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노도양"
검색결과 총 75건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옛 지명.
가리 (加利)
경상북도 성주 지역의 옛 지명.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옛 지명.
가림 (嘉林)
충청남도 부여 지역의 옛 지명.
경상남도 거창 지역의 옛 지명.
가조 (加祚)
경상남도 거창 지역의 옛 지명.
평안북도 박천 지역의 옛 지명.
가주 (嘉州)
평안북도 박천 지역의 옛 지명.
평안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강계군 (江界郡)
평안북도 북동부에 위치한 군.
평안남도 북단에 있는 군.
개천군 (价川郡)
평안남도 북단에 있는 군.
1469년 『경상도지리지』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편찬한 지리서.
경상도속찬지리지 (慶尙道續撰地理誌)
1469년 『경상도지리지』의 미비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편찬한 지리서.
조선전기 문신 하연이 경상도의 인문과 자연 현상을 13항목으로 나누어 1425년에 편찬한 지방지.
경상도지리지 (慶尙道地理志)
조선전기 문신 하연이 경상도의 인문과 자연 현상을 13항목으로 나누어 1425년에 편찬한 지방지.
함경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
고원군 (高原郡)
함경남도 남부에 위치한 군.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
관동팔경 (關東八景)
강원도 동해안에 있는 여덟 곳의 명승지.
구성군은 평안북도 중서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태천군, 서쪽은 의주군, 남쪽은 정주군·선천군, 북쪽은 삭주군과 접하고 있다. 고구려 시대에 군현을 설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발해 시대에는 압록부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 거란의 1차 침입 때 강동육주 가운데 구주가 설치된 곳으로 거란의 3차 침입 때 강감찬이 거란을 크게 물리친 곳이다. 몽골 1차 침입 때에 함락되지 않아 정원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통오달의 요충지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갑오개혁 이후 구성군으로 평안북도에 편제되었다가 1967년 구성시로 개편되었다.
구성군 (龜城郡)
구성군은 평안북도 중서부에 있는 군이다. 동쪽은 태천군, 서쪽은 의주군, 남쪽은 정주군·선천군, 북쪽은 삭주군과 접하고 있다. 고구려 시대에 군현을 설치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발해 시대에는 압록부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 거란의 1차 침입 때 강동육주 가운데 구주가 설치된 곳으로 거란의 3차 침입 때 강감찬이 거란을 크게 물리친 곳이다. 몽골 1차 침입 때에 함락되지 않아 정원대도호부로 승격되었다. 조선 시대에는 사통오달의 요충지로 도호부로 승격되었다. 갑오개혁 이후 구성군으로 평안북도에 편제되었다가 1967년 구성시로 개편되었다.
황해도 신천군 용진면과 은율군 남부면·일도면에 걸쳐 있는 산.
구월산 (九月山)
황해도 신천군 용진면과 은율군 남부면·일도면에 걸쳐 있는 산.
강원도 북부에 위치한 군.
김화군 (金化郡)
강원도 북부에 위치한 군.
함경남도의 동단부에 있는 군.
단천군 (端川郡)
함경남도의 동단부에 있는 군.
평안남도 서남부에 있는 군.
대동군 (大同郡)
평안남도 서남부에 있는 군.
평안남도 북부에 있는 군.
덕천군 (德川郡)
평안남도 북부에 있는 군.
최준이 『동경잡기』를 수정·보완하여 1933년에 간행한 지방지.
동경통지 (東京通志)
최준이 『동경잡기』를 수정·보완하여 1933년에 간행한 지방지.
조선시대의 국가 및 서울의 지리적·제도적·인문적 사항을 기록한 지리서. 인문지리서.
동국여지비고 (東國輿地備考)
조선시대의 국가 및 서울의 지리적·제도적·인문적 사항을 기록한 지리서. 인문지리서.
평안남도 동부에 위치한 군.
맹산군 (孟山郡)
평안남도 동부에 위치한 군.
문천군은 함경남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낭림산맥과 마식령산맥의 여맥이 군내에 뻗어 있어 서남부 일대는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동부 일대는 비옥하고 관개가 편리한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재위하던 시기에 매구루(買溝婁) 또는 미구루(味仇婁)라고 불렀다. 신라 진흥왕 때 차지하였으나 방어하기 어려워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건국 이후 동북변의 여진족을 토벌하여 수복하고 문주(文州)라고 명명하였다. 몽골이 설치한 쌍성총관부의 지배를 받다가 1356년 공민왕 때에 되찾았다. 1413년 군현의 명칭을 개칭할 때 문천군이 되었다.
문천군 (文川郡)
문천군은 함경남도 남부에 있는 군이다. 낭림산맥과 마식령산맥의 여맥이 군내에 뻗어 있어 서남부 일대는 산악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동부 일대는 비옥하고 관개가 편리한 충적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재위하던 시기에 매구루(買溝婁) 또는 미구루(味仇婁)라고 불렀다. 신라 진흥왕 때 차지하였으나 방어하기 어려워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고려 건국 이후 동북변의 여진족을 토벌하여 수복하고 문주(文州)라고 명명하였다. 몽골이 설치한 쌍성총관부의 지배를 받다가 1356년 공민왕 때에 되찾았다. 1413년 군현의 명칭을 개칭할 때 문천군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