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근호"
검색결과 총 51건
조선시대 종6품 동반 토관직.
감부 (勘簿)
조선시대 종6품 동반 토관직.
조선시대 정8품 동반 토관직.
관사 (管事)
조선시대 정8품 동반 토관직.
교정청은 1894년(고종 31) 6월 내정 개혁을 위해 한시적으로 설치되었던 임시 관청이다. 1894년 동학농민군과 정부 사이에 전주화약이 체결된 후 농민군이 철수하자 수습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어 내정 개혁을 위한 교정청이 임시기구로 설치되었다. 교정청은 일본측에 군사 철수와 내정 개혁 간섭 중지를 요구하고, 농민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을 중심으로 독자적으로 입안한 12개 조항의 개혁내용을 공표하였다. 하지만 친일개화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의 압력을 배제하며 내정을 추진하고자 했던 교정청은 폐지되고 그 역할은 군국기무처로 넘어갔다.
교정청 (校正廳)
교정청은 1894년(고종 31) 6월 내정 개혁을 위해 한시적으로 설치되었던 임시 관청이다. 1894년 동학농민군과 정부 사이에 전주화약이 체결된 후 농민군이 철수하자 수습을 위한 논의가 본격화되어 내정 개혁을 위한 교정청이 임시기구로 설치되었다. 교정청은 일본측에 군사 철수와 내정 개혁 간섭 중지를 요구하고, 농민군이 제시한 폐정개혁안을 중심으로 독자적으로 입안한 12개 조항의 개혁내용을 공표하였다. 하지만 친일개화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일본의 압력을 배제하며 내정을 추진하고자 했던 교정청은 폐지되고 그 역할은 군국기무처로 넘어갔다.
도서는 조선시대 왜인의 통제를 위해 일본의 지방 호족이나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이다.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으며 1635년 이후에는 사급 대상이 대마도주로 한정되었다. 대마도주가 물러나거나 사망하면 도서를 조선 정부에 반납해야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부정한 사용의 예가 자주 발생하였다. 1872년 일본의 명치 정부가 대마번의 대조선 무역을 중지하면서 폐지되었다. 도서는 실물로 ‘길견(吉見)’, ‘의달(義達)’, ‘숭통(崇統)’ 등이 새겨진 대략 23개 정도가 현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이다.
도서 (圖書)
도서는 조선시대 왜인의 통제를 위해 일본의 지방 호족이나 대마도주에게 지급한 도장이다. 조선 전기부터 사용되었으며 1635년 이후에는 사급 대상이 대마도주로 한정되었다. 대마도주가 물러나거나 사망하면 도서를 조선 정부에 반납해야 했지만 지켜지지 않고 부정한 사용의 예가 자주 발생하였다. 1872년 일본의 명치 정부가 대마번의 대조선 무역을 중지하면서 폐지되었다. 도서는 실물로 ‘길견(吉見)’, ‘의달(義達)’, ‘숭통(崇統)’ 등이 새겨진 대략 23개 정도가 현전하고 있다. 조선시대 대일 외교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제도이다.
부(傅)는 조선시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 소속의 정1품 관직이다. 세자의 서연(書筵)을 책임지는 관직으로 좌의정 또는 우의정이 겸직하였다. 조선 건국 직후 관제를 정비하면서 세자 교육을 위한 세자관속(世子官屬)을 설치하였다. 1401년 주나라 제도에 근거하여 세자사(世子師)와 세자부(世子傅)를 두었다. 세자관속이 세자시강원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사부 직제는 계승되었다. 세자와 함께 매달 2일과 16일에 열리는 회강(會講)에 참석하여 학습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산림이 정치에 진출하면서 이들을 특별히 제수하는 사례도 있었다.
부 (傅)
부(傅)는 조선시대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던 세자시강원 소속의 정1품 관직이다. 세자의 서연(書筵)을 책임지는 관직으로 좌의정 또는 우의정이 겸직하였다. 조선 건국 직후 관제를 정비하면서 세자 교육을 위한 세자관속(世子官屬)을 설치하였다. 1401년 주나라 제도에 근거하여 세자사(世子師)와 세자부(世子傅)를 두었다. 세자관속이 세자시강원으로 개칭된 이후에도 사부 직제는 계승되었다. 세자와 함께 매달 2일과 16일에 열리는 회강(會講)에 참석하여 학습하였다. 조선후기에는 산림이 정치에 진출하면서 이들을 특별히 제수하는 사례도 있었다.
