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연숙"
검색결과 총 19건
『동국시화휘성(東國詩話彙成)』은 홍중인이 단군시대부터 조선시대 영조대까지 인물들을 시대별, 신분별로 나누어 각각 인적사항을 기술하고 그들이 지은 시, 그들과 관련된 타인의 시와 일화를 모아 엮은 책이다. 23권 7책의 필사본으로 일반인뿐만 아니라 승류·규수·창류·종실 등 여러 부류에 속하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점과 작자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의 시를 많이 소개하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동국시화휘성 (東國詩話彙成)
『동국시화휘성(東國詩話彙成)』은 홍중인이 단군시대부터 조선시대 영조대까지 인물들을 시대별, 신분별로 나누어 각각 인적사항을 기술하고 그들이 지은 시, 그들과 관련된 타인의 시와 일화를 모아 엮은 책이다. 23권 7책의 필사본으로 일반인뿐만 아니라 승류·규수·창류·종실 등 여러 부류에 속하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한 점과 작자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무명씨의 시를 많이 소개하고 있는 점이 주목할 만하다.
『만산유집』은 조선 후기 문신 김사주(金師柱)의 시(詩)·고제문(告祭文)·비장(碑狀)·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삼종제 김정주(金正柱)의 시집 『귀야유고』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김사주의 아들 김노겸이 1847년에 지은 『귀야유고』의 발문에 따르면, 김노겸이 『만산유집』을 편집했다. 그 후 평소 김사주와 함께 공부하며 지냈던 김정주의 유고가 흩어져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김노겸이 이노준과 함께 김정주의 유고를 정리하였다. 따라서 『만산유집』은 아들 김노겸이 편집하여 1847년 이전에 필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만산유집 (晩山遺集)
『만산유집』은 조선 후기 문신 김사주(金師柱)의 시(詩)·고제문(告祭文)·비장(碑狀)·잡저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삼종제 김정주(金正柱)의 시집 『귀야유고』가 부록으로 실려 있다. 김사주의 아들 김노겸이 1847년에 지은 『귀야유고』의 발문에 따르면, 김노겸이 『만산유집』을 편집했다. 그 후 평소 김사주와 함께 공부하며 지냈던 김정주의 유고가 흩어져 사라질 것을 염려하여, 김노겸이 이노준과 함께 김정주의 유고를 정리하였다. 따라서 『만산유집』은 아들 김노겸이 편집하여 1847년 이전에 필사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만주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창주의 시문집이다. 정창주의 차남 정원상(鄭元詳)이 집안에서 보관하던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편집하여, 백각(白閣) 강현(姜鋧)에게 서문을 청하는 등 『만주집』을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도중에 사망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정창주의 손자 정유(鄭維)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1748년에 강현의 서문을 붙여 『만주집』을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했다.
만주집 (晩州集)
『만주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 정창주의 시문집이다. 정창주의 차남 정원상(鄭元詳)이 집안에서 보관하던 초고(草稿)를 바탕으로 편집하여, 백각(白閣) 강현(姜鋧)에게 서문을 청하는 등 『만주집』을 간행하고자 하였으나 도중에 사망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후 정창주의 손자 정유(鄭維)가 아버지의 뜻을 이어, 1748년에 강현의 서문을 붙여 『만주집』을 4권 2책의 목판으로 간행했다.
『매곡유록』은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시혁의 시·소(疏)·계(啓)·만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4책의 필사본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어서, 누구의 주도로 수집, 편집되었는지, 필사경위 등을 알 수 없다. 『매곡유록』은 대부분 시(詩)와 관직 생활하면서 올린 상소와 계사, 서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강화유수로 부임해서 강화외성을 쌓을 때 지은 「강도축성의」와 「강도성역절목」이 주목할 만하다.
매곡유록 (梅谷遺錄)
『매곡유록』은 조선 중기의 문신 김시혁의 시·소(疏)·계(啓)·만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4책의 필사본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어서, 누구의 주도로 수집, 편집되었는지, 필사경위 등을 알 수 없다. 『매곡유록』은 대부분 시(詩)와 관직 생활하면서 올린 상소와 계사, 서계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강화유수로 부임해서 강화외성을 쌓을 때 지은 「강도축성의」와 「강도성역절목」이 주목할 만하다.
