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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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는 조선 후기, 제16대(재위: 1623~1649) 국왕이다. 광해군과 북인(北人) 정권의 극단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1623년 서인(西人)의 김류(金瑬) · 이귀(李貴) · 이괄(李适) 등과 '반정(反正)'을 일으킨 뒤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루었다.
인조 (仁祖)
인조는 조선 후기, 제16대(재위: 1623~1649) 국왕이다. 광해군과 북인(北人) 정권의 극단적인 정치에 반발하여 1623년 서인(西人)의 김류(金瑬) · 이귀(李貴) · 이괄(李适) 등과 '반정(反正)'을 일으킨 뒤 추대를 받아 왕위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에 ‘이괄의 난’,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 국내외에서 전쟁을 치루었다.
고명은 명·청 시기 국내 관원 임명 및 외국 국왕의 책봉에 사용된 문서이다. 전근대 중국에서 사용한 황제 명령 문서의 하나로, 명대 이후 중국 왕조는 조선 등 외국 국왕을 책봉할 때 고명을 지급하였다. 한반도 왕조에 처음으로 발급된 고명은 명 홍무제(洪武帝)가 1370년 공민왕에게 인장(印章)과 함께 발송한 것이다. 이후 1423년 세자 책봉을 승인 받은 이후 세자가 고명의 대상에 포함되었고, 1451년 현덕왕후 책봉을 계기로 고명의 범위가 더욱 확대되었다. 조선이 받은 고명 중 현전하는 것은 조선 후기 연잉군(延?君) 세제(世弟) 책봉 고명 등 세 건이다.
고명 (誥命)
고명은 명·청 시기 국내 관원 임명 및 외국 국왕의 책봉에 사용된 문서이다. 전근대 중국에서 사용한 황제 명령 문서의 하나로, 명대 이후 중국 왕조는 조선 등 외국 국왕을 책봉할 때 고명을 지급하였다. 한반도 왕조에 처음으로 발급된 고명은 명 홍무제(洪武帝)가 1370년 공민왕에게 인장(印章)과 함께 발송한 것이다. 이후 1423년 세자 책봉을 승인 받은 이후 세자가 고명의 대상에 포함되었고, 1451년 현덕왕후 책봉을 계기로 고명의 범위가 더욱 확대되었다. 조선이 받은 고명 중 현전하는 것은 조선 후기 연잉군(延?君) 세제(世弟) 책봉 고명 등 세 건이다.
동학의 교세 확장을 위해 설치된 교단 조직이며 중앙 사무 조직.
대도소 (大都所)
동학의 교세 확장을 위해 설치된 교단 조직이며 중앙 사무 조직.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동학운동 (東學運動)
1894년(고종 31) 전라도 고부의 동학접주 전봉준(全琫準) 등을 지도자로 동학교도와 농민들이 합세하여 일으킨 농민운동.
봉수는 봉(횃불)과 수(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전근대 국가의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통신방법이었다. 높은 산에 올라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였다. 주로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전보기능으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락국의 수로왕이 봉화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그 연원이 깊다. 거화를 통한 통신 방법의 확정, 전국 차원의 봉수선로 설정, 시설 확충 및 요원 배치, 관장 기관의 설립 등 국가의 통신체계로 확실하게 정비된 시기는 고려 중엽이며 이 틀은 대부분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봉수 (烽燧)
봉수는 봉(횃불)과 수(연기)로써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이다. 전근대 국가의 가장 중요하고 보편적인 통신방법이었다. 높은 산에 올라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하였다. 주로 국가의 정치·군사적인 전보기능으로 이용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락국의 수로왕이 봉화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그 연원이 깊다. 거화를 통한 통신 방법의 확정, 전국 차원의 봉수선로 설정, 시설 확충 및 요원 배치, 관장 기관의 설립 등 국가의 통신체계로 확실하게 정비된 시기는 고려 중엽이며 이 틀은 대부분 조선시대로 이어졌다.