을사환국은 조선 후기 1725년(영조 1) 소론이 축출되고 노론이 정국을 주도한 사건이다. 영조는 소론을 삼정승에 임명하고 한편으로 노론의 영수격인 민진원을 석방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노론의 재진출이 시작되었다. 환국의 시작은 윤봉조가 소론 측 삼사 관원에 대한 처벌을 요청하여 이들이 축출되고 관직인사를 담당하는 이조참의에 윤봉조가 임명된 것이었다. 거기에 민진원이 이조판서가 되며 노론 측 관원이 대거 등용되었고 얼마 후 노론 정권이 구성되었다. 이들은 경종 연간에 있었던 신임옥사를 소론 측의 무고라 판정하고 피해를 본 노론을 모두 신원한 을사처분을 주도하였다.
을사환국 (乙巳換局)
을사환국은 조선 후기 1725년(영조 1) 소론이 축출되고 노론이 정국을 주도한 사건이다. 영조는 소론을 삼정승에 임명하고 한편으로 노론의 영수격인 민진원을 석방하였는데, 이를 계기로 노론의 재진출이 시작되었다. 환국의 시작은 윤봉조가 소론 측 삼사 관원에 대한 처벌을 요청하여 이들이 축출되고 관직인사를 담당하는 이조참의에 윤봉조가 임명된 것이었다. 거기에 민진원이 이조판서가 되며 노론 측 관원이 대거 등용되었고 얼마 후 노론 정권이 구성되었다. 이들은 경종 연간에 있었던 신임옥사를 소론 측의 무고라 판정하고 피해를 본 노론을 모두 신원한 을사처분을 주도하였다.
『무신창의록』은 이진동이 1728년 무신란 때 경상도에서 일어난 의병에 대한 사적을 모아 기록한 의병록이다. 목판본이며, 5권 2책이다. 1788년 3월 정조는 무신란 진압 60주년을 기념하여 공신들을 추증하고, 경상 감사에게 사적을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1788년 이진동은 경상도 지역 13개 고을의 사적을 모아 1책으로 편집하여 국왕에게 제출하였다. 당대에는 바로 간행되지 않다가, 1874년(고종 11) 경에 유후조의 서문을 받아 간행되었다. 『무신창의록』은 정치 기반으로 영남 남인들을 확보하려는 정조의 정치적 의도가 취해지면서 편찬된 책이다.
무신창의록 (戊申倡義錄)
『무신창의록』은 이진동이 1728년 무신란 때 경상도에서 일어난 의병에 대한 사적을 모아 기록한 의병록이다. 목판본이며, 5권 2책이다. 1788년 3월 정조는 무신란 진압 60주년을 기념하여 공신들을 추증하고, 경상 감사에게 사적을 조사해서 보고하도록 하였다. 1788년 이진동은 경상도 지역 13개 고을의 사적을 모아 1책으로 편집하여 국왕에게 제출하였다. 당대에는 바로 간행되지 않다가, 1874년(고종 11) 경에 유후조의 서문을 받아 간행되었다. 『무신창의록』은 정치 기반으로 영남 남인들을 확보하려는 정조의 정치적 의도가 취해지면서 편찬된 책이다.
병호시비는 1620년(광해군 12) 여강서원(후에 호계서원)에 배향된 이황의 제자 김성일과 류성룡 위패의 위치를 두고 안동을 비롯한 영남지역 유림들이 병파와 호파로 나뉘어 대립한 분쟁이다. '병'은 류성룡 계열의 병산서원이고 '호'는 김성일 계열의 호계서원을 뜻한다. 위패의 위치는 제자로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으로 병파는 직위를, 호파는 나이를 내세우며 동쪽을 주장하였다. 이후로도 여러 사안으로 분쟁이 이어지다가 2013년 호계서원 복원사업을 계기로 동쪽에 류성룡, 서쪽에 김성일의 위패를 모시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병호시비 (屛虎是非)
병호시비는 1620년(광해군 12) 여강서원(후에 호계서원)에 배향된 이황의 제자 김성일과 류성룡 위패의 위치를 두고 안동을 비롯한 영남지역 유림들이 병파와 호파로 나뉘어 대립한 분쟁이다. '병'은 류성룡 계열의 병산서원이고 '호'는 김성일 계열의 호계서원을 뜻한다. 위패의 위치는 제자로서의 지위를 결정하는 것으로 병파는 직위를, 호파는 나이를 내세우며 동쪽을 주장하였다. 이후로도 여러 사안으로 분쟁이 이어지다가 2013년 호계서원 복원사업을 계기로 동쪽에 류성룡, 서쪽에 김성일의 위패를 모시는 것으로 결정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탕평파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 연간에 탕평을 주도하던 집권 세력이다. 탕당이라고도 한다. 영조는 즉위 초에 조문명과 송인명 등을 발탁하여 소론을 중심으로 탕평을 추진하였다. 점차 노론 내에서 탕평에 동조하는 홍치중과 김재로 등을 규합하였다. 탕평파는 국왕 주도의 탕평을 보좌하며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처리하였다. 1740년에 임인옥사를 소론의 무고로 판정하는 경신처분이 내려졌고, 1741년에 노론의 명분을 인정하는 신유대훈이 반포되었다. 탕평책으로 붕당 체제가 와해되고 정국이 안정되면서 균역법 등 개혁적 법안이 마련되었다.
