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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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司舟)는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 혜공왕 대에 이제부(利濟府)에 소속된 관직이다. 이전의 선부(船府)를 이제부(利濟府)로 고치면서 그 소속 관직인 사지(舍知)를 개칭한 것이다. 이는 혜공왕 대에 모든 관사와 관직의 이름을 복고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사주는 제12관등 대사와 제13관등 사지를 임명하였는데, 그 정원은 1명이다. 그 전신인 선부의 사지는 신문왕 대에 당나라의 관료제를 도입하면서 소속 관원을 ‘영-경-대사-사’의 4단계 조직에서 ‘영-경-대사-사지-사’의 5단계 조직으로 완비하면서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사주 (司舟)
사주(司舟)는 통일신라시대, 경덕왕 · 혜공왕 대에 이제부(利濟府)에 소속된 관직이다. 이전의 선부(船府)를 이제부(利濟府)로 고치면서 그 소속 관직인 사지(舍知)를 개칭한 것이다. 이는 혜공왕 대에 모든 관사와 관직의 이름을 복고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사주는 제12관등 대사와 제13관등 사지를 임명하였는데, 그 정원은 1명이다. 그 전신인 선부의 사지는 신문왕 대에 당나라의 관료제를 도입하면서 소속 관원을 ‘영-경-대사-사’의 4단계 조직에서 ‘영-경-대사-사지-사’의 5단계 조직으로 완비하면서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오묘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함께 설행한 유교적 종묘제이다. 『삼국사기』 제사지에는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혜공왕 대에 처음 정한 5묘를 종묘로 규정하였다. 중대에 무열왕계가 새로이 5묘제를 수용한 것은, 그들의 왕통이 지증-법흥-진흥-진지-문흥을 잇는 대종(大宗)으로, 소종(小宗)인 ‘진평-선덕-진덕’의 중고기 왕실과 구분함으로써 정통성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공왕 대에는 5묘제에 기왕의 종법제 원리와 조공종덕의 원리를 더하였고, 애장왕 대에는 이를 지키면서 사실상 7묘제를 지향하였다.
신라 오묘 (新羅 五廟)
신라오묘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에서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함께 설행한 유교적 종묘제이다. 『삼국사기』 제사지에는 시조 혁거세묘·신궁과 혜공왕 대에 처음 정한 5묘를 종묘로 규정하였다. 중대에 무열왕계가 새로이 5묘제를 수용한 것은, 그들의 왕통이 지증-법흥-진흥-진지-문흥을 잇는 대종(大宗)으로, 소종(小宗)인 ‘진평-선덕-진덕’의 중고기 왕실과 구분함으로써 정통성을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혜공왕 대에는 5묘제에 기왕의 종법제 원리와 조공종덕의 원리를 더하였고, 애장왕 대에는 이를 지키면서 사실상 7묘제를 지향하였다.
신충은 통일신라 성덕왕 25년(726) 당에 하정사로 파견되어 숙위하여 성덕왕 32년(733) 초가을 당 현종의 칙서를 가지고 귀국한 성덕왕의 종제이다. 그는 성덕왕 33년(734) 정월 당 현종에게 성덕왕을 대신하여 표문을 올린 좌령군위 원외장군(左領軍衛員外將軍) 김충신(金忠信)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귀국하여 효성왕 대에 이찬으로서 중시를, 경덕왕 대에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신충 (信忠)
신충은 통일신라 성덕왕 25년(726) 당에 하정사로 파견되어 숙위하여 성덕왕 32년(733) 초가을 당 현종의 칙서를 가지고 귀국한 성덕왕의 종제이다. 그는 성덕왕 33년(734) 정월 당 현종에게 성덕왕을 대신하여 표문을 올린 좌령군위 원외장군(左領軍衛員外將軍) 김충신(金忠信)과 동일 인물이다. 그는 귀국하여 효성왕 대에 이찬으로서 중시를, 경덕왕 대에 상대등을 역임하였다.
추전(鞦典)은 통일신라시대에 경덕왕이 관호를 개혁할 때에 설치된 궁중 수공업 관사이다. 신라 내성 산하의 관사로서 말고들개를 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덕왕의 관호 개혁 이전에 궁중에 필요한 가죽 제품을 피전(皮典)과 피타전(皮打典)에서 생산하던 것을, 관호 개혁과 함께 제품별 생산 관사로 분화되면서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관영 수공업 관사인 중상서(中尙署)에 통합되었다.