『명암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주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종손 이경록 등이 정사하여 성책하였던 것을 바탕으로 1954년 7세손 이주후가 편집, 간행한 5권 2책의 석인본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국학진흥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명암문집 (冥菴文集)
『명암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이주대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5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종손 이경록 등이 정사하여 성책하였던 것을 바탕으로 1954년 7세손 이주후가 편집, 간행한 5권 2책의 석인본이다.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한국국학진흥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목석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의병의 시·제문·잡저·서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5책의 필사본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 경위를 잘 알 수 없지만, 1928년 간행할 목적으로 저자의 글을 모아 필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목석유고 (木石遺槁)
『목석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이의병의 시·제문·잡저·서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5책의 필사본으로 서문과 발문이 없어 간행 경위를 잘 알 수 없지만, 1928년 간행할 목적으로 저자의 글을 모아 필사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무하옹유고』는 조선 중기의 학자 신치원(申致遠)의 시(詩) · 과아록(課兒錄) · 서(書) · 제문(祭文)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책의 필사본이다. 서문과 발문이 남아 있지 않아 유문의 편찬, 필사 경위는 알 수 없다.
무하옹유고 (無何翁遺稿)
『무하옹유고』는 조선 중기의 학자 신치원(申致遠)의 시(詩) · 과아록(課兒錄) · 서(書) · 제문(祭文)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책의 필사본이다. 서문과 발문이 남아 있지 않아 유문의 편찬, 필사 경위는 알 수 없다.
『묵산문집』은 조선 후기 학자 문해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문재기의 편집을 거쳐, 1937년에 문경엽이 간행하였다. 문해구는 합천의 처사로, 기묘명인 문회지의 후손이고, 송환기의 문인이다. 그의 잡저들은 철학적인 심성론을 비롯하여 사서에 이르기까지 긍경의 요체만을 발췌, 도식으로 일목요연하게 해설하고 있어 유학사상의 근본을 이해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묵산문집 (默山文集)
『묵산문집』은 조선 후기 학자 문해구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7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문재기의 편집을 거쳐, 1937년에 문경엽이 간행하였다. 문해구는 합천의 처사로, 기묘명인 문회지의 후손이고, 송환기의 문인이다. 그의 잡저들은 철학적인 심성론을 비롯하여 사서에 이르기까지 긍경의 요체만을 발췌, 도식으로 일목요연하게 해설하고 있어 유학사상의 근본을 이해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미산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박득녕의 시·설·제문·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처음 아들 박주대·박주학 등이 김진린·황조하와 함께 편집 및 교감하여 8권으로 편성하였지만, 병화(兵火)에 산일(散逸)되었고, 그 뒤 손자 박면진·박규진·박우진 등이 다시 수습하여 3권 1책으로 정사한 필사본이다.
미산유고 (味山遺稿)
『미산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박득녕의 시·설·제문·만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처음 아들 박주대·박주학 등이 김진린·황조하와 함께 편집 및 교감하여 8권으로 편성하였지만, 병화(兵火)에 산일(散逸)되었고, 그 뒤 손자 박면진·박규진·박우진 등이 다시 수습하여 3권 1책으로 정사한 필사본이다.
『미산유고』는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정환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1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정환주의 동생 정환정 등이 6권 2책으로 편집하여 간행한 것이다. 정환주는 임헌회와 송내희의 문인으로 임헌회, 송내희에게 올린 편지와 어록이 있으며, 우암이 주자행장에서 뽑아 자손을 교육하였던 것을 본보기로 정여창의 행장에서 뽑아 집안의 소학으로 만들었다.
미산유고 (薇山遺稿)
『미산유고』는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정환주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01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정환주의 동생 정환정 등이 6권 2책으로 편집하여 간행한 것이다. 정환주는 임헌회와 송내희의 문인으로 임헌회, 송내희에게 올린 편지와 어록이 있으며, 우암이 주자행장에서 뽑아 자손을 교육하였던 것을 본보기로 정여창의 행장에서 뽑아 집안의 소학으로 만들었다.
『미산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한장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한장석은 홍석주의 외손이며 봉서 유신환의 문인으로서 문형을 역임하고 당시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고종의 묘정에 배향된 인물이다. 『미산집』은 장남 한광수의 수집과 김인식의 교정과 산삭을 거치고, 다시 문인 이용신이 교정하고, 연보를 추가하여 1907년에 연활자로 처음 간행하였다. 이후 저자의 시문을 증보하고 권책도 새로 분류 편차하여 손자 하상기가 1934년에 경성에서 14권 7책의 연활자로 중간하였다.
