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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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는 대학에 임용되어 교육, 연구, 봉사 활동 또는 이 중 하나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수행하는 자이다. 학교에 두는 교원은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조교수, 강사로 구분된다. 또한 명예교수, 겸임교원 및 초빙교원 등을 두어 교육이나 연구를 담당하게 할 수 있다. 대학교수의 대표직인 직무는 학생 교육과 학문 연구이며, 교육자, 연구자, 조직구성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교수 (敎授)
교수는 대학에 임용되어 교육, 연구, 봉사 활동 또는 이 중 하나의 활동을 중점적으로 수행하는 자이다. 학교에 두는 교원은 총장, 학장, 교수, 부교수, 조교수, 강사로 구분된다. 또한 명예교수, 겸임교원 및 초빙교원 등을 두어 교육이나 연구를 담당하게 할 수 있다. 대학교수의 대표직인 직무는 학생 교육과 학문 연구이며, 교육자, 연구자, 조직구성원,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다.
교수평가제는 대학교수의 교육, 연구, 봉사 활동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하여 보수와 재계약, 승진 등 인사에 활용하는 제도이다. ‘교수업적평가’라는 용어로 주로 사용되며, 대학교수가 수행한 업적을 대학 차원에서 평가하고 활용한다. 교수평가제는 국립대학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에 따라 일반화되어 2015년부터 모든 국립대학 교원에 성과급적 연봉제가 적용되었고, 대학마다 자체적으로 성과급적 연봉제 규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사립대학에서도 고유한 업적평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교수평가제 (敎授評價制)
교수평가제는 대학교수의 교육, 연구, 봉사 활동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하여 보수와 재계약, 승진 등 인사에 활용하는 제도이다. ‘교수업적평가’라는 용어로 주로 사용되며, 대학교수가 수행한 업적을 대학 차원에서 평가하고 활용한다. 교수평가제는 국립대학 교원을 대상으로 하는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에 따라 일반화되어 2015년부터 모든 국립대학 교원에 성과급적 연봉제가 적용되었고, 대학마다 자체적으로 성과급적 연봉제 규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사립대학에서도 고유한 업적평가제를 운영하고 있다.
교원은 각급 학교와 대학에서 학생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교육자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등학교, 특수학교 등 각급 학교에서 학생과 원생을 가르치는 교사와 학교의 장[교장, 원장 등]을 가리킨다. 학교의 경우 교사와 수석교사, 교감[원감], 교장[원장], 대학의 경우 조교와 조교수, 부교수, 교수, 부총장, 총장을 포함한다. 국공립학교 교원은 교육공무원으로 특정직공무원이며 국가공무원이다. 교원은 장학사, 장학관,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 등 교육전문직원을 담당할 수 있다.
교원 (敎員)
교원은 각급 학교와 대학에서 학생을 전문적으로 지도하는 교육자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등학교, 특수학교 등 각급 학교에서 학생과 원생을 가르치는 교사와 학교의 장[교장, 원장 등]을 가리킨다. 학교의 경우 교사와 수석교사, 교감[원감], 교장[원장], 대학의 경우 조교와 조교수, 부교수, 교수, 부총장, 총장을 포함한다. 국공립학교 교원은 교육공무원으로 특정직공무원이며 국가공무원이다. 교원은 장학사, 장학관, 교육연구사, 교육연구관 등 교육전문직원을 담당할 수 있다.
구명겸은 구굉의 후손으로 영조~정조대에 충청도수군절도사, 황해도별마절도사, 좌포도대장,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인조의 외조부인 구사맹의 후손이다. 1786년(정조 10)에 구선복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구명겸 (具明謙)
구명겸은 구굉의 후손으로 영조~정조대에 충청도수군절도사, 황해도별마절도사, 좌포도대장, 삼도수군통제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인조의 외조부인 구사맹의 후손이다. 1786년(정조 10)에 구선복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구선복은 영조~정조대에 병조판서, 금위대장, 훈련대장 등을 지낸 문신이다. 인조의 외할아버지인 구사맹의 6대손이다. 1786년(정조 10)에 상계군(常溪君) 이담(李湛)을 왕으로 추대한 역모사건의 주동자로 처형되었다.
구선복 (具善復)
구선복은 영조~정조대에 병조판서, 금위대장, 훈련대장 등을 지낸 문신이다. 인조의 외할아버지인 구사맹의 6대손이다. 1786년(정조 10)에 상계군(常溪君) 이담(李湛)을 왕으로 추대한 역모사건의 주동자로 처형되었다.
구윤옥은 영조~정조대에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의 부마(駙馬) 구사안과 인조의 외할아버지 구사맹의 후손이자, 인조의 외종형인 구인후의 6대손이다. 이 때문에 정조대에 구인후의 봉사손(奉祀孫)으로 능은군을 습봉(襲封)하였다.
구윤옥 (具允鈺)
구윤옥은 영조~정조대에 병조판서, 호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중종의 부마(駙馬) 구사안과 인조의 외할아버지 구사맹의 후손이자, 인조의 외종형인 구인후의 6대손이다. 이 때문에 정조대에 구인후의 봉사손(奉祀孫)으로 능은군을 습봉(襲封)하였다.
권일형은 숙종~영조대에 의주 부윤, 승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와 정희량 등이 밀풍군 이탄을 추대하여 난을 일으켰을 때 오명항을 따라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이후 의주 부윤, 형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권일형 (權一衡)
권일형은 숙종~영조대에 의주 부윤, 승지,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와 정희량 등이 밀풍군 이탄을 추대하여 난을 일으켰을 때 오명항을 따라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웠다. 이후 의주 부윤, 형조참판, 병조참판 등을 지냈다.
