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경성"
검색결과 총 18건
해방 이후 「한일」, 「시장소견」, 「소와 목동」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박상옥 (朴商玉)
해방 이후 「한일」, 「시장소견」, 「소와 목동」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십자가」, 「최후의 심판도」, 「충무공이순신장군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김세중 (金世中)
해방 이후 「십자가」, 「최후의 심판도」, 「충무공이순신장군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해방 이후 「무당」, 「청담대종사」, 「토함산해돋이」, 「명성황후」, 「전봉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박생광 (朴生光)
해방 이후 「무당」, 「청담대종사」, 「토함산해돋이」, 「명성황후」, 「전봉준」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고목과 여인」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박수근 (朴壽根)
해방 이후 「절구질하는 여인」, 「빨래터」, 「고목과 여인」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농가도」, 「무창춘색도」, 「외금강삼선암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변관식 (卞寬植)
해방 이후 「농가도」, 「무창춘색도」, 「외금강삼선암도」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김환기는 「향(響)」, 「월광」, 「영원의 노래」, 「산월」, 「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호는 수화이다. 일본 니혼대학 재학 시절인 1934년 아방가르드 미술연구소를 만들고 추상 미술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 백만회를 조직했다.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 신사실파를 조직하여 새로운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 위원과 대한미술협회 회장 등을 맡았다. 김환기는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구현했다.
김환기 (金煥基)
김환기는 「향(響)」, 「월광」, 「영원의 노래」, 「산월」, 「무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이다. 호는 수화이다. 일본 니혼대학 재학 시절인 1934년 아방가르드 미술연구소를 만들고 추상 미술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하였다. 1937년 백만회를 조직했다. 1948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교수로 취임, 신사실파를 조직하여 새로운 모더니즘 운동을 전개했다. 1959년부터 1963년까지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심사 위원과 대한미술협회 회장 등을 맡았다. 김환기는 한국적 특성과 현대성을 겸비한 그림을 구상과 추상을 통해서 구현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경기도 과천시 광명길(막계동)에 있는 국립 미술관이다. 1969년 경복궁(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관하였다. 1973년 덕수궁 석조전으로 청사를 이전, 운영하다가 1986년 과천 서울대공원 내로 이전, 개관하였다. 1910년대 이후 현대에 이르는 미술 작품을 대상으로 수집·보존·전시하고, 간행물 출간, 공연, 국제교류, 사회교육, 작업공간 제공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 이후 사용자 요구를 수렴하는 활동을 통해 국민의 문화예술 향수 기회를 확대하고, 순수미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國立現代美術館)
국립현대미술관은 경기도 과천시 광명길(막계동)에 있는 국립 미술관이다. 1969년 경복궁(현 국립민속박물관)에서 개관하였다. 1973년 덕수궁 석조전으로 청사를 이전, 운영하다가 1986년 과천 서울대공원 내로 이전, 개관하였다. 1910년대 이후 현대에 이르는 미술 작품을 대상으로 수집·보존·전시하고, 간행물 출간, 공연, 국제교류, 사회교육, 작업공간 제공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2006년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 이후 사용자 요구를 수렴하는 활동을 통해 국민의 문화예술 향수 기회를 확대하고, 순수미술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
안중식은 조선 후기 「산수도」, 「성재수간도」, 「도원문진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881년 중국으로 떠났던 영선사 일행의 제도사로 톈진에서 1년 동안 견문을 넓히고 돌아왔다. 1902년 어진도사에 조석진과 더불어 화사로 선발되어 화명을 높였다. 이후 그의 화실인 경묵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11년 서화미술원이 설립되자 조석진·김응원 등과 같이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18년 서화협회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안중식의 화풍은 서화미술원 출신의 제자를 통해 근대 전통 화단에 영향을 미쳤다.
안중식 (安中植)
안중식은 조선 후기 「산수도」, 「성재수간도」, 「도원문진도」 등을 그린 화가이다. 1881년 중국으로 떠났던 영선사 일행의 제도사로 톈진에서 1년 동안 견문을 넓히고 돌아왔다. 1902년 어진도사에 조석진과 더불어 화사로 선발되어 화명을 높였다. 이후 그의 화실인 경묵당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1911년 서화미술원이 설립되자 조석진·김응원 등과 같이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918년 서화협회 초대 회장에 선출되었다. 안중식의 화풍은 서화미술원 출신의 제자를 통해 근대 전통 화단에 영향을 미쳤다.
일제강점기 「봉황도」, 「만장봉」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오일영 (吳一英)
일제강점기 「봉황도」, 「만장봉」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 이후 세종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화가.
손일봉 (孫一峰)
해방 이후 세종대학교 교수를 역임한 화가.
일제강점기 「여」, 「석류」 등을 그린 화가.
이제창 (李濟昶)
일제강점기 「여」, 「석류」 등을 그린 화가.
일제강점기 서화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한 화가.
조석진 (趙錫晋)
일제강점기 서화협회 2대 회장을 역임한 화가.
조선미술전람회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미술 작품 공모전이다. 약칭으로 ‘선전’ 또는 ‘조선미전’이라 부른다.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총 23회 열렸다. 조선총독부의 문치 정책의 하나로 창설된 관 주도의 미술 작품 공모전이다. 개최 당시 공모 부문은 제1부 동양화, 제2부 서양화 및 조각, 제3부 서예의 3개의 부였다. 한국 근대 미술의 일본화에 촉진적 구실을 함으로써 화단을 일본화의 영향으로 물들게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하여 성장한 작가들은 광복 이후 우리나라 미술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 (朝鮮美術展覽會)
조선미술전람회는 일제 강점기에 조선총독부가 개최한 미술 작품 공모전이다. 약칭으로 ‘선전’ 또는 ‘조선미전’이라 부른다. 1922년부터 1944년까지 총 23회 열렸다. 조선총독부의 문치 정책의 하나로 창설된 관 주도의 미술 작품 공모전이다. 개최 당시 공모 부문은 제1부 동양화, 제2부 서양화 및 조각, 제3부 서예의 3개의 부였다. 한국 근대 미술의 일본화에 촉진적 구실을 함으로써 화단을 일본화의 영향으로 물들게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하여 성장한 작가들은 광복 이후 우리나라 미술계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해방 이후 「간이역」, 「교회, 「곡예」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판화가, 도예가.
정규 (鄭圭)
해방 이후 「간이역」, 「교회, 「곡예」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판화가, 도예가.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고문, 홍익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이상범 (李象範)
해방 이후 국전 심사위원, 고문, 홍익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한 화가. 한국화가.
일제강점기 황종하, 황경하, 황용하와 함께 '황씨 4형제전'을 개최한 화가. 한국화가.
황성하 (黃成河)
일제강점기 황종하, 황경하, 황용하와 함께 '황씨 4형제전'을 개최한 화가. 한국화가.
일제강점기 「소년」, 「자화상」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황술조 (黃述祚)
일제강점기 「소년」, 「자화상」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해방 이후 「소」를 그린 화가. 서양화가.
함대정 (咸大正)
해방 이후 「소」를 그린 화가. 서양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