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성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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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경은 일제강점기 『교간당사본능가사자기』를 발간하여 초기 선종사 연구의 발판을 마련한 불교학자이다. 1927년 일본 오타니대학 지나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28년에 북경대학교에서 조선어 및 일본어 강사로 근무했다. 이때 중국의 선종 연구자인 후스로부터 돈황본 『능가사자기』를 받아 교간본을 출판하고, 후스와 스즈키 다이세츠가 학문적 교류를 맺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중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한국전쟁 중에 행방불명되었다.
김구경 (金九經)
김구경은 일제강점기 『교간당사본능가사자기』를 발간하여 초기 선종사 연구의 발판을 마련한 불교학자이다. 1927년 일본 오타니대학 지나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1928년에 북경대학교에서 조선어 및 일본어 강사로 근무했다. 이때 중국의 선종 연구자인 후스로부터 돈황본 『능가사자기』를 받아 교간본을 출판하고, 후스와 스즈키 다이세츠가 학문적 교류를 맺는데 큰 역할을 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중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한국전쟁 중에 행방불명되었다.
내원사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천성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가 신통력으로 구원한 1,000명의 중국 승려가 신라에 와서 제자가 되어, 그들이 머물 곳을 위해 사찰을 지었다는 창건 설화가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전한다. 일제강점기에는 경허(鏡虛)의 제자인 혜월(慧月)이 주석(駐錫)하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지만, 수덕사(修德寺) 비구니 수옥(守玉)에 의해 중건(重建)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성산 내원사 (千聖山 內院寺)
내원사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천성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가 신통력으로 구원한 1,000명의 중국 승려가 신라에 와서 제자가 되어, 그들이 머물 곳을 위해 사찰을 지었다는 창건 설화가 『송고승전(宋高僧傳)』에 전한다. 일제강점기에는 경허(鏡虛)의 제자인 혜월(慧月)이 주석(駐錫)하면서 선풍을 크게 일으켰다.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지만, 수덕사(修德寺) 비구니 수옥(守玉)에 의해 중건(重建)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내장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영은이 창건한 사찰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24교구 본사(本寺)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末寺)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중창(重創)되면서 영은사(靈隱寺)와 내장사로 병칭(竝稱)되다가 1938년의 중건(重建)으로부터 내장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립되었다. 특히 근대 학명 선사(鶴鳴 禪師, 1867~1929)가 사찰을 중수하고 자립 경제를 실천하면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내장산 내장사 (內藏山 內藏寺)
내장사는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승려 영은이 창건한 사찰이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大韓佛敎曹溪宗) 제24교구 본사(本寺)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末寺)이다. 근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 중창(重創)되면서 영은사(靈隱寺)와 내장사로 병칭(竝稱)되다가 1938년의 중건(重建)으로부터 내장사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정립되었다. 특히 근대 학명 선사(鶴鳴 禪師, 1867~1929)가 사찰을 중수하고 자립 경제를 실천하면서 기반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다솔사(多率寺)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봉명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연기가 창건한 사찰이다. 화재로 여러 차례 소실되어 중건(重建)을 반복하면서 영악사(靈嶽寺)와 다솔사 등으로 병칭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14년의 화재 이후 새로 재건된 것이다. 1930년대부터 주지(住持)를 역임한 최범술(崔凡述)의 불사로 사역(寺域)이 정비되었고, 한용운(韓龍雲)・허영호(許永鎬)・김법린(金法麟)・김범부(金凡夫)・김동리(金東里) 등이 머물며 민족의식을 고취한 사찰이기도 하다.
봉명산 다솔사 (鳳鳴山 多率寺)
다솔사(多率寺)는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봉명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연기가 창건한 사찰이다. 화재로 여러 차례 소실되어 중건(重建)을 반복하면서 영악사(靈嶽寺)와 다솔사 등으로 병칭되었다. 현재의 모습은 1914년의 화재 이후 새로 재건된 것이다. 1930년대부터 주지(住持)를 역임한 최범술(崔凡述)의 불사로 사역(寺域)이 정비되었고, 한용운(韓龍雲)・허영호(許永鎬)・김법린(金法麟)・김범부(金凡夫)・김동리(金東里) 등이 머물며 민족의식을 고취한 사찰이기도 하다.