권필칭은 생원시에 응시하다가 무(武)로 진로를 바꾸어 1750년(영조 26)에 식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서반 청요직인 선전관을 거쳐 장기현감, 해남현감, 충주영장, 삭주부사, 평안도방어사 등을 지냈으며, 1783년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에 올랐다. 무관으로서 학문에 힘을 쏟아 '유장(儒將)'으로 불렸고, 송명흠·김원행의 문인록에 올랐다.
권필칭 (權必稱)
권필칭은 생원시에 응시하다가 무(武)로 진로를 바꾸어 1750년(영조 26)에 식년 무과에 급제하였다. 서반 청요직인 선전관을 거쳐 장기현감, 해남현감, 충주영장, 삭주부사, 평안도방어사 등을 지냈으며, 1783년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에 올랐다. 무관으로서 학문에 힘을 쏟아 '유장(儒將)'으로 불렸고, 송명흠·김원행의 문인록에 올랐다.
김상묵은 영조~정조대에 정언, 교리, 형조참의, 안동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사림의 영수인 김식과 효종 대의 명신인 김육의 후손이며, 정조의 비 효의왕후의 재종숙이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 정국에서 정치적으로는 노론, 학문적으로는 낙론으로 활동하였다.
김상묵 (金尙默)
김상묵은 영조~정조대에 정언, 교리, 형조참의, 안동부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사림의 영수인 김식과 효종 대의 명신인 김육의 후손이며, 정조의 비 효의왕후의 재종숙이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 정국에서 정치적으로는 노론, 학문적으로는 낙론으로 활동하였다.
김창도는 조선 후기 경종대에 목호룡의 고변으로 발생한 옥사 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경종을 시해하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인 삼급수(三急手) 가운데 서덕수·이정식과 함께 독약을 쓰는 소급수(小急手)를 담당하였다는 죄목이었다. 영조 연간에 무복(誣服)의 율로 죄명이 바뀌면서 몰수된 가산이 회복되고, 연좌의 죄를 입었던 가족들이 유배지에서 풀려났다.
김창도 (金昌導)
김창도는 조선 후기 경종대에 목호룡의 고변으로 발생한 옥사 때 죽임을 당한 인물이다. 경종을 시해하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인 삼급수(三急手) 가운데 서덕수·이정식과 함께 독약을 쓰는 소급수(小急手)를 담당하였다는 죄목이었다. 영조 연간에 무복(誣服)의 율로 죄명이 바뀌면서 몰수된 가산이 회복되고, 연좌의 죄를 입었던 가족들이 유배지에서 풀려났다.
박사수는 조선 후기 평안도관찰사,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인좌의 난에 관한 기록물인 『감란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소론의 핵심 인물들인 조현명, 서명응 등과 교유하고, 송인명과는 인척이다. 노론이면서 낙론학파인 박필주의 족질(族姪)이다.
박사수 (朴師洙)
박사수는 조선 후기 평안도관찰사,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인좌의 난에 관한 기록물인 『감란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소론의 핵심 인물들인 조현명, 서명응 등과 교유하고, 송인명과는 인척이다. 노론이면서 낙론학파인 박필주의 족질(族姪)이다.
박양한은 소론의 명문가 출신으로, 숙종~영조 대에 고산현감, 평양서윤(平壤庶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인좌 난의 핵심 인물들과 친인척으로 얽혀 있었으나 무사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영조 대까지 활동한 인물들의 시화 및 일화를 엮은 『매옹한록』을 지었다.
박양한 (朴亮漢)
박양한은 소론의 명문가 출신으로, 숙종~영조 대에 고산현감, 평양서윤(平壤庶尹)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이인좌 난의 핵심 인물들과 친인척으로 얽혀 있었으나 무사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영조 대까지 활동한 인물들의 시화 및 일화를 엮은 『매옹한록』을 지었다.
이가환은 영조~정조 대에 성균관 대사성, 승문원 정자, 예조정랑, 사간원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남인 채제공에 의해 발탁되고, 정조로부터 학자로서 인정을 받아 대사간·대사성까지 올랐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공격을 받고 신유박해 때에 심문을 받다가 죽었다.
이가환 (李家煥)
이가환은 영조~정조 대에 성균관 대사성, 승문원 정자, 예조정랑, 사간원 대사간, 공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남인 채제공에 의해 발탁되고, 정조로부터 학자로서 인정을 받아 대사간·대사성까지 올랐다. 하지만 천주교 신자라는 공격을 받고 신유박해 때에 심문을 받다가 죽었다.
이인좌는 조선 후기 1728년(영조 4) 정권에서 소외된 소론과 남인의 일부 세력이 연합해서 일으킨 반란의 주동자이다. 이 사건은 신임옥사로, 정국 주도권을 가졌던 소론 세력이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사망하고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집권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이탄을 국왕으로 추대하려고 한 사건이다.
이인좌 (李麟佐)
이인좌는 조선 후기 1728년(영조 4) 정권에서 소외된 소론과 남인의 일부 세력이 연합해서 일으킨 반란의 주동자이다. 이 사건은 신임옥사로, 정국 주도권을 가졌던 소론 세력이 경종이 재위 4년 만에 사망하고 영조가 즉위하면서 노론이 집권하자, 이에 불만을 품고 이탄을 국왕으로 추대하려고 한 사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