미산집 (眉山集)
『미산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한장석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34년에 간행한 시문집이다. 한장석은 홍석주의 외손이며 봉서 유신환의 문인으로서 문형을 역임하고 당시에 문장으로 이름이 났으며 고종의 묘정에 배향된 인물이다. 『미산집』은 장남 한광수의 수집과 김인식의 교정과 산삭을 거치고, 다시 문인 이용신이 교정하고, 연보를 추가하여 1907년에 연활자로 처음 간행하였다. 이후 저자의 시문을 증보하고 권책도 새로 분류 편차하여 손자 하상기가 1934년에 경성에서 14권 7책의 연활자로 중간하였다.
『미암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유희춘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이다. 9대손 유경심·유경인이 편집하고 기정진이 교정하였고, 1869년(고종 10) 사손 유정식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이후 1897년에 속부록 1권이 추가되어 재간되었다.
미암집 (眉巖集)
『미암집』은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유희춘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이다. 9대손 유경심·유경인이 편집하고 기정진이 교정하였고, 1869년(고종 10) 사손 유정식 등에 의해 간행되었다. 이후 1897년에 속부록 1권이 추가되어 재간되었다.
『미호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김원행의 시·상서·서(書)·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20권 10책의 활자본이다. 김원행은 농암 김창협의 사손으로서 그와 그 문인 이재의 학풍을 계승한 인물로 평가되는 노론 낙론의 대표적인 산림학자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으나 저술은 많이 남기지 않았다. 『미호집』은 김이안이 편차해 놓은 유고를 바탕으로 1799년에 인행되었다.
미호집 (渼湖集)
『미호집』은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김원행의 시·상서·서(書)·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20권 10책의 활자본이다. 김원행은 농암 김창협의 사손으로서 그와 그 문인 이재의 학풍을 계승한 인물로 평가되는 노론 낙론의 대표적인 산림학자로 많은 제자를 배출하였으나 저술은 많이 남기지 않았다. 『미호집』은 김이안이 편차해 놓은 유고를 바탕으로 1799년에 인행되었다.
『민문정유고』는 조선 후기의 문신, 민유중의 시·서(書)·차자·상소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0권 10책의 필사본이다. 이 책은 산절과 교정,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상적인 문집 체재를 갖추지 못한 유고로 가편집본의 사본으로, 내용의 분류와 편차에 질서가 없다. 민유중은 인현왕후의 아버지로서 송시열을 추종한 노론의 중진이자 외척관료로서 오랫동안 권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유고는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의 분열·대립·갈등을 보여 주는 많은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는 당쟁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다.
민문정유고 (閔文貞遺稿)
『민문정유고』는 조선 후기의 문신, 민유중의 시·서(書)·차자·상소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0권 10책의 필사본이다. 이 책은 산절과 교정,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상적인 문집 체재를 갖추지 못한 유고로 가편집본의 사본으로, 내용의 분류와 편차에 질서가 없다. 민유중은 인현왕후의 아버지로서 송시열을 추종한 노론의 중진이자 외척관료로서 오랫동안 권력을 행사한 인물이다. 따라서 이 유고는 서인과 남인, 노론과 소론의 분열·대립·갈등을 보여 주는 많은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는 당쟁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다.
『밀암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김지행의 시·서(書)·잡저·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8권 9책의 필사본이다. 김지행은 윤봉구의 문인으로 스승과 관련한 시문이 많은 편이다. 생전에 선대의 학술을 계승하여 연구하는 일에 집중한 저자는 인물성동론 등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이와 관련된 저작을 다수 남겼다. 본서는 저자의 성리학설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밀암문집 (密庵文集)
『밀암문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김지행의 시·서(書)·잡저·제문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18권 9책의 필사본이다. 김지행은 윤봉구의 문인으로 스승과 관련한 시문이 많은 편이다. 생전에 선대의 학술을 계승하여 연구하는 일에 집중한 저자는 인물성동론 등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고, 이와 관련된 저작을 다수 남겼다. 본서는 저자의 성리학설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범옹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홍주국(洪柱國)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이다. 6권 3책의 목판본이다. 본서는 저자의 아들 홍만선(洪萬選)이 편집하고, 남용익과 김창협의 산정을 거친 후 송시열과 남용익의 서문과 김창협의 발문을 받아 1709년에 의성에서 간행하였다.
