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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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궁남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백제 시대의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의해 백제 무왕 35년(634)에 궁궐 남쪽에 만든 것이라 하여 궁남지라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의 용과 정을 통하여 무왕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궁남지는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훼손되어 연못 주변은 농지로 이용되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우물과 몇 개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궁남지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궁궐 연못이다. 조성 기록이 명확하고 백제의 조경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부여 궁남지 (扶餘 宮南池)
부여 궁남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에 있는 백제 시대의 연못이다. 『삼국사기』에 의해 백제 무왕 35년(634)에 궁궐 남쪽에 만든 것이라 하여 궁남지라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의 용과 정을 통하여 무왕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궁남지는 백제가 멸망한 뒤에는 훼손되어 연못 주변은 농지로 이용되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우물과 몇 개의 주춧돌이 남아 있다. 궁남지는 우리나라에서 현재 알려진 가장 오래된 궁궐 연못이다. 조성 기록이 명확하고 백제의 조경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토성.
서울 몽촌토성 (서울 夢村土城)
서울특별시 송파구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성곽. 토성.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남한산성 (南漢山城)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시기에 축조되어 조선시대 수도 한양을 지키던 성곽. 산성.
금정산성은 부산 금정구 금정산 정상부에 있는 조선 시대 돌로 쌓은 성곽이다. 동래산성이라고도 한다. 성벽은 18,845m, 성벽 둘레는 9,011보, 높이가 15척이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4곳의 성문과 물이 흘러나가는 수구문, 누가 없이 만들어진 암문 등이 있다. 1667년(현종 8)에 보수를 건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축성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금정산성은 조선 시대 국방사 연구와 해안 관방체계 연구에 중요한 산성이다.
금정산성 (金井山城)
금정산성은 부산 금정구 금정산 정상부에 있는 조선 시대 돌로 쌓은 성곽이다. 동래산성이라고도 한다. 성벽은 18,845m, 성벽 둘레는 9,011보, 높이가 15척이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 일대가 내려다보이는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동서남북 4곳의 성문과 물이 흘러나가는 수구문, 누가 없이 만들어진 암문 등이 있다. 1667년(현종 8)에 보수를 건의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축성되었다. 이후 여러 차례 수축과 개축이 이루어졌다. 금정산성은 조선 시대 국방사 연구와 해안 관방체계 연구에 중요한 산성이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협축 성곽. 산성.
단양 온달산성 (丹陽 溫達山城)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협축 성곽. 산성.
충청북도 단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석축 성곽. 산성.
단양적성 (丹陽赤城)
충청북도 단성면에 있는 삼국시대 테뫼식으로 축조된 신라의 석축 성곽. 산성.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토석혼축 성곽. 산성.
고령 주산성 (高靈 主山城)
경상북도 고령군에 있는 삼국시대 가야의 토석혼축 성곽. 산성.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에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용된 석축 성곽. 산성.
김해 분산성 (金海 盆山城)
경상남도 김해시에 있는 삼국시대 에 축조되어 조선시대까지 이용된 석축 성곽. 산성.
이천 설봉산성은 경기도 이천시 사음동에 있는 삼국시대 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부학산성, 무학산성, 관고리성이라고도 하며, 2000년 9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천의 해발 394.3m의 설봉산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700m 떨어진 봉우리의 7∼9부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서쪽 설봉산 봉우리와 북쪽 봉우리에 2개의 부성(副城)을 두고 있다. 성벽과 성 안에서는 6세기 중엽~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따라서 백제 성곽 위에 신라가 돌로 성벽을 다시 쌓아 통일신라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천 설봉산성 (利川 雪峰山城)
이천 설봉산성은 경기도 이천시 사음동에 있는 삼국시대 에 축조된 테뫼식 산성이다. 부학산성, 무학산성, 관고리성이라고도 하며, 2000년 9월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천의 해발 394.3m의 설봉산 정상부에서 북동쪽으로 약 700m 떨어진 봉우리의 7∼9부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테뫼식 산성이다. 산성의 서쪽 설봉산 봉우리와 북쪽 봉우리에 2개의 부성(副城)을 두고 있다. 성벽과 성 안에서는 6세기 중엽~통일신라시대에 이르는 유물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따라서 백제 성곽 위에 신라가 돌로 성벽을 다시 쌓아 통일신라까지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익산토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오금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포곡식 성곽이다. 보덕성이라고도 부른다. 오금산 봉우리에서 동서의 산등성이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이 성에서는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걸친 많은 토기와 기와류가 출토되었다. 원래 백제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가 백제 말이나 통일신라 초에 돌로 고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고려시대까지 존속하며 산성으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4m 안팎이고 너비는 5.5~6m이다. 석축과 토루의 두 가지 축성 방법으로 축조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익산토성 (益山土城)
익산토성은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오금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포곡식 성곽이다. 보덕성이라고도 부른다. 오금산 봉우리에서 동서의 산등성이에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이 성에서는 백제, 통일신라, 고려시대에 걸친 많은 토기와 기와류가 출토되었다. 원래 백제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가 백제 말이나 통일신라 초에 돌로 고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이 성은 고려시대까지 존속하며 산성으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4m 안팎이고 너비는 5.5~6m이다. 석축과 토루의 두 가지 축성 방법으로 축조되었음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진주성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에 개축된 석축 성곽이다. 촉석성, 진주읍성이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을 이룬 곳 중의 하나로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 성에서 대승을 했다. 현재 내수문·외수문·포루·촉석루·산성사·창렬사·충민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진주성은 1970년대에 복원 정비된 것이다. 진주성은 고려 말 이후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고쳐 쌓았던 성이다. 따라서 축성 방법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임진왜란의 산 역사를 담고 있는 성으로 당시의 국방사 연구에도 중요하다.