백성욱은 대한민국 동국대학교 총장 및 동국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0년대 불교중앙학림을 졸업하고 3.1운동을 경험한 후, 1920년대 초반 프랑스와 독일에서 서양철학 및 근대 불교학을 수학하고 귀국하였다.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지만 10년 동안 금강산에서 수행 정진에 매진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잠시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행정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백성욱 (白性郁)
백성욱은 대한민국 동국대학교 총장 및 동국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1910년대 불교중앙학림을 졸업하고 3.1운동을 경험한 후, 1920년대 초반 프랑스와 독일에서 서양철학 및 근대 불교학을 수학하고 귀국하였다.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지만 10년 동안 금강산에서 수행 정진에 매진하기도 했다. 해방 후에는 잠시 정치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동국대학교 총장을 역임하는 등 교육행정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법련사는 조선 후기 인선왕후가 창건한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사찰이다.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인선왕후는 죽은 아버지 장유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사찰을 창건하였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사찰의 절반이 파괴되었고, 이후 대은・복만・도원 등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수리산 법련사 (修理山 法蓮寺)
법련사는 조선 후기 인선왕후가 창건한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사찰이다.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가 돌아온 인선왕후는 죽은 아버지 장유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 사찰을 창건하였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사찰의 절반이 파괴되었고, 이후 대은・복만・도원 등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보정은 일제강점기 송광사의 부휴계 법맥을 계승하고 교육과 저술 활동에 매진한 승려이다. 출가 후 대한제국기에는 송광사 총섭으로서 교정 업무에 힘썼으며, 1910년 이후로는 전통 강원 교육과 신식 교육을 병행하면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또한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불교사 인식에서 부휴계 정통의 계파 의식을 드러내고 조계종을 표방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보정 (寶鼎)
보정은 일제강점기 송광사의 부휴계 법맥을 계승하고 교육과 저술 활동에 매진한 승려이다. 출가 후 대한제국기에는 송광사 총섭으로서 교정 업무에 힘썼으며, 1910년 이후로는 전통 강원 교육과 신식 교육을 병행하면서 후학 양성에 전념하였다. 또한 많은 저술을 남겼는데, 특히 불교사 인식에서 부휴계 정통의 계파 의식을 드러내고 조계종을 표방하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봉선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에 있는 고려 전기 승려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한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운악사였으나, 조선 예종대에 세조를 추모하는 능침이 되면서 선왕을 받든다는 의미에서 봉선사로 바꿔 불렀다. 조선시대 교종의 수사찰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30본산 중 하나로서 경기도 북부 지역의 말사들을 관할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주지를 역임한 홍월초는 여러 전각을 중수하고 강원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등 봉선사의 중흥을 이끌었다.
운악산 봉선사 (雲岳山 奉先寺)
봉선사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전읍에 있는 고려 전기 승려 법인국사 탄문이 창건한 사찰이다. 원래 이름은 운악사였으나, 조선 예종대에 세조를 추모하는 능침이 되면서 선왕을 받든다는 의미에서 봉선사로 바꿔 불렀다. 조선시대 교종의 수사찰이었고, 일제강점기에는 30본산 중 하나로서 경기도 북부 지역의 말사들을 관할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주지를 역임한 홍월초는 여러 전각을 중수하고 강원을 설립하여 후학을 양성하는 등 봉선사의 중흥을 이끌었다.
심향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산(錦城山)에 있는 사찰이다. 처음 이름은 미륵원이었고, 고려시대에 신왕사였으며, 18세기 후반부터는 심향사라고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미륵전과 대웅전 등이 있으며, 석조여래좌상과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일원은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등록되었다.
금성산 심향사 (錦城山 尋香寺)
심향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원효가 창건한 전라남도 나주시 금성산(錦城山)에 있는 사찰이다. 처음 이름은 미륵원이었고, 고려시대에 신왕사였으며, 18세기 후반부터는 심향사라고 불렸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미륵전과 대웅전 등이 있으며, 석조여래좌상과 건칠아미타여래좌상이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사찰 일원은 전라남도 문화유산자료로 등록되었다.
영원사는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해호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시대 혜거국사와 조선시대 사명대사 등이 중창하였고, 1825년에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희사를 받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폐허가 되었지만, 오늘날 다시 복원되어 대웅전·명부전·유리보전·산신각·요사채·범종각 등의 당우를 갖추고 있으며,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범종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원적산 영원사 (圓寂山 靈源寺)
영원사는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해호가 창건한 사찰이다. 고려시대 혜거국사와 조선시대 사명대사 등이 중창하였고, 1825년에 영안부원군 김조순의 희사를 받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폐허가 되었지만, 오늘날 다시 복원되어 대웅전·명부전·유리보전·산신각·요사채·범종각 등의 당우를 갖추고 있으며,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범종 등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용암사는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장령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신이 창건한 사찰이다. 사찰명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지어진 것이었으나, 바위는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고 흔적만 남아 있다. 마의태자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마애여래입상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 외 동·서삼층석탑,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등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장령산 용암사 (長靈山 龍巖寺)
용암사는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장령산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승려 의신이 창건한 사찰이다. 사찰명은 경내에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어서 지어진 것이었으나, 바위는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고 흔적만 남아 있다. 마의태자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데, 마애여래입상은 그를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 외 동·서삼층석탑, 목조 아미타여래좌상 등이 국가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유형은 개항기 양주 천마산에서 『선원소류』, 『설두시집』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긍선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우고 강석을 이어받아 20여 년 동안 학인을 지도하는 데 힘썼다. 그는 『선원소류』를 지어 긍선의 삼종선 논리를 비판했던 의순과 홍기의 논지를 반박함으로써, 조사선의 우월성과 선과 교가 다르다고 하는 긍선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유형 (有炯)
유형은 개항기 양주 천마산에서 『선원소류』, 『설두시집』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긍선으로부터 화엄경을 배우고 강석을 이어받아 20여 년 동안 학인을 지도하는 데 힘썼다. 그는 『선원소류』를 지어 긍선의 삼종선 논리를 비판했던 의순과 홍기의 논지를 반박함으로써, 조사선의 우월성과 선과 교가 다르다고 하는 긍선의 주장을 지지하였다.
