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영하"
검색결과 총 28건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문전투에 참전한 장수.
김원술 (金元述)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석문전투에 참전한 장수.
법흥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14~540년이며, 지증왕의 아들로 중앙 집권적인 고대 국가체제를 완비한 왕이다. 먼저 병부를 설치, 군사권을 장악하여 왕권을 강화한 후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함으로써 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체제를 완비했다. 상대등을 설치하여 귀족회의를 주관하게 했고, 가야를 합병하여 영토를 확장한 후에는 독자적인 연호를 최초로 사용했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국가의 종교로 공인하고 국가 형성의 이념적 지주로 활용했다. 말년에는 승려가 되어 법호를 법공이라 했다.
법흥왕 (法興王)
법흥왕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14~540년이며, 지증왕의 아들로 중앙 집권적인 고대 국가체제를 완비한 왕이다. 먼저 병부를 설치, 군사권을 장악하여 왕권을 강화한 후 율령을 반포하고 백관의 공복을 제정함으로써 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체제를 완비했다. 상대등을 설치하여 귀족회의를 주관하게 했고, 가야를 합병하여 영토를 확장한 후에는 독자적인 연호를 최초로 사용했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를 국가의 종교로 공인하고 국가 형성의 이념적 지주로 활용했다. 말년에는 승려가 되어 법호를 법공이라 했다.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소판으로 집사부 시중을 역임한 관리.
김종기 (金宗基)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소판으로 집사부 시중을 역임한 관리.
눌지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17년~458년으로 내물마립간의 아들이다.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실성이 귀국해서 마립간에 즉위한 뒤 고구려를 이용해 내물마립간의 아들 눌지를 해치려 했으나 오히려 고구려의 지원을 받은 눌지가 정변을 일으켜 그를 살해하고 마립간이 되었다. 즉위 후에는 고구려의 평양천도 이후 남진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었다. 왕실 내부의 분쟁을 막기 위해 왕위계승에서 부자상습제를 확립시켰고 저수지 축조, 우거 사용법 보급 등 민생안정에도 힘을 쏟았다.
눌지마립간 (訥祇麻立干)
눌지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9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17년~458년으로 내물마립간의 아들이다. 고구려에 볼모로 가 있던 실성이 귀국해서 마립간에 즉위한 뒤 고구려를 이용해 내물마립간의 아들 눌지를 해치려 했으나 오히려 고구려의 지원을 받은 눌지가 정변을 일으켜 그를 살해하고 마립간이 되었다. 즉위 후에는 고구려의 평양천도 이후 남진정책에 대항하기 위해 백제와 나제동맹을 맺었다. 왕실 내부의 분쟁을 막기 위해 왕위계승에서 부자상습제를 확립시켰고 저수지 축조, 우거 사용법 보급 등 민생안정에도 힘을 쏟았다.
삼국시대 신라의 상대등을 역임한 귀족. 반란자.
비담 (毗曇)
삼국시대 신라의 상대등을 역임한 귀족. 반란자.
대구광역시 서구에 있었던 철기시대(원삼국시대) 세형동검·동과·다뉴경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대구 평리동 유적 (大邱 坪里洞 遺蹟)
대구광역시 서구에 있었던 철기시대(원삼국시대) 세형동검·동과·다뉴경 등이 출토된 생활유적.
삼국시대 신라의 소판 관등의 귀족.
