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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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들지는 여성의 예복을 상징하기 위해 당의, 장옷, 견마기의 소매 수구를 접어 올린 소매 끝 양식이다. 소매 끝 수구 또는 안감 소매 쪽에 흰색 옷감을 덧대어 걷어 올린 형태로, 서양 복식의 턴업(Turn-up) 형태와 같다. 일반적으로 겉감과 같거나 질이 더 좋은 옷감을 사용하며, 무늬가 있거나 없는 것 모두 사용하였다. 겉에서 볼 때는 흰색 끝동을 단 것처럼 보인다.
거들지
거들지는 여성의 예복을 상징하기 위해 당의, 장옷, 견마기의 소매 수구를 접어 올린 소매 끝 양식이다. 소매 끝 수구 또는 안감 소매 쪽에 흰색 옷감을 덧대어 걷어 올린 형태로, 서양 복식의 턴업(Turn-up) 형태와 같다. 일반적으로 겉감과 같거나 질이 더 좋은 옷감을 사용하며, 무늬가 있거나 없는 것 모두 사용하였다. 겉에서 볼 때는 흰색 끝동을 단 것처럼 보인다.
누비는 옷을 지을 때 겉감과 안감을 겹치거나 사이에 솜을 넣어, 줄지어 바느질하는 기법이다. 누비는 방한, 보호, 호신, 장식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누비 간격에 따라 잔누비(세누비), 중누비, 드문누비로 나뉘며, 누빈 형태에 따라 오목누비, 납작 누비로 구분되고, 재봉 방법에 따라 홈질 누비와 박음질 누비로 나뉜다. 또한 솜의 첨가 유무로 완성된 옷을 솜 누비옷 또는 겹누비옷으로 구분한다.
누비 (縷緋)
누비는 옷을 지을 때 겉감과 안감을 겹치거나 사이에 솜을 넣어, 줄지어 바느질하는 기법이다. 누비는 방한, 보호, 호신, 장식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누비 간격에 따라 잔누비(세누비), 중누비, 드문누비로 나뉘며, 누빈 형태에 따라 오목누비, 납작 누비로 구분되고, 재봉 방법에 따라 홈질 누비와 박음질 누비로 나뉜다. 또한 솜의 첨가 유무로 완성된 옷을 솜 누비옷 또는 겹누비옷으로 구분한다.
석주선기념박물관은 단국대학교 부속 기관으로 설립된 제1종 종합박물관이다. 서울 한남동의 단국대학교 캠퍼스에 위치하였던 고고미술 중심의 ‘중앙박물관’과 민속 복식 중심의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을 1999년에 통합하였다. 현재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 자리하고 있으며, 5개의 전시 공간과 4개의 수장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학박물관으로서의 특성을 살려 전시, 교육, 연구를 통한 종합적인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 (檀國大學校 石宙善紀念博物館)
석주선기념박물관은 단국대학교 부속 기관으로 설립된 제1종 종합박물관이다. 서울 한남동의 단국대학교 캠퍼스에 위치하였던 고고미술 중심의 ‘중앙박물관’과 민속 복식 중심의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을 1999년에 통합하였다. 현재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에 자리하고 있으며, 5개의 전시 공간과 4개의 수장 시설을 갖추고 있다. 대학박물관으로서의 특성을 살려 전시, 교육, 연구를 통한 종합적인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동의대(胴衣襨)는 왕실에서 쓰이던, 왕과 왕세자의 저고리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위에는 동의대를 입고 아래에는 봉지를 입었다. 왕실발기에 소창의에 해당하는 장의대(長衣襨)라는 옷이 동의대와 함께 기록된 것에서 동의대가 저고리임을 알 수 있다. 왕실의 발기에는 대부분 한글 명칭 ‘동의ᄃᆡ’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자어 ‘彤衣襨’, ‘同衣襨’, ‘胴衣襨’도 일부 있다. 일반 왕자는 ‘동의복’ 또는 ‘저고리’로 표기하여 차별을 두었다.
동의대 (胴衣襨)
동의대(胴衣襨)는 왕실에서 쓰이던, 왕과 왕세자의 저고리를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위에는 동의대를 입고 아래에는 봉지를 입었다. 왕실발기에 소창의에 해당하는 장의대(長衣襨)라는 옷이 동의대와 함께 기록된 것에서 동의대가 저고리임을 알 수 있다. 왕실의 발기에는 대부분 한글 명칭 ‘동의ᄃᆡ’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자어 ‘彤衣襨’, ‘同衣襨’, ‘胴衣襨’도 일부 있다. 일반 왕자는 ‘동의복’ 또는 ‘저고리’로 표기하여 차별을 두었다.