탕평파 (蕩平派)
탕평파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 연간에 탕평을 주도하던 집권 세력이다. 탕당이라고도 한다. 영조는 즉위 초에 조문명과 송인명 등을 발탁하여 소론을 중심으로 탕평을 추진하였다. 점차 노론 내에서 탕평에 동조하는 홍치중과 김재로 등을 규합하였다. 탕평파는 국왕 주도의 탕평을 보좌하며 중요한 정치적 사안을 처리하였다. 1740년에 임인옥사를 소론의 무고로 판정하는 경신처분이 내려졌고, 1741년에 노론의 명분을 인정하는 신유대훈이 반포되었다. 탕평책으로 붕당 체제가 와해되고 정국이 안정되면서 균역법 등 개혁적 법안이 마련되었다.
병신처분은 1716년(숙종 42) 노론 송시열과 소론 윤증 간의 회니시비에 대해 국왕이 윤증의 잘못으로 판정한 사건이다. 회니시비는 사림 사이의 문제였으나 희빈장씨의 처벌과 『예기유편』 문제로 노·소론 대립이 격화되며 조정의 대립으로 확대되었다. 이즈음 『가례원류』 발문 논란이 발생했는데, 숙종은 윤증을 옹호, 소론계 주장에 동조했다. 이후 노론에 대한 소론의 공격이 심해졌고, 숙종은 신유의서와 묘갈명을 검토하고 처분을 내리면서 윤증에 대해서는 선정과 칭호를 금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소론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정국에서 위축되었고 노론은 정국 주도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병신처분 (丙申處分)
병신처분은 1716년(숙종 42) 노론 송시열과 소론 윤증 간의 회니시비에 대해 국왕이 윤증의 잘못으로 판정한 사건이다. 회니시비는 사림 사이의 문제였으나 희빈장씨의 처벌과 『예기유편』 문제로 노·소론 대립이 격화되며 조정의 대립으로 확대되었다. 이즈음 『가례원류』 발문 논란이 발생했는데, 숙종은 윤증을 옹호, 소론계 주장에 동조했다. 이후 노론에 대한 소론의 공격이 심해졌고, 숙종은 신유의서와 묘갈명을 검토하고 처분을 내리면서 윤증에 대해서는 선정과 칭호를 금하도록 하였다. 그 결과 소론은 심각한 타격을 입고 정국에서 위축되었고 노론은 정국 주도권을 독점하게 되었다.
노론 4대신은 조선 후기 경종 연간에 발생한 신임옥사 때 화를 당한 노론 계열의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 4명이다. 이들은 왕세제로 책봉된 영조의 대리청정을 요구하였다가 소론에 의해 반역으로 몰려 유배 보내졌고,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는 묵호룡의 고변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영조가 즉위하며 집권한 노론들에 의해 모두 관작이 회복되고 시호가 내려졌다. 경기도 과천에 이들을 모신 사충서원이 있다. 이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포장과 환수가 반복되었다. 노론에서는 ‘사충(四忠)’으로, 소론에서는 ‘사흉(四凶)’으로 불렀다.
노론 4대신 (老論 四大臣)
노론 4대신은 조선 후기 경종 연간에 발생한 신임옥사 때 화를 당한 노론 계열의 김창집·이이명·이건명·조태채 4명이다. 이들은 왕세제로 책봉된 영조의 대리청정을 요구하였다가 소론에 의해 반역으로 몰려 유배 보내졌고, 경종을 시해하려 했다는 묵호룡의 고변에 연루되어 사사되었다. 영조가 즉위하며 집권한 노론들에 의해 모두 관작이 회복되고 시호가 내려졌다. 경기도 과천에 이들을 모신 사충서원이 있다. 이후 정치적 상황에 따라 포장과 환수가 반복되었다. 노론에서는 ‘사충(四忠)’으로, 소론에서는 ‘사흉(四凶)’으로 불렀다.
조선후기 해남윤씨 귤정공파의 인물을 대상으로 행적과 기록을 집성한 인명록. 종가유물.