김무림 (金茂林)
삼국시대 신라의 소판 관등의 귀족.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고달산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김범문 (金梵文)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고달산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
문무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61~681년이며 태종무열왕의 원자이자 김유신의 누이인 문명왕후의 아들이다. 즉위 전부터 외교활동과 백제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즉위 초에는 백제 부흥세력 소탕에 주력했고 666년에는 당과 연합해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후 삼국 전체를 자국 영토로 삼으려는 당의 노골적인 대규모 침공을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완수했다. 5소경제와 군사조직인 9서당의 단초를 마련하여 확장된 영역의 통치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 감포 앞바다의 해중왕릉인 대왕암이 그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문무왕 (文武王)
문무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61~681년이며 태종무열왕의 원자이자 김유신의 누이인 문명왕후의 아들이다. 즉위 전부터 외교활동과 백제와의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즉위 초에는 백제 부흥세력 소탕에 주력했고 666년에는 당과 연합해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이후 삼국 전체를 자국 영토로 삼으려는 당의 노골적인 대규모 침공을 물리치고 삼국통일을 완수했다. 5소경제와 군사조직인 9서당의 단초를 마련하여 확장된 영역의 통치를 위한 기반을 다졌다. 감포 앞바다의 해중왕릉인 대왕암이 그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 삭주도독 등을 역임한 귀족.
김술종 (金述宗)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 삭주도독 등을 역임한 귀족.
내물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56년∼402년이며, 흘해이사금이 후계자 없이 죽자 왕위를 계승했다. 마립간은 이사금보다 더욱 강화된 왕권을 상징하는 왕호로, 내물마립간 이후부터 박·석·김 3성이 교대로 왕권을 계승하는 대신 김씨에 의한 독점적 세습이 이루어졌다. 고구려 사신의 안내를 받아 전진과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잦은 백제의 침략을 고구려 광개토왕의 군사적 지원으로 물리쳤다. 국가체제가 정비되고 왕권이 강화되었지만 고구려의 원조를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고구려의 내정간섭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내물마립간 (奈勿麻立干)
내물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7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356년∼402년이며, 흘해이사금이 후계자 없이 죽자 왕위를 계승했다. 마립간은 이사금보다 더욱 강화된 왕권을 상징하는 왕호로, 내물마립간 이후부터 박·석·김 3성이 교대로 왕권을 계승하는 대신 김씨에 의한 독점적 세습이 이루어졌다. 고구려 사신의 안내를 받아 전진과 외교관계를 수립했고, 잦은 백제의 침략을 고구려 광개토왕의 군사적 지원으로 물리쳤다. 국가체제가 정비되고 왕권이 강화되었지만 고구려의 원조를 받지 않을 수 없었고 고구려의 내정간섭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삼국시대 신라의 대장군, 상대등, 섭정왕 등을 역임한 귀족. 대신.
알천 (閼川)
삼국시대 신라의 대장군, 상대등, 섭정왕 등을 역임한 귀족. 대신.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을 역임한 귀족.
염장 (廉長)
삼국시대 신라의 대등을 역임한 귀족.
성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02~737년이며,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서 형 효소왕이 후사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즉위 후 축성과 민생안정 사업에 주력했다. 잦은 수해와 전염병 만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정전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과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꾀했다. 발해와 당의 대립을 기회로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패강 이남 지역에 대한 영유권도 인정받았다. 유교적 예제를 정비하고 국가불교도 고취하여 신라 천년의 역사 중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성덕왕 (聖德王)
성덕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3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702~737년이며, 신문왕의 둘째 아들로서 형 효소왕이 후사 없이 죽자 화백회의에서 왕으로 추대했다. 즉위 후 축성과 민생안정 사업에 주력했다. 잦은 수해와 전염병 만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했고 정전제를 실시하여 민생 안정과 농업 생산력의 증대를 꾀했다. 발해와 당의 대립을 기회로 당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패강 이남 지역에 대한 영유권도 인정받았다. 유교적 예제를 정비하고 국가불교도 고취하여 신라 천년의 역사 중 최고의 태평성대를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성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02~417년이며, 내물왕이 죽은 뒤 아들들이 나이가 어려 화백회의에서 실성을 왕위에 추대했다. 미사품을 서불한으로 삼고 군사와 국정을 위임했다. 외교적으로는 왜와 고구려에 내물왕의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 화의를 도모했고, 왜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응징했다. 내물왕의 태자 눌지가 덕망이 높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자 고구려의 힘을 빌려 눌지를 제거하려 했으나 고구려는 눌지를 지원해 실성왕을 살해했다. 이 정변으로 실성왕의 모계 석씨세력은 소멸되었다.