몽두리(蒙頭里)는 왕실의 기행나인(騎行內人)과 왕실 잔치에서 정재(呈才)에 참여한 여령(女伶) 등이 입는, 길이가 긴 포 형태의 겉옷이다. 문헌에는 ‘몽두의(蒙頭衣)’ ‘몽두리(蒙頭里)’, ‘몽도리(蒙道里)’, ‘몽도리’로 기록되며 착장자의 역할에 따라 ‘장삼(長衫)’, ‘황초삼(黃綃衫)’, ‘금향협수(金香挾袖)’ 등의 이칭으로 쓰인 기록도 있다. 조선 전기에는 신분이 낮은 여성들이 이 옷을 예복으로 입기도 하였으나 시대가 바뀌면서 착장자의 신분에 따라 용도와 형태가 변하였다.
몽두리 (蒙頭里)
몽두리(蒙頭里)는 왕실의 기행나인(騎行內人)과 왕실 잔치에서 정재(呈才)에 참여한 여령(女伶) 등이 입는, 길이가 긴 포 형태의 겉옷이다. 문헌에는 ‘몽두의(蒙頭衣)’ ‘몽두리(蒙頭里)’, ‘몽도리(蒙道里)’, ‘몽도리’로 기록되며 착장자의 역할에 따라 ‘장삼(長衫)’, ‘황초삼(黃綃衫)’, ‘금향협수(金香挾袖)’ 등의 이칭으로 쓰인 기록도 있다. 조선 전기에는 신분이 낮은 여성들이 이 옷을 예복으로 입기도 하였으나 시대가 바뀌면서 착장자의 신분에 따라 용도와 형태가 변하였다.
수화자는 조선시대에 문무백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신는, 목이 긴 신이다. 수화자는 단령을 착장할 때 신는 목화(木靴)와 유사한 형태이나 앞코의 끝이 뾰족하게 들려 있다는 차이를 보인다. 조선 후기 역대 『진찬의궤(進饌儀軌)』류에 그려진 <복식도>에서 수화자는 신목이 길고 앞축이 뾰족하고 위로 치켜 올라간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수화자 (水靴子)
수화자는 조선시대에 문무백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신는, 목이 긴 신이다. 수화자는 단령을 착장할 때 신는 목화(木靴)와 유사한 형태이나 앞코의 끝이 뾰족하게 들려 있다는 차이를 보인다. 조선 후기 역대 『진찬의궤(進饌儀軌)』류에 그려진 <복식도>에서 수화자는 신목이 길고 앞축이 뾰족하고 위로 치켜 올라간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악인복(樂人服)은 조선시대에 궁중 행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의 복식을 뜻한다. 악인의 구분이 시대에 따라 변모하였고 의식의 종류에 따라 복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 조선 후기 진찬 · 진연의궤류에서 다양한 악인 복식이 확인되며, 전악(典樂) · 악사(樂師) · 악생(樂生) · 악공(樂工)과 노래하는 사람인 가자(歌者)의 복식이 대표적이다. 악인들은 양인 · 천민 출신이지만 의식(儀式)에 직접 참여하여 음악을 연주하는 특수한 직분의 사람들이므로, 연주 시에는 특별히 공복(公服)과 관복(冠服)의 착용이 허용되었다.
악인복 (樂人服)
악인복(樂人服)은 조선시대에 궁중 행사에서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과 노래하는 사람의 복식을 뜻한다. 악인의 구분이 시대에 따라 변모하였고 의식의 종류에 따라 복식은 매우 다양하다. 그중에서 조선 후기 진찬 · 진연의궤류에서 다양한 악인 복식이 확인되며, 전악(典樂) · 악사(樂師) · 악생(樂生) · 악공(樂工)과 노래하는 사람인 가자(歌者)의 복식이 대표적이다. 악인들은 양인 · 천민 출신이지만 의식(儀式)에 직접 참여하여 음악을 연주하는 특수한 직분의 사람들이므로, 연주 시에는 특별히 공복(公服)과 관복(冠服)의 착용이 허용되었다.
전포는 조선시대에 무사들이 착용하던 긴 웃옷 종류이다. 전포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전투, 전쟁과 관련된 복장이다. 기록에서는 『고려도경(高麗圖經)』 권12 장위조(仗衞條)의 영군낭장기병(領軍郎將騎兵) 복식에서 보인다. 그중 “고려인은 ‘자라전포(紫羅戰袍)’를 착용하고 거란 강졸(降卒)은 ‘청록긴사대화전포(靑綠緊絲大花戰袍)’를 착용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시대 전포의 구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다. 단, 조선시대에는 융복의 철릭[帖裏]이나 전복(戰服)과 협수(挾袖) 등의 군복을 지칭하였다.