진주성 (晉州城)
진주성은 경상남도 진주시에 있는 고려 후기에 개축된 석축 성곽이다. 촉석성, 진주읍성이라고도 불린다.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을 이룬 곳 중의 하나로 진주목사 김시민이 이 성에서 대승을 했다. 현재 내수문·외수문·포루·촉석루·산성사·창렬사·충민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지금의 진주성은 1970년대에 복원 정비된 것이다. 진주성은 고려 말 이후 조선 시대에 여러 차례 고쳐 쌓았던 성이다. 따라서 축성 방법의 변천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임진왜란의 산 역사를 담고 있는 성으로 당시의 국방사 연구에도 중요하다.
하남 이성산성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가 축조한 포곡식 성곽이다. 축성 기법과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6세기 중반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은 해발 209.8m의 이성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계곡을 감싸고 있다. 성벽에 있는 남문터와 동문터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 구조이다. 이성산성은 신라가 한강 하류 지역으로 진출한 뒤에 설치한 신주의 치소성이었다. 이후 한산주의 치소성으로 활용되면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과 지방지배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하남 이성산성 (河南 二聖山城)
하남 이성산성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가 축조한 포곡식 성곽이다. 축성 기법과 출토 유물 등으로 보아 6세기 중반에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산성은 해발 209.8m의 이성산 정상부에서 남쪽으로 계곡을 감싸고 있다. 성벽에 있는 남문터와 동문터는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야 하는 현문식 구조이다. 이성산성은 신라가 한강 하류 지역으로 진출한 뒤에 설치한 신주의 치소성이었다. 이후 한산주의 치소성으로 활용되면서 행정과 군사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신라의 한강 유역 진출과 지방지배 체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
함안 성산산성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과 함안면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테뫼식 성곽이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해발 139.4m의 조남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주변의 능선을 따라 돌로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축성 방법이나 성돌의 가공 기술 등에서 전형적인 신라 석축산성의 특징이 나타난다. 저수시설은 동문터 주변에 있다. 저수지 뻘층에서는 나무로 만든 여러 농공구류와 용기류, 그리고 많은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산성은 신라의 가야지역 진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함안 성산산성 (咸安 城山山城)
함안 성산산성은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과 함안면 일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테뫼식 성곽이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해발 139.4m의 조남산 정상부를 둘러싸고 주변의 능선을 따라 돌로 성벽을 쌓았다. 성벽의 축성 방법이나 성돌의 가공 기술 등에서 전형적인 신라 석축산성의 특징이 나타난다. 저수시설은 동문터 주변에 있다. 저수지 뻘층에서는 나무로 만든 여러 농공구류와 용기류, 그리고 많은 목간이 출토되었다. 이 산성은 신라의 가야지역 진출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함양 사근산성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테뫼식 석축 성곽이다. 세 방향으로 남강을 끼고 절벽을 이룬 천연의 요새에 위치하고 있다. 빠르면 6세기 중엽, 늦어도 고려 말에는 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화산의 능선을 따라 바깥쪽 벽에만 돌을 쌓은 편축 방식의 산성인데 성벽은 현재 대부분 무너지고 동북쪽 골짜기에 일부 남아 있다. 성내에서 건물터와 문터가 확인되었고 석축 연못도 발견되었다. 고려, 조선시대에 남해안을 통해 영호남에 출몰하던 왜구 방어를 위한 대표적인 산성으로, 고대 산성의 축성 기법이 남아 있는 유적이다.
함양 사근산성 (咸陽 沙斤山城)
함양 사근산성은 경상남도 함양군 수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테뫼식 석축 성곽이다. 세 방향으로 남강을 끼고 절벽을 이룬 천연의 요새에 위치하고 있다. 빠르면 6세기 중엽, 늦어도 고려 말에는 축성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연화산의 능선을 따라 바깥쪽 벽에만 돌을 쌓은 편축 방식의 산성인데 성벽은 현재 대부분 무너지고 동북쪽 골짜기에 일부 남아 있다. 성내에서 건물터와 문터가 확인되었고 석축 연못도 발견되었다. 고려, 조선시대에 남해안을 통해 영호남에 출몰하던 왜구 방어를 위한 대표적인 산성으로, 고대 산성의 축성 기법이 남아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