실성마립간 (實聖麻立干)
실성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18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02~417년이며, 내물왕이 죽은 뒤 아들들이 나이가 어려 화백회의에서 실성을 왕위에 추대했다. 미사품을 서불한으로 삼고 군사와 국정을 위임했다. 외교적으로는 왜와 고구려에 내물왕의 왕자들을 인질로 보내 화의를 도모했고, 왜적이 침입했을 때에는 직접 군대를 이끌고 나가 응징했다. 내물왕의 태자 눌지가 덕망이 높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자 고구려의 힘을 빌려 눌지를 제거하려 했으나 고구려는 눌지를 지원해 실성왕을 살해했다. 이 정변으로 실성왕의 모계 석씨세력은 소멸되었다.
소지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9~500년이고, 자비마립간의 장자로 왕위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효행을 지녔으며 겸손하고 공손해 사람들이 모두 감복했다고 한다. 기간 도로를 수리하고 수도에 시장을 열어 물화를 유통하게 했으며 전국적 연락망을 갖추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잦은 고구려의 침략을 백제와 동맹을 맺거나 가야와 연합해 막아냈고, 병사 위문과 민심 수습을 위해 지방 순행에 나서기도 했다. 백제 동성왕과는 결혼동맹을 맺기도 했으며 변경지방 요충지의 성을 개축하거나 증축해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했다.
소지마립간 (炤知麻立干)
소지마립간은 삼국시대 신라의 제2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79~500년이고, 자비마립간의 장자로 왕위에 올랐다. 어려서부터 효행을 지녔으며 겸손하고 공손해 사람들이 모두 감복했다고 한다. 기간 도로를 수리하고 수도에 시장을 열어 물화를 유통하게 했으며 전국적 연락망을 갖추는 등의 업적을 남겼다. 잦은 고구려의 침략을 백제와 동맹을 맺거나 가야와 연합해 막아냈고, 병사 위문과 민심 수습을 위해 지방 순행에 나서기도 했다. 백제 동성왕과는 결혼동맹을 맺기도 했으며 변경지방 요충지의 성을 개축하거나 증축해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했다.
신문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81~692년이며 문무왕의 장자이다. 즉위하던 해에 일어난 귀족세력의 반란을 진압하고 철저히 숙청함으로써 왕권을 공고히 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관제의 정비, 5소경제와 9주 및 군현제의 완성 등 지방통치체제 정비를 통해 전제왕권 중심의 통치질서를 완비했다. 9서당제 군사조직을 완성했고,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세조를 차등 있게 지급해 관리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동해에서 얻었다는 만파식적은 일체의 정치적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왕실의 소망이 담긴 평화의 상징물이다.
신문왕 (神文王)
신문왕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제31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681~692년이며 문무왕의 장자이다. 즉위하던 해에 일어난 귀족세력의 반란을 진압하고 철저히 숙청함으로써 왕권을 공고히 했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관제의 정비, 5소경제와 9주 및 군현제의 완성 등 지방통치체제 정비를 통해 전제왕권 중심의 통치질서를 완비했다. 9서당제 군사조직을 완성했고, 녹읍을 폐지하고 해마다 세조를 차등 있게 지급해 관리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동해에서 얻었다는 만파식적은 일체의 정치적 불안을 진정시키려는 왕실의 소망이 담긴 평화의 상징물이다.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부인 또는 종녀(宗女)로 알려진 귀족.
재매부인 (財買夫人)
삼국시대 신라의 장군 김유신의 부인 또는 종녀(宗女)로 알려진 귀족.
삼국시대 신라의 좌장군, 대당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품일 (品日)
삼국시대 신라의 좌장군, 대당장군 등을 역임한 관리. 장군.
삼국시대 신라의 각간으로 대등을 역임한 관리.
임종 (林宗)
삼국시대 신라의 각간으로 대등을 역임한 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