당악문헌 (棠岳文獻)
조선후기 해남윤씨 귤정공파의 인물을 대상으로 행적과 기록을 집성한 인명록. 종가유물.
1875년 안동부사 홍철주가 울산에서 발생한 민란의 조사와 처리 과정 등에 관해 기록한 보고서.
울산안핵록 (蔚山按覈錄)
1875년 안동부사 홍철주가 울산에서 발생한 민란의 조사와 처리 과정 등에 관해 기록한 보고서.
『안동향손사적통록』은 조선 후기에 성균관에서 수학한 권심도, 권영흡, 권용칭, 권계위, 권경룡 등 5인이 안동 지역 향리의 사적과 주요 인물들의 전기를 모아 1824년에 간행한 사적기이다. 조선 후기 안동 향리의 신분 상승과 사회적 진출이라는 포석을 목적으로 간행되었다. 필사본으로, 1책이다. 먼저 총 5편의 서문을 수록하고, 이어 「안동향손사적」 항목에서는 안동 지역 향리와 관련한 역사적 사적을 수록하였다. 향리의 전기 기록인 「안동향손내력」에서는 진사 권민의를 시작으로 모두 66명의 향리에 대한 기록을 실었다. 마지막에는 20편의 발문을 수록하였다.
안동 향손 사적 통록 (安東 鄕孫 事蹟 通錄)
『안동향손사적통록』은 조선 후기에 성균관에서 수학한 권심도, 권영흡, 권용칭, 권계위, 권경룡 등 5인이 안동 지역 향리의 사적과 주요 인물들의 전기를 모아 1824년에 간행한 사적기이다. 조선 후기 안동 향리의 신분 상승과 사회적 진출이라는 포석을 목적으로 간행되었다. 필사본으로, 1책이다. 먼저 총 5편의 서문을 수록하고, 이어 「안동향손사적」 항목에서는 안동 지역 향리와 관련한 역사적 사적을 수록하였다. 향리의 전기 기록인 「안동향손내력」에서는 진사 권민의를 시작으로 모두 66명의 향리에 대한 기록을 실었다. 마지막에는 20편의 발문을 수록하였다.
조선후기 반란 세력을 모집하여 무신란을 일으킨 주모자.
조덕규 (趙德奎)
조선후기 반란 세력을 모집하여 무신란을 일으킨 주모자.
조선후기 문신 이위가 전라도 도사로 일상생활을 하던 기간에 작성한 일기.
비목재일기 (卑牧齋日記)
조선후기 문신 이위가 전라도 도사로 일상생활을 하던 기간에 작성한 일기.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세자와 후대 왕에게 내리는 교훈을 담아 1758년에 간행한 어제(御製).
어제속상훈 (御製續常訓)
조선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세자와 후대 왕에게 내리는 교훈을 담아 1758년에 간행한 어제(御製).
조선 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소론의 유봉휘·조태구 등을 역률(逆律)로 처벌하면서 1755년에 간행한 어제(御製).
어제첨간대훈 (御製添刊大訓)
조선 후기 제21대 왕 영조가 소론의 유봉휘·조태구 등을 역률(逆律)로 처벌하면서 1755년에 간행한 어제(御製).
조선후기 이인좌의 반란에 가담한 모반인.
신천영 (申天永)
조선후기 이인좌의 반란에 가담한 모반인.
심유현은 조선 후기 담양부사로 박필현 등과 호남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경종의 첫 번째 왕비인 단의왕후의 동생으로, 1728년(영조 4) 무신란 때 반란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담양부사 재직 당시에 태인현감이었던 박필현과 고창 무장에서 귀양 생활을 하던 박필현의 종형 박필몽 등과 모의하여 호남에서 반란을 꾀하였다. 그러나 반란 세력은 전주의 삼천에서 궤멸되면서 체포되었고 심유현은 조사받던 중 사망하였다. 1908년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법부대신 조중응의 건의에 따라 죄명이 벗겨졌다.
심유현 (沈維賢)
심유현은 조선 후기 담양부사로 박필현 등과 호남에서 반란을 일으킨 주모자이다. 경종의 첫 번째 왕비인 단의왕후의 동생으로, 1728년(영조 4) 무신란 때 반란 세력을 대표하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담양부사 재직 당시에 태인현감이었던 박필현과 고창 무장에서 귀양 생활을 하던 박필현의 종형 박필몽 등과 모의하여 호남에서 반란을 꾀하였다. 그러나 반란 세력은 전주의 삼천에서 궤멸되면서 체포되었고 심유현은 조사받던 중 사망하였다. 1908년 내각 총리대신 이완용과 법부대신 조중응의 건의에 따라 죄명이 벗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