추전 (鞦典)
추전(鞦典)은 통일신라시대에 경덕왕이 관호를 개혁할 때에 설치된 궁중 수공업 관사이다. 신라 내성 산하의 관사로서 말고들개를 제작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경덕왕의 관호 개혁 이전에 궁중에 필요한 가죽 제품을 피전(皮典)과 피타전(皮打典)에서 생산하던 것을, 관호 개혁과 함께 제품별 생산 관사로 분화되면서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에는 관영 수공업 관사인 중상서(中尙署)에 통합되었다.
문노는 삼국시대 신라의 화랑이다. 대체로 선덕여왕~진덕여왕 대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문노의 화랑도에는 수많은 낭도가 있었는데, 655년(무열왕 2) 양산 조천성 전투에서 전사한 낭당 대감 김흠운과 동문승 전밀 등 많은 무리가 있다.
문노 (文努)
문노는 삼국시대 신라의 화랑이다. 대체로 선덕여왕~진덕여왕 대에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문노의 화랑도에는 수많은 낭도가 있었는데, 655년(무열왕 2) 양산 조천성 전투에서 전사한 낭당 대감 김흠운과 동문승 전밀 등 많은 무리가 있다.
걸숙은 삼국시대 신라의 석씨 왕족으로서 15대 기림이사금의 아버지이다. 『삼국사절요』에는 걸어(乞馭)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제11대 국왕 조분왕(助賁王)이며, 어머니는 나해왕(奈解王)의 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다. 제12대 점해이사금의 아우이다.
걸숙 (乞淑)
걸숙은 삼국시대 신라의 석씨 왕족으로서 15대 기림이사금의 아버지이다. 『삼국사절요』에는 걸어(乞馭)라고 하였다. 아버지는 제11대 국왕 조분왕(助賁王)이며, 어머니는 나해왕(奈解王)의 딸 아이혜부인(阿爾兮夫人)이다. 제12대 점해이사금의 아우이다.
세종은 삼국시대 금관국의 후예로서 신라 중고기에 활약한 장군, 관료이다. 법흥왕 19년(532) 아버지 금관국 구해왕을 따라 신라에 항복하였다. 신라에서는 장군으로서 한강 유역 획득과 신라 서쪽 국경을 지키는 공적을 세웠으며, 이찬으로 승차하여 상대등과 양궁 사신을 역임하였다.
세종 (世宗)
세종은 삼국시대 금관국의 후예로서 신라 중고기에 활약한 장군, 관료이다. 법흥왕 19년(532) 아버지 금관국 구해왕을 따라 신라에 항복하였다. 신라에서는 장군으로서 한강 유역 획득과 신라 서쪽 국경을 지키는 공적을 세웠으며, 이찬으로 승차하여 상대등과 양궁 사신을 역임하였다.
신라시대 궁궐 12문 가운데 하나로서 정남(正南)에 위치한 문.
건례문 (建禮門)
신라시대 궁궐 12문 가운데 하나로서 정남(正南)에 위치한 문.
신라 하대의 지방 승관직.
군승정 (郡僧正)
신라 하대의 지방 승관직.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부시랑을 역임한 관리.
김원필 (金元弼)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집사부시랑을 역임한 관리.
통일신라의 제46대 문성왕의 종숙으로, 문성왕이 창림사 무구정탑을 건립할 때 동감수조사로서 참여한 종실.
김훈영 (金勳榮)
통일신라의 제46대 문성왕의 종숙으로, 문성왕이 창림사 무구정탑을 건립할 때 동감수조사로서 참여한 종실.
신라 중고기의 기술전문관직.
대공척 (大工尺)
신라 중고기의 기술전문관직.
삼국시대 신라의 중앙 승관직.
대도유나 (大都維那)
삼국시대 신라의 중앙 승관직.