음관은 개항기 선풍을 크게 일으킨 경허로부터 법을 인가 받고 보살행을 실천한 승려이다. 고아로 성장하여 머슴살이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29세의 나이로 서산 천장암에서 태허 성원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평생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천수다라니를 암송하였고, 병을 고쳐 주는 신통력을 얻어 만주와 간도 지역에서 보살행을 실천하였다.
음관 (音觀)
음관은 개항기 선풍을 크게 일으킨 경허로부터 법을 인가 받고 보살행을 실천한 승려이다. 고아로 성장하여 머슴살이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29세의 나이로 서산 천장암에서 태허 성원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이후 평생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천수다라니를 암송하였고, 병을 고쳐 주는 신통력을 얻어 만주와 간도 지역에서 보살행을 실천하였다.
임제종은 1911년 순천 송광사에서 설립된 한국 근대 불교의 한 종파이다. 근대 최초의 종단인 원종의 종정 이회광이 일본 불교 조동종과 맹약을 체결하자 이에 반발하여 영남과 호남 지역의 사찰과 승려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임제종은 식민지기 불교 청년의 주체성 형성과 한국 불교의 전통을 정립하고자 했던 선학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임제종 (臨濟宗)
임제종은 1911년 순천 송광사에서 설립된 한국 근대 불교의 한 종파이다. 근대 최초의 종단인 원종의 종정 이회광이 일본 불교 조동종과 맹약을 체결하자 이에 반발하여 영남과 호남 지역의 사찰과 승려를 중심으로 설립되었다. 임제종은 식민지기 불교 청년의 주체성 형성과 한국 불교의 전통을 정립하고자 했던 선학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춘성은 만해 한용운의 제자로서 해방 이전 신흥사 및 석왕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3·1운동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한용운이 쓴 「조선독립의 서」를 비밀리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여 알렸던 인물이다. 수덕사 만공 선사에게서 전법수행을 하고, 선학원에서 안거 수행을 하는 등 선승으로서 활동하였다. 평소 거리낌 없는 생활로 무애도인(無碍道人)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춘성 (春城)
춘성은 만해 한용운의 제자로서 해방 이전 신흥사 및 석왕사 주지 등을 역임한 승려이다. 3·1운동 당시 서대문형무소에서 한용운이 쓴 「조선독립의 서」를 비밀리에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에 전달하여 알렸던 인물이다. 수덕사 만공 선사에게서 전법수행을 하고, 선학원에서 안거 수행을 하는 등 선승으로서 활동하였다. 평소 거리낌 없는 생활로 무애도인(無碍道人)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혜일은 범어사 금어선원의 조실로서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을 역임한 승려이다. 계정혜 삼학 중에서도 계행의 실천을 강조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50년대 불교 정화 운동을 선두에서 주도하였다. 범어사의 금강계단 전통을 정립시켰으며, 전계 대화상이 되어 많은 불제자를 배출하였다.
혜일 (慧日)
혜일은 범어사 금어선원의 조실로서 대한불교조계종의 종정을 역임한 승려이다. 계정혜 삼학 중에서도 계행의 실천을 강조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50년대 불교 정화 운동을 선두에서 주도하였다. 범어사의 금강계단 전통을 정립시켰으며, 전계 대화상이 되어 많은 불제자를 배출하였다.
태허 홍선(太虛泓宣, 1905~1979)은 대한불교불입종의 초대 종정으로 한중불교회 고문을 역임한 승려이다. 그는 서울 종로의 낙산 기슭에 묘각사를, 경상북도 상주에 백화암 등을 창건하고 수행 정진함과 동시에 포교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 묘법연화경』 과 법화 신앙을 토대로 승속이 일체가 되는 종단을 표방하며 불입종을 창종하였다.
홍선 (泓宣)
태허 홍선(太虛泓宣, 1905~1979)은 대한불교불입종의 초대 종정으로 한중불교회 고문을 역임한 승려이다. 그는 서울 종로의 낙산 기슭에 묘각사를, 경상북도 상주에 백화암 등을 창건하고 수행 정진함과 동시에 포교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 묘법연화경』 과 법화 신앙을 토대로 승속이 일체가 되는 종단을 표방하며 불입종을 창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