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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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02~737년이며,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서 형 효소왕이 후사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즉위 후 축성과 민생안정 사업에 주력했다. 잦은 수해와 전염병 만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정전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과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꾀했다. 발해와 당의 대립을 기회로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패강 이남 지역에 대한 영유권도 인정받았다. 유교적 예제를 정비하고 국가불교도 고취하여 신라 천년의 역사 중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덕왕 (聖德王)
성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02~737년이며,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서 형 효소왕이 후사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즉위 후 축성과 민생안정 사업에 주력했다. 잦은 수해와 전염병 만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정전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과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꾀했다. 발해와 당의 대립을 기회로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패강 이남 지역에 대한 영유권도 인정받았다. 유교적 예제를 정비하고 국가불교도 고취하여 신라 천년의 역사 중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지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9~500년이고, 자비마립간의 장자로 왕위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효행을 지녔으며 겸손하고 공손해 사람들이 모두 감복했다고 한다. 기간 도로를 수리하고 수도에 시장을 열어 물화를 유통하게 했으며 전국적 연락망을 갖추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잦은 고구려의 침략을 백제와 동맹을 맺거나 가야와 연합해 막아냈고, 병사 위문과 민심 수습을 위해 지방 순행에 나서기도 했다. 백제 동성왕과는 결혼동맹을 맺기도 했으며 변경지방 요충지의 성을 개축하거나 증축해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했다.
소지마립간 (炤知麻立干)
소지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9~500년이고, 자비마립간의 장자로 왕위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효행을 지녔으며 겸손하고 공손해 사람들이 모두 감복했다고 한다. 기간 도로를 수리하고 수도에 시장을 열어 물화를 유통하게 했으며 전국적 연락망을 갖추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잦은 고구려의 침략을 백제와 동맹을 맺거나 가야와 연합해 막아냈고, 병사 위문과 민심 수습을 위해 지방 순행에 나서기도 했다. 백제 동성왕과는 결혼동맹을 맺기도 했으며 변경지방 요충지의 성을 개축하거나 증축해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했다.
신문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81~692년이며 문무왕의 장자이다. 즉위하던 해에 일어난 귀족세력의 반란을 진압하고 철저히 숙청함으로써 왕권을 공고히 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관제의 정비, 5소경제와 9주 및 군현제의 완성 등 지방통치체제 정비를 통해 전제왕권 중심의 통치질서를 완비했다. 9서당제 군사조직을 완성했고,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세조를 차등 있게 지급해 관리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동해에서 얻었다는 만파식적은 일체의 정치적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왕실의 소망이 담긴 평화의 상징물이다.
신문왕 (神文王)
신문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81~692년이며 문무왕의 장자이다. 즉위하던 해에 일어난 귀족세력의 반란을 진압하고 철저히 숙청함으로써 왕권을 공고히 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관제의 정비, 5소경제와 9주 및 군현제의 완성 등 지방통치체제 정비를 통해 전제왕권 중심의 통치질서를 완비했다. 9서당제 군사조직을 완성했고,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세조를 차등 있게 지급해 관리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동해에서 얻었다는 만파식적은 일체의 정치적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왕실의 소망이 담긴 평화의 상징물이다.
실성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02~417년이며, 내물왕이 죽은 뒤 아들들이 나이가 어려 화백회의에서 실성을 왕위에 추대했다. 미사품을 서불한으로 삼고 군사와 국정을 위임했다. 외교적으로는 왜와 고구려에 내물왕의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 화의를 도모했고, 왜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응징했다. 내물왕의 태자 눌지가 덕망이 높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자 고구려의 힘을 빌려 눌지를 제거하려 했으나 고구려는 눌지를 지원해 실성왕을 살해했다. 이 정변으로 실성왕의 모계 석씨세력은 소멸되었다.
실성마립간 (實聖麻立干)
실성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02~417년이며, 내물왕이 죽은 뒤 아들들이 나이가 어려 화백회의에서 실성을 왕위에 추대했다. 미사품을 서불한으로 삼고 군사와 국정을 위임했다. 외교적으로는 왜와 고구려에 내물왕의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 화의를 도모했고, 왜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응징했다. 내물왕의 태자 눌지가 덕망이 높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자 고구려의 힘을 빌려 눌지를 제거하려 했으나 고구려는 눌지를 지원해 실성왕을 살해했다. 이 정변으로 실성왕의 모계 석씨세력은 소멸되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대장군, 상대등, 섭정왕 등을 역임한 귀족. 대신.
알천 (閼川)
삼국시대 신라의 대장군, 상대등, 섭정왕 등을 역임한 귀족. 대신.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을 역임한 귀족.
염장 (廉長)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을 역임한 귀족.
삼국시대 신라의 각간으로 대등을 역임한 관리.
임종 (林宗)
삼국시대 신라의 각간으로 대등을 역임한 관리.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부인 또는 종녀(宗女)로 알려진 귀족.
재매부인 (財買夫人)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부인 또는 종녀(宗女)로 알려진 귀족.
지증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00~514년이며, 재종형인 소지마립간이 후계자 없이 죽자 64세에 왕위에 올랐다. 우경을 시행하여 농업생산력을 높였고 순장을 금지했다. 503년에는 그 동안 사라·사로·신라 등으로 사용되던 국명을 신라로 확정했고, 왕호를 방언인 마립간에서 중국식인 왕으로 바꾸어 비로소 고대국가로 정비된 신라국의 왕이 되었다. 전국에 주·군·현을 설치하고. 512년에는 우산국을 복속시켰으며 남쪽에 소경을 설치해 직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왕위에 오른 지 15년 만인 78세에 사망했다.