범옹집 (泛翁集)
『범옹집』은 조선 후기의 학자 홍주국(洪柱國)의 시가와 산문을 엮은 시문집이다. 6권 3책의 목판본이다. 본서는 저자의 아들 홍만선(洪萬選)이 편집하고, 남용익과 김창협의 산정을 거친 후 송시열과 남용익의 서문과 김창협의 발문을 받아 1709년에 의성에서 간행하였다.
『범허정집』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상진(尙震)의 시·소차·계사·의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상진의 시문은 대부분 병란과 가문의 쇠퇴로 산일되어 여러 차례 유문을 모으고, 제가(諸家)의 문집과 실록 등에서 초출(初出)하였으며 연보(年譜)를 편찬한 다음 권질(卷帙)을 재편하여 1942년에 9권 4책의 석인본(石印本)으로 간행한 것이다. 상진은 좌의정 이준경(李浚慶)과 더불어 사림 등용에 힘쓰는 등 조야(朝野)의 신망이 두터웠으나, 만년에는 윤원형·이기 등 소윤(小尹) 일파와 어울려 사림의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범허정집 (泛虛亭集)
『범허정집』은 조선 전기의 문신·학자 상진(尙震)의 시·소차·계사·의 등을 수록한 시문집이다. 상진의 시문은 대부분 병란과 가문의 쇠퇴로 산일되어 여러 차례 유문을 모으고, 제가(諸家)의 문집과 실록 등에서 초출(初出)하였으며 연보(年譜)를 편찬한 다음 권질(卷帙)을 재편하여 1942년에 9권 4책의 석인본(石印本)으로 간행한 것이다. 상진은 좌의정 이준경(李浚慶)과 더불어 사림 등용에 힘쓰는 등 조야(朝野)의 신망이 두터웠으나, 만년에는 윤원형·이기 등 소윤(小尹) 일파와 어울려 사림의 지탄을 받기도 하였다.
『범호정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변광식의 시·잡저·제문·유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필사본이다. 변광식은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로 임방, 김창협과 교유한 인물로 유고에는 주로 시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여주에 범호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김익렴(金益廉), 조상우(趙相愚), 임방(任埅) 등과 함께 설립한 난정계 관련 글도 수록되어 있다.
범호정유고 (泛湖亭遺槁)
『범호정유고』는 조선 후기의 학자, 변광식의 시·잡저·제문·유사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2권 1책의 필사본이다. 변광식은 시(詩), 서(書), 화(畵) 삼절(三絶)로 임방, 김창협과 교유한 인물로 유고에는 주로 시가 수록되어 있다. 또한 여주에 범호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김익렴(金益廉), 조상우(趙相愚), 임방(任埅) 등과 함께 설립한 난정계 관련 글도 수록되어 있다.
『은파산고』는 조선 말기의 문신 심낙수(沈樂洙)의 시·태극도서·소·서(序)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11권 11책의 필사본이다. 심낙수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역임했으나 홍국영(洪國榮)·김구주(金龜柱) 등을 탄핵한 일로 유배되었던 인물로 생전에 두 아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저작을 정리하였다. 저자 사후에 정국이 급변하여 저자의 관직이 추삭되고 아들 심노숭이 유배가는 와중에 유고를 보존하여 후에 정고본까지 제작하였지만, 정국의 변화와 가문의 쇠락으로 간행하지 못하였고, 현재 모두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은파산고 (恩坡散稿)
『은파산고』는 조선 말기의 문신 심낙수(沈樂洙)의 시·태극도서·소·서(序)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11권 11책의 필사본이다. 심낙수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역임했으나 홍국영(洪國榮)·김구주(金龜柱) 등을 탄핵한 일로 유배되었던 인물로 생전에 두 아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저작을 정리하였다. 저자 사후에 정국이 급변하여 저자의 관직이 추삭되고 아들 심노숭이 유배가는 와중에 유고를 보존하여 후에 정고본까지 제작하였지만, 정국의 변화와 가문의 쇠락으로 간행하지 못하였고, 현재 모두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