고려 및 조선시대 왕의 시종과 궁궐의 숙위를 담당하거나 각 관사(官司)에 속해 장관을 시종하던 관인층.
성중관 (成衆官)
고려 및 조선시대 왕의 시종과 궁궐의 숙위를 담당하거나 각 관사(官司)에 속해 장관을 시종하던 관인층.
조선 후기에, 부평부사, 광주목사, 돈녕부도정 등을 역임한 문신.
어유붕 (魚有鵬)
조선 후기에, 부평부사, 광주목사, 돈녕부도정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김직재의 무옥사건에 연루되어 국문을 받던 중 사망한 문신.
유업 (柳𢢜)
조선 후기에, 이조좌랑 등을 역임하였으며, 김직재의 무옥사건에 연루되어 국문을 받던 중 사망한 문신.
조선 후기에, 의금부도사,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유황 (柳洸)
조선 후기에, 의금부도사, 교리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성균관장의를 역임하였으며, 신임사화 때 소론의 탄핵으로 처형된 유생.
윤지술 (尹志述)
조선 후기에, 성균관장의를 역임하였으며, 신임사화 때 소론의 탄핵으로 처형된 유생.
1919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의열단 (義烈團)
1919년 11월 만주에서 조직되었던 독립운동단체.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대사간,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담 (李潭)
조선 후기에, 공조참판, 대사간, 예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풍덕부사, 부호군 등을 역임한 문신.
이만선 (李萬選)
조선 후기에, 풍덕부사, 부호군 등을 역임한 문신.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 『한국사통론』, 『한국사 신강』 등을 저술한 학자. 사학자, 한학자.
이상옥 (李相玉)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 『한국사통론』, 『한국사 신강』 등을 저술한 학자. 사학자, 한학자.
조선 전기에, 지평, 사섬시정,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이억상 (李億祥)
조선 전기에, 지평, 사섬시정, 예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이언량 (李彦良)
조선후기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된 공신. 무신.
조선시대 『월간문집』을 저술한 학자.
이전 (李㙉)
조선시대 『월간문집』을 저술한 학자.
1940년 일본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단체.
자숙회 (自肅會)
1940년 일본에서 조직되었던 유학생단체.
1939년 9월 중국 내 한국독립운동단체의 대동단결과 민족연합전선을 위해 결성되었던 단체.
전국연합진선협회 (全國聯合陣線協會)
1939년 9월 중국 내 한국독립운동단체의 대동단결과 민족연합전선을 위해 결성되었던 단체.
갑오평비책은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문인 황현이 동학농민운동의 수습책을 개진한 정책서이다. 육필초고로서 서문과 10개 조목의 논책으로 되어 있다. 황현은 동학농민봉기를 왕조 질서에 대한 도전과 파괴 행위로 보고, 이들을 강경하게 진압할 수습책으로서 10개 조목을 제시하였다. 황현은 동학에 대한 조정의 대응이 관대하고 미온적이었다고 판단하고, 엄격하게 법에 따라 강경하게 대응한다면 국가 기강의 문란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갑오비평책에 쓰인 그의 주장은 봉건적 전통사회의 이념과 유교적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대 인식의 한계성을 보여주고 있다.
갑오평비책 (甲午平匪策)
갑오평비책은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문인 황현이 동학농민운동의 수습책을 개진한 정책서이다. 육필초고로서 서문과 10개 조목의 논책으로 되어 있다. 황현은 동학농민봉기를 왕조 질서에 대한 도전과 파괴 행위로 보고, 이들을 강경하게 진압할 수습책으로서 10개 조목을 제시하였다. 황현은 동학에 대한 조정의 대응이 관대하고 미온적이었다고 판단하고, 엄격하게 법에 따라 강경하게 대응한다면 국가 기강의 문란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 갑오비평책에 쓰인 그의 주장은 봉건적 전통사회의 이념과 유교적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한 시대 인식의 한계성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