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은파산고』는 조선 말기의 문신 심낙수(沈樂洙)의 시·태극도서·소·서(序) 등을 수록한 시문집으로 11권 11책의 필사본이다. 심낙수는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등을 역임했으나 홍국영(洪國榮)·김구주(金龜柱) 등을 탄핵한 일로 유배되었던 인물로 생전에 두 아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저작을 정리하였다. 저자 사후에 정국이 급변하여 저자의 관직이 추삭되고 아들 심노숭이 유배가는 와중에 유고를 보존하여 후에 정고본까지 제작하였지만, 정국의 변화와 가문의 쇠락으로 간행하지 못하였고, 현재 모두 필사본으로 전해지고 있다.
정의
조선 후기, 문신 심낙수의 시·태극도서·소·서(序) 등을 수록한 시문집.
저자 및 편자
그는 홍양호(洪良浩), 심이지(沈頤之), 홍낙순(洪樂舜), 이규경(李圭景) 등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였으며, 심환지와도 가까운 사이였다. 그러나 그가 남 · 북당의 분열을 화의 근본이라 하여 모두 제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여 김구주와 홍봉한(洪鳳漢)을 공격하였고, 이어 심환지, 김종수, 유언호(兪彦鎬)를 맹렬히 공격함으로써 이른바 시파(時派) 언론의 선봉이 되었다. 이 때문에 신유사옥(辛酉邪獄)(순조 1) 때는 관작이 추탈되었다가 6년 후에 아들 심노숭(沈魯崇)의 상소로 신원되었다.
서지사항
편찬 및 간행 경위
현재 남아 있는 은파산고는 모두 필사본으로 완질본 3종, 낙질본 1종이 있다. 낙질본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古3428-820」본인데, 현재 제4, 5, 7, 13, 14책이 남아 있다. 그 표지 정보와 수록 내용을 보면 원래 원집(原集)과 속집(續集)으로 편성되었는데, 수록작의 저술 시기를 추적해 보면 원집과 속집의 경계는 1791년경을 기점으로 한다. 속집인 제13책과 제14책은 1791년 본문의 작품명 위에 권점이 찍혀 있거나 산삭 표시가 되어 있는데 이것은 버클리대학교 소장본의 수록작 선정과 관련이 있다. 또한 여러 곳에서 본문의 자구(字句)를 수정하고 있는데, 이러한 수정 사항은 일괄 버클리대학교 소장본에 반영되었다. 즉 버클리대학교 소장본이 심낙수 작품을 최종적으로 정리한 정고본(定稿本)이라면 규장각의 「古3428-820」본은 그러한 정고본의 편집 저본이자 초고본(草稿本)인 것이다. 버클리대학교 소장본은 8권 8책이다.
「정변록」은 규장각 소장본 「奎15680」에만 수록되어 있는데, 1929년에 심종순(沈鐘舜, 1858~?) 소장본을 등사한 것으로 조선총독부 혹은 경성제국대학의 주관 아래 성립된 후사본인 것이다.
현존하는 심낙수 필사본 문집은 규장각 소장본 「古3428-820」 → 버클리대학교 소장본 →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본 「奎15680」, 「古3428-198」으로의 계통이 성립한다.
이처럼 『은파산고』는 심노숭(沈魯崇, 1762~1837)의 피나는 노력으로 보존하여 정고본까지 제작하였으나 순조대 정국의 변화와 가문의 쇠락으로 끝내 간행하지 못하였고, 필사본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구성과 내용
권1은 부(賦) 1편, 가사 2편, 시 200수 등이다. 「몽죽신부(夢竹神賦)」는 꿈에 죽신(竹神)을 보고 지은 부(賦)로 허(虛)와 실(實)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만물이 허(虛)를 통해서 생성되니 대나무의 속이 허(虛)한 것을 따라 배우고자 한다는 내용이다. 가사는 「사미인가(思美人歌)」 · 「사미감은가(思美感恩歌)」 등으로 유배 중에 임금을 그리워하며 지은 것이다. 부와 가사는 제주도 유배 시절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권2는 원론 · 태극도례(太極圖例) · 태극도서(太極圖序) · 삼교통변(三敎通辨) 각 1편, 책 3편, 경연강의 등이다. 「원론」은 상하로 되어 있는데 상에는 이기(理氣) · 도(道) · 유(儒) · 불(佛) · 노(老) · 문장(文章), 하에는 예(禮) · 악(樂) · 병(兵) · 형(刑) · 상(象) · 수(數) · 이적(夷狄) · 금수(禽獸) 등에 대한 논의가 담겨 있다.
