 9월에 적색노동조합조직준비위원회 명의의 격문을 살포하는 활동을 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이듬해 7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옥고의 여독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1933년 7월 28일 순국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고수복 (高壽福)
고수복은 일제강점기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적위대 등에서 활동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30년대에 혁명적 노동조합운동에 참가하여 좌익노동조합준비위원회, 적위대 등을 결성하고,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32년 9월에 적색노동조합조직준비위원회 명의의 격문을 살포하는 활동을 하던 중 일제 경찰에 붙잡혔다가 이듬해 7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옥고의 여독으로 병세가 악화되어 1933년 7월 28일 순국하였다.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구순화는 1919년 황해도 신천의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신천군에서 사립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숭의여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의여학교 졸업 후에는 사립 경신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9년 신천군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27일 신천면 장날에 약 2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일제에 붙잡힌 구순화는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구순화 (具順和)
구순화는 1919년 황해도 신천의 3·1만세운동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신천군에서 사립 경신학교를 졸업하고, 1917년 숭의여학교를 졸업하였다. 숭의여학교 졸업 후에는 사립 경신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19년 신천군에서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27일 신천면 장날에 약 200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불렀다. 일제에 붙잡힌 구순화는 9월 11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6개월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두석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부터 1942년 일제에게 붙잡히기 전까지 평양과 경상남도 곳곳에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1944년 9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9일에 풀려났다. 2004년 사망하였으며, 같은 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김두석 (金斗石)
김두석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40년부터 1942년 일제에게 붙잡히기 전까지 평양과 경상남도 곳곳에서 신사참배 거부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1944년 9월 1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9일에 풀려났다. 2004년 사망하였으며, 같은 해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김봉식은 일제강점기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성장 과정 및 중국 망명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 1940년 2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입대하여 초모활동을 전개하였으며,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1941년 1월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자 해방 때까지 광복군 소속으로 활약하였다. 김봉식이 소속된 한국광복군 제2지대의 대대장은 이범석이며, 중국 산시성을 비롯한 허난성, 허베이성 지역에서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1969년 사망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봉식 (金鳳植)
김봉식은 일제강점기 한국청년전지공작대, 한국광복군에 참여하여 항일투쟁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성장 과정 및 중국 망명 과정 등에 대해서는 알려진 내용이 없다. 1940년 2월,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입대하여 초모활동을 전개하였으며, 한국청년전지공작대가 1941년 1월 한국광복군에 편입되자 해방 때까지 광복군 소속으로 활약하였다. 김봉식이 소속된 한국광복군 제2지대의 대대장은 이범석이며, 중국 산시성을 비롯한 허난성, 허베이성 지역에서 초모활동을 전개하였다. 1969년 사망하였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성심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3월 강서군 함종면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에는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성심 (金誠心)
김성심은 일제강점기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기독교 전도사로 활동하였으며, 1919년 3월 강서군 함종면 3·1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징역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1920년에는 대한애국부인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다가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숙경은 일제강점기 훈춘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황병길과 결혼한 후 국내와 러시아 연해주,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이어가다가, 1930년 7월 만주에서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숙경 (金淑卿)
김숙경은 일제강점기 훈춘대한애국부인회 부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독립운동가 황병길과 결혼한 후 국내와 러시아 연해주, 만주에서 항일투쟁을 이어가다가, 1930년 7월 만주에서 순국하였다.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영실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 대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광복군 총사령부 주호판사처원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10월 순직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영실 (金英實)
김영실은 일제강점기 한국광복군에 입대하여 항일독립운동을 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한국광복군 제3지대 대원으로 활동하였으며, 광복군 총사령부 주호판사처원으로 활동하다가 1945년 10월 순직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온순은 일제강점기 신한농민당 여성부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8년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독립운동가 김광희와 결혼한 후,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만주 망명 후, 1925년에 조직된 길림부인회 서기를 지냈으며, 1930년 신한농민당이 결성되자 여성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1919년 3·1운동에 참가해 옥고를 치렀다고도 알려져 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고, 1994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온순 (金溫順)
김온순은 일제강점기 신한농민당 여성부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8년 평양의 숭의여학교를 졸업하였으며, 독립운동가 김광희와 결혼한 후,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만주 망명 후, 1925년에 조직된 길림부인회 서기를 지냈으며, 1930년 신한농민당이 결성되자 여성부장으로 활동하였다. 한편, 1919년 3·1운동에 참가해 옥고를 치렀다고도 알려져 있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고, 1994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김용복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애국부인회 지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당시 평양의 숭현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대한애국부인회 평양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1921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용복 (金用福)
김용복은 일제강점기 평양에서 애국부인회 지회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당시 평양의 숭현여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대한애국부인회 평양 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이로 인해 1921년 평양복심법원에서 징역 2년 6개월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김윤경은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한인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의 인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32년 3월 한인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난징과 충칭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10월 10일 사망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201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안치되었다.
김윤경 (金允經)
김윤경은 일제강점기 중국 상하이에서 한인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을 역임한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상하이의 인성학교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1932년 3월 한인여자청년동맹 집행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난징과 충칭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45년 10월 10일 사망하였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고, 2018년 국립서울현충원에 위패가 안치되었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항일 독립운동 기념관이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의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사·연구·보존·전시하고, 그 정신을 교육·계승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 전시와 연수 교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념관으로 연 2회 이상의 기획전시와 삼일절·현충일·광복절 선양 행사, 그리고 교육 연수를 통해 독립운동사의 가치와 교훈을 알리는 일을 추진하였다. 1894년 갑오의병에서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지역인들이 전개한 항일투쟁을 기리고, 교육하는 곳이다.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慶尙北道獨立運動記念館)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은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에 있는 항일 독립운동 기념관이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유교문화권의 독립운동을 체계적으로 조사·연구·보존·전시하고, 그 정신을 교육·계승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설립되었다. 전시와 연수 교육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기념관으로 연 2회 이상의 기획전시와 삼일절·현충일·광복절 선양 행사, 그리고 교육 연수를 통해 독립운동사의 가치와 교훈을 알리는 일을 추진하였다. 1894년 갑오의병에서 1945년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지역인들이 전개한 항일투쟁을 기리고, 교육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