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박철하"
검색결과 총 16건
일제강점기 때, 풍산군수, 중추원참의, 황해도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친일반민족행위자.
강필성 (姜弼成)
일제강점기 때, 풍산군수, 중추원참의, 황해도지사 등을 역임한 관료·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대사성, 궁내부 특진관, 조선귀족(남작)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김병익 (金炳翊)
일제강점기 대사성, 궁내부 특진관, 조선귀족(남작)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도지사, 사무관, 만주국 젠다오성공서 민정청장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김병태 (金秉泰)
일제강점기 도지사, 사무관, 만주국 젠다오성공서 민정청장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중추원 찬의, 규장각 제학, 조선귀족(남작)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사철 (金思轍)
일제강점기 중추원 찬의, 규장각 제학, 조선귀족(남작)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황해도 참여관 겸 산업 부장, 전라남도 참여관 겸 산업 부장 등을 역임한 관료 ·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영배 (金永培)
일제강점기, 황해도 참여관 겸 산업 부장, 전라남도 참여관 겸 산업 부장 등을 역임한 관료 ·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영식은 일제강점기 신간회 목포지회 대의원,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 정치부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9(고종 36)에 출생하여 1930년 사망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1925년 8월 사회주의 사상단체 목포 전위동맹을 조직하였다. 1926년 12월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 12월 코민테른에서 조선공산당의 재건설 결정을 내렸다. 1929년 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로 결의하고, 1929년 3월경 중국 길림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정치부위원이 되었다.
김영식 (金泳植)
김영식은 일제강점기 신간회 목포지회 대의원,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 정치부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899(고종 36)에 출생하여 1930년 사망했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1925년 8월 사회주의 사상단체 목포 전위동맹을 조직하였다. 1926년 12월 조선공산당 중앙집행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28년 12월 코민테른에서 조선공산당의 재건설 결정을 내렸다. 1929년 1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선공산당을 재건하기로 결의하고, 1929년 3월경 중국 길림에서 조선공산당 재건설준비위원회를 결성하여 정치부위원이 되었다.
일제강점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김윤정 (金潤晶)
일제강점기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평의원, 국민총력조선연맹 평의원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김형선은 해방 이후 조선인민공화국 경제부장 대리, 남조선노동당 중앙감찰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김원식 또는 최명환이라고도 불렀다. 1904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하였다.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청년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혜성사, 사각동맹, 동인회 등 사회주의 사상단체에 참가하였다. 1926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에 종사하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해방과 함께 출옥하여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김형선 (金炯善)
김형선은 해방 이후 조선인민공화국 경제부장 대리, 남조선노동당 중앙감찰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김원식 또는 최명환이라고도 불렀다. 1904년에 태어나 1950년에 사망하였다. 마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마산청년회의 집행위원으로 활동하다가 공산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혜성사, 사각동맹, 동인회 등 사회주의 사상단체에 참가하였다. 1926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1930년 이후 조선공산당 재건 활동에 종사하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해방과 함께 출옥하여 건국준비위원회와 조선공산당 결성에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해방 이후 한국민주당 중앙감찰위원장, 제헌국회 국회법제정 기초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농민운동가.
서정희 (徐廷禧)
해방 이후 한국민주당 중앙감찰위원장, 제헌국회 국회법제정 기초위원장 등을 역임한 정치인. 농민운동가.
대한제국기 동지돈녕원사 · 수원군수 · 봉상시제조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완용 (李完鎔)
대한제국기 동지돈녕원사 · 수원군수 · 봉상시제조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대한제국기 예릉참봉, 시강원시종관, 청풍도정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해승 (李海昇)
대한제국기 예릉참봉, 시강원시종관, 청풍도정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윤태빈은 일제강점기 강원도지사, 충청북도지사, 고등관1등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6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03년 관립일어학교를 졸업했다. 한일합병 이후 조선총독부 고원이 되었고 1935년 경기도 참여관이 되었다. 참여관 재직 시 『매일신보』를 통해 일본 황실을 찬양하고 조선총독부의 시정방침을 선전했다. 1941년 충청북도지사로 재임 중에는 일제의 침략전쟁 지원을 위한 국민총력운동에 충성하고 ‘황국신민됨을 자각’할 것을 주장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1950년 6·25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윤태빈 (尹泰彬)
윤태빈은 일제강점기 강원도지사, 충청북도지사, 고등관1등 등을 역임한 관료이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86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1903년 관립일어학교를 졸업했다. 한일합병 이후 조선총독부 고원이 되었고 1935년 경기도 참여관이 되었다. 참여관 재직 시 『매일신보』를 통해 일본 황실을 찬양하고 조선총독부의 시정방침을 선전했다. 1941년 충청북도지사로 재임 중에는 일제의 침략전쟁 지원을 위한 국민총력운동에 충성하고 ‘황국신민됨을 자각’할 것을 주장했다. 1949년 반민특위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되었으며 1950년 6·25전쟁 중에 납북되었다.
정재달은 일제강점기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20년 니혼대학 시절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1924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책임자회의에 참석하였다. 1928년 고려공산청년회를 결성하여 책임비서 겸 야체이카 책임자가 되었다. 1929년 12월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 1931년 봄 졸업하였다. 1931년 남해 지역에서 어장서기로 일하며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려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5년 조선공산당(장안파)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정되었다.
정재달 (鄭在達)
정재달은 일제강점기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총국 위원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1920년 니혼대학 시절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였다. 1924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개최된 고려공산당 책임자회의에 참석하였다. 1928년 고려공산청년회를 결성하여 책임비서 겸 야체이카 책임자가 되었다. 1929년 12월 모스크바 동방노력자공산대학에 입학, 1931년 봄 졸업하였다. 1931년 남해 지역에서 어장서기로 일하며 적색노동조합을 조직하려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1945년 조선공산당(장안파) 결성에 참여하였으며, 이후 조선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 후보위원으로 선정되었다.
대한제국기 비서원승, 판리공사, 규장각 부제학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이달용 (李達鎔)
대한제국기 비서원승, 판리공사, 규장각 부제학 등을 역임한 관료. 친일반민족행위자.
일제강점기 때, 무산자동맹회 상무위원, 화성회 집행위원, 조선공산당 교섭대표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이준태 (李準泰)
일제강점기 때, 무산자동맹회 상무위원, 화성회 집행위원, 조선공산당 교섭대표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한명찬은 일제강점기 강원도청년연맹 집행위원장,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고성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함연호, 박태선 등과 교류하며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뒤, 민족해방은 공산주의운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1925년 말에 고려공산청년동맹의 강원도 책임자로, 1927년에 조선청년총동맹의 중앙집행위원(강원도 대표)으로 선정되었다. 1929년 법정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을 때 만세를 부르며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였다.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으로 선출되었다.
한명찬 (韓明燦)
한명찬은 일제강점기 강원도청년연맹 집행위원장, 고려공산청년회 중앙위원 등을 역임한 사회주의운동가이다. 고성에서 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함연호, 박태선 등과 교류하며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뒤, 민족해방은 공산주의운동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신념을 가지게 되었다. 1925년 말에 고려공산청년동맹의 강원도 책임자로, 1927년에 조선청년총동맹의 중앙집행위원(강원도 대표)으로 선정되었다. 1929년 법정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을 때 만세를 부르며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였다. 1945년 9월 조선인민공화국 인민위원으로 선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