권3은 소(疏) 22편, 차(箚) 1편, 장(狀) 7편, 교서 6편, 불윤비답(不允批答) 1편, 응제제문(應製祭文) 7편, 전문 4편 등으로 관인으로서 제출한 상소와 각종 보고서, 임금을 대신해 지은 교서(敎書) 등이 있다. 소는 사직에 관한 것이 많으며, 그밖에 제주목사로 있을 때 올린 민사에 관한 소도 일부 들어 있다. 장은 천재로 인해 백성들이 기근과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는데도 부패한 관료들은 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한 정치 체제의 모순과 지방 행정의 타락상을 비판한 글이다. 특히 제주도의 민폐 및 창고이전, 마장(馬場)에 관한 문제 등 제주도에 관한 것이 많다. 또한, 유구 사람이 표류해왔을 때에 올린 「유구표해사정진문장(琉球漂海事情陳聞狀)」이 관심을 끈다.
권4는 서(序) 9편, 기(記) 26편, 제발(題跋) 5편, 잠(箴) 2편, 찬 6편, 송(頌) 3편, 명(銘) 6편, 잡저(雜著) 17편, 잡지 11편 등이다. 잡저에는 「생일천불소(生日薦佛疏)」 등 불교에 관한 것이 여러 편 들어 있어 저자가 불교에 관심이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기송(饑訟)」에서는 굶주림에 대한 논변을 폈다.
권5는 지감록(志感錄) 4편, 수천지(守阡志) 5편, 묘지명 8편, 행장 1편 등이다. 「지감록」은 바쁜 관직 생활에 쫓기다가 부모의 임종을 맞게 되자 자신의 불효를 한탄한 글이다.
권6은 술선지(述先志) 10편, 이후록(貽後錄) 5편, 제문 23편, 애사 2편 등이다. 「이후록」은 자손들에게 경계할 점을 적어준 가훈의 성격을 띤 글이다.
권7은 서(序) 53편, 혼서 3편, 연행일승(燕行日乘) 등이다. 「연행일승」은 중국에 사신으로 다녀올 때의 기록이다.
권8은 열전 2편, 어록 등이다. 열전 가운데 「순충전(純忠傳)」은 구양수(歐陽脩)의 『오대사(五代史)』에 들어 있는 「일행전(一行傳)」의 체재를 빌려 정치적 파벌 의식이 당파로 고질화되어 있던 당시의 조정을 비판한 글이다. 「당역열전(黨逆列傳)」에서는 구양수의 붕당설과 비교해 당시 조정의 사색 당파의 성격을 분석하고 당쟁의 폐해를 경고하였다. 어록은 스승 권상하(權尙夏)의 언행을 기록한 「황강어록(黃江語錄)」이다.
권9는 부록으로 아들 심노암(沈魯巖)이 1803년에 지은 심낙수의 행장과 1739(영조 15) 서울 북부 대사동(大寺洞)에서 태어난 때부터 사망한 뒤인 1807년(순조 7) 아들 심노숭(沈魯崇)의 원정(原情)으로 신원될 때까지의 사실을 기술한 연보이다.
권10~11은 정변록(定辨錄)이 수록되어 있다. 「정변록」은 당쟁에 대한 비판을 담은 글로서, 춘추관에 재임할 때 직접 보고 들은 구체적인 사실들을 사서(史書)의 체재에 따라 기술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현황
참고문헌
논문
- 김수진, 「『은파산고』의 성립과 심노숭」 (『한국문화』 72,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5).
- 김수진, 「심낙수 연구의 실증적 기초:연보와 편년」 (『규장각』 50,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201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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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사정을 하소연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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