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송남헌"
검색결과 총 21건
1946년 김규식을 중심으로 조직된 정치·사회 단체.
민중동맹 (民衆同盟)
1946년 김규식을 중심으로 조직된 정치·사회 단체.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승려이다. 1898년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호는 운암(雲巖), 성숙(星淑)은 법명이다. 1916년 독립군에 가담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용문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주요 독립운동 활동으로 3·1 운동 주도, 조선의열단 가담, 조선의용대 조직 및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등이 있다.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합작을 지지하였으며, 진보당사건(1955년)으로 큰 탄압을 받았다. 1969년 서거하였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김성숙 (金星淑)
김성숙은 일제강점기 조선의용대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승려이다. 1898년 평안북도 철산 출신으로 호는 운암(雲巖), 성숙(星淑)은 법명이다. 1916년 독립군에 가담하기 위해 만주로 건너갔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용문사로 들어가 출가했다. 주요 독립운동 활동으로 3·1 운동 주도, 조선의열단 가담, 조선의용대 조직 및 정치부장, 임시정부 국무위원 역임 등이 있다. 광복 후 여운형과 좌우합작을 지지하였으며, 진보당사건(1955년)으로 큰 탄압을 받았다. 1969년 서거하였으며, 198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46년 미군정이 정권을 인도하기 위해 설립하였던 과도적 성격을 띤 입법기관.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 (南朝鮮 過渡 立法議院)
1946년 미군정이 정권을 인도하기 위해 설립하였던 과도적 성격을 띤 입법기관.
1947년 미군정청이 행정권의 민정이양을 위해 잠정적으로 설치하였던 집행부.
남조선 과도정부 (南朝鮮 過渡政府)
1947년 미군정청이 행정권의 민정이양을 위해 잠정적으로 설치하였던 집행부.
1967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대중당 (大衆黨)
1967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1946년에 설치되었던 미군정의 자문기관.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大韓國民代表民主議院)
1946년에 설치되었던 미군정의 자문기관.
1946년 민족주의 정당들로 구성되었던 국민운동추진단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大韓獨立促成國民會)
1946년 민족주의 정당들로 구성되었던 국민운동추진단체.
해방 이후 고려대학교 교수,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영문학자.
변영태 (卞榮泰)
해방 이후 고려대학교 교수, 외무부장관, 국무총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영문학자.
1945년 광복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지를 표방하는 우익지도자들이 결성한 회의체.
국민대회준비회 (國民大會準備會)
1945년 광복 직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지지를 표방하는 우익지도자들이 결성한 회의체.
일제강점기 때, 대동청년단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영국 상선회사에서 선장으로 일하다가 해방 이후, 국방부장관, 국무총리서리 등을 역임하였으나 거창양민학살 문제로 사직한 정치인·독립운동가.
신성모 (申性模)
일제강점기 때, 대동청년단 등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고, 영국 상선회사에서 선장으로 일하다가 해방 이후, 국방부장관, 국무총리서리 등을 역임하였으나 거창양민학살 문제로 사직한 정치인·독립운동가.
1946년 2월 1일부터 이틀간에 걸쳐 정부수립문제를 논의한 비상정치회의.
비상국민회의 (非常國民會議)
1946년 2월 1일부터 이틀간에 걸쳐 정부수립문제를 논의한 비상정치회의.
전라남도지사, 자민당 최고위원, 제7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서민호 (徐珉濠)
전라남도지사, 자민당 최고위원, 제7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
송진우 (宋鎭禹)
송진우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사 사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 등을 역임한 언론인, 정치인, 교육자,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전남 담양 출생으로 메이지대학을 졸업하고 귀환 후 중앙중학교의 교장으로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불어넣었다. 1921년 동아일보 3대 사장에 취임한 뒤 물산장려운동, 문맹퇴치를 위한 브나로드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1934년 신사참배 거부를 옹호·지지하였다. 1936년 8월 손기정의 가슴에 새겨진 일장기를 지워버린 사건으로 사임하였다. 광복 후 국민대회준비회를 조직하고 위원장으로 취임하였고 한국민주당의 중앙집행위원회 수석총무에 추대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한성임시정부 참모부총장, 노령대한국민회의 참모총장, 상해임시정부 군무총장,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독립운동가.
유동열 (柳東說)
일제강점기 때, 한성임시정부 참모부총장, 노령대한국민회의 참모총장, 상해임시정부 군무총장, 한국독립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한 군인·정치인·독립운동가.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유림 (柳林)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원세훈 (元世勳)
원세훈은 해방 이후 국회의원,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상무위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 독립운동가이다. 1887년 함남 정평 출생으로 1906년 대동법률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911년 비밀결사 독립단을 조직해 활동하다가 동만주로 망명하였다. 간도, 상해, 블라디보스토크, 북경 등에서 조국광복 대의 설파, 새로운 독립운동기관 창설 등을 통해 일제와 맞섰다. 1948년 4월 김규식과 함께 민족자주연맹 대표로 남북협상에 참석하였다. 1950년 납북당했으며, 1959년 간첩죄로 숙청당한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다. 1989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45년 창당되었던 민족진영의 보수정당.
조선민족당 (朝鮮民族黨)
1945년 창당되었던 민족진영의 보수정당.
1945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한국민주당 (韓國民主黨)
1945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194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우익청년단체.
향보단 (鄕保團)
1948년 서울에서 조직되었던 우익청년단체.
1961년에 창당되었던 정당.
통일사회당 (統一社會黨)
1961년에 창당되었던 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