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권석봉"
검색결과 총 33건
조선후기 황실제도국총재, 강구회 회장, 흥사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김윤식 (金允植)
조선후기 황실제도국총재, 강구회 회장, 흥사단 단장 등을 역임한 문신. 학자.
개항기 임오군란 당시의 주모자.
김장손 (金長孫)
개항기 임오군란 당시의 주모자.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김창희 (金昌熙)
조선 후기에, 사헌부대사헌, 홍문관제학,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통리기무아문당상, 선혜청당상 등을 역임한 관료.
민겸호 (閔謙鎬)
개항기 통리기무아문당상, 선혜청당상 등을 역임한 관료.
개항기 임오군란 당시의 군인.
김춘영 (金春永)
개항기 임오군란 당시의 군인.
조선 후기에, 한성부우윤, 인천부관찰사, 충주부재판소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김규식 (金奎軾)
조선 후기에, 한성부우윤, 인천부관찰사, 충주부재판소판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황해도병마절도사, 충청도병마절도사, 내부협판 등을 역임한 무신.
신석희 (申奭熙)
조선후기 황해도병마절도사, 충청도병마절도사, 내부협판 등을 역임한 무신.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어머니로, 고종 초기에 천주교 신자로서 프랑스 선교사의 힘을 빌려 러시아를 견제하려 했으나 실패한 왕족.
여흥부대부인 민씨 (驪興府大夫人 閔氏)
조선의 제26대 왕, 고종의 어머니로, 고종 초기에 천주교 신자로서 프랑스 선교사의 힘을 빌려 러시아를 견제하려 했으나 실패한 왕족.
대한제국기 관료·학자 김윤식이 유배 생활과 정계의 동향 등을 기록한 일기.
속음청사 (續陰晴史)
대한제국기 관료·학자 김윤식이 유배 생활과 정계의 동향 등을 기록한 일기.
조선후기 우변포도대장, 행지삼군부사,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신명순 (申命淳)
조선후기 우변포도대장, 행지삼군부사, 지돈녕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영선사는 개항기에 최초로 청나라에 파견한 유학생 인솔 사행이다. 1881년 순천부사 김윤식을 영선사로 삼아 무기제조법을 배워오기 위해 파견되었다. 유학생의 수는 학도 20명, 천인 신분 공장 18명 등 총 38명이었다. 학습 내용에는 톈진기기국에서 화약·탄약의 제조법을 비롯해 전기·화학·제도·제련·기초 기계학 등은 물론 외국어의 학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학습은 임오군란으로 유학생이 조기 귀국하면서 종료되었다. 영선사의 또 다른 임무는 연미사 파견에 관한 사전교섭이었는데, 8차례에 걸친 회담을 통해 1882년 제물포에서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낳았다.
영선사 (領選使)
영선사는 개항기에 최초로 청나라에 파견한 유학생 인솔 사행이다. 1881년 순천부사 김윤식을 영선사로 삼아 무기제조법을 배워오기 위해 파견되었다. 유학생의 수는 학도 20명, 천인 신분 공장 18명 등 총 38명이었다. 학습 내용에는 톈진기기국에서 화약·탄약의 제조법을 비롯해 전기·화학·제도·제련·기초 기계학 등은 물론 외국어의 학습도 포함되어 있었다. 학습은 임오군란으로 유학생이 조기 귀국하면서 종료되었다. 영선사의 또 다른 임무는 연미사 파견에 관한 사전교섭이었는데, 8차례에 걸친 회담을 통해 1882년 제물포에서 조미수호조약을 체결하는 성과를 낳았다.
개항기 때, 홍문관교리·참의교섭통상사무·성균관대사성·의정부좌참찬·공조판서 등을 엮임한 문신.
서상우 (徐相雨)
개항기 때, 홍문관교리·참의교섭통상사무·성균관대사성·의정부좌참찬·공조판서 등을 엮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삼남염찰사, 호남선무사, 중추원일등의관 등을 역임한 문신.
엄세영 (嚴世永)
조선 후기에, 삼남염찰사, 호남선무사, 중추원일등의관 등을 역임한 문신.
임오군란은 1882년(고종 19) 6월 9일 훈국병들의 군료분쟁에서 발단해 고종 친정 이후 실각한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된 정변이다. 무위영 소속 군병들에게 양이 절반밖에 안 되고 겨와 모래가 섞인 군료를 지급한 것이 발단이었다. 소요가 일어나자 민겸호는 주동자를 혹독하게 고문한 후 처형케 했다. 이에 격분한 군병들이 통문으로 결집을 호소하여 대규모 폭동으로 발전했다. 척신·관료의 집을 습격하고 마침내 궐내로 난입해 이최응·민겸호·김보현을 살해했다. 고종은 대원군에게 사태수습을 맡기지 않을 수 없었고 대원군은 다시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임오군란 (壬午軍亂)
임오군란은 1882년(고종 19) 6월 9일 훈국병들의 군료분쟁에서 발단해 고종 친정 이후 실각한 대원군이 다시 집권하게 된 정변이다. 무위영 소속 군병들에게 양이 절반밖에 안 되고 겨와 모래가 섞인 군료를 지급한 것이 발단이었다. 소요가 일어나자 민겸호는 주동자를 혹독하게 고문한 후 처형케 했다. 이에 격분한 군병들이 통문으로 결집을 호소하여 대규모 폭동으로 발전했다. 척신·관료의 집을 습격하고 마침내 궐내로 난입해 이최응·민겸호·김보현을 살해했다. 고종은 대원군에게 사태수습을 맡기지 않을 수 없었고 대원군은 다시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개항기 때, 사헌부대사헌, 도총관,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임응준 (任應準)
개항기 때, 사헌부대사헌, 도총관,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대한제국기 봉상시제조, 의정부참정,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이헌영 (李헌永)
대한제국기 봉상시제조, 의정부참정, 궁내부특진관 등을 역임한 관료.
개항기 때, 도총관,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회정 (李會正)
개항기 때, 도총관,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항기 임오군란 당시의 군인.
유복만 (柳卜萬)
개항기 임오군란 당시의 군인.
대한제국기 관료·학자 김윤식이 1881년 9월 1일부터 1883년 8월 25일까지 사행에 관련된 사항을 기록한 일기.
음청사 (陰晴史)
대한제국기 관료·학자 김윤식이 1881년 9월 1일부터 1883년 8월 25일까지 사행에 관련된 사항을 기록한 일기.
개항기 때, 의정부좌참찬,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
조병창 (趙秉昌)
개항기 때, 의정부좌참찬, 예문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