지증왕 (智證王)
지증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2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00~514년이며, 재종형인 소지마립간이 후계자 없이 죽자 64세에 왕위에 올랐다. 우경을 시행하여 농업생산력을 높였고 순장을 금지했다. 503년에는 그 동안 사라·사로·신라 등으로 사용되던 국명을 신라로 확정했고, 왕호를 방언인 마립간에서 중국식인 왕으로 바꾸어 비로소 고대국가로 정비된 신라국의 왕이 되었다. 전국에 주·군·현을 설치하고. 512년에는 우산국을 복속시켰으며 남쪽에 소경을 설치해 직접적인 지배력을 행사했다. 왕위에 오른 지 15년 만인 78세에 사망했다.
신라의 제25대(재위: 576년~579년) 왕.
진지왕 (眞智王)
신라의 제25대(재위: 576년~579년) 왕.
삼국시대 김유신탄생설화에 나오는 무속인. 점술가.
추남 (楸南)
삼국시대 김유신탄생설화에 나오는 무속인. 점술가.
삼국시대 신라의 아찬으로 백제부흥군의 정벌에 참전한 관리. 장군.
충상 (忠常)
삼국시대 신라의 아찬으로 백제부흥군의 정벌에 참전한 관리. 장군.
태종무열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54~661년이다. 이름은 김춘추로 진덕여왕 사후 신하들의 추대로 즉위하여 신라 중대왕실을 열었다. 즉위 전부터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를 직접 오가며 탁월한 외교역량을 보여주었고, 김유신과 연합하여 신귀족세력을 형성하여 보다 강화된 왕권 중심의 집권체제를 확립했다. 이후 친당외교를 통해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고 고구려와 백제를 공략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의 토대를 마련한 후 재위한 지 8년 만에 사망했다. 시호는 무열이고 묘호는 태종이다.
태종무열왕 (太宗武烈王)
태종무열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54~661년이다. 이름은 김춘추로 진덕여왕 사후 신하들의 추대로 즉위하여 신라 중대왕실을 열었다. 즉위 전부터 고구려와 당나라 사이를 직접 오가며 탁월한 외교역량을 보여주었고, 김유신과 연합하여 신귀족세력을 형성하여 보다 강화된 왕권 중심의 집권체제를 확립했다. 이후 친당외교를 통해 당나라를 후원세력으로 삼고 고구려와 백제를 공략하여 백제를 멸망시켰다. 삼국통일이라는 대업의 토대를 마련한 후 재위한 지 8년 만에 사망했다. 시호는 무열이고 묘호는 태종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좌장군, 대당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품일 (品日)
삼국시대 신라의 좌장군, 대당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혜공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65~780년이며, 8세에 즉위하여 왕태후가 섭정했다. 태종무열왕의 직계손으로 계승된 신라 중대왕실의 마지막 왕이다. 전제왕권에 대한 귀족들의 반란이 잇달아 일어나 귀족중심사회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였다. 재위 16년 동안 11회의 사절단을 당에 보내 왕권회복을 위해 힘썼으나 오히려 777년 상대등 김양상의 신랄한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친혜공왕파가 김양상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난을 진압하는 와중에 왕비와 함께 살해되고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했다.
혜공왕 (惠恭王)
혜공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65~780년이며, 8세에 즉위하여 왕태후가 섭정했다. 태종무열왕의 직계손으로 계승된 신라 중대왕실의 마지막 왕이다. 전제왕권에 대한 귀족들의 반란이 잇달아 일어나 귀족중심사회로 전환되는 양상을 보였다. 재위 16년 동안 11회의 사절단을 당에 보내 왕권회복을 위해 힘썼으나 오히려 777년 상대등 김양상의 신랄한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친혜공왕파가 김양상 일파를 제거하기 위해 반란을 일으켰으나 난을 진압하는 와중에 왕비와 함께 살해되고 김양상이 선덕왕으로 즉위했다.
효성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37년부터 742년까지이며, 성덕왕의 둘째 아들로 형이 죽자, 태자로 책봉되어 즉위했다. 부왕 때 정상화된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한층 강화했다. 외교적 통로를 통해 중국의 선진문물도 활발하게 수입하여 당 현종이 "신라는 군자의 나라"라고 했을 정도로 문화수준이 높았다. 740년, 왕비와 후궁의 알력을 둘러싸고 모반사건이 있었으나 평정했다. 이 모반 사건은 신라 왕실의 전제왕권이 점차 약화되면서 억압되었던 귀족세력의 고삐가 풀리기 시작한 신호로 해석된다. 재위 6년째에 사망했다.
효성왕 (孝成王)
효성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4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37년부터 742년까지이며, 성덕왕의 둘째 아들로 형이 죽자, 태자로 책봉되어 즉위했다. 부왕 때 정상화된 당나라와의 외교관계를 한층 강화했다. 외교적 통로를 통해 중국의 선진문물도 활발하게 수입하여 당 현종이 "신라는 군자의 나라"라고 했을 정도로 문화수준이 높았다. 740년, 왕비와 후궁의 알력을 둘러싸고 모반사건이 있었으나 평정했다. 이 모반 사건은 신라 왕실의 전제왕권이 점차 약화되면서 억압되었던 귀족세력의 고삐가 풀리기 시작한 신호로 해석된다. 재위 6년째에 사망했다.
삼국시대 신라의 소판 관등의 귀족.
김무림 (金茂林)
삼국시대 신라의 소판 관등의 귀족.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고달산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김범문 (金梵文)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고달산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 삭주도독 등을 역임한 귀족.
김술종 (金述宗)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 삭주도독 등을 역임한 귀족.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문전투에 참전한 장수.
김원술 (金元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문전투에 참전한 장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