전포 (戰袍)
전포는 조선시대에 무사들이 착용하던 긴 웃옷 종류이다. 전포라는 명칭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전투, 전쟁과 관련된 복장이다. 기록에서는 『고려도경(高麗圖經)』 권12 장위조(仗衞條)의 영군낭장기병(領軍郎將騎兵) 복식에서 보인다. 그중 “고려인은 ‘자라전포(紫羅戰袍)’를 착용하고 거란 강졸(降卒)은 ‘청록긴사대화전포(靑綠緊絲大花戰袍)’를 착용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고려시대 전포의 구체적인 형태는 알 수 없다. 단, 조선시대에는 융복의 철릭[帖裏]이나 전복(戰服)과 협수(挾袖) 등의 군복을 지칭하였다.
주립(朱笠)은 조선시대에 당상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착용했던 붉은색의 갓이다. 선유락 춤을 추는 여령(女伶) 중에서 집사가 융복 차림을 할 때도 주립을 썼다. 흑립(黑笠)과 기본 형태는 같고 색상이 붉으며, 구슬끈[纓]을 양쪽 귀옆에 달아 턱에서 매었으며, 입식(笠飾)으로 호수(虎鬚)와 공작우(孔雀羽)를 꽂아 장식하였다.
주립 (朱笠)
주립(朱笠)은 조선시대에 당상관이 융복(戎服) 차림을 할 때 착용했던 붉은색의 갓이다. 선유락 춤을 추는 여령(女伶) 중에서 집사가 융복 차림을 할 때도 주립을 썼다. 흑립(黑笠)과 기본 형태는 같고 색상이 붉으며, 구슬끈[纓]을 양쪽 귀옆에 달아 턱에서 매었으며, 입식(笠飾)으로 호수(虎鬚)와 공작우(孔雀羽)를 꽂아 장식하였다.
처네는 명칭과 기본 모양은 같으면서 부녀자의 내외용 쓰개, 포대기, 간편한 이불의 용도로 쓰인 치마형 싸개이다. 치마와 모양이 비슷하면서 윗부분에 깃과 동정이 달려 있으며, 중심부에는 주름이 잡혀 있는 형태이며, 내외용 쓰개와 포대기에는 고름이 달려 있다. 한자어는 ‘薦衣, 衤薦衣’, 한글은 ‘쳔의’로 표기되며, 처네는 근대 이후 불리운 속음이다.
처네 (薦▽衣▽)
처네는 명칭과 기본 모양은 같으면서 부녀자의 내외용 쓰개, 포대기, 간편한 이불의 용도로 쓰인 치마형 싸개이다. 치마와 모양이 비슷하면서 윗부분에 깃과 동정이 달려 있으며, 중심부에는 주름이 잡혀 있는 형태이며, 내외용 쓰개와 포대기에는 고름이 달려 있다. 한자어는 ‘薦衣, 衤薦衣’, 한글은 ‘쳔의’로 표기되며, 처네는 근대 이후 불리운 속음이다.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長興任氏 墓 出土服飾)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조카며느리인 장흥임씨로 추정되는 묘에서 출토된 23점의 유물이다. 1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는 저고리 2점, 바지 2점, 철릭 1점, 직령포 1점과 염습 제구 17점이 출토되었다. 1980년에 '장흥임씨의복'이라는 명칭으로 의복 6점이 중요민속자료(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염습 제구 17점을 추가로 지정하면서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 (長興任氏 墓 出土服飾)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長興任氏 墓 出土服飾)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였던 김덕령(金德齡, 1567∼1596) 장군의 조카며느리인 장흥임씨로 추정되는 묘에서 출토된 23점의 유물이다. 17세기 전반기로 추정되는 저고리 2점, 바지 2점, 철릭 1점, 직령포 1점과 염습 제구 17점이 출토되었다. 1980년에 '장흥임씨의복'이라는 명칭으로 의복 6점이 중요민속자료(제112호)로 지정되었으며, 2004년에는 염습 제구 17점을 추가로 지정하면서 '장흥임씨 묘 출토복식'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광주역사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유길준 단령은 대한제국기, 개화사상가 유길준이 착용하였던 개량식 소례복 단령이다. 단령 1은 겉감은 검은색 명주, 안감은 푸른색 명주로 만든 겹단령이며, 단령 2는 검은색으로 물들인 모시로 만든 홑단령이다. 두루마기 형태에 단령 깃을 부착하고, 고름 대신 단추를 부착한 형태로 서양식 요소를 도입하여 단순하게 만들었다. 1909년에 유길준이 이 단령으로 보여지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전해진다.