대박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전문기술관직이다. 대백사(大伯士)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장인들을 거느리고 해당 작업의 책임을 맡은 우두머리로, 삼국시대부터 일컬어졌다. 박사 또는 백사의 칭호를 가진 자는 4두품부터 6두품에 해당하는 관등을 가지고 있었다. 8세기 중엽에 대박사·차박사로 분화되었는데 해당 공사의 책임자와 이를 보조하는 장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종래 관등을 가진 장인에 국한되었던 박사의 명칭이 9세기 초엽 일반 승장에게까지 부여되기 시작했다. 박사의 명칭이 대장의 의미를 지닌 공사의 책임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전환·확산된 것이다.
대박사 (大博士)
대박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전문기술관직이다. 대백사(大伯士)라고도 표기되어 있다 장인들을 거느리고 해당 작업의 책임을 맡은 우두머리로, 삼국시대부터 일컬어졌다. 박사 또는 백사의 칭호를 가진 자는 4두품부터 6두품에 해당하는 관등을 가지고 있었다. 8세기 중엽에 대박사·차박사로 분화되었는데 해당 공사의 책임자와 이를 보조하는 장인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종래 관등을 가진 장인에 국한되었던 박사의 명칭이 9세기 초엽 일반 승장에게까지 부여되기 시작했다. 박사의 명칭이 대장의 의미를 지닌 공사의 책임자를 일컫는 명칭으로 전환·확산된 것이다.
신라 하대의 중앙 승관직이다. 명칭의 첫 사례가 817년(헌덕왕 9) 8월 5일에 세운 이차돈(異次頓)의 비에 보인다. 그 뒤로는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에 나타난 석 현량(玄亮)의 직함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황룡사구층목탑찰주본기」에 ‘대통 승 담유, 정법화상 승 신해’·‘대통 겸 정법화상 대덕 보연’ 등의 용례가 보인다. 여기서 대통과 정법화상이 별개의 승관이었고, 또한 두 승관직은 서로 겸직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통은 정법전의 화상을 겸직하거나, 정법전 화상의 상위직으로서 승정에 관여하였다.
대통 (大統)
신라 하대의 중앙 승관직이다. 명칭의 첫 사례가 817년(헌덕왕 9) 8월 5일에 세운 이차돈(異次頓)의 비에 보인다. 그 뒤로는 「봉암사지증대사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碑)」에 나타난 석 현량(玄亮)의 직함을 들 수 있다. 그리고 「황룡사구층목탑찰주본기」에 ‘대통 승 담유, 정법화상 승 신해’·‘대통 겸 정법화상 대덕 보연’ 등의 용례가 보인다. 여기서 대통과 정법화상이 별개의 승관이었고, 또한 두 승관직은 서로 겸직할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통은 정법전의 화상을 겸직하거나, 정법전 화상의 상위직으로서 승정에 관여하였다.
신라 하대의 관서로서 특히 불사(佛事)의 조영을 위해 승관(僧官)들로 편성한 공사감독기관을 말한다. 872년(경문왕 12) 작성된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에 처음으로 보인다. 도감전만으로 경영된 불사는 대체로 개인의 발원에 의해 주로 승장들이 참여하고 있다. 중대의 강력한 왕권에 의해 통제·운영되던 사원성전이나 불사의 조영은, 중대 말·하대 초에 이르러 점차 불교계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삼국사기』 직관지에 보이는 것과 같은 ‘사원성전’이 점차 위축되었던 것은 그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도감전 (道監典)
신라 하대의 관서로서 특히 불사(佛事)의 조영을 위해 승관(僧官)들로 편성한 공사감독기관을 말한다. 872년(경문왕 12) 작성된 「황룡사9층목탑찰주본기(皇龍寺九層木塔刹柱本記)」에 처음으로 보인다. 도감전만으로 경영된 불사는 대체로 개인의 발원에 의해 주로 승장들이 참여하고 있다. 중대의 강력한 왕권에 의해 통제·운영되던 사원성전이나 불사의 조영은, 중대 말·하대 초에 이르러 점차 불교계의 자치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삼국사기』 직관지에 보이는 것과 같은 ‘사원성전’이 점차 위축되었던 것은 그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다.
나말여초의 승관직.
도유나 (都維那)
나말여초의 승관직.
신라 중고기의 전문기술자.
면착상 (面捉上)
신라 중고기의 전문기술자.
신라 중고기의 전문기술관직.
문척 (文尺)
신라 중고기의 전문기술관직.
신라시대의 전문기술관직.
부척 (斧尺)
신라시대의 전문기술관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