유길준 단령 (兪吉濬 團領)
유길준 단령은 대한제국기, 개화사상가 유길준이 착용하였던 개량식 소례복 단령이다. 단령 1은 겉감은 검은색 명주, 안감은 푸른색 명주로 만든 겹단령이며, 단령 2는 검은색으로 물들인 모시로 만든 홑단령이다. 두루마기 형태에 단령 깃을 부착하고, 고름 대신 단추를 부착한 형태로 서양식 요소를 도입하여 단순하게 만들었다. 1909년에 유길준이 이 단령으로 보여지는 옷을 입고 찍은 사진이 전해진다.
의병장 유인석 심의는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이 착용한 심의와 복건 및 대대이다. 의암 유인석이 유학자로 활동하였던 시기인 1800년대 후반에 착용한 심의 1점, 복건 1점, 대대 1점이다. 심의는 깃이 네모난 방령 심의로, 소색 모시에 검은색 가선을 둘렀다. 대대는 심의와 같은 재질이며, 복건은 도련한 검은색 명주로 만들었다. 착장자가 명확하고 조선 말기에 통용된 방령형 심의로서 복식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의병장 유인석 심의 (義兵將 柳麟錫 深衣)
의병장 유인석 심의는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의병장인 유인석이 착용한 심의와 복건 및 대대이다. 의암 유인석이 유학자로 활동하였던 시기인 1800년대 후반에 착용한 심의 1점, 복건 1점, 대대 1점이다. 심의는 깃이 네모난 방령 심의로, 소색 모시에 검은색 가선을 둘렀다. 대대는 심의와 같은 재질이며, 복건은 도련한 검은색 명주로 만들었다. 착장자가 명확하고 조선 말기에 통용된 방령형 심의로서 복식사에 중요한 자료이다.
전 박신룡 장군 의대는 조선 후기의 장군 박신룡이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복식이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박신룡은 전사하였다.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하여 집에 있던 박신룡의 유의와 신발을 함께 매장하였다고 한다. 이 유물은 1885년 박신룡의 유의각(遺衣閣)을 세우고 봉안하였던 단령 1점, 철릭 2점, 쾌자 1점이다. 박신룡의 생존 시기 이후인 18∼1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어 앞에 ‘전(傳)’자를 붙여 칭하고 있다. 당시 박신룡의 옷을 마련하지 못하여 후손의 옷을 대신 봉안한 것으로 사료된다. 1980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전 박신룡 장군 의대 (傳 朴信龍 將軍 衣帶)
전 박신룡 장군 의대는 조선 후기의 장군 박신룡이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복식이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박신룡은 전사하였다.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하여 집에 있던 박신룡의 유의와 신발을 함께 매장하였다고 한다. 이 유물은 1885년 박신룡의 유의각(遺衣閣)을 세우고 봉안하였던 단령 1점, 철릭 2점, 쾌자 1점이다. 박신룡의 생존 시기 이후인 18∼1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어 앞에 ‘전(傳)’자를 붙여 칭하고 있다. 당시 박신룡의 옷을 마련하지 못하여 후손의 옷을 대신 봉안한 것으로 사료된다. 1980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윤증가의 유품은 조선 후기의 문신 윤증의 유품과 윤증가 종부에게 물려온 후손의 유품이다. 2차에 걸쳐 총 53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복식 자료는 모두 11점으로 1차 지정된 10점과 추가 지정된 아얌 1점이 있다. 회화 자료는 2004년에 추가 지정된 것으로 14점이다. 생활 자료는 모두 33점으로 합죽선 1점과 인장 28과(顆), 벼루 1점, 치미추 1점, 혼천의 1점, 해시계 1점이다. 논산 명재고택과 유봉영당에 보존되어 오고 있다. 한 집안의 대를 이은 유물로 착용자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자료도 방대하여 민속학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윤증가의 유품 (尹拯家의 遺品)
윤증가의 유품은 조선 후기의 문신 윤증의 유품과 윤증가 종부에게 물려온 후손의 유품이다. 2차에 걸쳐 총 53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복식 자료는 모두 11점으로 1차 지정된 10점과 추가 지정된 아얌 1점이 있다. 회화 자료는 2004년에 추가 지정된 것으로 14점이다. 생활 자료는 모두 33점으로 합죽선 1점과 인장 28과(顆), 벼루 1점, 치미추 1점, 혼천의 1점, 해시계 1점이다. 논산 명재고택과 유봉영당에 보존되어 오고 있다. 한 집안의 대를 이은 유물로 착용자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자료도 방대하여 민속학적·학술적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